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평화수업 중이다. 한반도평화주간조직위원회는 전국교수노동조합, 민주화를위한교수협의회 소속 55명의 교수를 비롯해 전교조 교사들이 21일부터 25일까지 한 주 동안 1시간 30분 가량 한반도 평화와 관련된 수업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평화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평화수업이 진행되는 동안 조직위와 참세상이 평화수업과 관련된 릴레이기고를 조직하였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 네번째 글은 차문석 성균관대 교수가 보내주었다.<편집자주>
굳이 지난 10여 년 동안 북한이 겪어왔던 경제난과 기근에 대해서 언급하지는 않아도 독자들은 이미 그 몸서리치는 고난(의 행군)에 대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북한이 심각한 식량난에 직면하여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했던 1995년부터 시작되었다.
2005년 현재까지 10년째 계속되고 있는 한국의 대북지원의 역사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의 대북지원은 한국내 상황(한국내 보수세력의 준동?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의 부재 등), 남북한 관계, 그리고 남북한을 둘러싼 국제관계적 상황 등을 변수로 하여 심대한 변화를 겪으면서 진행되었다.
게다가 남북한 정부는 이러한 상황에 적절한 대응을 못함으로써 부정적 계기들이 성장하는 빌미를 제공하였다. 한국 정부는 매시기 정치적 타산에 함몰된 채 수구세력에 끌려 다녔으며, 북한 또한 남북관계의 정상화를 지렛대로 삼아 돌파하기는커녕 오히려 남북관계 진전을 이차적인 사안으로 처리하는 미숙함을 보여주었다.
북한에 대한 한국의 지원은 ‘인도적’이라는 형용사가 덧붙여진다고 해도 이미 남북한 관계의 역사적 구조 속에서는 그 의미가 표류한다.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의 목표는 남북한 쌍방(특히 권력지도부)이 ‘민족주의의 완성’으로 일컬어지는 통일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은 전제해야 한다.
인도적 대북지원의 정치화를 피하자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한국의 국내정치적 역관계와 남북한간 관계에 의해서 향방이 결정되는 매우 복잡한 사안으로 취급되어 실행되어 왔다. 즉,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차이에 따른 한국내 세력들의 역관계뿐 아니라 남북한간 관계가 화해보다는 끊임없는 긴장관계를 유발하면서 대북지원에 대한 합의와 실행을 어렵게 했다.
그렇다고 남북한간의 분단상태가 대북지원을 ‘정치화’시키는 근본적인 요인은 아니다. 분단상황을 ‘이용’하는 세력들이 항상 인도적 대북지원을 정치화시켜 자신의 기득권을 강화해온 것이다.
게다가 남북관계와 대북지원이 돌발적 사태에 의해서 경직될 때 정부는 이를 돌파할 의도보다는 보수 및 수구진영의 비위를 맞추는 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사태를 더욱 보수화 게임으로 몰고 갔다. 결국 대북지원의 결단의 시기에 오히려 보수진영의 입김에 굴복해 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된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행태는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의 형성 실패의 많은 부분들을 설명해 준다. 왜냐하면 대내적으로 싸늘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강제하면서도 인도적 대북지원을 하겠다고 했을 때 이는 수구세력들에게는 빌미를, 대중들에게는 소외감을 증폭시켜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국민적 컨센서스는 형성되기 힘들 수 밖에 없다.
이렇듯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한국내 보수진영의 인도적 대북지원에 대한 반발과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이라는 방정식 속에서 그 향방이 결정되고 있다. 한편 북한의 행태 또한 대북지원 정책의 향방에 영향을 미쳤다. 북한은 북미관계의 악화 등 북한의 대외관계가 갈등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한국과의 긴장완화를 통해서 위기를 돌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과의 갈등을 증폭시켜 남북관계의 경색을 초래하였으며 오히려 한국의 대미 지렛대를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반대로 북미 협상이 급진전 될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한국내 보수진영은 남북관계에서의 긴장완화에 반기를 들면서, 이로 인한 ‘냉전적 긴장상태’를 통해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보수파의 입김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한국 정부는 각종 선거에서의 승리 및 정권 재창출을 위하여 오히려 보수파와 동거하는 전략을 추구하였다. 이것이 인도적 대북지원 사업에서의 불안정성을 창출하는 것이다.
민족이 아닌 ‘국가대 국가’에 입각한 인도적 대북지원이 바람직하다
한국의 대북지원은 여느 국제사회의 대북지원과 마찬가지로 원칙적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작동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적 대북지원을 둘러싼 한국내의 갈등들은 이 문제가 단순한 차원에서 논의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국전쟁을 경험한 두 국가는 쌍방을 적대시하는 구조로 형성되어 왔다. 남북한 간에는 서로 같은 ‘민족’이라는 막연하고도 정서적인 개념과 ‘주적’―남북한 쌍방의 내부적 개념―이라는 냉전적 개념이 서로 화학 결합되어 혼재상태에 있다. 그 위에 ‘국가’라는 국제법적이고 제도적인 질서가 묘하게 결합하여 있다.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이 인도적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내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복잡한 성격 때문이다.
지금까지 ‘과잉 정치화’되어 왔던 대북지원이 발전적이고 생산적―오히려, 정상적인(인도적.보편적)―인 결과를 낳는 구조에서 작동하기 위해서는 민족이 아니라 ‘국가성’을 중심으로 모델화시키는 것이다. 이른바 ‘국가대 국가 모델’의 대북지원의 기본적인 메커니즘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국의 대북지원은 원칙적으로 인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 관계의 상황과 북한 국내 상황을 연동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인도적 대북지원은 북한 관료계급의 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북한 사회의 기아와 경제난에 대응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남북한간의 정치적 갈등이나 긴장이 북한 주민들의 생존권에 치명타를 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북한내의 인권 문제나 반민주주의적 상황이 한국의 대북지원의 개폐와 연동되어서도 안 된다. 국제사회는 일국가의 정치적 질서의 억압성과는 독립적으로 인도적 지원을 실시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도 인도적 지원은 대상 국가.지역의 여타 정치적 상황과 연계하지 않는 것이 이미 관행화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의 국내 문제는 매우 중요하기는 하지만 인도적 대북지원과 관련해서는 아직은 2차적인 문제이다.
둘째, ‘국가가 국가’에 인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대북지원과 관련해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국가로 인정한다는 전제 위에서만 합리적 인식의 틀이 구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을 통해서 대북지원을 인식하게 될 경우, 여전히 쌍방의 체제는 서로에게 미수복지역이며 불법 점령당한 지역이다.
따라서 ‘민족주의의 완성’이라는 과제가 나타나게 된다. 이럴 경우 민족이면서도 주적이라는 모호한 개념이 성립하게 되며 이는 대북지원이 과도하게 정치적 맥락에서 작동하는 계기가 된다. 하지만 쌍방이 서로를 ‘국가 패러다임’에서 인식할 경우, 근대국가간 체제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상호불가침과 상호인정 하에서 호혜주의나 상호의존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국가 간에는 갈등을 해결하는 채널이 만들어진다. 긴장도 무력을 회피해서 해결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제도적으로 형성.실행된다. 한국은 일본과 중국과 해역을 접하고 있으나 쌍방을 살상하는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으며, 북한은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과 해역을 접하고 있으나 유독 한국과만 교전을 치렀던 것이다. 쌍방의 국가성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도적 대북 지원의 한반도 평화와 민주주의적 효과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한다. 긴장완화가 본궤도에 이르게 되면 일단은 ‘냉전유지 비용’이 대폭적으로 절감되게 된다. 지난 50여년 동안 이러한 국방비 지출은 한국의 민주주의와 복지수준을 방해했다. 이는 북한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한반도의 평화체제의 구축으로 인해 실질 군사비를 줄일 수 있다. 이로부터 절감되는 비용을 인민생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비품을 생산하는 경공업 부문에 투자한다면 주민생활 향상에 도움될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대북지원은 남북한간의 화해.협력관계를 구축하고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위협을 감소시킴으로써 매우 저렴한 비용의 ‘평화유지’의 역할을 한다.
대북지원처럼 보수 수구세력과 대중들간의 이해관계가 명백히 갈라지는 현안에 대해서는 정부는 대중들의 이익―정치과정에 대한 참가허용, 신자유주의적 억압책의 철폐, 황폐해진 복지정책의 재건 등―을 활성화시키면서 대중들을 파트너(지지세력)로 삼을 수밖에 없다. 이로써 대북지원을 작심한 정부는 보수 수구세력으로부터 자율성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보수 양당이 한국의 국내외 정치적 사안들을 결정하는 현 시스템에서는 합리적인 대북정책은커녕 인도적인 대북지원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한국내 진보진영의 목소리들이 현실화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요컨대, 인도적 대북지원 자체가 실행되는 채널이 민주주의적 정치 과정과 중첩됨으로써 해서 사회의 전반적인 민주화에 기여하게 된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제언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기 위해서는 어느 측이든 긴장 상태를 통해 이익을 얻고자 하는 모든 시도에 반대해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한국과 북한 내의 민주주의적 과정을 수반하거나 아니면 필요로 한다. 이러한 점은 특히 평화체제 구축을 방해하는 각종 제도가 폐지되어야 한다는데서 잘 나타난다.
특히 인도적 대북지원을 제도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국가보안법 문제는 현재의 정당 정치구조에서 개편이 가능한 상황이다. 5년 전의 6.15 공동선언은 남북한이 서로의 국가적 실체를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따라서 서로를 반국가단체나 혁명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의미해졌다. 이는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편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민적 합의를 형성하고 도출해내야 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인도적 대북지원을 포함한 총괄적인 대북정책에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필요하다. 남북대결 시기에는 적대적인 상대방의 존재가 쌍방에 내부 정치적인 안정요소로 작용했다면, 이제 대북지원 등 남북한간에 상호역동성이 증가하게 된 이상 오히려 불안정 요소가 될 가능성이 높아 졌다. 따라서 이러한 불안정 요소를 현실화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인도적 대북지원은 남북한간에 정서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믿어지는 민족주의적 회로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에 대북지원 자체를 통일문제의 일부로 취급하거나 민족주의적 패러다임 속에서 이해하는 정치적 과도함은 피해야 한다. 오히려 독립적인 국가간의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단계로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는 당연히 한국내 보수 수구세력의 저항을 수반할 수 있을 터인데 대표적인 것이 색깔론이다. 사실 색깔론은 북한에 대한 적대감을 형성시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보수세력들의 전략이자 한국내의 노자간의 계급적 모순들을 은폐시키는 매우 악랄한 노선이다.
따라서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남북한간에 오랫동안 장착되어 있던 서로를 주적으로 간주하는 ‘반공 회로판’을 떼어 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과정일뿐 아니라 냉전체제의 해체 과정이기도 하다. 결국 한국의 인도적 대북지원은 한반도 평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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