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한반도 출신의 부모를 가진 나는, 일본의 협소한 틀에 갇혀, 한반도에 대한 시선을 거의 지니지 못한 채 자신의 문제로서도, 또한 다른 사람들과 관계된 문제로서도 한국의 민중을 연결지어 생각해보는 일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후 청년기를 맞아 스스로의 출신에 대해 고민하고, 정체성의 확립에 고심하게 되었다. 재일 조선인의 통상적인 경우처럼, 간신히 대학생이 된 때에서야 조국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그러나 고생해서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어를 배우고, 무언가 한국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보고자 해도, 그러한 통로는 거의 닫혀 있었다. 반공독재로 일관한 한국정부와 한국사회는 재일동포를 경계하고 적대시했다. 나에게 조국은 너무나 먼 존재였을 뿐 아니라, 일방적으로 거부당한 악몽의 땅이었다. 그렇게 단절된 공간을 연결해줄 수 있는 언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이 차츰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근무하던 대학으로부터 파견되어 런던에서 유학생활을 보낸 1987년부터였다. 일본의 대학에서 직장을 얻은 것도 참으로 행운이었지만, 곧 연구를 위해 유럽에 가게 된 것은 인생의 커다란 전기가 되었다. 유럽에서 유럽의 사람들과 접하게 된 것은 물론 당연한 것이었지만, 거기서 예기치 않게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당시 서독 등에는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살고 있었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밝은 미래를 꿈꾸며 필사적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거기서 만난 유학생들은 생각지도 못한 재일동포인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그렇게 처음으로 한국 사람들과 직접 어울리게 되었다. 그것은 또한 처음으로 경험하는 '동포애'이기도 했다.
나아가 거기에는 작은 일이었지만, 이국 땅에서 사람들을 이어주는 '교포지'라 할만한 수작업으로 제작한 민중언론이 있었다. 나는 그것을 손에 들고, 기쁨에 떨리는 마음으로 열심히 읽어내려 갔다. 그것은 결국 한국 사람들과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거기서 자신의 정체성의 핵심을 발견하게 된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그 이후 실제로 지금에 이르기까지 나와 한국, 또는 나와 조국을 연결하고, 나의 정신, 내면을 뒷받침해준 것은 민중운동, 민주화운동의 숨결이 전해지는 민중언론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잡지나 팜플렛을 통해서, 또 때로는 민중운동단체의 신문을 통해서였으며, 인터넷이 보급된 뒤에는, 인터넷을 매개로 하는 몇몇 신문매체들이었다. 현재의 한국의 민주세력, 나아가 개혁정권 자체는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민중언론의 존재 없이는 사실상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러한 점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민중언론 나아가 인터넷과 불가분의 관계인가를 알 수 있다.
한국의 지식인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할 정도로 활동적이며, 사회적이다. 반공독재의 후유증과 싸워나가면서 사회변혁의 선두에 서서 훌륭하게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물론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부족한 점도 적지 않고, 오류와 실패가 많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고의 착오는 실천에 불가피한 것이며, 그것을 두려워하여 역으로 무위무책으로 있는 것은 지식인으로서는 용납될 수 없는 것이다.
특히 남북분단의 해소를 지상과제로 하는 한국의 지식인은, 세계 어느 나라의 지식인들보다 어렵고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점에서 민중과 이어주는 민중언론의 존재는 지식인에게 있어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된다.
다만 한가지 말해둔다면, 한국의 민중언론은 이후에도 어려운 투쟁을 지속해나가고, 스스로 부과하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라도, 지금보다 더 밖으로부터의 시선에 신경쓰기를 바라고 싶다.
아시아 각국은 물론 미국, 중국, 유럽 각국의 사람들이 한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또한 특히 각 나라들의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를 주시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스스로의 언론활동을 더욱 충실한 것으로 만들어가기를 바라고 싶다. 일본에 있는 동포의 한사람으로서는 특히 역사인식과 교과서 문제, 독도문제로 한일양국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일본 언론의 양상에도 더욱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의식한 기사도 실을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를 바라고 싶다.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1970년대이래 한국에서 민주화 투쟁이 고양되고, 그 과정에서 일본이 비난 대상이 될 때마다, 일본 정치와 언론은 그것에 비판적인 대응을 보여왔다고 생각된다. 그 연장선상이라고 해야할는지, 최근에는 노무현정권에서 진행되고 있는 '친일행위 대일협력' 규명의 움직임과 과거사 진상규명·국가보안법 폐지의 흐름에도 우려를 표명하고, 때로는 노골적으로 반대의 태도를 밝히고 있다.
산케이(産經)신문이나 요미우리(讀賣)신문 등 보수계·우익계 신문 뿐 아니라 아사히(朝日)신문이나 일본경제신문 등 비교적 양심적이라고 여겨지는 신문마저 그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들에게 한국에서의 과거청산의 움직임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일감정의 표현'으로 간주되어, 반일정책의 추진과 동일시되곤 한다. 한국이 반일교육을 시키고 있다는 비방중상을 포함하여, 거기에는 이른바 과거청산이 불가능한 일본의 지적구조가 타자에 대한 시선을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새삼스럽게 일본에서 민족주의(nationalism)를 논의하는 방식이 근저에서부터 왜곡되어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즉 자신은 과거의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서 또는 직시하는 역사인식을 갖지 못한 채로, 근대 일본의 행보를 무조건적으로 긍정하고 또는 얼굴을 마주하고 생각해보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타자에 대해서도 태연히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해보면, 자기인식과 타자의 인식은 일체의 것이다. 자기를 정확히 인식하기 위해서는 타자를 통해서 생각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타자를 모른다면 자기에 대해서도 모르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민주화, 과거청산이라는 것들도 그 대부분은 이전의 식민 지배국이었던 일본과 음으로 양으로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한국의 독자적인 문제이며, 한국의 내부 문제다 라는 것으로는 끝나지 않을 정도로 국제관계는 상호 연관되어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 진전은 궁극적으로는 일본의 민주화에 연동되는 것이며, 나아가 북한의 민주화, 남북한의 통일에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일본이 선진국 중에서도 매우 배타적인 체질을 지니고 있는 것은 새삼스럽게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거의 식민지 지배·침략의 책임을 지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재일동포에 대한 처우에 대해서도 매우 냉담하다. 아마도 독립국가로서는 이례적으로 거만한 나라라는 것은 틀림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무시하면 된다 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일본의 언론에 문제가 있다면 한국의 언론, 특히 민중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일본의 변혁을 도울 필요가 있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그것에 기초하여 언론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달리 말하자면 일본이 보다 온건한 사회, 공생을 서로 인정하는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민중운동, 특히 민중언론의 역할이 불가결한 것이다. 그것은 한국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며, 또한 재일동포를 위해서도, 남북의 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 덧붙이는 말
-
윤건차 님은 1944년 교토(京都)에서 태어난 재일조선인 2세이다. 1981년에 도쿄대학에서 교육학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카나가와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일본 근대사상사, 한국 현대사상사, 근대 한일관계사를 전공하고 활발한 집필활동을 벌이고 있다. 한국어 저서로는「일본-그 국가·민족·국민」(일월서각, 1997)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당대, 200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