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현충일 추념사에서 "공동체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지적하면서, "더불어 사는 것이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함께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 날카로운 현실 파악을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시키고 실현할 때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은 '증오와 분노'를 해소하게 될 것이다.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다국적자본이 세계시장을 휘젓고 다니는 세계화시대에도 정부 또는 공권력의 힘은 여전히 막강하다는 사실을 정책담당자가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주 일어나는 세계적인 금융공황을 보라. 1983년에 일어난 후진국의 외채위기, 1987년 10월의 세계적인 주식시장 공황, 1980년대 말 미국 저축대부조합의 대규모 파산, 1997년의 아시아 전역의 외환금융공황, 1998년 미국 헤지펀드 롱텀 캐피털 매니저먼트의 파산 위기, 2002년의 아르헨티나 금융공황 등등에서 각국 정부가 개입하지 않고 시장에 맡겨 두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각국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금융기관이나 기업을 살리기 위해 누가 자금을 제공했는가? 금융시장도 아니고 자본시장도 아닌 정부가 국민의 혈세인 공적 자금을 제공한 것이다. 그리고 노사대립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노사 모두가 큰 손해를 보고 경제가 큰 혼란에 빠질 때 누가 이 노사대립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정부 뿐이다. 따라서 '공동체적 통합'에 필요한 현실적인 정책을 '힘이 없기 때문에' 추진할 수 없다고 말하는 정부는 빨리 물러나야 할 것이다.
'더불어 사는 것'은 노대통령이 말하는 바와 같이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양극화의 해소가 기업가들과 노동자들 모두에게, 그리고 부자와 서민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인식'을 어떻게 심어 줄 것인가?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지금과 같이 수출에만 목을 매달고 있다가는 우리 경제가 계속 침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수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킨다는 명목으로 노동자들을 대량 해고하고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대체하며 빈곤층을 내팽개치고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의 목을 비튼다. 이리하여 서민의 소비규모는 격감하고 내수산업은 도산하며 경제가 전반적으로 침체를 겪고 있다. 이렇게 되니까 수출을 더욱 확대할 필요가 생기고,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을 더욱 착취함으로써 국내수요기반을 더욱 축소시키고 서민들의 삶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고 있다. 수출 증대와 서민 불행의 악순환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해야 할 사실은 우리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너무 높다는 점과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안정적이지 못하다는 점이다. 2004년에 수출액을 국내총생산액으로 나눈 수출의존도는 37%이고, 수출액과 수입액을 더한 무역액을 국내총생산으로 나눈 무역의존도는 70%이었는데, 이 숫자는 내수기반이 붕괴되면서 2002년부터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미국과 일본의 무역의존도가 20% 정도인 것에 비하면 우리 경제의 무역의존도는 매우 높은 편이고, 따라서 우리 경제는 세계경제의 움직임에 따라 크게 휘둘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의 수출시장이 중국과 미국에 너무 집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중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점점 증대하고 미국에 대한 비중이 점점 감소하다가 2004년에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수출이 각각 총수출액의 20%와 17%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중국시장의 장래가 중국 국내의 사회적 정치적 혼란의 가능성과 미국 정부의 중국에 대한 견제정책에 따라 안정적이지 않으며, 미국 시장에 대한 수출은 항상 미국 정부의 '보복'조치에 시달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 경제가 수출에 목을 매달다가는 눈 깜작할 사이에 대규모의 과잉생산과 과잉설비에 부닥치고 1997년과 같은 공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정부는 수출 증대와 서민 불행의 악순환을 끊고 경제의 안정적 성장을 위해서는 내수기반을 확충해야 한다. 정부는 국산품에 소득의 대부분을 지출하는 서민들의 소득을 향상시킬 수 있는 경제정책(양극화를 해소하는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건강한 일꾼일 뿐 아니라 건전한 소비자가 될 수 있도록 노동자의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해야 하며, 동일한 노동을 하면서도 임금과 인격 면에서 엄청난 차별을 받는 비정규직을 폐지해야 할 것이고, 고용효과가 대기업보다 훨씬 큰 중소기업을 보호 육성해야 할 것이며, 빈곤층에 대해서도 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에 대해 막대한 공적 자금을 제공한 것과 마찬가지로 보조해야 할 것이다. 이런 내수기반의 확충 위에서 비로소 건실한 과학기술이 발달할 수 있으며 수출의 증대와 국민생활의 향상이 더불어 이루어 질 것이다.
이리하여 양극화의 해소 → 내수기반의 확충 → 경제의 안정적 성장 → 증오와 분노의 해소 → 사회적 타협의 확대로 나아갈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유럽의 선진국들이 걸어온 길이다. 친미주의자들이 칭송하는 미국 사회는 복지수준에서나 범죄수준에서 유럽의 선진국과 매우 다르다는 점을 항상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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