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변명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후반부를 맞으며 지난 2년6개월에 대한 평가가 무성하다. 언론들은 잘한 것도 있고 못한 것도 있다는 양면의 평가를 보여주고 있으나 빈곤(복지)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이 미흡했다는 평가이다. 어찌 보면 참여정부의 복지성적표에는 비슷한 점수를 주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러한 낮은 복지성적표를 두고 정부는 시민사회운동이 참여정부의 개혁에 힘을 실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투정을 늘어놓고 있다. 즉 ‘복지병’ 운운하는 보수세력에 발목이 잡혀 개혁적인 빈곤(복지)정책을 펼치는데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시민사회운동이 그러한 보수진영의 공격을 방어하며 정부가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평가받을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를 비판하면서 정책이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수세력에게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일부 시민운동세력도 복지성적표는 형편없으나 참여정부가 남은 임기동안 개혁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을 빼놓지 않는다.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으나 특히 복지에 있어서는 끊임없이 관련단체를 망설이게 했던 문제가 있다.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이 보수진영의 반대와 맥락은 다르나 같은 결론으로 드러나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다. 보다 솔직한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라는 것이다. 즉, ‘부족함이 있지만 그래도 보수진영보다는 나은 것이 아니냐’는 판단은 지난 2년 6개월 동안 참여정부의 빈곤정책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스스로 무디게 해왔던 것이다. 임기 절반을 맞는 지금, 온갖 통계를 들이대며 정부의 빈곤정책의 실패(부재!)를 비판한다 하더라도 그 비판은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그들은 늘 정부와 더 가까이 서 있기 때문이다.
차선의 복지, '일을 통한 빈곤탈출'
참여정부는 보수세력에 비해 정말로 그나마 나은 정책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참여정부의 복지정책은 없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지정책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복지정책이라고 내어놓은 것은 분명히 있다. 바로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방안’이 그것이다.
정부가 국정과제로 제출한 것이 이외에도 한두 가지 더 있다. 아동빈곤 대물림방지를 위한 대책이 그것이며, 복지전달체계 개편방안이 다른 한 가지이다. 아동빈곤 대책은 무료급식 확대 이외의 내용이 없으며, 그나마 대책의 예산도 300억 정도에 불과하다. 복지전달체계 개편방안은 긴급지원체계와 관련된 법안을 상정이외에는 다른 내용이 없다. 참여복지의 구체적인 내용은 ‘일을 통한 빈곤탈출 지원방안’(이하 지원방안)에 압축되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EITC제도의 도입‘, ’자활사업/사회적일자리사업의 확대‘, ’기초법 사각지대 해소‘, ‘창업지원’으로 대표되는 지원방안은 그 각각의 정책과제의 내용에도 분명한 한계가 있으나-정책과제 중 누구나 필요하다고 판단한 기초법 사각지대 해소는 현재 기초법 개정안에 따라 별도의 소득기준의 상정, 조건부수급자의 징벌적 조항 강화, 자활사업참여자의 노동자성 불인정 등 최악의 개악안으로 상정되어 있다-오히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정부정책의 기조인 ’일을 통한(전제로 한) 빈곤탈출‘이라는데 있을 것이다.
정부는 지원방안을 통해 노동시장의 조건 때문에 빈곤이 증가한다고 분석한 뒤에 그들은 거꾸로 노동시장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처들(저임금, 불안정 노동층의 양산)을 대책으로 내놓고 있다. 무조건적으로 주어지는 것보다는 일을 통해 빈곤을 탈출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정책기조의 이면에는 보다 불안정한 일자리와 낮은 임금의 강화-자활사업 및 사회적 일자리의 양적 확대-와 이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어떠한 복지의 권리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족쇄-EITC, 조건부수급조항 강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전제로 한 보육정책-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점은 ‘복지’의 영역과 ‘노동’의 영역에 대한 최소한의 근대적 기준마저도 정부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 기본권(인간답게 살 권리)으로서의 복지는 최소한의 삶의 보장을 책임지는데 있는 것이며, 이는 무조건적인 것이다. 이런 권리는 다른 것의 조건으로 혹은 전제로 제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정부는 ‘기본권’의 개선이 아니라, 사회·경제 정책을 통한 기본권을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정책을 그 중심기조로 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복지를 누릴 권리’와 ‘일할 의무’라는 발언에서도 드러나듯이, 기본권을 흥정과 반대급부의 대상으로 삼고 있을 뿐이다.
빈곤층과 근로빈곤층이 처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시장에서의 저임금과 불안정 노동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노동시장 내의 임금과 고용의 보장이다. 그러나 정부는 비정규직들이 처한 차별을 감소시킨다는 말도 안 되는 허세를 부리면서 비정규직법안 개악을 단행해 왔으며, 더욱더 유연화 된 노동시장에서 강제노역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을 전제로 한 복지에서 일할 권리에 대한 복지로
현재 빈곤의 문제는 사회적 배제의 문제이다. 노동시장의 안정적 일자리와 적정임금에서의 배제는 일하는 빈곤층을 양산하고 있으며, 의료와 교육, 주거에서의 배제는 빈곤을 재생산하고 있다. 신용불량의 문제 등 각종 낙인들은 그저 가난해서의 문제가 아닌 사회관계에서의 단절과 배제로 이어지고 있다.
우선적으로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함은 물론이거니와 끊임없이 빈곤을 확대재생산하는 구조적인 원인들을 끊어내지 않고서는 빈곤의 해결을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일하는 빈곤층이 우리 사회 빈곤의 주요한 특징이 되고 있는 현실에서 안정적인 일자리와 임금의 보장이 전제되지 않은 채 ‘일을 전제로 한 복지’라는 것은 시대착오적일 뿐 아니라 빈곤화되는 정석의 길로 대다수의 민중을 밀어 넣는 것에 다름 아니다.
참여정부 임기 절반의 평가는 몇 가지 발 빠르지만 효과 없었던 보여주기 정책이나, ‘어찌되었건 지원하면 좋은 것 아닌가’하는 생색내기식 선심정책에 그친 아쉬움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참여정부 복지정책의 기조가 빈곤을 오히려 확대재생산 하는 구조로의 편입이라면, 이러한 정책에 대한 분명한 비판이 제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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