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한모] 일본사가대

전쟁을 통해서 평화를 꿈꾸는 보통국가

[2005한반도평화주간-릴레이 기고](2) - ‘보통국가’로 평화를 바라보는 일본

학교는 평화수업 중이다. 한반도평화주간조직위원회는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소속 55명의 교수를 비롯해 전교조 교사들이 21일부터 25일까지 한 주 동안 1시간 30분 가량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화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평화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조직위와 참세상이 평화수업과 관련된 릴레이기고를 조직하였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두 번째 글은 장한모 일본사가대학 교수가 보내주었다.<편집자주>


일본에 있다가 한국에 오는 기회가 있으면 가금씩 산에 간다. 산에 오르면 대부분 절이나 암자가 있어서 조용조용히 둘러본다. 특히 요즘 같은 늦가을에 산사를 가보면 마음이 그리 편할 수 없다. 낙엽은 떨어지고 나뭇가지는 앙상하게 변해간다. 들려오는 소리는 온 세상을 평화롭게 만들려는 은은한 종소리와 목탁소리 뿐이다.

늦은 가을 장작타는 냄새와 연기에 잠긴 산사의 정경과 풍경은 무척 고즈녁하며 평화로울 수 없다. 왜 속세를 떠나 산에서 몸과 마음을 닦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이 때는 내 자신도 경건한 마음으로 몸을 추스르게 된다. 이런 게 진정한 평화구나 하는 느낌을 갖게되면서 괜히 숙연해 진다.

나는 일본에 살면서 항상 일본인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어떠한 다툼이나 갈등이 발생하면 상대방을 이해하고 설득하며 그렇지 않으면 양보하곤 한다. 이방인으로서 그들과의 관계가 평화롭지 못하면 타자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정말로 일본은 한국하고는 매우 가까우면서 다른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일본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내 자신을 불쾌하게 만든다. 일찍이 일본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 공간 속에 존재하는 이방인의 입장에서는 무력함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북핵 문제가 동북아 평화의 핵심이라는 것은 상식적이다. 오히려 이러한 상식을 깨려는 움직임 때문에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있다. 최근의 동북아 정세를 보면 일본이야말로 동북아 평화의 핵심이다. 일본은 동북아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때때로 독도문제와 교과서 왜곡 문제로 한일간 갈등관계를 증폭시켰다. 더욱이 영토 영유권과 해양 자원을 둘러싸고 중국과의 갈등도 표면화되곤 한다.

일본은 경기침체가 장기화됨에 따라 강한 국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졌고 이는 다시 자신감 회복을 위한 일본의 정체성 찾기로 표출되었다. 고이즈미 총리의 포퓰리즘적 정치행태는 이를 더욱 부채질하였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과 함께 일본 국민을 억누르고 있던 금지된 욕망을 분출시키는 방법의 하나로 야스쿠니신사 참배, 영토문제, 역사문제, 해외파병 등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외교정책의 기본 골격은 미국의 동북아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 한다. 미국의 미․일 동맹의 강화는 일본의 군사전략적 위상과 역할을 증대시키고 있다. 일본은 냉전시대 안보정책의 기본이 되었던 ‘미․일 안보동맹체제’를 확대하여 탈냉전시대에 자신의 안보를 확보하려는 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정책은 지난 1996년 4월 ‘신미일 안보선언’ 발표와 1997년 9월 ‘신미일방위협력지침’(신가이드라인)을 통해 확인된 바 있다.

그리고 신가이드라인은 ‘주변사태법’안이라는 이름으로 1999년 5월 국회심의를 통과하여 법제화되었다. 이러한 법제화는 일본이 법을 떠나 전체적으로 군사대국화의 길을 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일본은 9․11사태 이후 미국의 세계전략에 편승해 국제무대에서 군사적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대테러특별조치법(2001), 이라크파병 특별조치법(2003)에 이어 2003년 6월 유사법제관련 3법안이 성립됨으로써 미․일 동맹체제를 강화하고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더욱 독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의 일본의 참가와 동 회담에서의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과 일본인 납치문제의 이슈화 등과 관련한 미국의 적극적으로 일본 지원은 고이즈미 정권으로 하여금 더욱 미․일 동맹의 기능을 신뢰하게 만들었다.

최근에는 일본 헌법 제9조를 개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일본의 헌법조사회의 발표를 계기로 헌법 개정 논의가 가속화되고 있다. 아마 조만간 자민당의 독자적인 개헌안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더욱이 민주당과 공명당도 이에 동참하여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 주고 있다. 이들이 발표한 개정안에 의하면 자위대의 집단적인 자위권과 해외에서의 무력행사 허용 등을 포함하고 있다.

자위대가 ‘정상적인’ 군대가 되는 것이다. 이 또한 동북아시아 평화에 대해 새로운 불안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가 동아시아 전체를 군비경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이제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동북아의 불안정에 대한 일본의 논리는 ‘현상유지’가 최선인 미국과 일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대만을 무력 공격할 가능성이 있는 중국이나 핵 위협을 하는 북한 등 ‘현상변화 세력’에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우경화는 중국과 북한에 대응해서 나타난 현상이라기 보다는 일본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며, 무엇보다 냉전시기의 구조가 온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일 동맹체제가 일본의 과거사 청산을 가능하지 않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본을 둘러싸고 고조되고 있는 긴장은 동북아시아 지역의 평화에 커다란 위협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커다란 문제는 일본의 보수우경화와 재무장이 미국의 네오콘과 결합될 때 동북아 지역질서를 냉전형 대립질서로 회귀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들은 전쟁을 통해서 평화를 보고 있다. 이들의 마음은 탐욕으로 가득차 있다. 신자유주의의 놀음에 빠져 극대화된 탐욕을 표출시킨 이들이 평화로운 내 마음을 증오와 분노로 바꾸고 있다. 언제까지 산에 올라 평화를 느껴야 하는가. 평화의 눈으로 세상을 보면서 정말 평화롭게 살고 싶다.
덧붙이는 말

장한모 님은 일본 사가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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