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부엌이 낯선 이유

[기고] 엄마의 노동, 여성의 노동, 우리 모두의 노동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여지없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밥 챙겨먹었니, 엄마 늦게 가니까 밥 챙겨먹으렴, 냉장고에 무슨무슨 반찬있으니 꺼내 먹어라 등등등. 그러면 나는 네 네 네ㅡ 대답을 한다. 물론 전화를 끊고 엄마 말대로 재깍 부엌으로 향해 밥을 챙겨먹지는 않는다. 다이어트 때문이냐고? 아니다. 그럼 엄마한테 반항하는 거냐고? 그것도 아니다. (나는 비교적 엄마 말을 거역하지 않는 온순한 딸이다) 단지 부엌으로 발걸음하게 되지 않아서이다. 부엌은 내게 낯선 장소이기 때문이다.


밖에서는 자기 밥상 자기가 챙겨먹고 자기 밥그릇 자기가 치우자'주의'를 열심히 주장하는 장본인인 내가, 정작 집에서는 부엌에 발걸음하지 않고 밥차려 먹느니 잠을 자는 것을 택한다는 것은 스스로가 생각해도 상당히 기만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웃기는 모습에도 다 나름의 까닭이 있었던 것인데, '집안일 낯설게하기'는 집에서 여자들이 하는ㅡ해야만 하는 것으로 당연시되는ㅡ역할을 거부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취하게 된 일종의 전략이었던 것이다.

나는 엄마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편이다.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아버지와 정반대의 성품을 지닌 엄마를 나는 진정 좋아하고 존경한다. 그런데 그런 엄마가 초라하게 느껴지는 때가 바로 엄마가 하는 일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순간순간이었다. "집에서 놀면서 뭐했어?"라는 말이 엄마에게 향하는 것을 목도하게 되는 순간이라든지, "엄마는 그냥 집에 계세요"라는 대답 외엔 딱히 적당한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 순간에(그나마 '논다'를 대신할 '계신다'라는 표현이 존재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내가 존경하는 엄마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싫었다.

그래서 나는 소위 '집안일'이라는 것이 나에게도 부여되지 않도록 부단히도 노력했다. 나 역시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될까봐 두렵기까지 했었던 것 같다. 물론 그러한 노력은 내게 집안 일을 강요하지 않는 엄마의 배려 덕에 가능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는 학생 때는 학과공부를 열심히(하는척) 했고 졸업 이후에는 취업공부를 열심히(하는척) 하는 것으로 집에서의 나의 공간을 확실히 했다. 그것은 부엌을 제외한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집의 집안 일은 계속하여 엄마의 몫이고, 계속하여 엄마는 별일 안 하는 사람으로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족들의 밥상을 차려주신다. 같이 밥을 먹지 못하는 가족들에게는 전화로 밥먹었느냐고 챙겨주신다. 가족에 대한 재생산노동과 보살핌노동은 여전히도 오롯이 엄마의 몫이다. 그리고 여전히도 엄마는 그 모든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그냥 집에 계시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내가 부엌이랑 친해지면 되는 걸까? 물론 더 이상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받아먹지만은 말아야겠다고 다짐 중이긴 하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불충분하다. 내가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다고 해결되는 문제는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가족모두가 집안 일을 나눠하고, 그동안의 엄마의 위대하신 사랑에 대해 칭송하면 되는 것일까? 그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내가 아무리 사정한다한들 아버지가 이제와서 집안 일을 나눠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엄마'의 역할-가족들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것!-을 미화하는 것도 썩 탐탁치않다.

그렇다면 뭘 어째야 하는 것일까? 일단은 집구석이 제대로 돌아가게끔 만드는 가사노동과 가족들을 보살피는 보살핌노동이 그저 '사랑'으로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목적의식적으로 행해지는 '노동'이라는 사실이 드러나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가사노동'과 '보살핌노동'이 없이는 가족구성원 그 누구도 제대로 밖에서 '일'을 할 수 없게된다는 사실이 밝혀져야 할 것이다. 즉 '가사노동'과 '보살핌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까지 가능하다면, 이제 여자들은, 엄마들은, 온당하게 대접받고 존경받게 되는 것일까? 나는 더 이상 '집안일 낯설게하기' 전략을 취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그러나 그것은, 집안일도 중요한 일이니 여자들이여 집안일을 소홀히 하지 말라는 이야기와 뭐 다를바 있겠는가? 결국 결정적으로는 '가사노동'과 '보살핌노동'이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전가되는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자기밥상 자기가 챙겨먹고 자기밥그릇 자기가 치우는 세상이 되어야 하고, 스스로 할 조건이 되지 않는 이들에 대해서는 엄마가 아닌 사회가 책임을 지는 세상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타인을 보살피고 배려하는 행위 역시 여성의 몫으로만 떠넘겨지는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구분없이 서로서로에게 행하는 세상이 되어야 하고, 보살핌을 받아야만 하는 존재-아이와 노인 등-에 대한 보살핌노동은 엄마가 아닌 사회가 책임지는 것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집안일 낯설게 하기'라는 다분히 방어적인 전략을 취함으로써 한편으로는 밖에서 하는 말과 안에서 하는 행동이 다른 기만적이 인간이 되고, 한편으로는 엄마를 착취하는 못된 딸이 되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유쾌치 못한 일이다. 이제라도 유쾌하게 살 수 있기 위해, 세상이 하루빨리 바뀌길 고대한다. 집에서 밥 안챙겨먹는 것에 대한 변명치고는 너무 길다고? 뭐 그럴수도. 그렇지만 이유있는 변명은 들어줄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 않을까?!

[특별기획 : 빛나는 여성노동을 위하여]

1회: [르포] 요람에서 무덤까지 빈곤하라
2회: [기고] 불안정노동의 맥락에서 바라본 여성노동
3회: 가사노동의 가치평가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4회: 3c 노동을 아시나요?
5회: 아파도 아플 수 없는 여성들
6회: 노동운동에서도 소외된 여성노동
7회: 여성 노동운동의 전망과 과제(좌담)
덧붙이는 말

문설희 님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교육국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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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 가사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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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이라도...

    자기일 자기가 좀 하자. 집안일 나누어서 좀 하자. 생각있는 사람들 부터 동참하자. 세상이 바뀌땔까지(?) 그냥 받아먹는 생활 하지 말자. 어머니가 그것이 편하다고 해서 용납하지 말자. 어머니와의 여성연대로부터 아버지도 변화시켜 나가자. 요즘 나이들면서 가사일하는 남자들도 늘고 있다. 발전적인 트랜드는 집안에 빨리 들여놓자. 남자들이 바껴지는 속도가 좀 느릴지라도 , 그들의 처신도 달라질 것이다. 생각있으신 분이니, 집밖에서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부엌일 나눔이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사회도 바뀌어나갈 것이다. 동참자가 수적으로 많아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겠는가...

  • 지금이라도...

    자기일 자기가 좀 하자. 집안일 나누어서 좀 하자. 생각있는 사람들 부터 동참하자. 세상이 바뀌땔까지(?) 그냥 받아먹는 생활 하지 말자. 어머니가 그것이 편하다고 해서 용납하지 말자. 어머니와의 여성연대로부터 아버지도 변화시켜 나가자. 요즘 나이들면서 가사일하는 남자들도 늘고 있다. 발전적인 트랜드는 집안에 빨리 들여놓자. 남자들이 바껴지는 속도가 좀 느릴지라도 , 그들의 처신도 달라질 것이다. 생각있으신 분이니, 집밖에서만이 아니라 집안에서도 부엌일 나눔이를 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사회도 바뀌어나갈 것이다. 동참자가 수적으로 많아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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