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피해자의 문제가 왜 인권의 문제인가?

[파산특별기획](6)-인권은 양보될 수 없는 최소한의 기준

금융피해자에게 인권은 없다?!

인권의 시각에서 신용불량자라는 용어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용어이며 심지어 반인권적이기도 하다. 신용불량자라는 규정 그 자체가 지극히 자본과 정권에 의하여 저질러진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신용불량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금융피해자에게 끊임없이 신용불량은 '당신에 의해서' 신용불량이 저질러졌기 때문이며, 혹은 당신의 신용을 적절히 관리를 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을 암시적으로 선동하고 있다. 그래서 자본과 정권은 당신에 의해서 저질러진 신용불량을 벗어나고 싶으면 빚을 청산할 것을 부단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신용불량자는 오히려 자본과 정권에 의하여 저질러진 금융권 및 카드자본의 부실의 책임을 신용불량이라는 이름으로 반인권적인 삶을 끊임없이 강요당하고 있는 금융피해자임을 힘주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금융피해자에게 인권은 총체적으로 거부되는 삶을 강요당하게 된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금융피해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인권이 유린되는 삶을 감내해야 한다. 금융피해자라는 '사회적인 주홍글씨'라는 바닥 모를 두려움으로 인하여 피를 말리는 주변의 삶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추심기관의 협박뿐만 아니라 가족과 사회의 냉정한 시선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어 결과적으로 자괴감과 두려움으로 삶은 전체적으로 무너지게 된다.

또한, 모든 삶의 목적이 빚을 갚기 위한 삶으로 급속도로 변화되어 건강과 사회생활이 악화될 수밖에 없으며 열악한 삶에 대한 심리적인 압박마저 고스란히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인권사각지대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금융피해자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이유는 인간다운 생활을 위한 물질적인 조건이 충족되지 못하는 현실, 그 이상의 결핍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금융피해자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도, 해야 할 일도 없게 되면서 무기력한 삶을 연명하고 사회적으로는 불필요한 인간으로 버림받음으로써 이중삼중의 소외를 경험하게 된다.

금융피해자들은 금융피해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회생활에서 차별과 배제가 일상적으로 용인된다. 가령 금융피해자가 기업에서 요청하는 자격과 기능을 충분히 습득하였다 하더라도 취업의 창구로부터 배제가 된다. 아무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금융피해자는 공정한 심사기준으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그것은 기업에서 신규채용자에 대한 모집공고와 함께 일차적으로 금융기관으로부터 기업에 제공되는 신용정보시스템을 통하여 신규채용에 지원한 지원자를 '신용불량자와 비신용불량자'로 최우선적으로 선별하는 기준이 관례화되어 버렸다.

또한, 기업에서는 신규채용의 기준을 선별하는 명목으로 금융피해자의 신용정보를 제 집 드나들듯이 '정보인권'을 유린하고 있다. 그 사람의 능력과 됨됨이를 금융기관에서 제공되는 신용정보에 의하여 폭력적으로 등급이 매겨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금융피해자라는 무거운 족쇄가 그의 이력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피해자들의 일자리는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을 비롯한 불안정한 노동시장으로 자연스럽게 편입될 수밖에 없다. 또한 설령 금융피해자가 정규직의 일자리를 어렵사리 들어가게 된다하더라도 또 다른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 기다리고 있다. 금융피해자들은 채권기관으로부터의 끊임없는 가압류와 채권회수의 협박에 벗어나기 위해서, 최소한의 생존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정규직의 일자리를 뒤로 한 채 비정규직의 일자리를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라면 누구나 당연한 권리로 인식되고 있는 산재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사회보험 등 4대 보험과도 철저히 담을 쌓을 수밖에 없다. 어렵사리 들어간 정규직의 일자리마저도 금용피해자이기 때문에 비정규직의 노동시장을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이렇듯 자본과 정권은 금융피해자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마저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차별과 배제로 금융피해자에게 상식적이고 정상적인 삶을 인정하지 않는다. '신용불량자와 비신용불량자'라는 자본이 구획해놓은 차별은 전적으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닌 사회적인 분배의 문제이고 평등의 문제이다. 자본과 정권이 구획해 놓은 구조적인 폐해를 넘어서지 않고서는 금융피해자의 인권은 단 한치도 전진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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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이름으로 파산을 쟁취하자!

인권이란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누리는 것은 물론이고 나를 발전시키고 사회를 발전시키며 좀 더 나은 삶의 내용을 확대하고자 하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자본과 정권은 금융피해자에게 인권은 고사하고 금융피해자로써의 암담한 삶을 개인의 문제로 받아들일 것을 끊임없이 강요하고 있다. 금융피해자로써 평생을 빚과 씨름을 하며 빚을 갚지 못한다면 '모든 삶의 조건과 삶의 내용을 확대하는' 인권을 지금 당장 '유예'할 것을 윽박지르고 있다.

그래서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의 내용들, 즉 건강하게 일정한 수준의 삶의 질을 향유하면서 창의적인 생활을 만들고, 인간의 자유, 존엄, 자부심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 속에 살 수 있는 기회와 조건을 금융피해자에게 빚을 청산할 때까지 빼앗아 버린다.

그렇다면 금융피해자는 무엇을 요구 할 것인가? 가판대를 놓고 경품을 미끼로 카드를 반 강제로 안기고, 최소한의 신용평가도 없이 오히려 자본과 정권의 필요에 의해 대중을 동원하고 선동하면서 고리의 이자를 착취하였던 이들이 이제는 금융피해자에게 '신용불량자의 멍에'로 평생을 그렇게 고단한 삶을 강요한다면, 오히려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경제회생 논리와 인간의 삶과 생존의 근본조차 허물어 버리는 정권과 자본의 무한 이윤추구 논리를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 금융피해자에게 정권과 자본이 제기하는 개인의 책임논리가 아니라 인권의 또 다른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인간답게 살 권리가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인가?


그것의 총체적인 선언이 파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피해자의 개별적인 노력과 갖은 발품 그리고 눈물어린 법률적인 호소 등으로 가능했었던 파산을 인권의 이름으로 적극적으로 제기하고자 한다. 금융피해자의 집단적인 파산을 통해서 금융피해자의 채무는 한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적인 책임을 적극적으로 제기하는 것과 한편으로 온전히 개인에게 지워지는 빚을 사회공동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적극적인 행동이다.

또한 집단적인 파산뿐만 아니라 자본과 정권에 대한 구체적인 요구와 투쟁도 가능할 것이다. 가령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을 버는 가구가 가지고 있는 부채에 대해서는 전액 탕감하는 특별법을 제정에 대한 요구, 가압류- 압류는 최저생계비 이하에 대해서는 금지에 대한 요구, 보증인 제도를 폐지하거나 최소한 주 채무자가 파산 또는 개인회생으로 면책 받을 경우에는 보증인 책임을 면책을 요구하는 등 금융피해자의 요구는 인권의 이름으로 다양하게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인권은 그 어떠한 이유로 유보되어서는 안되며, 인권은 금융피해자라는 스스로의 처지 때문에 양보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금융피해자의 처지와 조건이 아니라 금융피해자의 소중한 삶이 우선이다.

금융피해자 특별기획 '파산을 선언하자'

1회 들어가며 - 소개
2회 무리한 내수 경기 육성책과 카드 남발, 금융정책 실패
3회 파산을 말한다 : 대전 수련회 취재 기사
4회 파산에 이르는 길 : 금융피해자 기고
5회 누가 이들에게 도덕적 해이를 말하는가 : 자본의 도덕적 해이론 비판
6회 금융피해자들이 놓인 인권 사각 지대
7회 돌고 도는 신용정보, 나의 정보를 보여줘
8회 금융피해자들에 대한 정부 정책의 허와 실
9회 파산과 개인회생, 그 시작과 끝
10회 파산선언, 반자본 시민불복종 운동이 된다
덧붙이는 말

서창호님은 자유와 평등을 향한 『공감』대구인권준비모임의 상임활동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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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 파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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