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섭]의 밑에서 본 세상

코카콜라 그 달콤하고 잔인한 이야기

[2005한반도평화주간-릴레이기고](1) - 평화의 촛불을 등불로 만들어

학교는 평화수업 중이다. 한반도평화주간조직위원회는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소속 55명의 교수를 비롯해 전교조 교사들이 21일부터 25일까지 한 주 동안 1시간 30분 가량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화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평화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조직위와 참세상이 평화수업과 관련된 릴레이기고를 조직하였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첫 번째 글은 배성인 명지대 교수가 보내주었다.<편집자주>


벌써 효순 미선이가 떠난지 3년을 맞이하였다. 월드컵이 열리던 그 해 여름 미군 장갑차에 의해 이 땅을 떠난 두 여중생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촛불에 평화의 뜻을 담아 그들의 혼을 달래주는 것이었다.

한쪽에서는 월드컵의 영광을 구현하려는 승리의 행진곡이 열광의 도가니를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그들의 영혼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눈물의 장송곡을 부르고 있었다. 낙엽이 떨어지는 가을이 지나 매서운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이 되면 촛불이 꺼질까봐 마음을 졸여가며 평화의 함성을 외쳤던 것이다.

특히 미국의 오만방자한 태도와 불평등한 한미관계 그리고 우리 정부의 무기력하고 굴욕적인 사대주의적 태도가 시민들을 더욱 분노케 한 것이다. 촛불시위는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달구었다. 비록 얻은 것은 적지만 또 다른 불씨를 제공하였다. 꺼져 가는 우리의 의식과 양심과 이성을 깨웠다. 이 땅의 어둠을 시나브로 가시게 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젊은 세대의 변화요구는 거세졌고 그들의 눈은 날카로워 졌다. 이들은 미국을 절대적인 존재에서 상대적인 존재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은 이전세대와는 다르게 미국을 '우리의 우방이며 은인'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깨버렸다. 그런데 두 명 여중생의 영혼이 아직도 이 땅을 떠나지 못하고 배회하고 있다. 비록 월드컵의 함성에 묻혔지만 이들의 피맺힌 소리가 지금도 들려온다.

코카콜라, 그 달콤하고 잔인한 이야기

스산한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이 되면 잊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여성이 있다. 윤鳧? 언뜻 들어선 낯선 이름일 수도 있고 이미 잊혀진 이름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이름은 한국의 평화 및 반미운동에 있어서 결코 지워질 수 없는 이름이다. 1992년 10월 28일, 경기도 동두천시 보산동에 있는 미군전용클럽 종업원이던 그녀가 피살되었다. 자궁에는 맥주병 2개가 꽂혀 있었고 국부 밖으로는 콜라병이 박혀 있었다.

미2사단에 근무하는 미군병사 케네스 리 마클 이병은 그녀의 머리를 콜라병으로 난타하고, 피 흘리며 죽어가는 여성의 자궁에 콜라병을 박고 항문에 우산대를 꽂은 것이다. 온몸은 피멍과 타박상을 심하게 입어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참혹한 모습이었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전신에 하얀 합성세제 가루를 뿌리고 윤씨의 입에 성냥개비를 부러뜨려 물려 넣었다.

이 사건은 미군에 의한 성범죄 가운데 가장 잔혹한 범죄로 기록되고 있다. 미군이 주둔하면서 각종 범죄가 수없이 일어났지만, 미군 범죄와 관련하여 '윤금이 사건'에서처럼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반미 운동이 확산된 적이 없었다.

이 사건은 해가 바뀔수록 각계 각층의 각종 항의 집회를 초래했으며, 미국대통령에게 항의 엽서 보내기 운동으로까지 발전하였다.

그러나 윤금이와 같은 여성들은 기지촌 여성이라는 이유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보호받아야할 최소한의 권리마저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들은 불평등한 한미관계에서 태어난 불행한 사생아들이다. 한국이 미국에게 '타자'로 여겨진 것처럼 한국 내에서 그녀들 역시 '타자'로만 인식되었다. 미국은 자국의 병사들에게 안전한 휴식과 섹스를 제공하길 원했고, 한국정부는 주한미군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달러와 안보의 약속이 필요했다.

양국의 이해에 따라 유지되어온 기지촌의 거래는 50년이 넘게 이어져오고 있다. 결국 기지촌을 둘러싼 미국과 한국의 굳건한 매춘동맹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것은 주한미군이 한미동맹관계의 종속적 군사관계 중심을 뒷받침하고 유지시키는 핵심요소라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벌써 10여 년이 지났음에도 변한 것이 없는 현실에서 그녀는 '과거'도 '기억'도 아닌 '현재'이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얼굴 속에 그녀의 얼굴이 투영되고 있다.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을 통한 다수의 자각. 윤금이는 우리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질문에 어떤 대답을 했던가?

만 원짜리 한 장이면 맥도날드에 가서 아이스크림 33개를 사고도 100원이 남는다. 가장 인기있고 대표적인 패스트푸드점이다. 우리사회에 가장 인기 있는 청량음료는 코카콜라이다. 이들은 미국 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첨병이다. 맥도날드 햄버거와 코카콜라 마시며 한반도 평화를 외치는 젊은 세대의 모습은 이제 흔한 일이다. 특히 코카콜라는 우리에게 시원함과 갈증을 해소해 주는 고마운 음료수로 진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런데 여성의 아름다운 몸매에서 연유했다는 그 콜라 병이 잔인한 무기로 변신한 것이다. 우리는 달콤한 코카콜라를 통해서 미국의 야만을 목격하였다.

미국의 야만은 20세기를 지난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우리는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21세기 미국의 야만을 목격하였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미국의 야만은 해방이후 수십 년 간 지속되고 있다. 미국은 자신들의 야만을 정의로운 전쟁이라는 이름 하에 정당화시키고 있다. 이들은 전쟁과 평화가 등가성을 갖는다는 아주 심각한 착각의 늪에 빠져있다. 자신들만이 절대반지를 끼고 있는 절대적인 존재이며 세계평화의 수호자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지도층은 국내에서 정치적 정당성이 부족한 것을 미국과 관계를 통해 보완하려 했고, 그 때문에 당당하지 못한 자세를 보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시민들에게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한다고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전혀 변화할 줄 모른다.

여전히 불변의 원칙을 신봉하고 있다. 아직도 냉전수구 세력, 친미 사대세력은 미국이라는 절대권력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이들에게 미국은 은혜로운 존재이며, 스스로 '똘만이' 역할을 자임하며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들의 땅인 한반도에서 평화를 비참하게 짓밟으며 공포의 땅으로 만들고 있다.

이들은 자신을 알아주지도 않는 님을 그리워하며 짝사랑을 하고 있다. 이들은 사랑하는 방법을 모른다. 평화를 모른다. 짝사랑을 사수하려는 그들의 노력이 한심함을 넘어 측은하기만 하다. "…나 혼자만이 그대를 사랑하여, 영원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고 싶소". 이것도 심한 비유라고 지탄을 받을까?

이제 한국인들의 미국에 대한 혼자만의 사랑은 물 건너 간 것이다. 효순이와 미선이의 촛불이 이제 평화의 등불이 되어 척박하고 암울한 한반도를 밝게 비출 것이다.
덧붙이는 말

배성인 님은 명지대 교수로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집행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태그

평화주간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배성인(명지대)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