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힘은 여성으로부터!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의 의의

10월 17일 정오, 세계 여성들의 연대행동의 물결

2005년 10월 17일, 세계빈곤철폐의 날이기도 한 이 날은 여성에 대한 빈곤과 폭력의 반대를 기치로 내건 세계여성행진의 24시간 연대행동이 진행되는 날이다. 3월 8일 행진이 시작된 브라질 상파울로를 비롯, 세계여성행진의 상징인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과 각 국가마다 여성의 요구를 담은 퀼트를 이어 붙인 ‘패치워크’가 거쳐간 각 대륙의 많은 국가들, 그리고 행진의 폐막행사가 열리는 아프리카의 부루키나 파소에 까지, 여성의 더 많은 권리를 염원하는 전세계의 여성들이 정오를 기해 행동을 벌이고, 이것이 24시간 동안의 전세계적 연대행동의 물결로 모아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지난 7월 3일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세계여성행진과 함께 하는 여성행진’이라는 이름의 행진이 조직되었고, 10월 17일 정오의 기자회견과 오후의 여성한마당을 개최함으로써 이러한 세계 여성들의 행동에 동참하고 있다.

세계여성행진, 그리고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행진이 시작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발표된 ‘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은 세계여성행진이 161개 국가, 6000 여 개가 넘는 여성운동 조직과 함께 하는 거대한 네트워크로 성장해 온 운동의 힘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이는 여성헌장이 담고 있는 내용, 구성과정, 그리고 세계여성행진에 참여하는 다양한 국가의 여성운동과의 결합과정 등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여성헌장은 여성억압의 근원으로서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인식하고 여성과 인간 모두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받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한 것을 제안하는 전문으로 시작된다. 이어 새로운 세계를 위한 대안적 가치로서 평등, 자유, 연대, 정의, 그리고 평화의 가치를 제시하며, 이러한 가치에 근거한 인간의 보편적 권리, 그리고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31개의 항목을 선언한다. 그리고 헌장이 제시하는 가치들에 기초하여 상호간의 관계를 발전시키며, 사회를 급진적으로 변화시켜낼 권력이 여성과 모든 억압받는 이들에게 있음을 확인하며, 사회운동이 이를 실현하기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을 호소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렇듯 여성헌장에 담겨있는 권리의 내용들은 매우 추상적이다. 여성헌장은 그의 이해와 활용을 촉진하기 위해 여성헌장의 취지, 기원과 성격에 대한 해설, 그리고 2000년 첫 번째 릴레이 행진 당시 제시된 17개 요구 목록들에 대한 지속적인 토론의 쟁점들을 소개하는 두 종의 보충문서를 함께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는 매우 추상적인 설명과 문학적 비유를 통해 여성헌장이 구체적인 여성의 권리나 실현방안이라기 보다는 하나의 이상, 유토피아에 대한 묘사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이 유토피아는 오래전부터 그리고 지금,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투쟁들 속에서 이미 건설 중에 있으며, 여성헌장은 여기에 하나의 참조점을 제공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지금껏 존재해온 수많은 인간과 여성에 대한 권리선언들과 여성헌장이 차별적인 점은 헌장이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근원으로서의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를 분명히 인식하며, 이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추구한다는 점, 또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인식에 기반하여 운동의 공동의 목표로서 빈곤제거와 여성에 대한 폭력의 제거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찾는다.

헌장의 구성은 세계적 차원에서의 거대한 토론과 대화의 과정이었다. 2000년 첫 번째 릴레이 여성행진이 진행된 이후 세계여성행진은 IMF, 세계은행 등 세계화의 집행기관들에 대한 공격, 성폭력, 여성신체의 상품화에 맞선 여성의 권리 옹호, 세계화의 성차별적 결과들로 인한 여성 빈곤의 심화를 고발하는 등 다양한 실천들을 벌였다. 이러한 실천이 근간이 되어 2003년 초, 인도 뭄바이에서 열린 세계여성행진 3차 국제총회에서는 여성헌장 초안이 채택되었고, 2004년 12월 4차 국제총회에서 공식 채택되었다. 이 과정에서 각 국가의 여성조직들과 세계여성행진 대표단 내에서는 매우 활발한 토론이 조직되었다. 세계여성행진이 구성되는 산파역할을 한 캐나다 퀘벡에서는 30여 개의 여성운동 조직들이 헌장 초안을 검토하는 논의에 참여하였고, 세계적으로 32개 국가와 지역에서 200여 개의 여성운동 그룹이 헌장의 구성에 대한 논평을 보내왔다. 그리고 헌장을 구성하는 토론에 참여했던 여성들은 이 헌장이 여성들이 스스로의 지위를 인식하고 강화하는데 유용하게 쓰여야 하며, 따라서 대중교육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확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월 8일 시작된 세계여성행진 과정에서 각 국가의 여성들이 제기한 요구들은 매우 다양하다. 행진에 앞서 진행된 남미의 국가들에서는 낙태의 권리, 자유로운 이주의 권리,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반대 등이 제기되었다. 캐나다에서는 빈곤, 육아지원 예산 책정, 여성에 대한 폭력 등이 주요한 의제였다. 아시아 지역에서는 빈곤과 성매매가 아프리카에서는 식량, 물, AIDS 등이 긴급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이러한 다양한 의제들은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하는 여성빈곤과 폭력의 제거라는 의제, 그리고 그 원인으로써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공통의 기반을 공유하고 있다. 또한 이로 수렴되지 않는 각 국가마다의 다양한 역사, 전통, 제도, 정치?경제적 조건에 의해 제기되는 다양한 요구들은 여성헌장의 31개 권리 항목들의 구체적인 형태에 다름 아니다. 이와 같이 여성헌장은 보편적인 여성의 권리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권리의 결합을 지향하며, 현실의 운동과 결합됨으로써 구체성과 의미를 획득 한다.

여성헌장은 아래로부터의 여성들의 요구를 모아내고, 운동의 공간을 형성하며, 또한 연대와 동맹을 형성하기 위한 세계여성행진의 운동 전략의 일환이다. 가족제도, 공사영역 분리 이데올로기 등으로 인해 일상생활에서, 노동의 현장에서, 그리고 정치를 비롯한 공적영역에서 여성은 자신의 공간을 획득해 오지 못하고 과소대표 되어왔다. 따라서 여성의 요구는 사회적 필요에 따라 기능적으로 수용, 부차화 되거나 때로는 적대시 되어 왔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이러한 여성들의 취약한 지위를 노골적으로 희생양 삼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여성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또한 대안세계화 운동과의 적극적인 결합을 이룰 수 있는 여성운동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에 대항하는 운동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연대와 교통의 전략을 통한 여성 스스로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여성운동들의 힘에 의해 형성된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물론 여성헌장의 권리들과 그리고 그 아래 속한 구체적인 대안들에서 각국 정부나 국제기구에 대한 개입, 특히 유엔을 전면 무시하지는 않는다. 일례로 빈곤 감축을 목표로 하는 유엔의 밀레니엄 개발목표(MDG)에 세계여성행진은 여성헌장의 권리항목과 여성행진 내의 대안강령팀 등에서 마련한 세부적 대안들을 가지고 적극 개입하고 있다. 세계사회포럼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들과 유비해 본자면, 쟁점은 제도에의 개입과 방어적인 요구들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요구가 기반을 두는 운동들에 있다. 또한 ‘인류를 위한 여성헌장’은 명칭에서부터 알 수 있듯, 여성들의 분리주의적 요구가 아닌, 인간의 보편적 권리, 그리고 여성의 고유한 권리에 대한 선언이다.

한국,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

7월 3일 행진에서 10월 17일 까지 이어진 공동행동 이후, 안정적인 연대를 위한 네트워크의 구성을 고민 중인 여성행진은 현재 약 10여개 학생 및 사회운동 조직, 모임, 네트워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7월 3일 행진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가장 역점을 두었던 활동은 여성들의 현실, 의제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선전과 투쟁하는 여성들과의 연대의 확장, 여성들의 삶과 요구를 알기 위한 다양한 만남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많지 않은 역량 가운데서도 최저임금 투쟁, 경찰청 고용직 노동자 투쟁, 기륭전자 투쟁 등에 대한 연대, 광주, 부산, 새만금 등의 지역을 순회하며 진행한 여성운동 주체들과의 간담회, 성매매 여성들과의 토론과 연대 등의 활동을 조직했다.

행진이 진행되었던 지난 7월 3일 여성행진은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을 발표하였다. 세계여성행진이 제안하는 여성권리에 대한 보편적 의제인 빈곤과 폭력에 대한 동의의 기반 위에서 지난 몇 년 간 계속해서 제기되어온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 비판, 그리고 그에 맞선 여성들의 요구와 권리들이 근간이 되었다. 여성의 노동에 대한 권리, 신체에 대한 권리, 주거, 건강 등에 대한 기본적 권리, 그리고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인정받는데 이중삼중의 제약에 놓여있는 이주여성, 장애여성 등의 권리 등을 내용으로 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항목은 이러한 권리가 어떤 목적, 누구에 의해서도 침해될 수 없으며, 이후에도 무한히 추가될 것임을 선언하고 있다.

자본의 위기관리를 위한 노동유연화의 심화, 가족의 역할 강화가 여성을 고갈되지 않은 무한한 사회적 자원으로 활용함으로써, 생산과 재생산 영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이중삼중의 부담이 강화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노동유연화를 통한 다양한 비용절감 조치, 또한 사유화 정책으로 복지, 공공서비스는 축소되어 여성들의 역할은 더욱 가중된다. 이러한 현실은 일부의 중산층 여성들을 제외한 대다수 여성들에게 적용되며, 또한 날이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이는 여성의 빈곤과 폭력의 강화로 결과한다. 그러나 이러한 현실에 대한 노무현 정부와 여성가족부의 대응은 오히려 퇴행적이다. 직장과 가정생활의 양립에서 오는 고통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로 정부가 시행하는 거의 유일한 제도라 할 수 있는 보육정책은 그 효과도 미비할 뿐만 아니라, 실제 혜택도 되려 빈곤한 여성들에게 분리하다.

전국여성단체연합을 대표로 한 주류 여성운동의 전략은 여성가족부의 정책에서 한치도 벗어나 있지 않으며, 사회양극화 대책위를 비롯한 각종 정부 로비기구에 참여하여 오히려 정책계발과 입안에 있어 여성부의 역할을 대행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앞서 말했듯 사회운동 조직에 대한 비판은 제도적 영역에의 개입 그 자체만으로 판단될 수 없는 것이나, 주류 여성운동의 경우 여지가 없다. 10년 전 북경여성대회 이후 성주류화 전략을 공식 채택한 이후 주류 여성운동은 끊임없이 제도화되는 한편, 전체 운동의 요구로부터 이탈, 여성의 요구에 대한 분리주의적 경향으로 끊임없이 변모해 왔다.

한국에서 여성헌장 구성 과정과 같이 아래로부터의 많은 여성들의 토론을 통해 권리선언이 작성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많지 않은 역량으로 시작된 이번 행진은 여성들 간의 연대를 확장하고 아래로부터의 운동을 조직하는 경험과 공간을 창출했다. 세계적으로 많은 국가의 여성들이 빈곤과 폭력이라는 같은 의제로 함께 투쟁했으며, 주류 여성운동에 대한 비판을 넘어 아래로부터의 운동의 힘, 여성의 힘을 구축하기 위한, 새로운 여성운동을 위한 한걸음을 내딛었다는 의미 역시 크다. 이후 계속되는 연대의 확장 과정에서 권리선언이 활발하게 토론되고 상호 교육되는 매개로 기능하기를 희망한다. 더욱 추가되고 확장된 목록이 여성들의 권리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날까지.

빈곤과 폭력에 저항하는 여성들의 권/리/선/언
신자유주의와 전쟁의 시대, 여성들은 더욱 빈곤해지고, 더욱 많은 폭력에 노출되고 있다. 노동유연화가 확산되는 가운데, 여성들 대부분은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면서도 기본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비정규직이다.

‘가사와 직장생활의 양립’을 기조로 하는 정부의 여성정책은 여성을 가사노동의 1차적인 책임자의 위치에 고정시키며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도록 하고 있다. 복지와 공공서비스가 축소되거나 시장화되면서 여성 빈민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가사노동과 유사한 보살핌노동이 여성의 일로, 그것도 노동자로서 권리가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형태로 확산된다. 더구나 장애여성의 독립된 삶이 보장될 만큼 사회적 지원체계가 갖춰지는 것은 더욱 요원해졌다.

초국적 곡물기업의 시장지배력을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되는 WTO 농업개방과 이에 조응하는 정부의 ‘농업포기정책’으로 농가부채가 급증하고 농가소득이 급격히 감소함에 따라, 여성농민들은 농사, 가사노동에 더하여 소득을 보충하기 위한 부업까지, 3중의 역할에 시달리고 있다. 여성들의 빈곤이 전반적으로 심화되는 가운데, 다양한 형태의 성매매로 유입되는 여성들이 많아지고 있다.

여성들이 성매매로 유입되는 원인을 문제 삼지 않은 채 법과 제도로 성매매를 근절하려는 시도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도덕적 편견과 더불어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을 사회로부터 배제하고 폭력 속에 방치했다. 초국적 투기자본이 국경을 마음껏 넘나드는 시대이지만, 노동자들만큼은 ‘인종’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분할되어, 이주노동자는 노동권의 사각지대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의 미국에 의한 이라크 침략전쟁과 수많은 무력분쟁은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강화하고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이렇듯 여성을 억압하고 착취하며 배제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 여성들이 지구를 횡단하는 릴레이 행진에 나섰다.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까지 행진하면서 다양한 인종과 민족의 여성들, 각기 다른 직업, 신체적 특징, 성적 지향을 지닌 여성들이 국경을 넘은 연대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흐름에 동참하여 여성을 더욱 빈곤하게 만들고, 여성에 대한 폭력을 가중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멈추고, 전쟁을 중단하기 위해 함께 투쟁하는 여성이다. 이렇듯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데 여성의 힘은 필수적이며, 여성의 요구는 그 바탕이 되어야 한다. 노동자, 농민, 빈민, 장애인, 이주노동자, 성노동자, 동성애자…. 다양한 이름이지만 우리는 함께 투쟁하고 한 목소리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한다.

1. 모든 여성은 자신이 원하는 노동을 할 권리를 갖는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특정한 노동에 접근할 수 없어서도 안 되고, 특정한 노동을 강요당해서도 안 된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동성애자이건 이성애자이건 상관없이, 국적과 인종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노동할 수 있어야 한다.

2. 우리는 누구나 인간이자 여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만큼 충분한 소득을 보장받아야 한다. 경제적 독립은 여성이 자율적으로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다.

3. 여성의 신체는 여성 자신의 것이다. 출산과 모성은 여성에게 의무가 아닌 권리여야 한다. 여성 스스로가 출산 여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하며, 어떤 선택을 하든 사회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여성은 안전하고 건강하게 출산할 권리, 출산하지 않을 것을 선택할 권리를 모두 가져야 한다. 따라서 낙태와 피임은 여성들이 선택하고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생명윤리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여성들의 권리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4. 여성의 신체는 거듭 여성 자신의 것이다. 여성의 신체에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중단되어야 한다. 또한 여성의 신체나 이미지를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

5. 현재의 가족은 배타적인 남녀관계에 기초하고 있으며, 가족 안에서 여성은 남성에게 귀속된 존재로서 인식되어진다. 이러한 현재의 가족은 변화되어야 한다. 여성과 남성의 결합은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여성과 남성의 자유로운 관계에 기초를 두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의 계보를 유지하는데 소외된 채 이용되어서도 안 된다. 결혼을 이유로 여성의 자율성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독신을 선택할 권리, 언제든 결혼관계에서 돌아올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어떠한 선택을 하더라도 불이익이 가해져서는 안 된다.

6. 육아, 노인부양 그리고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여러 일은 사회화되어야 한다. 지금껏 여성은 가사노동의 1차적 책임자이자 최종 책임자로 간주되어 왔다. 이는 여성의 고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여성들이 받는 저임금을 정당화했다. 더 이상 육아, 노인부양, 노동력 재생산에 필요한 여러 일을 여성의 무급 노동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러한 일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 출산, 양육, 재생산 노동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현재의 가족강화이데올로기는 여성의 의무를 강화하는 것으로 비판되어야 한다.

7. 자연은 여성의 삶의 터전이다. 여성 농민, 여성 어민은 오랜 세월동안 노동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생태계를 보존하는 지혜를 터득해왔다. 토지와 갯벌, 바다에 대한 여성의 권리가 보장되어야 하며, 이를 삶의 터전을 유지하고 활용하는 지혜 또한 여성의 것이다. 여성 농민과 여성 어민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는 무분별한 개발사업은 중단되어야 한다.

8. 여성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 조직화할 권리가 있다. 또한 스스로 대표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조합에서, 학교에서, 지역공동체, 세계 곳곳의 모든 곳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조직할 수 있다.

9. 우리는 건강하게 살 권리가 있다. 노동력을 재생산하기에 충분한 만큼 휴식을 취할 수 있고 몸이 아프면 돈이 있건 없건 상관없이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료서비스를 시장화하고 의약품에 특허를 매겨 초국적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중단되어야 한다. 여성들의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여성에게 적합한 의료체계가 계발되어야 하고 이를 모든 여성이 누릴 수 있어야 한다.

10.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주거 공간이 보장되어야 하고 교육, 의료, 물, 에너지 등 필수서비스가 공급되어야 한다. 돈이 있어도 돈이 없어도 누구나 이를 누릴 수 있어야 한다.

11. 우리는 모든 형태의 전쟁이나 무력분쟁이 없는 세상에서 살 권리가 있다. 전쟁이나 무력 분쟁의 시기에는 여성과 남성에게 각각 다른 형태의 극단적인 폭력이 심화된다. 강간 등 여성에 대한 극단적 폭력이 적의 공동체를 파괴하는 것을 목표로 전술로 채택되는가 하면 여성을 공동체의 ‘소유물’로 간주하거나 피억압자로서의 여성의 상징과 적을 동일시함으로써 적을 무력화하는 등 전쟁은 성차별 이데올로기를 더욱 강화한다.

12. 여성농민은 ‘여성’ 이자 ‘농민’이다. WTO FTA로 인한 농업개방으로 농촌이 붕괴되어가고 있는 가운데 여성농민은 농사의 많은 부분을 책임지고 있으며 가사와 가계소득을 보충하는 일까지 담당하고 있다. 따라서 여성농민의 지위를 ‘무급가족종사자’라고 규정하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 농촌공동체를 유지하는데 있어 여성농민의 기여는 인정되어야 하고 여성농민은 ‘여성’ 이자 ‘농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려야 한다.

13. 모든 이주자들은 시민으로서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 인신매매, 노동착취, 성적 착취, 가정폭력, 빈곤, 인종차별 등 이주 여성에게 가해지는 모든 폭력은 사라져야 한다. 특히 이주자를 범죄인으로 취급하여 단속 추방하는 것은 이주 여성이 이러한 폭력에 저항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14. 장애여성은 인간이자 여성으로 독립된 삶을 꾸려갈 권리가 있다.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자유롭게 이동하며 안전하게 출산할 권리가 있다. 또한 장애여성은 성적 권리를 가지며, 성폭력과 강제적인 성매매로부터 자신의 신체와 존엄성을 지킬 권리가 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적절한 체계가 사회적으로 마련되어야 한다.

15. 모든 여성은 타인에 의해 규정받지 않고 그 자체로 완전한 인간으로 공동체 안에(서)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무한한 희생을 감내하는 어머니’, ‘보호받아야 할 여동생’, ‘정숙한 여성’,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 등 여성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규정은 여성의 권리를 파괴하고 여성의 삶을 더욱 억압적으로 만든다.

16. 위에 작성된 권리는 여성들이 현재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이다. 어느 누구도 여기에 수록된 권리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전쟁을 지속할 목적으로, 여성의 권리를 해체하고 여성의 연대를 파괴할 목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여성의 권리는 여성들의 우애와 연대를 통해 권리들이 상호확장 되고, 이후에도 무한히 추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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