> [송원재] 참세상 편집위원

'시장주의 교육개혁'의 포로가 된 노 대통령

시장주의자들, 공교육 정상화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 풀 뜯는 소리'

김진표 신임 교육부총리의 임명을 둘러싼 논란이 전면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사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과거 경제부총리 시절, 교육 주무부처인 교육부와 교육부총리를 제치고 시장주의 교육개혁을 강력히 주장한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경제부총리로 재직 중이던 재작년, WTO 서비스개방에 교육을 포함시킬 것인지를 놓고 논란이 벌어졌을 때, 그는 "개방을 통해 교육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며 교육시장 개방을 가장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같은 해 국정감사에서는 "강북 뉴타운에 특수목적고를 많이 지어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가 "교육정책이 무슨 부동산 안정대책이냐?" 하는 핀잔을 들었다.

또 느닷없이 "판교에 교육단지를 만들어 유명학원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해서 구설수에 올랐는가 하면, 재경부 차관으로 있던 2001년에는 교육부의 교육여건 개선사업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자립형 사립고 30개 설립'을 요구해 빈축을 사기도 했다.

요컨대 김 부총리가 교육을 바라보는 시각의 저변에는 교육을 한 낱 '인력시장' 쯤으로 여기는 경제 만능주의, 시장주의의 관점이 짙게 깔려 있다. 적어도 그에게는 '보편교육의 확대'니 '공교육 정상화'니 하는 것들은 세상물정 모르는 '소 풀 뜯는 소리'이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노리는 시장원리에 비춰볼 때, 끝없이 재정을 투자해야 하는 공교육은 '돈 잡아먹는 하마'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경제관료가 시장적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야 별로 탓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교육이나 문화처럼 인간의 가치관, 의식형성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영역까지 시장원리에 입각해서 뜯어고치자고 덤비는 것은 대단히 무모하고 위험한 짓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장주의 신봉자인 그를 교육부총리에 임명한 것은 시장주의자의 '공교육 점령사건'이라 할 만 하다.

김 부총리의 임명은 또 다른 측면에서 다분히 상징적이다. 그는 이기준 전임 교육부총리의 낙마로 고심하던 노 대통령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끝에 선택한 마지막 카드다. 그래선지 청와대는 김 부총리의 임명이 경제부총리 시절 보여주었던 교육개혁에 대한 남다른 소신을 높이 산 것이라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다시 말하자면 노 대통령은 그의 교육개혁에 대한 소신을 높이 평가해서 칼자루를 쥐어줬다는 얘기고, 노 대통령 역시 시장주의 개혁노선 위에 서 있다는 얘기다.

사실 그 동안 노 대통령은 자신의 교육철학에 대해 분명한 소신을 밝힌 적이 거의 없었다. 재작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파동 때 "이게 먹고사는 문제는 아니잖느냐?"고 짜증 섞인 한 마디를 던진 게 전부였을 정도다. 그러던 노 대통령이 신임 부총리 임명에 즈음해서는 처음으로 자신의 교육적 소신을 분명히 밝혔다. 바로 "대학은 산업"이라는 말이다. 김 부총리의 대학개혁에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 한 말이겠지만, 이 말은 사실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일종의 '폭탄발언'이다.

그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대학과 학문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말대로 "대학이 곧 산업"이라면 이윤을 창출하지 못하는 대학은 존립할 가치가 없으며, 경제적 가치와 무관한 학문적 사유와 지적 성찰 역시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대학의 시장화가 가져올 소모적 경쟁과 차별의 심화, 기초학문의 질식과 인문학적 사유의 고갈, 그리고 비판적 지성의 거세는 또 어찌할 것인가? 그래서 이 발언은 대학의 존재 의의와 지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다음으로 드는 의문은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이 산업이라면, 그 '산업기관'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으로 찌들대로 찌든 초중등교육은 또 어찌 되나?" 하는 것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지금 초중등교육을 왜곡하는 최대 주범은 명문대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서열구조와, 한 단계라도 더 높은 서열로 진입하기 위한 입시경쟁의 과열이다.

대학 간 경쟁을 격화시킬 경우, 기존의 서열체제가 더욱 완고하게 뿌리내릴 뿐 아니라 대학 간 차별의 벽 또한 더욱 높아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럴 때, 초중등교육의 입시경쟁은 가히 살인적인 수준으로 격화될 것이며, 사교육비 또한 걷잡을 수 없이 팽창할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런데도 "초중등교육의 정상화는 변함없이 추진하겠다"는 신임 교육부총리의 약속을 순진하게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과거 사실상 '평준화 폐지'에 준하는 수준의 파격적인 주장을 잇달아 내놓았던 김 부총리의 전력은 그러한 신뢰를 애당초 불가능하게 만들고 있다. '경쟁력'이란 게 대학과 학문의 본질을 내칠 만큼 그렇게 지고지순한 진리라면, 대학에 가서야 뒤늦게 야단법석을 떨 게 아니라 초중등학교부터 일찌감치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게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김 부총리는 그 비법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자립형사립고 설립완화, 교육시장 전면개방, 특수목적고 대폭 증설, 우수학원 대거유치 등등 바야흐로 '시장주의 교육개혁'의 전면화요, '물신주의 교육학'의 범람이다.

노 대통령은 단지 신임 부총리에게 힘을 실어주고 격려해 주기 위해 '대학의 경쟁력'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장주의 교육개혁을 외치는 신임 부총리의 목소리와 그 소신을 높이 평가했다는 노 대통령의 모습은 마치 정교한 더빙작업을 마친 영화처럼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맞아떨어진다. 노 대통령에게 오히려 더 어색해 보이는 것은 불과 이년 전 대선공약으로 내걸었던 '개혁과 참여'의 캐치프레이즈다.

시장주의자를 변호하기 위한 노 대통령의 '커밍아웃'은 그래서 더욱 우울하고 서글프다. 김 부총리의 빗나간 교육적 소신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빗나간 소신에 현혹되어 '시장주의 교육개혁'의 포로가 되어버린 노 대통령 자신이다.
덧붙이는 말

송원재 님은 서울 공항고등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송원재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