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부터 한별이는 씩씩이 어린이집의 어린이가 되었다. 한별이의 월 보육료는 35만원. 하은이의 보육료까지 합해서 우리는 매달 54만 8천원의 보육료를 내야 한다. 우리 집의 월수입은 평균 118만원 정도. 셋째 아이부터 감면받는 것으로 알고 있었던 나는 감면 혜택의 범위가 확대 되었다 하더라도 우리집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남편 명의로 되어있는 집과 차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가끔 엄마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혀를 차시며 안타까워하긴 했지만 그동안은 별 생각이 없었는데 쓸 돈이 없어지니까 괜히 화가 났다. 내막은 잘 모르겠지만 남편에게는 명목상 두 채의 집과 세 대의 차가 있다. 독거노인을 위한 집과 현재 살고 있는 건물 ‘함께사는세상’의 1,2층이 모두 남편 명의로 되어있는 것이다. 돈 갖고 뭐라 그러는 거 정말 하기 싫었지만 월급도 얼마 안 되면서 감면혜택까지 못 받는다고 생각하니까 슬그머니 원망이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씩씩이 어린이집의 경녀이모가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자기 앞의 재산에 대한 권리가 없다는 것을, 그것이 모두 교회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공증. 나는 신이 나서 본격적으로 보육료 감면 혜택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우리 집은 4인가족 월소득 인정액이 136만원 이하이기 때문에 2층에 해당하고 그렇다면 한별이는 197,600원, 하은이는 122,400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나는 좋아 죽을 정도가 되어서 어떤 절차가 있는지 알아보았다. 제출해야할 서류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어쨌든 우리는 모든 서류를 갖춰서 냈다. 그게 한달 반 전의 일이다. 그리고…몇 번의 전화를 했지만 우리는 여전히 결과를 모른다. 그동안 2개월치의 보육료를 냈고 혹시나 하며 혜택 소식을 기다리고 있지만 이번 달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한 달 반 동안 나는 정말 속상했다. 나는 10월 참세상 칼럼은 보육료 감면에 대해서 쓸 계획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나오면 쓰려고 미루고 미뤘지만 이런 식으로는 11월 칼럼까지 건너뛸 것같다.
내가 속상했던 이유 첫 번째. 그동안 나는 범법자가 된 기분으로 조마조마하게 살았다. 푸른영상의 정해진 활동비는 월 50만원이지만 언제 받았는지 모두들 가물가물하다. 아픈 아내가 있는 동료는 지난 달에 전화가 끊겼다(구질구질해지려고 한다. 구질구질해지려고 꺼낸 말이 아닌데). 그나마 내게는 정기수입이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KBS에 가서 영화 속 장애인에 관한 방송을 하고 나면 61,000원을 받는다. 내가 범법자가 된 기분으로 조마조마했던 이유는 저 수입(61,000*4=244,000원)을 월수입에 넣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다. 개편 때마다 언제 짤릴 지 모르는 하루살이 아르바이트이고 특집이라도 편성되면 내 순서는 건너뛴다. 말하자면 전혀 안정적이지도 않고 지속적이지도 않은 정말 비정기수입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조사관은 내 통장에 일주일마다 입금되는 저 돈을 발견하고 “흠… 감히 우릴 속이려 들어?” 하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 상상을 몇 번이고 했다. 몇 번이나 통화한 동사무소 직원이 “왜 이렇게 늦어지는지 모르겠다”며 미안해할수록 나의 상상은 점점 현실화되어갔다. 나는 조바심을 치기도 했고 또 후회하기도 했다. 저거 신고했어야하는 거 아닐까?
아……나의 불찰로 우리는 땡전 한 푼도 혜택을 못 받겠구나. 나는 나를 미워했으며 연락없음에 절망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10월달 보육료를 10월의 마지막날, 그것도 밤에 텔레뱅킹으로 입금하면서 나는 우울해졌다. 아무래도 틀린 것같아.
속상했던 또다른 이유. 셋째 언니가 러시아에 14년째 살고 있는데 작년부터 언니의 통장관리를 내가 하고 있다. 강원도에 계시는 시부모와 우리 엄마한테 매달 부치는 생활비며 이러저러한 입출금들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다. 무통장입금보다 몇백원 싼 텔레뱅킹을 이용하기 위해 나는 창구에서 언니의 돈을 찾아 내 통장에 입금한 다음에 텔레뱅킹을 이용해왔다. 심사가 늦어지는 한달 반동안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하던 나는 이 일까지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휩싸였다. 그러면 우리집 한달 수입은 또 몇 십만원이 뛰는 것이다. 소탐대실이다, 소탐대실. 나는 또 몇 백원 아끼기 위해 했던 내 행동들을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급기야 어느 날, 인터넷 신문에서 삼성 법무팀에 대한 기사를 본 다음에는 세상에 화가 났다. 뭐냐, 이거? 있는 놈들은 돈으로 사람 사서 피할 수 있을 데까지 피해버리는데 왜 나같은 사람만 걸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보육료 몇 푼 가지고 너무 많은 생각을 한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정말 화난다. 내 주장은 우리집 보육료를 깎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예전처럼 씩씩이어린이집에 지원을 하라는 것이다. 당신네들이 우리집 살림을 아냐고요. 나한테 한 번이라도 물어봤냐고요. 만약에 나한테 이러저러한 것들을 물어본다면 나는 몇 번이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줄 것이다. 그 다음에 내리는 평가라면 수긍하겠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절대 안 그런다. 눈에 보이는 숫자와 지표만을 가지고 평가할 게 뻔하다. 보육료 지원의 기본원칙은 아이=돈이라는 등식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주자는 것 아닌가? 아이 한 명 키우는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든다면 누가 아이를 낳겠는가?
‘그러게 누가 일하래? 집에서 애 봐라’ 누군가는 이렇게 말하겠지. 우리 엄마를 비롯한 동네 할머니들, 옆집 아주머니, 우리 큰언니 항상 하는 말,
“집에서 애 키우는 게 돈 버는 거다”
일하고 싶은 이 땅의 여자들은 돈을 왕창 벌어야 한다. 보육료를 감당할 만큼 돈을 못 번다면 일을 포기해야 한다. 그리하여 먼저 이 길을 간 언니들이 해주는 충고,
“몇 년간 나는 없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없다, 나는 없다 자꾸 최면을 걸어도 내가 이렇게 푸른 하늘 아래서 숨을 쉬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없을 수가 있어? 내 아기들도 사랑스럽지만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나한테 참고 살기를, 희생을 강요하지 말아요. 희생과 양보로만 유지되는 시스템이라면 절대로 순순히 따르지는 않겠어요. 나는 내 예쁜 아기들을 두고 갑자기 출산 파업을 했어야한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리고 한 편에 드는 꿈같은 생각. 러시아에 갔을 때 언니가 해준 얘기.
소비에트 시절, 국가는 가장 젊고 건강했을 때 낳은 아기가 건강하다는 판단 하에 20대에 아기낳기를 장려했다고 한다.
“우리가 키워줄게. 낳기만 해라”
수많은 대학생 부부들이 아기를 낳았고 아기를 낳으면 의식주 뿐 아니라 교육과 걱정없이 아기를 맡길 수 있는 보육시설까지 완벽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조카 보리와 누리는 그 혜택을 받고 자라난 아이들이다. 병원 의사는 왕진을 올 때마다 배급표를 주었고 언니는 그 배급표로 양질의 우유와 고기와…수많은 혜택들을 누릴 수 있었다고 한다. 돈 한 푼 안들이고!!
방향을 알 수 없이 나는 읊조린다. 당신들 후회한다. 출산율 저하를 걱정하며 우리 여자들 탓하지 말라고. 자꾸 이런 식이면 나는 내 동료들에게 출산파업을 선동할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무책임한 국가권력의 전복을 기도할 수도 있다. 아기를 낳고 기르는 일, 참 행복했다. 하지만 그건 임신과 출산을 겪어낸 내게 내 몫으로 주어진 행복일 뿐이다. 거기에만 묻어가려고 하다가는 당신들 큰 코 다친다. 잊지 말라. 보육은 국가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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