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하나
온천 관광지 대전 유성의 한밤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불야성이다. 그러나 그곳의 최고급 호텔 리베라와 그 주변은 요즘 컴컴하고 삭막해진지 오래다.
호텔 리베라(서울, 대전)는 1988년 88올림픽 때 개장하였다가 1996년 우성그룹 부도로 법정관리로 들어갔다. 2001년 신안그룹(회장 박순석)은 자체보유현금 407억원, 공적자금 710억원 지원, 금융기관 차입금 300억원으로 리베라를 인수하였다.
그러나 신안그룹은 ‘레저산업의 중요한 전략적 중심축으로 육성’하겠다는 인수제안서의 약속을 어기고 ‘유상감자’를 통해 현금 투자액 407억원 전액을 고스란히 회수하는 한편 조합원에 대한 부당전보, 부당해고, 전임자 복귀 명령, 노조 사무실 철수 지시, 노조해산 및 노조대표자 사직 요구 등 오로지 노조 해체에 모든 에너지를 소모하였다.
그리고는 2003년 단체협약을 해지하고 노조전임을 폐지를 시도하더니 구조조정 계획으로 노조의 파업을 유도하였다. 노조가 부분파업에 들어가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손배 가압류 등 갖은 탄압으로 노조 파괴에 나선다. 서울 리베라의 조합원은 파업 21일 만에 복귀하고 노조를 탈퇴하였으나 대전 리베라의 조합원은 완강하게 127일을 싸워 겨우 노조를 사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안그룹은 합의서의 잉크가 체 마르기도 전에 손배 가압류 취하를 거부하며 단협을 불이행한다. 고의로 임금을 체불하고 연봉계약직으로의 전환을 강요하는 한편 실질적인 노조 해체를 다시 시도하다 노조의 저항에 부딪히자 마침내 2004년 6월 위장폐업과 함께 전체 조합원을 해고하였다.
너무나도 명확한 위장폐업과 노동자들의 완강한 저항에 결국 충남지방노동위원회는 ‘신안그룹의 폐업은 노조를 와해시키기 위한 수단으로써 부당해고이자 부당노동행위이다’고 판정하였고 대한민국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 박 순석 회장은 증인으로 출석해야만했다. 노동자 알기를 발가락의 때만도 못하게 여기는 박순석 회장은 당연히 지노위 판정 이행을 거부하였으며 환노위에서는 높으신(?) 의원 나리들에게 짜증을 내며 ‘깡패집단’이라고 일갈하였다.
그러나 지노위는 박순석 회장의 불이행에 대해 검찰 고발을 포함해서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요구를 무시하였다. 잘난 의원들은 국회모독과 위증으로 고발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 고발을 포기하였다.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없다는 천민자본가에 맞서, 위세에 눌려 눈치보며 어쩔 줄 모르는 공권력과 이 땅의 그 잘난 국회에 환멸을 느끼며 140명의 조합원들은 9개월이 넘도록 라면을 씹으며 눈물겨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조합원들은 낮에는 투쟁하고 밤에는 생계를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와 대리운전에 나서면서 지칠 줄 모르고 흔들림 없이 세상에 저항하고 있다. 조합원간의 단결과 노동자들의 연대가 그들에게는 유일한 힘의 원천이다.
이야기 둘
삼성전자와 함께 한국 경제를 이끈다는 세계 굴지의 현대 자동차,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동자 착취와 탄압, 인권유린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야만적이다. 현대 자동차는 1998년 외환위기를 틈타 가속화된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의 칼바람을 휘두르며 비정규직 노동자를 대대적으로 확대해왔다.
2001년 이후 한국사회 노동운동의 새로운 양상으로 될만큼 급속도로 확대되어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과 투쟁 속에서 2003년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노조(위원장 안기호)가 탄생한다. 현대 측의 노조 불인정과 탄압에 맞서 투쟁 끝에 노조를 사수한다. 그리고 노동부로부터 울산공장 101개, 전주공장 12개, 아산공장 15개, 총 128개 업체 1만여 명이 넘는 노동자의 불법파견 판정을 이끌어내고 1월 18일부터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현대는 27명 간부에 대한 징계 및 해고, 파업 조합원 전원 해고, 노조간부 출입 통제, 118명 형사고발, 노조 부위원장 및 사무국장 구속, 안기호 위원장의 공장내 구사대에 의한 폭력 납치 및 경찰 인계와 연행, 가족과 친지들 협박, 농성장 단전단수, 집회 및 시위 금지 가처분, 퇴거 및 출입금지 가처분, 수억원대의 손해배상, 불법대체인력 투입, 관리자들을 동원한 폭압적 현장 통제, 집회에 대한 경비대들의 폭력등 상상을 초월하는 탄압으로 일관해왔다.
노동부는 불법파견 판정을 내고는 사측에 6개월 동안 아무런 시정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노조에게는 파업을 들어간 지 하루 만에 불법 파업이니 철회하라고 서슬이 시퍼렇다. 법원은 사측의 불법 폭력은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노조에게는 울산 공장에서의 집회 및 시위 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려 족쇄를 채운다. 노조는 온갖 악조건 속에서도 불법파견 철폐와 정규직화, 노조탄압 분쇄를 위해 지금도 목숨을 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이 땅 노동자들의 연대를 목 놓아 기다리고 있다.
두 이야기의 닮은꼴
두 이야기는 매우 다른 이야기이지만 너무나도 닮은꼴이다.
첫째, 신안그룹과 현대 자동차의 야만적이고 비이성적인 행태이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권력과의 유착, 거짓과 투기를 마다치 않고 더 나아가 노동자들을 발바닥의 때만도 못하게 여기며 착취한다. 그리고 노조를 만들어 저항하면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노동자를 분열시키고 무자비하게 노조 파괴에 나서는 한국의 천민자본주의를 대변한다.
둘째, 그 과정에서 보여준 법과 국가 권력의 반 노동자적 행태이다. 노동위원회와 노동부는 자본의 불법은 묵인방조하고 노동자에게는 추상같이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댄다. 법원, 국회 할 것 없이 이 땅의 국가 권력은 자본에게는 한없이 인자하고 노동자에게는 피눈물과 모멸감을 선사한다.
셋째, 두 곳의 조합원들은 단지 노조를 하기 위해, 그리고 기껏해야 최소한의 생존권과 고용 보장을 요구했을 뿐인데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처절하다. 그리고 투쟁을 통해 자본의 착취와 억압에 대한 분노를 키우고 노동자 단결과 연대의 중요성을 깨달아간다.
어찌될 것이고 어찌할 것인가
신안그룹과 현대자동차는 노동자가 스스로 저항의 의지를 꺽고 노조의 깃발을 내릴 때까지 공격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낮은 임금에 죽도록 충성하며 일하는 노예 같은 노동자를 그들은 원하는 것이다. 공권력은 경제위기와 기업 경쟁력 운운하며 이미 자본의 탄압과 착취를 용인하고 묵인해왔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것이 어찌 신안과 현대만의 문제인가.
전국 곳곳에 자본의 탄압으로 신음하는 수많은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있다. IMF 경제위기 이후 외국 자본의 지배, 경제 및 사회의 양극화가 확대되면서 빈곤과 불안으로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의 수가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 신용불량자 350만, 비정규노동자 800만, 세계 최고의 노동시간과 산업재해를 자랑하고 자본은 불법, 투기와 부패로 흥청망청 인데 노동자들은 땅으로 꺼지는 한숨과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가슴이 타들어간다.
사정이 이럴진대 정부는 오히려 더 나아가 비정규법안 개악을 통해 자본의 불법을 합법화해주고 전체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규직 노동자와 비정규노동자를 이간질하여 노동자간 분열의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고 ‘횡적 폭력의 덫’을 곳곳에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저항 또한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그 저항의 성격과 내용은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의 투쟁 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는 노동자들의 자각으로 더욱 완강해지고 있으며 87년 이후의 정규직 대기업 위주 노동운동에 질적인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2001년 이후 특수 고용직 노동자와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하며 날로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정규직, 비정규직, 업종과 산업을 초월하는 노동자 단결과 연대, 민족주의와 전투적 조합주의, 패배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략, 민주적이고 신뢰받는 지도력이 담보될 때 승리의 영광과 기쁨으로 전환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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