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생명윤리의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민단체와 일부 연구자들이 정부와 연구진에 요청하기 시작한 것도 2년이 넘었다. 늦게나마 잘못을 시인한 황우석 교수는 별도로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할 다른 사람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이번 사건은 언론매체의 머리면을 차지하고 있고 모 방송사는 과학 윤리 관련 시사보고 프로그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반면에, 황우석 교수 못지않게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황우석’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그리고 아직도 윤리적 논란이 끝나지 않은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해서는 국민적 승인을 받은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이용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더 나아가서는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들만의 ‘왕국’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윤리에 관한 한국적 기준과 서구적 기준의 차이에 관련된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관련 학계와 정부 인사 모두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각자에게 부여된 권한을 오용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이다.
시민사회와 연구자 일각에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연구 절차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정부와 학계는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를 확립하고 시행하기 보다는 스타 과학자 만들기에 급급했고, 연구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해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기 보다는 그를 통해서 얻어지는 연구지원 확대라는 ‘떡고물’을 받아먹는 것에 만족해했다.
‘국익’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이밀거나 장애인들의 절절한 소망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얄팍한 ‘쇼’나 벌일 줄 알았지, 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해서 윤리적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 지는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대다수의 언론은 시민사회가 수행해야할 민주적 통제와 감시의 역할을 소홀히 했고, 그 연구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가 불러올 지도 모르는 보편적 인권에 대한 침해와 인간 존엄성 훼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부나 학계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제2의 황우석’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제도를 확립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면피하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적인 윤리적 기준을 운운했을 뿐,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야기시킬 수 있는 윤리적 문제와 그를 위한 엄격한 기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과학과 기술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망각’이 정부와 학계에 만연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연구과정에서의 연구 책임자-연구원 간의 수직적인 실험실 인권의 문제, 배아줄기세포 실험을 위한 난자를 입수하는 절차에서의 투명성과 윤리적 문제, 자의적이고 불투명한 윤리 규제 수행의 문제 등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학계, 언론, 정치권, 언론, 일부 단체들이 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배아줄기세포 실험이 인간 존엄성에 미치는 영향의 심각성과 윤리적 의미를 폄하하는 경향이 감지된다.
배아줄기세포가 무엇인가?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되었을 때 세포분열을 통해 인간으로의 발생을 시작한다. 배아줄기세포란 이 세포분열의 과정에서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로 발생가능한 일종의 ‘만능세포’를 일컫는 것이다.
불치의 상태인 신체의 부분을 이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내기 위해 이식해야할 할 사람의 세포로부터 핵을 뽑아내어 난자의 핵 대신에 집어넣고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 인간으로의 발생을 인공적으로 시작시킨다. 발생이 진전된 적절한 시점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서 원하는 신체의 부분을 구성해내는 것으로 전체 과정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난자의 핵 대신에 삽입된 체세포의 핵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발생은 곧 나와 동일한 복제인간으로의 발생이다. 우리는 어느 단계부터 이것을 인간생명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인간 복제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발생의 어느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신체의 부분이 구성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므로, 많은 실험과 시도들이 수행되어야 하는데, 그 실험이라는 것이 어쩌면 복제인간으로의 발생 단계에 돌입한 ‘생명’을 수없이 죽이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신체의 부분을 교체하기 위해 자신을 복제한 그러나 ‘머리’가 없어 인간 개체로는 인정되지 않는 ‘신체’를 만드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그 어느 것에 대해서 어느 사회도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어떤 구체적인 합의도 산출해 내지 못했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무시무시한 충격이며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진실이다. 단순히 노벨상을 타고 일국의 생명산업을 발전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모두 의문에 붙여지고 사회에 미치는 충격 또한 상상하기 힘든 문제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국내외의 과학기술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며, 그 연구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무책임한 정부와 학계의 인사들이나 ‘눈앞의 성취 외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연구진들에게 맡겨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서구의 과학기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의 그 과학기술이 구성된 과정과 사회의 한 요소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절과 통제 장치, 제도들에 대해서는 배우려고 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따르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한국의 과학기술 중 한 분야가 세계적으로 최초인 영역으로 발을 디디려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 영역은 한국 사회에나 인류 전체에게나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한 영역인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부와 학계는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목표에만 집착하고 언론은 감시 기능을 방기하고 사회는 민주적 통제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면, 제2의 황우석, 제3의 황우석이 나올 뿐 아니라 우리가 자랑하던 과학기술은 우리 사회를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처럼 ‘위험사회’를 향해 몰고 갈 것이다.
과학기술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사려 깊은 성찰을 통한 신중한 선택을 필요로 한다. 지금이야말로 황우석 교수가 내린 결단을 계기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와 학계는 배아줄기세포 관련 연구가 가진 복합적이고 심각한 사회적 파급 효과를 인식해서, 윤리적 기준에 따른 ‘객관적’ 연구과정과 절차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확립하고, 이제까지와 같은 자의적이고 형식적인 규제가 아니라 엄격한 윤리적 기준에 따른 규제제도와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동시에 이 모든 과정이, 장밋빛 환상을 선전하고 국익의 이름으로 대중을 부추키고 과학기술자를 도구적으로 이용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사회, 그리고 과학기술자와 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통제와 감시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기관윤리위원회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공정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가 그 내용과 절차에 대해서 감시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체제와 운영을 정비하고, 배아줄기세포 연구자들과 연구과정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생할 수 있도록 ELSI(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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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호 님은 전국과학기술노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 조합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