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섭이 대중투쟁의 가이드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뼈아픈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현재의 실천전략을 만들어가야

‘노사정 교섭’을 둘러싼 노-사-정의 이해관계

대의원대회가 연거푸 3차례 무산된 이후, 민주노총은 3월 17일 중집 회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를 다루기 위한 노사정 교섭 재개’를 통과시킨다. 물론 이러한 중집의 결정이 그간 논란이 되었던 ’사회적 교섭‘ 방침을 강행처리 한 것이라고 확정하기는 어려우나 노동법 개악이라는 민감한 시기에 이루어지는 ’노사정 교섭‘은 사실상 이수호 집행부가 밀어붙여온 ’사회적 교섭‘ 전략의 첫 실험대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즉 이번 ’노사정 교섭‘의 결과 여부가 민주노총에게는 이후 ’사회적 교섭‘ 전략 채택에 있어 갈림길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현재 한국노총과의 관계를 애써 조율하며 교섭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은 비정규사안이 워낙 폭발력 있는 사안이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위기적 상황인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자본에게도 이번 ‘노사정 교섭’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번 노사정 교섭의 재개는 정부의 비정규 개악안이라는 강수가 파생시킨 산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자본 모두에게 노동계가 참여하는 교섭테이블이라는 기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자본이 강위력하게 추진해 온 것은 ‘정리해고의 자유화와 비정규직의 확대’를 골자로 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였다. 그리고 그러한 전략은 외환위기라는 극단적 위기상황을 등에 엎고 사회 전체에 무차별적으로 확대/적용되었다.

그 과정에서 연이어 노동법이 개악되었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현재 비정규직의 수는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웃도는 813만명을 넘어서고 있고, 그들의 불만과 저항들이 곳곳에서 조직되고 있으며, 국민의 70% 이상이 이번 정부의 개악안에 불만을 표출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상황은 정부와 자본이 ‘불안정노동의 확산’을 한국사회에 정착시키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것을 통제/관리하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정부와 자본의 위기의식은 명분과 대사회 이데올로기를 획득하는데 효과적인 ‘노사정 교섭’을 적극 활용하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이번 노동법 개악 국면에서 교섭에 임하는 노-사-정 모두는 교섭내용과 별개로 ‘교섭’ 그 자체의 명분과 실리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같은 교섭을 둘러싼 노-사-정 모두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교섭결과는 물론이고 현 국면에서 형성된 대중들의 불만과 저항들까지 변질/왜곡시킬 우려가 충분히 있다. 우리가 교섭의 성공적인 결과만을 기다리며 마냥 안주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교섭전략의 문제

민주노총은 4월 1일 이수호 위원장의 기자회견을 통해 국회에 계류 중인 ‘비정규직 법안이 노사정 대화를 통해 수정된다면 6일부터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노동법 개악에 관련해 강한 교섭의지를 보여주었고, 4월 21일에는 11차 중집을 통해 ‘노사정대표자회의 운영위원회에서 국가인권위원회 권고안 현실화를 목표로 전향적인 안을 이끌어내겠다’는 결정을 내리면서 교섭에 있어 필요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였다. 이 과정에서 애초의 “비정규개악안 폐기”라는 주장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민주노총은 “비정규개악안 폐기”라는 슬로건이 교섭에 있어 부담스러운 혹은 불필요한 것이라고 판단했을 것이고, 결국 그러한 판단이 ‘노동계의 정부안 수정’이라는 현재의 교섭 지형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인권위안을 가이드라인으로 하는 정부안 수정’이라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교섭전략은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기간제 문제뿐 아니라 파견법 철폐, 특수고용 노동자성 인정 및 노동 3권 보장, 간접고용시 원청 사용자책임 인정도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현대차 사내하청노동자들의 투쟁이 장기화되고 있고, 덤프연대가 다음달 1일 총파업을 선언했다. 또 울산건설플랜트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명료하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보장하고 근로기준법을 적용시켜 달라는 것이다.” “법안에서 우리의 요구가 모두 반영될 것으로 믿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아무도 없다.”라는 전국비정규직노조 대표자연대회의 구권서 의장의 인터뷰 내용은 현재 교섭지형의 한계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개악안 폐기" "파견법 폐지" "특수고용 노동3권 인정" "직접고용 정규직화"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존 요구가 현재의 교섭지형에서 왜곡되고 제한되는 효과가 현재 나타나고 있다. 양 노총에 이어 민주노동당마저 ‘인권위안 가이드라인’을 주장하는 지금의 상황은 ‘인권위안’이 대중들의 요구마저 가이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또한 노사정 교섭을 중심으로 한 투쟁(일정 및 동력)의 배치가 기층에서는 대중운동의 혼란과 투쟁동력의 유실을 낳았다는 점 역시 문제다. 총파업이 힘들어서 교섭을 추진했는데 그러다보니 파업은 더욱 힘들어지는 상황으로 간다. 활동가들이나 대중들은 노사정 교섭이 시작된 이후, 교섭내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국회만 바라보고 있다. 집회 및 실천활동이 잡히더라도 그것이 교섭 압박용임이 뻔해서 대중들의 힘을 빠지게 하고 운동의 활력을 약화시키고 있다. 더욱이 이러한 교섭이 결국 사회적 교섭의 제도화로 이어질 위험성도 있다. 민주노총은 향후 노사관계로드맵에 대한 교섭까지 예정하고 있는데 이는 운동을 통한 계급형성, 대중주체화 등과는 멀어지는 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이미 사회적으로 주요한 화두가 되고 있고, 불안정노동에 대한 대중들의 불만과 저항이 두드러지게 확대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그 불만과 저항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역사적으로 계급투쟁은 확실시되는 패배, 혹은 여러 가지 패배와 부분적 승리의 혼합으로 시작된다. 그러나 그들 싸움의 진정한 성과는 즉각적인 결과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팽창해 가는 노동자들의 결합에 놓여 있다.”는 마르크스의 언급에서 합리적 진실을 발견할 필요가 있다. 현재 노동운동진영에게는 이러한 대중투쟁의 성과들을 쌓아가려는 노력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비정규직 투쟁의 대중적 확장과 새로운 주체형성으로

비정규직 투쟁을 단순히 비정규직을 축소하는 투쟁만이 아니다. 비정규직은 이미 한국사회 다수의 고용형태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고용형태는 지배계급의 신자유주의 전략을 전면적으로 전복하지 않는 이상 앞으로도 줄곧 확대될 전망이다. 우리의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대중운동과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자 여성과 이주노동자를 포함한 미조직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투쟁의 주체로 새롭게 세워내는 방향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안정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투쟁을 스스로 조직하고 확대시켜 나갈 수 있도록 기획하고 조직하고 연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제한적인'이라는 단서를 붙이고 나서 허용해 준 '파견법', 그것이 만들어진 이후 우리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폭발적으로 증가한 파견노동자와 횡행하는 불법파견, 눈뜨고 볼 수 없는 파견노동자들의 피폐상들이었다. 이 뼈아픈 과거에 대한 평가에서부터 현재의 실천전략이 만들어져야 한다. 교섭의 가능성이 대중투쟁의 투쟁수위와 내용을 결정하는 폐해가 이제는 더 이상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덧붙이는 말

안성민 님은 사회진보연대 노동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안성민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