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de in USA, <스타워즈>
극장가의 '새로운 <스타워즈>' 열기가 뜨겁다. 칸을 들썩이게 하고 개봉 첫 주 미국을 흥분에 몰아넣더니 이젠 세계 극장가를 하나 둘 점령하고 있다. 세계 언론도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시스의 복수 Star Wars Episode III - Revenge of the Sith> 이야기로 영화 면을 도배한지 오래다. 더욱 자극적인 건 영화의 내러티브와 캐릭터를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가십들이다.
전통적 이분법으로 진보와 보수의 반응을 나열하며 <스타워즈>의 정/부당성을 설득하는데 여념이 없다. 특히 다쓰 베이더라는 캐릭터를 둘러싼 논쟁이 가장 뜨겁다. 부시와 다쓰 베이더의 공통점 찾기라는 고전적 분석에서 민족주의 논쟁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스타워즈>와 다쓰 베이더를 반할리우드 영화, 캐릭터로 규정하려는 움직임마저 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모두는 아쉽게도 텍스트를 갇힌 (비)자발적, (무)의식적 영화 홍보의 범주를 맴돌고 있다. 블록버스터 시스템의 등장이 1970년대 중반 무렵이고 베트남전 우울증에 시달리던 미국에 강인한 이미지를 재주입한 영화가 <스타워즈> 시리즈였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 영화를 둘러싼 의미의 층위는 그리 간단하게 정리되지 않는데도 말이다.
1970년대 중후반 <스타워즈> 시리즈로 점화된 할리우드 영화의 지배력이 2004년 세계시장 91%를 점령에 이를 정도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스타워즈>는 세계적 규모로 확대된 미국과 할리우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기술적 영향력과 행보를 함께 할 뿐 아니라 그 컨텍스트 내에서도 상징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텍스트이며, 과장을 보태면 미국의 정치경제적 지형의 축소판이다.
제국에서 떨어져 나온 행성, 한국영화
그런데 흥미로운 모순 하나가 지구상에 존재한다. 정치역학상 그 어떤 지역보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는 한국에서 할리우드가 그리 큰 힘을 쓰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스타워즈>의 영향력도 지금까지는 그저 그런 수준이었다. 쉽게 말해 할리우드의 패권이 제대로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동안 지속되었던 정부와 기업의 지원과 투자, 이로 인한 양적 성장과 시스템의 정비, 미국과 할리우드에 대한 재인식, 고유의 정서를 담은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의 신뢰 축적 등 다양한 외양으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러한 모습은 결과적으로 한국영화산업이 세계의 이목을 끄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한국을 제외하고 자국영화의 시장점유율이 2,30%를 넘는 나라가 프랑스, 일본, 인도뿐인 현실에서 한국의 상황은 세계로부터 독특함을 넘어 경이로움으로 받아들여진다. 프랑스의 시청각산업정책은 역사가 오래됐고, 일본은 자국영화 전용관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으며, 인도의 경우 할리우드가 침투하기 어려운 세포망 같은 배급구조, 언어의 문제 등 태생적 방어장치를 갖추고 있기에 과거부터 할리우드 영향권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불과 10여 년만에 할리우드에서 멀리 떨어져 나온 한국의 사례는 세계 어느 나라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암울한 상황을 헤쳐 나갈 하나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지난 수년간 한국영화에 부러운 눈길을 보내왔다. 우리 나라가 스크린쿼터라는 단 하나의 예외를 제외하곤 다른 나라처럼 미국과의 영화협상에서 모든 것을 개방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말이다. 미국이 스크린쿼터의 폐지 종용하며 지난 10여 년간 쉼 없이 못살게 군 이유 또한, 못된 본보기 하나가 생각보다 위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5월초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국제문화전문가단체(CCD) 제4차 총회에서도 한국영화의 성공 사례는 70여 개국 문화단체와 문화전문가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스크린쿼터 제도의 필요성을 확신케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모두들 당장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스크린쿼터 폐지를 약속한 것이 영화산업 붕괴의 요인임을 지적하고 이의 부활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다짐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미국의 통상압력에도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거나 폐지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리고 어떠한 일이 있어도 문화정책의 정당성을 되새기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스크린쿼터 재건의 다짐이 현실화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다. 국제협정에서 한번 줄이거나 폐지하면 변경이 불가능하다는 원칙(롤백이나 스탠드스틸 등의 원칙)을 예외적으로 적용한 사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영화제국 미국이 가만 놔둘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 유네스코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컨텐츠와 예술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를 위한 협약>이다. 영화산업의 부활을 꿈꾸는 대부분 나라들은 미국을 제외한 대부분의 나라가 찬성을 보이는 이 협약이 강제적 구속력을 지닌 현 모습대로 오는 10월 채택되기만 한다면 통상협정과 별개로 문화정책을 수립하고 이행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길 것이라 굳게 믿고 있다.
자의식을 포기한 다쓰 베이더
다시 <스타워즈>. <스타워즈>시리즈는 세계 점령을 목표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영화제국의 역사를 상징한다. 그리고 1980년대 보수정권의 예고편이었으며 할리우드 세계 지배의 본격적인 시발점이었고 테크놀러지와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영화 세상의 본보기였다. 그들에게 자의식, 반성은 오래 전에 사라졌고, 저항 세력을 짓누르는데 사용한 자본과 무력만 남았다.
그리고 문화적 획일화가 그들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봉사하리라는 굳은 신념을 근거로 뒤돌아보지 않는 전진만을 강조해왔다. 세계영화사를 장식했던 독일, 이탈리아, 멕시코, 브라질, 호주, 뉴질랜드 영화는 대표적인 희생양이었다. 우리 나라가 적어도 영화에서만큼은 제국에서 멀리 떨어져 독자적 영역을 구축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크린쿼터와 몇 개의 영화정책, 관객의 신뢰만을 가지고 말이다.
정치적 욕망을 위해 선한 반쪽을 포기한 다쓰 베이더는 그래서 할리우드의 문화제국주의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이다. 무력을 이용한 팽창 욕망을 이기지 못하는 미국적 자본주의 상징이며, 전면적 획일화를 강요하는 할리우드의 대표주자이다. 그리고 그의 가면은 지배 욕망을 위해 스스로 포기한 선한 반쪽을 억누르는 도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자의식이 살아있음을 강조해 관객의 연민을 자극하는 또 다른 위장수단이다. 그의 개인사를 파헤치는 <스타워즈 에피소드>시리즈의 내러티브 자체가 할리우드의 역사를 정당화하는 은밀한 외침으로 읽혀지는 것이 이 때문이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 탄생연도가 할리우드의 테크놀러지가 정점에 달한 시점과 보수정권의 또 다른 기지개를 켠 시점이 교묘하게 맞닿은 시기라는 사실이다. 수년 전 <스타워즈 에피소드>의 등장과 부시 정권의 탄생을 보며, <스타워즈>가 레이건 시대의 개막작이었다는 캐나다인 로빈 우드의 분석을 떠올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현재로서 할리우드를 무작정 사랑할 수 없는 것은 부시 정권을 무작정 추종할 수 없는 이유와 한 가지이다. 흥미 만점의 영화 <스타워즈>에 삐딱한 시선을 보내는 것도 사실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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