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놀랐지?

금융감독원이 관리하는 보고서 중에 ‘주식대량보유 상황보고서’, 소위 ‘5% 룰 보고서’라는 것이 있다. 상장기업 주식 5% 이상을 새로 취득하게 됐거나 이미 5% 이상 보유한 대주주가 1% 이상 지분을 추가 취득 또는 처분할 때 금융감독원과 증권선물거래소에 제출되는 공시서류다.

물론 이정도 규모의 주식을 취득 내지 거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자산이 필요하다. 해서 이 보고서에 올라가는 사람들은 대부분이 한국 경제계에서 내로라하는 사람들이고, 특히 대기업의 총수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이건희, 정몽구, 최태원, 신격호 등 대한민국 재벌 총수들은 물론 이들의 친인척과 각 기업의 임원 및 대주주들이 망라되어 있다. 그 숫자가 물경 2만에서 3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개인의 대규모 주식취득현황을 공시하는 서류이다 보니 보고서에는 거래내역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물론 자택주소, 전화번호 및 주민등록번호와 같은 개인신상정보까지 당사자들에 관한 상세한 인적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 돈 많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물들의 개인정보가 잔뜩 들어 있는 것이다.

한 때 이 보고서가 금융감독원 사이트에서 24시간 동안 노출된 적이 있었다. “아깝도다! 진즉에 알았으면 한 몫 잡는 건데”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비싸도 보통 비싼 정보가 아니니 그럴 만도 하다. 재밌는 사실은 이번에 개인정보가 노출된 그분들이 사실은 그동안 개인정보를 이용하는데 발 벗고 나섰던 기업들의 수장들이라는 거다. 자기 기업들이 이윤획득을 위해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활용하는 동안 이분들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동안 기업들은 사내에서는 노동자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관리함으로써 노동통제를 강화했고, 밖으로는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마케팅에 활용하는가 하면 아예 고객들의 개인정보를 상품으로 팔아먹어왔다. 다 그렇게 하는 것이고 위법행위도 아닌 바에야 이윤추구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선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던 것이 기업들이다.

상장대기업 주식의 5%를 손바닥 안에 놓고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던 이번 사건의 피해자 여러분들, 자기 기업들이 그동안 저질러왔던 개인정보 장사질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비용이 들더라도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었는지, 아니면 더 많은 개인정보를 수집하여 돈벌이에 만전을 기하라고 당부했었는지 말이다. 솔직히 개인정보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별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을 거라는 판단이다. 오버하는 건가?

국가기관인 금융감독원이 경제계 리더들의 개인정보를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 욕 먹어 싸다. 그러나 이번에 자기 개인정보를 하루 내내 남들에게 보여주어야 했던 부자 나리들. 이 사건을 곰곰이 되씹어 보기 바란다. 당신들의 개인정보가 중요한 만큼 다른 이들의 개인정보 역시 소중한 것이다. 화들짝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금융감독원에 삿대질을 하기 전에 금융감독원보다 더한 짓을 하고 있는 자기 기업들의 현황파악이나 먼저 해보라는 거다.

쥐뿔도 없이 사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넘치는 돈을 주체하지 못하는 분들의 개인정보까지 염려를 해줘야 하는 건지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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