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외교에 대한 사고에서 미국의 시선을 내면화한 정부관리와 지식인들의 한계를 통렬하게 지적한 바 있다. 지극히 당연한 관습헌법처럼 수십 년간 작동해온 미국적 사고방식을 이제 정부의 수장이 비판할 수 있을 만큼 한국 사회는 진보하고 있다. 사실 소위 IMF 위기 시절과 비교해보더라도 이는 눈부신 변화이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미국이 주도한 IMF 의 구조조정안에 대한 재협상론을 잠시 들먹였다가 사회 대부분의 세력으로부터 거의 역적 취급을 받은 바 있다. 반면에 이를 주도한 당시 현직 미국 대통령이던 클린턴은 가까운 측근에게 IMF의 구조조정안은 너무 가혹하고 공정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묻기도 한 바 있다. 이것이 미국인보다 더 미국적인 한국의 슬픈 자화상이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통쾌한 지적은 사회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다소 논리적이지 않은 구석이 있다. 노대통령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이지만 그가 염두에 둔 미국인의 시선은 사실상 그의 생각처럼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는 점이다. 복수의 시선들 중 두 가지 예만 들더라도 현재 미국은 부시로 상징되는 군사주의적이고 귀족주의적이며 제국주의적 퇴행의 요소마저 있는 경향 대 클린턴으로 상징되는 시장주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며 제국적 네트워크 지향의 경향이 서로 근본적으로 충돌하고 부분적으로는 서로 수렴한다.
바로 이점에서 위 노대통령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의도하지 않은 함정이 시작된다. 대부분의 언론이 말하듯이 국제관계에서 현재 한국 사회의 주도적 정치세력 내의 주요한 대립은 노대통령으로 상징되는 자주파 대 조중동으로 상징되는 친미파의 대립이 아니다. 오히려 상징적으로 거칠게 표현하면 부시의 시선을 내면화한 한나라당 대 클린턴의 시선을 내면화한 노대통령의 대립이다.
클린턴의 시선을 내면화한 노대통령은 한국 사회의 지형을 한 단계 진전시킨 자유주의 개혁가이다. 현재 노대통령의 뜻과는 달리 왜곡되게 이해되고 있는 동북아 균형자론은 중국, 북한과의 적대적 갈등을 강조하는 부시에겐 부담이지만 세계를 네트워크적 제국으로 부드럽게 통합하고자하는 클린턴(집권 후반기부터 현재)에게는 아시아에서 연착륙할 수 있는 장기적 전략이다. 아울러 노대통령이 야심 있게 추구하는 동북아 평화공동체와 그 한국 내 하부구조로서 지역혁신전략은 자본 주도의 신자유주의적 네트워크 전략이라는 점에서 클린턴이 못다 이룬 꿈과 일치한다.
노대통령이 집착하는 것으로 알려진 균형자 개념은 노대통령이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들과 달리 얼마나 미국적 자유주의를 내면화하였는가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노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의 국내판 버전은 스스로의 권력까지 헌납해가며 입법, 행정, 사법간의 균형과 견제 논리를 제도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는 한국 사회를 제왕주의에서 공화주의로 바꾸는 획기적 실험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대통령의 국내판 균형자론은 위에서 언급한 신자유주의적 동북아 네트워크론이 그러하듯이 클린턴이 추진했던 신자유주의적 노동, 교육, 의료 정책과 함께 가고 있다.
마치 국제관계에서 자주파 대 친미파의 대립이 허상이듯이 신자유주의라는 보수주의 정책에 노대통령과 한나라당이 기본적으로는 합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내 문제에서 주요 대립이 좌파 노대통령 대 우파 한나라당의 대립이라는 담론은 허구적이고 희극적이기까지 하다.
바로 이러한 국내외 문제에서의 뒤틀린 담론 지형에서 보면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선이 절박하게 요구된다. 필자는 사실 노대통령 보다 더 친미적인 지식인이다. 왜냐하면 본인은 미국을 사랑하고 본인이 과거 유학했던 뉴욕에 대한 묘한 애증의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 본인이 말하는 ‘미국’ 또한 단수의 미국이 아니라 복수의 미국 중 그저 하나의 미국일 뿐이다. 본인이 수용한 미국은, 노대통령이 인상 깊게 받아들인 미국적 균형자론이 부시적 제국주의나 클린턴적 제국을 넘어 보다 민주적 네트워크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서의 미국이다. 지금 이 가능성은 아이러니하게 과거 늙은 구유럽으로 불리던 지역에서 오히려 더 꽃피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또한 친유럽적이기도 하다.
과거 80년대 진보를 이끌었던 인사들은 지금 대거 청와대 및 각계각층에서 맹활약하며 한국 사회에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마치 미국의 60년대 혁명이 지금의 강하고 혁신적인 미국을 만들었듯이 이들의 노력은 현재 현기증이 나도록 한국 사회를 역동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하지만 역사의 아이러니는 전태일 열사의 죽음으로 각성하고 그의 시선을 내면화하며 운동에 뛰어들었던 이들이 지금 21세기 전태일인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에서 미국적 시선을 내면화하고 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노동 문제뿐 아니라 의료, 정치 개혁, 지역 혁신론, 대학 개혁론, 동북아론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뒤틀린 담론의 지형에서 ‘참세상’ 의 창간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신문이 단지 공허한 반대나 일국내 목소리가 아니라 지구적이며 리눅스적인 네트워크의 일부로서 기능하며 새로운 시선을 벼려내는 용광로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사진
-
재난 연극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상담소
- 99%의 경제
- 미디어택
- 비문명의 역습
- 초고령화 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엄한진의 INTERNATIONAL
- 여성, 노동의 기록
- 녹색스트라이크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연정의 르포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