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시대에 태어나, <하나씩만 낳아도 삼천리는 초만원!>을 보고 자랐거늘, 어느날 문득 둘러보니, 어머낫, 깜짝이야~, 출산이 애국이니, 애 낳으면 돈 준다니, 귀설고 낯설은 소리가 자자했다.
그동안 별로 주시하지 않았던지라 언제부터 반전이 되었는지 모르겠되, 나에게는 참으로 생소하다 못해 신기하기까지 했다. 어렸을 때 귀에 못 박히도록 주입받길, 애를 안 낳는 것이 애국자요 문화인이요 선진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 대한가족계획협회 이름이 명토박힌 <둘만 낳아 잘 기르자!>와 <둘도 많다!>의 포스터는 눈 돌리는 곳마다 나부꼈다. 예비군 훈련에서 정관수술 공짜로 해준 데다 임신중절수술마저 권장사항이었고, 셋째 아이부터는 의료보험도 학자금 대출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굳게굳게 세뇌당한 정신에, 어느날 갑자기, 가족계획이 출산장려요 애 낳으면 돈 준다니, 좀 과장해서 말하면 천지가 뒤바뀐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거다.
“출산은 국력”, “저출산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정부며 언론이며 떠들썩하고, 행간엔 여자들의 이기주의(?)에 대한 비난마저 암시되는 와중에, 애 안 낳은 여자인 나는, 허걱, 숨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다. 마치 이등국민이 된 듯한 느낌. 아, 내 한 몸의 이익만 생각해서 아이를 낳지 않다니, 국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인륜을 거스른 처사였나 보다?!
은근히 부아가 났다.
아니, 애 낳지 말라고 세뇌시켜 놓고선, 이제 와서 애 안 낳는다고 나쁜 놈 만드는 건 뭔 짓이래?!
물론 저출산의 이유는 다들 잘 알고 있다시피 간단명료하다.
얼마전 동창들과 만났을 때 넷째 아이 출산예정중인 한 친구가 잠시 화제가 되었다. 미국에 원정출산하러 가 불참한 그 친구를 놓고 다들 감탄하는 목소리였다. “넷씩이나 낳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부럽다.” “부잣집이잖니.” “유한계층 아니고서야 엄두를 내겠어? 돈도 돈이지만 맞벌이하려면 그럴 새도 없지.”
허엇, 이것도 격세지감. 나 어렸을 때, “둘 낳으면 문화인, 넷이면 야만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는데, 농담만은 아니었던 게 형제가 많은 집 아이는 ‘무식한(?) 집안’이라는 증거인 듯 기가 죽었었다. 이제, 자식 많은 건 부의 상징이다.
쉽게 원정출산하러 갈 수 없는 사람들은 쉽게 자식을 낳지 않는다.(우연이겠지만, 그날 모인 동창들은 모두 아이가 없었다.) 2005년 가족계획협회의 새로운 포스터 <결혼후 1년내에 2명의 자녀를 30살 되기 전에 갖자>는 1·2·3운동을 따르면 <40대에 쪽박찬다>는 1·2·3·4운동으로 전화된다는 것을 모두들 영악하게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영악함은 나라가 열심히 계몽한 결과이기도 하다.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신세 못 면한다>, 이거 바로 수십년 전 가족계획협회의 포스터다. 우리 세대, 어렸을 때부터 이 나랏말씀을 보고 듣고 가슴에 새겼다.
그래놓고 이제 와서, 덮어놓고 많이 낳으란다. 한입으로 두말하기다. 그럴려면 거지신세 면할 대책이나 마련해주던가. 그런 것도 없으니, 어, 이거 한입으로 두말하기를 넘어, 사기 아냐?
그러고 보니, 수상타. 늙은 사람 먹여살릴 젊은 사람 필요하다는데, 청년실업은 넘쳐나고 사오정과 오륙도에 난리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늙은 사람은 늙은 사람대로, 먹여살리기는커녕 먹고살기도 힘들어하고 있다. 아니, 있는 사람의 입(人口)도 보장해주지 못하면서, 왠 인구감소 타령이람?!
지금 낳는 아이들이 클 수십년 후에는 일자리가 많아져서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단 걸까? 별 그런 전망도 보이지 않는 데다가, 만약 그렇다면 늘어난 수명만큼 나이든 사람들 일할 수 있게 하면 된다. 나만 해도 오래오래 살고 싶고 오래오래 사회 속에서 활동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 출산타령 인구타령 하고 있는 거 보니, 그때도 사오정 오륙도 쫓아낼 심산인가 보다. 그리고 젊고 싼 노동력 골라잡아 쓰려고?
애 낳아라 애 낳아라 부추켜서, 힘 안들이고 돈 안들이고 거저 먹겠단 심보인 모양이다. 한 마디로, 상대적 과잉인구 창출.
결혼 않고 애 안낳은 나에게, 어머니는 가끔 한탄하신다. “한창 때야 그게 편하지. 늙고 병들어 자식 없으면 어떡할래?”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대꾸하곤 했다. “아이참. 내가 늙을 때까지 우리나라 복지수준이 설마 이 수준이겠어? 노인들 활동이나 생활 편의가 충분해질 거고, 간병할 자식 없어도 안심하고 치료받을 시스템도 갖춰질 테고.”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꼬락서니를 보니, 이제 이 말 못할 것 같다. 복지 시스템을 갖출 생각은 않고, 무조건 애만 낳으란다. 노인 부양이나 자식 양육은 여전히 가족에게 떠맡긴 채로 말이다.
그러니, 순전히 사기당한 기분. 애 안 낳아도, 아니, 안 낳으면, 잘 살 수 있다며? 분명히 그렇게 말했었잖아!
......속았다.
나랏말씀에 속은 게 어디 이 하나 뿐이랴만.
- 사진
-
재난 연극
- 영상
-
[영상] 현대기아차비정규직 농성..
쇠사슬 몸에 묶고 저항했지만, 끝내 비정규직..
오체투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의 희망 몸짓
영화 <카트>가 다 담지 못한 이랜드-뉴코아 ..
- 카툰
-
로또보다 못한 민간의료보험
건강보험료, 버는만큼만 내면 무상의료 실현된..
위암에 걸린 K씨네 집은 왜 거덜났는가
팔레스타인인 버스 탑승 금지
- 판화
-
들위에 둘
비정규직 그만
개자유
다시 안고 싶다
- 기획연재 전체목록
-
- 어서와요 소소부부네
- 팔레스타인평화연대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상담소
- 99%의 경제
- 미디어택
- 비문명의 역습
- 초고령화 사회, 돌봄을 요구하다
- 나현필의 INTERNATIONAL
- 워커스 사전
- 엄한진의 INTERNATIONAL
- 여성, 노동의 기록
- 녹색스트라이크
- 화성, 어쩌다 사회주의
-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의 항변
- 랑희의 질문들
- 배성인의 혁명을 꿈꾼 여성들
- 챗GPT가 말했다. "인간보다 더 많은 색임을 지게 될 줄이야!"
- 연정의 르포
- 약속의 8회, 위기를 돌려세우는 녹색 스트라이크
- 양지로 떠오른 국정원, 이적異的 행위의 기록
- 선을 넘는 사람들
- 연정의 바보같은사랑
- 2021위클리웨비나
- 이김춘택의 ‘무법천지 조선소’
- 파견미술-현장미술
- 러시아혁명 100주년 | 자코뱅 온라인시리즈
- 노동의 시대
- 배성인의 정치적 사유
- 비정규직의 세상보기
- 주례토론회
- 양규헌 칼럼
- 국제포럼
- 무슨 일 하세요?
- 소셜파워
- 반올림 이어 말하기
- 원영수의 국제칼럼
- 박병학의 글쓰기 삶쓰기
- 정영섭의 낮은 목소리
- 윤성현의 들풀이야기
- 세월호 1년
- 제갈현숙의 봉당풍경
- 이정호의 보수언론 벗거보기
- 기사로 풀어보는 경제
- 유럽 민중의 오디세이
- 2015 총파업
- 쿠오바디스 진보정치 그리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 편집장 칼럼
- 참세상 특강
- 마르하바, 팔레스타인!
- 일본사회운동의 편지
- 유럽경제위기
- 김한울의 표본실
- 오늘, 이곳의 투쟁
- 북아프리카 혁명
- 월드컵에 정의의 슛을
- J에게 경제를
- 명숙의 무비, 무브
- 비정규직 사회헌장
- 감시·통제 벼랑 끝 감정노동자
- 불붙는 세계교육투쟁
- 여성 살해, 침묵하는 사회
- 탈핵
- 끝나지 않은 용산참사
- 언론노동자들의 공정방송 되찾기
- 쌍용차 정리해고 노동자의 눈물
- 4대강 논란
- 진보전략회의 진보논평
- 참세상 책방
- 노조파괴, 그림자 정부
- 강정마을 해군기지 논란
- 조성웅의 식물성 투쟁의지
- 이득재의 줌인 줌아웃
- 통합진보당 분당
- 18대 대선과 노동자정치세력화
- 투쟁하는 세계노동자
- 복수노조, 약인가 독인가
- 참세상 국제통신
- 박진의 인권이야기
- 희망뚜벅이
- 편집위원회 정세좌담
- 무상급식
- 이원재의 예술,대화
- 쿡! 세상 꼬집기
- 방방곡곡 99절절
- 최인기의 빈민운동사
- 양한승의 정세이야기
-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
- G20 서울 정상회의
- 전노협 창립 20주년 - 내가 함께한 전노협
- 주용기의 생명평화이야기
- 천안함 국민미스테리
- 근로시간면제(Time off), 충돌
- 의료 민영화 논란
- 전교조 명단 공개 파문
- 2011년 최저임금은?
- 김병기의 호주통신
- 기후변화와 노동자
- 쌍용차와 파업
- 지방선거 2010
- 2010 교육감 선거
- 임성용의 달리고 달리고
- 빛바랜 취재수첩
- 세미나네트워크 새움
- 콜트콜텍 미국원정투쟁
- 용산 철거민 대참사
- 용산참사범국민장 릴레이 기고
- 홈리스문제, 이렇게 하자
- 두 책방 아저씨
- 이수호의 잠행詩간
- 철폐연대-참세상 기획: 비정규직 10년 전망
- 콜트콜텍일본원정투쟁
- 그들만의 비정규법
- 해방을 향한 인티파다
- 혁명50년, 사회주의 쿠바 이야기
- 1단기사로 보는 세상
-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의 죽음
- 배고프다! 영화
- 가자의 재앙
- 강우근의 들꽃이야기
- 박수정의 사람이야기
- 뉴코아 - 이랜드 비정규직 철폐투쟁
- 한미FTA를 저지하라
- 이정호의 미디어 비평
- 도요타반대세계공동행동
- 한반도 대운하를 가다
- 진보정당, 길을 묻다
- 38 여성의 날 100주년
- 또 하나의 왕국, 삼성
- 1·26 세계행동의 날
- 박영균의 철학으로 보는 세상
- 사이버 정치놀이터 미끄럼틀
- 2007 대통령 선거
- 대선후보들, 성소수자 인권과제 좀 들어보슈
- 아프간 피랍 사태
- 2007 남북정상회담
- 소통/연대/변혁 - 사회운동포럼
- 아그네스 쿠의 흐르는 강물처럼
- 리얼리스트 작가 선언
-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 백원담의 시와 모택동
- 맹세야, 경례야 안녕∼
- 제3회 맑스코뮤날레 - 맑스와 함께 상상하기
- 금속노조 한미FTA저지 총파업
- 비정규법 패기! 폐기!
- 한진의 사회복지노동자
- 정혜주의 바리오 아덴트로
- 평택,철조망을 걷어라
- 고길섶의 쿠바이야기
- 개토의 우울과 몽상
- 석궁이야기
- 민주노총 5기 지도부 선거
- 유영주의 전망좋은談
- 북한 핵실험과 한반도평화
- 조선남의 옥중수고
- 정대성의 독일통신
- 이영채의 일본사회운동
- 월드컵보다 아름다운 진실
- 에뿌키라의 장정일기
- 홍실이의 이상한 제국의 앨리스
- 이종회의 한미FTA 뒤집기
- APEC 밟고 WTO 돌려차기
- 민주노총 보궐선거
- 박석준의 의학철학이야기
- 황우석 사태 진단
- 2005년 하반기 비정규법 총파업투쟁
- 박영자의 북쪽이야기
- 하현의 미디어비평
- 2005세계여성대행진
- 박기범의 어떤 동화책
- 손호철의 남미이야기
- 박기범의 기소인 인터뷰
- 2004년 하반기 총파업투쟁
- 전범기소이야기
- 동화작가 박기범의 단식일지
- 김병돌의 그림세상
- 이현준의 지나가다 한마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