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예준] 공공활동가

아! 민/주/노/총 - 95년 11월 13일(월) 23:50

새벽 바람을 가르며 고속버스에 올랐다

민주노총 창립 10주년 행사가 열렸다. 지난 10년간 민주노조운동을 일구어온 조합원 모두에게 감회가 새로운 날이었다. 김예준 민주노총 전 부위원장이 10년 전 민주노총 창립대회에 참가하며 '아내에게 쓴 글'을 공개했다. 김예준 활동가는 "지금 다시 보니 부끄러운 나의 생각도 있지만 그냥 그대로 공개합니다. 지금의 내 생각하고 다른 생각도 있지만 그때 나는 그랬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그때 참석했던 동지들과 함께 나누며 한편 지금의 나의 모습을 되돌아봅니다"라며 소회를 피력했다. 10년 전 민주노총 창립대회의 풍경을 돌아보게 하고, 또 지금의 민주노총을 생각하게 하는 글이다. - [편집자 주]

눈을 잠시 붙이려 했지만 고속버스를 오랬만에 타서 그런지 잠이 깊게 들지 못했지. 한때는 내가 매일 타고 다니던 지하철이었는데 출근길의 복잡한 지하철이 낮설기만 했다. 지하철을 갈아타려고 나오다 침낭이 든 배낭을 두고 내린 것이 생각났어.

항상 전야제때 올라가고 매년 추웠지만 침낭을 준비한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올해는 사회를 보지 않아도 되고 해서 몇일전부터 세탁해두고 챙겨두었는데 잃어버리다니...황당하기도 했지만 한편 웃음도 났어. 역시 내 팔자는 편할 팔자는 아닌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지

맛 없는 정말 지금까지 먹었던 그 어떤 해장국보다도 맛 없는 북어해장국을 동지들과 같이 먹고 연세대로 들어갔다. 아무리 둘러봐도 경찰이라고는 한명도 보이지 않았지. 원천봉쇄니 어쩌니 해서 긴장했었는데 막상 막지도 않고 경찰도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맥이 빠진 기분이었어.

사실 내심 나는 봉쇄되기를 바랬거든... 역사적인 민주노총의 출범!

정권과 자본이 봉쇄한다고 해도 충분히 치루어 낼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으니까...또한 최류탄 냄새와 전투적인 가투가 약간은 그립기도 했고

전국에서 올라온 300여명의 대의원들과 함께 연세대 대강당에 앉았지. 우리 좌석 바로 뒤부터 방청석이 있었는데 대의원보다도 훨씬 많은 약 1천여명이 강당을 가득 메우고 역사적인 민주노총의 출범을 지켜보고 있었어. 외국에서 온 노동조합 간부들도 많이 있었는데 독일, 스웨덴, 브라질, 일본, 이탈리아등 세계 각지에서 약 100여명의 노조 간부들이 와 있었어.

또한 독일의 주한 부대사가 내빈으로 와 있기도 했지...누군가의 말을 들으니 원천봉쇄를 안한 이유가 경찰이 사전 준비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고 하기도 하고 독일 부대사 및 세계 각국의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오는데 원천봉쇄했다가 역시 노조탄압국가로 낙인 찍히는 것이 두려워 방침 바꿨다고 했는데 글쎄 나는 후자가 맞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어. 나는 한국 경찰이 거부했다고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선언, 강령, 규약이 다소 형식적인 절차속에서 진행되고 규약에 따라 임원이 선출되고 하는 과정속에서 행사가 조금도 긴장감이 없이 진행되고 대다수 동지들이 지루해 하는 분위기를 보면서 나도 그냥 어떤 행사장에 와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 시간 관계상 임원 모두를 일괄 투표하자는 제안에 아무런 이의제기가 되지 않는 것을 보면서 조금은 이런 것은 아닌데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 또한 그냥 넘어가기로 했어. 결국 나중에는 그것이 제일 아쉬움으로 남더라.

권영길 민주노총 초대 위원장의 인사말을 들으며 앉아 있는데 이소선 어머니께서 꽃다발을 들고 단상으로 올라가서 한사람 한사람씩 격려를 하시는 모습이 들어왔어. 사람들은 권위원장에게만 관심을 집중했지만 나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뚜렸히 들어왔어. 약간은 피곤한 모습이지만 감격에 겨워하시는 기색이 역력했어. 아무도 어머니에게 관심을 두지는 않는 것 같아서 왠지 서러움마져 나는 느꼈어.

민주노총!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그래 저분 만큼 이 민주노총이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또 있을까? 지금 저분보다 더 기쁜 사람이 또 있을까? 한편 아들이 얼마나 보고 싶으실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그래 민주노총 결성을 둘러싸고 아니 전노협 결성시부터 우리들 둘러싸고 계속되었던 우리 내부의 수없이 많은 갈등과 분열... 지역, 그룹, 업종의 사소한 입장의 차이와 그로 인한 서로간의 상처들... 그러나 우리는 간다. 그것을 극복하고 우리는 간다하는 생각이 들었어. 정권과 자본의 탄압 보다 훨씬 무서웠던 우리 내부의 반목과 질시를 우리는 극복하고 간다라는 생각이 가슴에 와 닿았어!

그리고 참으로 역사적인 자리에 나는 지금 자랑스러운 대의원으로 여기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민주노총 결성 대의원대회를 보려고 새벽부터 모인 많은 사람들속에 나는 이 나라 민족의 역사와 민중의 희망인 민주노총의 선언과 강령과 초대 임원진을 뽑는 발기인으로 이 자리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

잠시 정회 시간에 같이 올라간 조폐공사 옥천 지부장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지 “ 참 역사적인 자리에 우리는 지금 와 있는 것 같아요. 십년후 나는 민주노총이 그 전에 합법화 되리라고 보는데 그때 민주노총을 건설했던 그 자리에 참여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씩 웃으며 그때 아빠도 그 자리에 있었단다 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 했더니 그 동지도 비슷한 생각이 들었다고 했어

그날 내가 많이 취한 것을 나도 알아! 사실 많이 마셨거든. 오후 5시가 넘어서 끝난 대의원대회를 마치고 소주를 한잔 먹기도 했지만 왠지 쓸쓸하게 앉아있는 양규헌 위원장을 보면서 술 한 잔 하자고 하고 싶었고 전해투 동지들의 포장마차로 가서 꽤 많은 술을 마셨어. 여러 동지들과 함께 그 자리에는 주로 전노협의 동지들이 있었어. 박창수열사의 어머니도 계셨고 “새날이 밝아온다 동지여 한발 두발 전진이다...” 노래를 계속부르며 술을 많이도 마셨지.

전노협이 민주노총의 모태임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전노협의 위원장을 비롯한 또 많은 동지들은 수없이 많은 투쟁을 겪으며 지켜온 전노협이 해체됨을 아쉬워하고 있었던 거야. 양규헌위원장을 비롯한 동지들이 눈물속에서 털어넣는 술잔을 같이 돌리며 이렇게 이야기 했어.

“무엇인가 아쉬웠고 이것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던 기념식 행사와 같았던 대의원대회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특별한 이견과 마찰없이 매끄럽고 순탄하게 치루어진 대의원대회 내내 그리고 대의원대회를 마치고도 마음이 그렇게 즐겁거나 기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서로의 입장 차이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지역, 업종, 그룹간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지도부들의 얼굴이 밝지만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러나 야외 노천극장에 모인 전국에서 올라온 동지들을 보십시오. 노천극장 역사상 저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 것을 보았습니까? 아직 지역 대오는 한팀도 올라오지 못했는데 이미 산꼭대기까지 다 차고 조금 있으면 정문까지 꽉 차서 입장조차 어려울 것같아 보입니다. 그리고 민주노총 건설을 기뻐하는 저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아무런 입장의 차이없이 저들은 우리 조합원들은 민주노총 건설을 정말 열열하게 정말 광적으로 좋아하고 있지 않습니까? 민주노총은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왜냐하면 민주노총은 조합원들의 저 열열한 지지와 힘으로 만들었으니까요.”

술을 한잔 때리고 전노협 진군가를 또 부르고 서로 어깨동무하고 함께가자 이길을 노래를 또 부르고 발길을 노천극장으로 다시 향했어. 그곳에 빛나는 수만의 눈동자가 있었어. 그곳에는 오직 웃음과 기쁨만이 있었어. 그곳에는 정파도 입장도 전노협도 업종도 현총련도 없었어. 오직 통일과 단결만이 있었어. 민주노총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어. 대의원대회에 민주노총의 모습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바로 거기에 그 자리에 민주노총의 모습이 힘있게 아주 힘있게 진군을 선언하고 있었어. 내가 바라는 민주노총도 바로 거기에 있음을 느낄수 있었어.

그래 그날은 노동자대회 전야제 사상 제일 많은 조합원이 모인 날이었고 가장 기온이 따뜻한 날이 었고 내가 술을 가장 많이 마신 날이었어. 내가 비록 지금 노동조합 간부의 자리를 떠나더라도 앞으로도 전국노동자대회 이날 만큼은 꼭 가고싶어. 내년에는 너하고 같이 당당하게 올라갈수 있겠지. 네가 임신을 해서 어려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나 혼자라도 꼮 가야겠다고 생각해. 간부를 떠났으면 더욱 참여하는 모습을 가져야 겠지. 꼭 그런 이유가 아니더라도 노동자로서 열심히 살아가기 위하여 나태해지고 안주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타성에서 벗어나 다시 전진하기 위하여 나는 노동자대회에는 꼭 갈거야!

영원하라 민주노총! 그리고 노동자여!
민주노총 건설! 산별노조 쟁취! 그리고 노동해방으로 이어지는 노동자의 진군의 역사를 느끼며 나는 그 역사를 만드는 한 사람이고 싶어.
덧붙이는 말

김예준 님은 한국전자통신연구소노조 위원장, 민주노총 대전충남본부 본부장, 민주노총 부위원장 등의 일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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