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석준] 아펙반대부산시민행동

"아펙 효과 모호하고 추상적, 희망사항만 나열"

2005 APEC 정상회의와 부산 : 과연 ‘누구를 위한 잔치’ 인가

‘2005 APEC 정상회의’가 2005년 11월 12일부터 19일까지 부산에서 열린다. 이 ‘2005 APEC 정상회의’의 성공 개최를 올해 최대의 과제로 설정한 부산시에서는 전 행정력을 동원하여 행사 준비를 진행해 왔다. 지역의 언론과 시민단체에서도 APEC 성공 개최가 지역 발전의 획기적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하면서 전폭적인 지원과 참여 의사를 밝혀 왔다.

그런데 APEC 정상회의는 흔히 선전되는 것처럼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영향력 있는 기구는 아니다. APEC 내에서도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관계의 불일치 등 긴장이나 불협화가 존재해 왔으며, 최근에는 미국의 일방주의가 강화되면서 중국과의 마찰이 가시화되고, 일본과 중국간의 긴장도 점차 표면화되고 있다.

  아펙반대 부산문화제 장면 [출처: 아펙반대국민행동]

이런 조건 속에서 그 동안 WTO/FTA 체결의 구원투수, 부시의 침략 전쟁 지지자, 반환경의 도구, 초국적 곡물자본의 대리인, 공공부문 사유화의 전도사로 역할을 담당해 온 APEC의 발전 전망은 갈수록 불투명해지고 있다.

이런 한계 속에서 개최되는 2005 APEC 정상회의에서는 무역 자유화를 촉진하기 위한 ‘부산 로드맵’의 채택, WTO/ DDA 지원 결의, 인간 안보 등이 주요 의제로 다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쟁점들은 주로 미국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관철하는 방식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며, 그 결과는 한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의 시장 개방 압력의 강화와 대외 종속의 심화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테러와의 전쟁이란 명분으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지하면서 이라크 파병 연장을 약속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잔치판’ 자체는 부산에서 벌어지지만, 잔치의 내용은 한국을 포함한 개발도상국 민중들에게는 빈곤과 불평등의 심화, 그리고 전쟁 위험의 증대라는 고통을 강요하는 것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잔치를 잘 치르기 위해서 정성껏 준비를 했지만, 정작 집주인인 부산시민들은 완전히 소외되는 ‘그들만의 잔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한 것이다.

더군다나 2005 APEC의 부산 유치효과는 거창하고 화려한 선전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부산발전연구원의 지역산업연관분석에 따르면, 전체 경제적 파급 효과를 ①APEC 관련 건설 및 보수비 지출, ②APEC 운영비 지출, ③APEC 참가자 지출 등으로 나누어 분석한 결과, 생산유발효과 4,021억 원, 취업유발효과 6,099명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부산지역 연간 지역총생산이 45조에 달하며 취업자가 159만 명에 달한다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APEC 유치의 경제적 효과는 전체 부산지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APEC 유치의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는 기대만큼 크지 않기 때문에, 부산시나 언론에서는 직접적인 경제적 효과보다는 간접적인 파급효과를 더 강조하고 있다. 예를 들어 APEC 유치가 “부산을 21세기 동북아 물류중심도시로 약진할 터전을 마련하여 부산의 발전을 10년 이상 앞당기는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나, “APEC 유치의 (직접 효과는 위에서 지적한 것처럼 별로 크지 않더라도) 간접 파급효과는 어마어마할 것”이라든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효과를 가져올 것” 이라는 막연한 전망이 그것이다.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언론을 활용하여 유포하는 이러한 근거 없는 낙관론은, 지역경제의 장기적인 침체 상황 속에서 IMF 시절보다 더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대다수 부산시민들로 하여금 APEC 정상회의 유치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유력한 돌파구라고 믿도록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다.

그러나 가장 성공한 APEC 정상회의의 하나로 알려진 1995년 오사카 APEC 정상회의가 도시에 미친 영향과 효과와 관련하여 후꾸이 대학 노지마 신지 교수는 우선 경제적 파급효과는 개최 경비에 의한 파급효과 약 480억엔, 참가자에 의한 소비효과 약 30억엔 정도라고 제시하고, 사회적 비경제적 효과로는 ①시티 세일즈의 촉진(집객 효과), ②국제교류의 촉진(시민의 국제화 의식 효과), ③정보 수발신 기능의 강화, ④도시 환경의 개선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경제적 효과는 막연하고 추상적으로만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현지 교수는 1995년 오사카 APEC 정상회의 이후 오사카 시는 40억엔 내지 50억엔의 도시광고 효과를, 도시 브랜드가 2-3단계 업그레이드 된 효과를 얻은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이런 평가들을 감안한다면, APEC 유치를 통해 부산의 도시 브랜드 가치를 제고함으로써 어마어마한(?) 간접적 파급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주장은 지나친 과장이 아닐까 생각된다.

사회 문화적 파급효과로 제시하고 있는 나머지 측면들 - 예를 들어 지역 거버넌스의 성숙화, 시민의식의 글로벌 스탠다드화, 세계화 개방화에 따른 생활문화의 합리화 등 - 역시 측정하기 어려운 모호하고 추상적인 효과들의 나열이자 희망사항의 표현일 뿐이다. 특히 부산시에서 추진하고 있는 보여주기 위한 도시 정비 작업이나, 부산시에 협조적인 단체들을 동원한 캠페인성 행사 등을 통해서는 거버넌스의 성숙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

또한 APEC 행사의 경우 아시아 경기대회나 월드컵 등 대형 국제행사와는 달리 일반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민의식의 성숙이나 생활문화의 합리화 등의 효과를 이끌어 내기도 쉽지 않다.

부산시가 반복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APEC 유치의 ‘시민 통합 효과’도 의문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집회․시위의 자유는 헌법으로 보장된 고유한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APEC반대 문화행사를 한다는 이유로 집회 장소인 ‘차 없는 거리’를 차로 뒤덮었고, 경찰은 보수단체의 집회신고가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APEC반대 집회를 대부분 불허했다.

북구 만덕로와 서면, 해운대 일대의 생계형 노점상들은 쫓겨났고, 슬래브 지붕으로 이루어진 주택가와 고물상, 공단 등은 공사용 가림막으로 가려져 흉물 취급을 당하고 있다. APEC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에 방해가 될지도 모르는 어떤 대상이나 행동도, 사전에 철저히 ‘격리/차단’하거나 ‘원천봉쇄’하는 상황에서 ‘시민 통합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 당국과 언론의 적극적인 홍보 덕분에 APEC 행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성공했다. 정작 문제는 APEC 이후이다. 적지 않은 시민들이 APEC 성공 개최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성원했는데, APEC 이후 나아진 것은 별로 없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와 개방의 확대 결과 오히려 빈곤과 불평등이 심화되는 현실에 부닥치게 될 것이다. 정성껏 잔치를 준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잔치판이 벌어졌을 때에는 구경꾼 취급을 당해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가, ‘그들만의 잔치’가 끝난 다음에는 어질러진 잔치 뒷마당을 정리하는 고역만 다시 떠맡게 된 집주인 신세처럼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런데 잔치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잔치판 자체를 벌이지 못하게 하는 것도 능사는 아니다. ‘그들만의 잔치판’이 가진 문제점을 폭로하면서, ‘우리들의 잔치판’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적극 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빈곤과 종속, 분열과 전쟁을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와는 다른 ‘더 나은 세계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일이다.
덧붙이는 말

김석준 님은 부산대 교수로 재직중이며, APEC반대 부산시민행동 공동대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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