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사태를 둘러싸고, 민주노조운동 진영 내에, 이에 대한 정치적 태도는 크게 세 가지 입장으로 드러나고 있다. 하나는 민주노총 현 지도부와 중집 다수의 견해로 하반기 투쟁 후 총사퇴 및 조기 선거 실시, 둘째는 즉각 총사퇴 및 비대위 구성을 주장하는 입장으로 여기에는 노동현장 활동가 일부, 다수의 노동사회단체, 민주노총 상근활동가 및 중집 일부 등이 포함되어 있으며, 셋째는 두 입장 모두 진정성이 없다고 보면서, 사퇴는 상식이지만, 민주노총 혁신 자체를 더 중시하는 입장이며 이는 노동현장 활동가 일부 및 이에 동의하는 노동사회단체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렇다 크게 세 가지 입장과 그를 주장하는 세 세력으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 민주노조운동진영 내에 현실적으로 존재하고 있던 이른바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의 3분 구도와는 양상이 조금 달라진 것이다. 먼저 이른바 ‘국민파’로 분류되던 ‘민주노동자전국회의’가 위원장, 총장 사퇴의 입장을 밝힌 바 있고, ‘중앙파’와 ‘현장파’는 위 두 번째 입장으로 결합하였으며, 위 세 번째 입장은 그 동안 3분 구도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부위가 새로이 독자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위 두 번째 입장 내에도 입장 자체에는 크게 생각이 다르지 않지만 결합 단위 및 이후 진행을 놓고는 약간의 이견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노총 위원장은 이번 사태와 관련한 지도부의 거취 문제를 20일 오전에 최종 정리해서 밝히기로 하였다. 그랬을 때 지금부터는 민주노조운동진영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로 논의가 모아져야 한다고 본다. 물론 20일의 발표에 따른 상황 변수를 앞두고 있기는 하지만 그를 염두에 두더라도 몇 가지 가닥을 잡는 것은 가능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먼저는 민주노조운동진영 모두는 민주노총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대중에게 뼈를 깎는 자기반성 속에서 그동안의 운동양상과 활동방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는 것을 선언해야 한다. 다음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하반기 투쟁은 모두의 힘을 합해 전력을 다해 나가겠다는 것을 확인, 결의해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근거로 노동자대중에게 투쟁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해야 한다.
바로 이를 가능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첫째 민주노총 지도부는 위 두 가지를 확인하는 선에서 즉각 총사퇴 및 비대위 구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더 이상의 머뭇거림이나 묘수 찾기는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백의종군으로도 위 두 가지에 복무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둘째 민주노총 지도부 사퇴 및 비대위 구성에 동의하는 세력은 여타의 차이를 극복하고 하반기 투쟁을 책임지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밝혀야 한다. 사퇴가 거부될 경우에도 그렇게 하겠다는 구상과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동시에 사퇴가 거부될 경우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한 정치적 부정과 함께 사퇴 및 민주노총 혁신에 동의하는 모든 세력과 연대할 수 있는 정치력을 발휘해야 한다. 무엇보다 현장조합원이 투쟁과 혁신의 주체로 나설 수 있는 현실적인 프로그램을 내 놓아야 한다.
셋째 민주노총 혁신을 가장 중요하게 바라보는 세력도 위 두 번째 운동에 즉각 동참해야 한다. 단지 기존 관계나 몇몇 판단 때문에 장외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는 그 어떤 현실적인 변화도 꾀할 수 없다. 또한 민주노동자전국회의도 자신의 입장을 책임지고 민주노조운동이 살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보다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 첫 단추는 역시 위 두 번째 운동에 앞장서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이 민주노조운동진영 상층이 민주노총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대중에게 취해야 할 최소한의 행위이다. 이런 결단과 행동이 따르지 않는 모든 주장과 견해는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다음 누구나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는 민주노총 혁신 문제이다. 민주노총 혁신이라는 총론 또는 개념은 누구나 동의하고 있지만 그 내용과 방법, 아니 민주노총에 대한 진단부터가 아직 제 각각이다. 이럴 때 혁신과 관련한 몇몇 의견을 지금 시기에 무작위적으로 내 놓는 것은 일단 멈춰야 한다. 진의를 의심해서도 또한 지금은 그러한 논의를 할 시점이 아니어서도 아니다. 자칫하면 사태가 오히려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일에는 순서가 있고 때로는 과정을 어떻게 밟느냐가 내용 자체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으며 지금이 그 때다.
민주노총 혁신과 관련해서는 이를 논의하는 ‘공동의 장’을 먼저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공동의 장은 민주노총 내부에 설치하되 그 토론 과정과 내용은 공개적, 개방적으로 진행시키고, 이에 민주노조운동 안팎의 제 세력이 충분히 자신들의 입장과 견해를 밝힐 수 있도록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민주노총 혁신은 크게 운동노선 혁신과 제도 및 관행 혁신으로 구분된다. 여기에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공통분모와 제 세력 사이의 견해의 차이나 다름이 존재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기회에 각 세력의 정치적 태도와 입장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방향으로 토론과 논쟁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의 민주노총 사태를 보는 데에도, 일부에서는 정파적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 듯한데, 오히려 정파적 태도가 분명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다. 정파와 종파는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전체 노동자대중이 문제 삼는 것은 종파이지 결코 정파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누가 정파이고 누가 종파인지를 구별하기조차 매우 혼란스러운 지경이다. 따라서 각 정파는 자신의 정치적 구상을 프로그램과 함께 대중에게 제시하고 이의 검증을 거칠 내용적 준비와 실천적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
다만, 한 가지 현재의 민주노총은 지난 대의원대회나 이번의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형식적 민주주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와 문제를 안고 있다. 일단 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태 해결과 민주노총 혁신을 위한 하나의 실마리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다수 의견을 확인하는 것이 곧 다수 의견‘만’이 올바르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소수가 다수가 될 수 있다는 정치적 과정이 보장되지 않고는, 또는 소수의 견해가 자신을 실현할 수 있는 운동과정이 봉쇄될 경우에는 논쟁과 논점이 형성되기 어렵다. 이 경우에 민주노총은 ‘공론 형성의 장’이 아닌 ‘권력의 장’으로 변질될 수밖에 없다.
노동자조직은 지배계급의 조직과 그 형성 원리에서부터 운영과정 자체가 달라야 한다. 그것은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단결이 아니라 다수로도 포괄하기 어려운 정치적 단결과 계급적 단결을 이끌어 내는 데 있어 다수의 입장이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진다는 관점을 확고히 해야 한다. 노동자대중이 절대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권력 쟁취가 쉽지 않은가를 바로 보아야 할 것이다.
지금 민주노조운동진영과 민주노총은 이번 계기를 진정 전화위기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를 놓고 민주노총 조합원 및 전체 노동자대중 앞에 그야말로 작고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한국사회 변혁과 세계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선봉에서 투쟁하던 모습이 옛날이 아닌 현재와 미래에도 그러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입증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누군가 말했다. 길은 이미 있어서가 아니라 자주 다녀서 길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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