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중학생이 죽었다. 가해자는 같은 학교의 동급생이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심한 폭행을 행사하여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하고 말았다. 여기까지는 사실관계. 그런데 이 사실이 일파만파를 일으키며 한동안 사이버공간을 뜨겁게 달구었다. 사건에 대한 내용은 물론 가해학생의 사진, 실명을 비롯한 신상명세와 가족관계, 학교와의 유착설 등이 인터넷 곳곳에 퍼진 것이다. 얼마전 발생했던 속칭 "개X녀 사건"의 또다른 버전이었다.
인터넷 최강국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네트즌 제위들은 이번 사건에서도 그 엄청난 순발력과 뛰어난 검색능력을 과시하며 사건관계에 대한 낱낱의 일들을 시시콜콜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 저곳에 사건관련 글을 퍼날랐으며, 게시된 글마다 또 수많은 네티즌들이 달라붙어 답글과 쪽글로 도배를 해놓았다.
좀 더 신중한 접근을 필요로 한다는 입장에서는 아무리 가해자라고 할지라도 그의 신상정보가 이렇게 구체적이고 광범위하게 퍼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취한다. 특히 아무리 가해자라고 할지라도 최소한 보호되어야 할 인권이라는 것이 있으며, 여론몰이식 단죄행위를 하는 것은 적법하지도 않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나 가해자를 비난하는 측의 주장은 단호하다. 사람을 사람같이 여기지 않는 가해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느냐는 논리도 등장한다. 특히 초동대응을 제대로 못한 학교와 가해자의 부모가 유착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성 글들까지 돌출한다. 사법처벌만으로도 부족하고 이런 '악질'은 아예 사회적으로 매장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글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지난 번의 "개X녀 사건"이나 이번 모 중학생 살해사건을 보면서 영 엉뚱하게도 왜 네티즌들은 이런 일들에 분노하는가 궁금해진다. 긍정적으로 본다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이렇게 뜨거운 양심(?)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존재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보다는 왜 자꾸만 씁쓸한 마음이 드는지 답답하다. 우리 네티즌들은 혹시 만만한 상대 하나 제대로 걸렸을 때, 만만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풀지 못한 스트레스를 이 사람들에게 푸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지난 번 주성영 의원의 음담패설성 육두문자 남발사건을 한 번 보자. 이 사건이 기사에 나가자 기사가 올라갔던 언론매체 및 포털사이트의 해당 게시물 밑에 엄청난 양의 댓글들이 올라왔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당일 사건의 기사화되지 않은 비하인드 스토리를 발굴해서 올리거나 퍼나르거나 또는 주성영 의원의 가족관계나 과거 전력이나 기타등등을 추적해서 넷상에 퍼트리는 일은 하지 않았다.
물론 주성영의원이 되었든 가해중학생이 되었든 간에 그들의 밝혀져서는 안 되는 개인정보까지 인터넷 상에 떠돌아 다닌다는 것에 대해서는 절대 반대한다. 네티즌들의 공분을 폭발시키는 과정이 아무리 정당한 목적에서 일지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 이런 원칙을 깨자는 이야기가 결코 아님을 다시 한 번 밝힌다.
다만, 영 꺼림칙한 것은 인터넷을 주름잡는 네티즌들 역시 오프라인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의 질서를 내면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개X녀 사건"의 당사자나 이번 사건의 가해자나 네티즌들이 그 난리를 치건 어쨌건 간에 특별하게 역풍이 불 일이 없다는 확신이 있다. 그들은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들도 아니고 말 한마디 더 나간다고 해서 명예훼손이니 뭐니 명목을 붙여 고소고발을 할 사람들도 아니라는 확신. 그리하여 그 확신이 선재되면서 네티즌들은 마음껏 파헤치고 마음껏 고발한다.
반면, 고위공직자나 정치인 등에 대해서는 기사 하나 올라올 때 거기에 댓글 다는 것으로 만족할 뿐, 네티즌 스스로 그들의 추잡한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하고 글을 올리고 퍼나르는 일은 거의 없다. 잘못 건드릴 경우 지구 끝까지 추적하여 글 하나라도 올린 모든 사람들을 죄다 찾아 '사법처리'할 능력이 있는 사람들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행여 고위공직자나 정치인의 추잡한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일지라도 함부로 제 뜻을 실어 넷상에 퍼나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저 술자리에서 안주로 질겅질겅 씹히는 선에서 마무리될 뿐이고, 더러는 카더라 통신을 타고 이곳 저곳 흘러간다. 오밤중에 뒷동산 대나무밭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 정도 되면 자포자기 하거나 스트레스만 쌓인다.
이 때, 고맙게도 공개적으로 마구 씹어줄 수 있는 '껀수'가 등장한다. 전철 안에서 강아지 똥도 제대로 안 치운 채 어르신들에게 신경질 부린 어떤 처자. 지 동급생을 지 기분에 맞지 않는다고 두드려 패 죽인 중학생. 그들을 매우 치는 동기나 목적은 그닥 문제가 없다. 그리고 사후의 보복도 별로 걱정이 없다. 그리하여 네티즌들, 각기 가진 몽둥이의 성능껏 그들을 사정없이 후려친다.
'오바'일수도 있다. 넘겨짚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그래도 찝찝하다.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수시로 넘으면서도 당할 놈은 당해도 싸다고 주장하는 네티즌들도 그렇고, 자본과 권력을 가진 자의 이야기는 결코 네티즌 스스로의 추적과 퍼나르기를 통해 이슈가 되지 않고 있는 이 이상한 현상. 그저 죄짓지 않고 사는 것이 장땡이라고 여기고 몸사리고 있는 것이 이 '정보통신사회'에서 가장 적절한 처세술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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