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연구, 엄격한 규제와 민주적 통제 감시 따라야"

과학기술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사려 깊은 성찰을 필요로 한다

지난 24일 황우석 교수가 그간 논란이 되었던 연구과정의 윤리적 문제와 관련된 사실들을 시인하고 ‘백의종군’하는 마음으로 모든 직책에 사임하고 연구에 몰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 연구과정의 과실을 따먹는데 급급했던, 윤리적 문제를 방기하거나 오히려 부추켰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을 회피하거나 무언으로 일관하는 의료계와 학계, 정부의 무책임한 행태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생명윤리의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시민단체와 일부 연구자들이 정부와 연구진에 요청하기 시작한 것도 2년이 넘었다. 늦게나마 잘못을 시인한 황우석 교수는 별도로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할 다른 사람들은 그 동안 무엇을 했던 것일까? 그리고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아직도 이번 사건은 언론매체의 머리면을 차지하고 있고 모 방송사는 과학 윤리 관련 시사보고 프로그램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반면에, 황우석 교수 못지않게 윤리적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은 ‘황우석’ 효과를 톡톡히 보면서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그리고 아직도 윤리적 논란이 끝나지 않은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해서는 국민적 승인을 받은 것처럼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이번 사건을 이용해서 여론을 호도하고 더 나아가서는 시민사회의 감시와 통제에서 벗어난 자기들만의 ‘왕국’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사건은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며, 윤리에 관한 한국적 기준과 서구적 기준의 차이에 관련된 문제는 더더욱 아니다. 관련 학계와 정부 인사 모두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각자에게 부여된 권한을 오용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 문제이다.

시민사회와 연구자 일각에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한 윤리적 기준과 연구 절차에 대해서 끊임없이 문제제기를 해왔으나 정부와 학계는 실질적이고 객관적인 기준과 절차를 확립하고 시행하기 보다는 스타 과학자 만들기에 급급했고, 연구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해서 올바른 길을 가도록 하기 보다는 그를 통해서 얻어지는 연구지원 확대라는 ‘떡고물’을 받아먹는 것에 만족해했다.

‘국익’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들이밀거나 장애인들의 절절한 소망을 자기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얄팍한 ‘쇼’나 벌일 줄 알았지, 왜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대해서 윤리적 기준을 엄격히 적용하는 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는 지는 자세히 알리지 않았다.

대다수의 언론은 시민사회가 수행해야할 민주적 통제와 감시의 역할을 소홀히 했고, 그 연구 과정에서 그리고 그 결과가 불러올 지도 모르는 보편적 인권에 대한 침해와 인간 존엄성 훼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정부나 학계는 본인의 의사를 존중해서 ‘제2의 황우석’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엄격하고 객관적인 기준과 제도를 확립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면피하기에 급급한 것이 현실이다.

한국적인 윤리적 기준을 운운했을 뿐,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야기시킬 수 있는 윤리적 문제와 그를 위한 엄격한 기준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 과학과 기술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에 대한 집단적 ‘망각’이 정부와 학계에 만연하고 있다.

물론 이번 사건은 연구과정에서의 연구 책임자-연구원 간의 수직적인 실험실 인권의 문제, 배아줄기세포 실험을 위한 난자를 입수하는 절차에서의 투명성과 윤리적 문제, 자의적이고 불투명한 윤리 규제 수행의 문제 등이 중심이 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나 학계, 언론, 정치권, 언론, 일부 단체들이 이 사건에 대응하는 방식에는, 배아줄기세포 실험이 인간 존엄성에 미치는 영향의 심각성과 윤리적 의미를 폄하하는 경향이 감지된다.

배아줄기세포가 무엇인가? 난자와 정자가 수정이 되었을 때 세포분열을 통해 인간으로의 발생을 시작한다. 배아줄기세포란 이 세포분열의 과정에서 몸을 구성하는 각 부분들로 발생가능한 일종의 ‘만능세포’를 일컫는 것이다.

불치의 상태인 신체의 부분을 이 배아줄기세포로부터 만들어내기 위해 이식해야할 할 사람의 세포로부터 핵을 뽑아내어 난자의 핵 대신에 집어넣고 외부에서 자극을 주어 인간으로의 발생을 인공적으로 시작시킨다. 발생이 진전된 적절한 시점에서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해서 원하는 신체의 부분을 구성해내는 것으로 전체 과정이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발생한다. 난자의 핵 대신에 삽입된 체세포의 핵으로부터 이루어지는 발생은 곧 나와 동일한 복제인간으로의 발생이다. 우리는 어느 단계부터 이것을 인간생명으로 볼 것인지, 그리고 인간 복제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발생의 어느 단계에서부터 어떻게 신체의 부분이 구성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므로, 많은 실험과 시도들이 수행되어야 하는데, 그 실험이라는 것이 어쩌면 복제인간으로의 발생 단계에 돌입한 ‘생명’을 수없이 죽이면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잘못된 신체의 부분을 교체하기 위해 자신을 복제한 그러나 ‘머리’가 없어 인간 개체로는 인정되지 않는 ‘신체’를 만드는 것을 허용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그 어느 것에 대해서 어느 사회도 객관적인 기준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어떤 구체적인 합의도 산출해 내지 못했다. 이러한 가능성들은 무시무시한 충격이며 애써 외면하고자 하는 진실이다. 단순히 노벨상을 타고 일국의 생명산업을 발전시키는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이 모두 의문에 붙여지고 사회에 미치는 충격 또한 상상하기 힘든 문제인 것이다.

그러하기에 국내외의 과학기술계를 포함한 국제사회가 모두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며, 그 연구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무책임한 정부와 학계의 인사들이나 ‘눈앞의 성취 외엔 아무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연구진들에게 맡겨놓을 수만은 없는 일이 되는 것이다.

한국은 서구의 과학기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서구 사회에서의 그 과학기술이 구성된 과정과 사회의 한 요소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필요한 사회적 조절과 통제 장치, 제도들에 대해서는 배우려고 하지 않거나 마지못해 따르는 태도를 취해왔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한국의 과학기술 중 한 분야가 세계적으로 최초인 영역으로 발을 디디려 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그런데, 그 영역은 한국 사회에나 인류 전체에게나 너무나 위험하고 불안한 영역인 것이다. 만약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정부와 학계는 근시안적이고 단편적인 목표에만 집착하고 언론은 감시 기능을 방기하고 사회는 민주적 통제를 위한 노력을 포기하게 된다면, 제2의 황우석, 제3의 황우석이 나올 뿐 아니라 우리가 자랑하던 과학기술은 우리 사회를 낭떠러지를 향해 달려가는 폭주기관차처럼 ‘위험사회’를 향해 몰고 갈 것이다.

과학기술은 뜨거운 ‘가슴’이 아니라, 사려 깊은 성찰을 통한 신중한 선택을 필요로 한다. 지금이야말로 황우석 교수가 내린 결단을 계기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 정부와 학계는 배아줄기세포 관련 연구가 가진 복합적이고 심각한 사회적 파급 효과를 인식해서, 윤리적 기준에 따른 ‘객관적’ 연구과정과 절차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확립하고, 이제까지와 같은 자의적이고 형식적인 규제가 아니라 엄격한 윤리적 기준에 따른 규제제도와 절차를 확립해야 한다.

동시에 이 모든 과정이, 장밋빛 환상을 선전하고 국익의 이름으로 대중을 부추키고 과학기술자를 도구적으로 이용함에 의해서가 아니라, 과학기술과 사회, 그리고 과학기술자와 사회와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한 민주적 통제와 감시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는 기관윤리위원회와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가 공정하고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사회가 그 내용과 절차에 대해서 감시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체제와 운영을 정비하고, 배아줄기세포 연구자들과 연구과정에 실질적인 효과를 발생할 수 있도록 ELSI(윤리적 법적 사회적 문제 프로그램)을 강화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신명호 님은 전국과학기술노조 한국항공우주연구원지부 조합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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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원

    신명호 씨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을 하게 됩니다.

    약간 덧붙이자면, 일부 비판가들은 이 연구가 상용화에 까지 연결되기에는 아직 초보적인 연구수준에 머물고 있으므로 국익론 등을 동원한 현재의 연구성과에 대한 과장은 문제가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부분은 그것이 과연 효과적인 비판이 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수년 내에 이러한 연구가 상용화될 수 없다는 것은 사실 대중들 자신이 잘 알고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비판가들조차도) 이 연구가 상용화되는 길이 열리지 않을 것이라고 확실히 못 박을 수는 없다는 점이 바로 대중들이 환상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국익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치 않다'라는 식의 비판이 대중들의 환상을 전혀 건드릴 수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또 한 편, '국익론'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도 우리가 과연 '그것은 국익론에 불과하다!'라는 비판을 넘어서는 비판을 현재 제공하고 있는가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물론 말을 조금 바꾸지요. '그것은 민족주의에 불과하다!' 하지만 결국 동일한 말입니다. 국익론의 환상에 빠져 있는 대중들에게 결국 우리는 '국익론은 나쁜 것이다'라는 식의 말을 돌려주고 있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비판할 것인가? 분명히 여성의 난자채취와 관련된 비판은 문제를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것도 결국은 연구절차상의 합리성을 확보하는 문제로 좁혀지고 잊혀지게 될 가능성이 많지요.

    사실 우리는 반대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즉 만일 이 연구가 상용화될 수 있는 길이 앞으로 (수십년 내에) 열리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가능성을 정면에서 바라볼 때에만, 효과적이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해 들어가는 비판의 길이 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성의 난자채취에 관련된 문제만 하더라도, 단순한 연구가 아니라 상업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점을 가정했을 때에만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실제로 만일 이 연구가 상용화된다면 그 때는 자본이 개입해 들어오기 때문에 더 이상 연구 절차의 합리성이라는 수준에서 그것을 통제하기는 힘들어질 것입니다. 난자매매 같은 경우 그것이 중심의 국가들에서 공공연하게 대규모로 행해지기는 쉽지 않겠지만, 주변 및 반주변의 국가들(아시아, 아프리카, 동유럽, 남아메리카)에서 음성적인 방식으로 행해질 가능성은 상당히 열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민족국가의 규제를 피하거나 마비시킬 수 있는 초민족적인 의학 및 제약 자본들이 개입해 들어올 것이기에 문제는 더욱 대중들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방식으로 악화되기 쉬울 것이고요.

    또 사실 '인간복제' 등에 관련된 생명윤리 문제도 이러한 상용화 가능성을 정면에서 볼 때에만 더 심도깊게 논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는 그러한 배아줄기세포의 추출이 대량으로, 광범위하게 행해질 때, 과연 '인간복제'를 효과적으로 막는다는 것이 가능할 것인가라는 점에 관련되어 있습니다. 이 경우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부작용 혹은 원치 않는 사고의 발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마치 '핵'의 경우가 그렇듯이, 이러한 생명공학이라는 것도 일종의 '필연적 사고'의 가능성을 그 자체로 상당히 내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인데, 인간복제가 아닌 장기복제가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취하고 있는 방향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이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를 동원하기가 훨씬 용이하다는 점에서 더욱 현실적인 가능성이기도 하지요). 문제는 그것이 생명과 인간종에 대한 관념 자체를 어떻게 바꾸어 놓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인간의 "아우라"를 깨고 말고 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장기복제의 혜택을 받는 자들은 현실적으로 소수의 부유층에 국한될 것이 분명한데, 이는 결국 종래의 계급적 분할선이 상이한 생물종들(species) 간의 분할선으로 전위되기 시작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평균수명이 뚜렷이 구별될 수 있는 두 종류의 생물 그룹을 같은 종으로 보기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계급분할의 자연화(!)가 돌이킬 수 없는 정도로 전개될 것일 뿐 아니라, 인종주의가 완전히 새로운 양상 하에 등장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될 수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물종을 몰살시키는 것은 그다지 부도덕한 일이 아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생명공학 및 그 성과의 이용은 그에 대한 대중들의 민주적 통제를 철저하게 확보하는 것을 전제로 해서만 제한적으로 조금씩 진전시켜나갈 수 있다는 점을 못박고 대중들을 설득해 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가질 힘(권력)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인 만큼, 그것이 대중들의 통제를 벗어나 도리어 대중들에 대한 통제력으로 되돌아 올 때 그것이 야기할 극단적인 소외는 누구도 쉽게 책임지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점을 역설해 나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 유전과학도


    황교수님.....이 나라를 떠나세요..........


    [유전공학도가 쓴 이번 황우석 파문의 의미]

    유전공학도라고 하기에는 크게 부끄러운,그저 유전공학과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태에 대해서 한마디 할수밖에 없습니다.이번 황우석 사태의 파장을 잘 모르시 는 분들이 있으신 듯한데,이쪽 바닥에서는 이미 미국과 영국은 비공식적으로 배아줄기 세포 분화연구에 성공한것으로 사실상 결론지어지고 있습니다.이미 한국은 이들 국가과 비교하여 이제 배아줄기세포에서 우위라고 할수 없습니다.더군다나 이제부터 들어갈 실용 연구과 정에서 한국은 애당초 선진국들과 비교자체가 되지 않은데다가 한국에서는 독자적으로 실용 성 연구 단계에서는 할수있는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이제부터 큰일입니다.

    연구자의 자질 과 역량에 좌지우지 되는 "원리"의 확립면에서는 한국인 연구자들이 한수위의 기량을 발휘하 는 것은 사실이나,"실용화 연구 단계"는 창의성보다는 샘플을 얼마나 확보하느냐,한번에 투입할수 있는 플라스미드와 셀로스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서 결판나는 사실상의 "물량 전"이기 때문에 정면대결로 가면 결코 한국은 미국,영국,일본같은 나라를 당해낼수가 없습니다.

    실용화 연구단계라면 이미 연구자들의 역량이 거론될 단계가 아니기 때문이죠.

    황우석 박사님이 세계최초로 배아줄기세포 분화를 성공시켰다고 해서 한국이 생명공학의 산 업기설규모/기반에서 영국,미국등 선진국들과 동등하거나 앞서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설 마 없으실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 국가대표팀이 4강한번했다고 전통 축구강호와 동등한것 은 결코 아닌듯이 생명공학분야에서도 한국이 결코 앞서간다고 할수 없는겁니다.단지 한국 연구진의 역량이 세계의 어느 연구진과 비교해서 우수한것 뿐이죠.헌데 축구와 달리 한국 연 구진의 역량발휘되는것은 순전히 "원리"단계에서 타국보다 조금 원리를 더 빨리 찾아낼수 있 다는뿐이고 만약에 말그대로 물량전,총력전에 비교되는 실용화 연구단계에서는 불행히도 국가간 생명공학기반/규모의 격차가 그대로 적용될수 밖에 없기 때문에 불행히도 한국은 전혀,실용화 단계에서는 선진국을 압도할수 있지 못한다는것은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과학은 스포츠가 아닙니다.축구공은 둥글다고 하지만,그것은 생명공학에서는 전혀 통용 되지 않는겁니다.냉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열화와 같은 국민의 성원,응원을 100년 받아봐 야 그로 인해 얻을수 있는 것보다 단 한번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가 미치는 영향이 100배는 클수 있다는 겁니다.

    왜 황우석 박사님이 세간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미국,일본과 손을 잡으며 연구를 진행하려 했는지 아십니까?그건 바로 한국은 독자적으로 "배아줄기세포 분화연구"를 실용화 연구 단계에서 다룰 레벨은 안되도 한참 안된다는 것을 황우석 박사님이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미국이나,일본에서 먼저 알아냈다면 그네 나라들은 애당초 국제공동연구를 제안할 필요가 전혀 없었을겁니다.그네들은 그들이 가진 돈,대규모 시설 을 활용하여 독자적으로 실용화 연구를 지속시켜나갈수가 있기 때문이죠.요컨대 한국은 그간 생명공학에 투자한것이 위낙 작아서 황우석 박사님은 어떻게든 미국,일본의 대규모 배양시설을 활용하고 샘플을 대량으로 확보하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손을 잡았다는거죠.

    "배아줄기세포의 성공적 분화"의 의미는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아시는지. 뭐 학술적 용어를 설명할것없이,제가 가지고 있는 생명공학원서에 연대표를 보면 파스퇴르의 천연두 백신에서 시작하여 2000년대 초반에 게놈 프로젝트 완료에다가, 2020년에 "배아줄기세포의 분화 연구 완료"라고 적혀 있습니다.즉,황우석 박사님은 세계의 생명공학을 무려 20년이나 앞당기신것겁니다.비유를 한다면 뉴튼이 만유인력의 법칙을 알아낸것이나,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날린것이나 플레밍이 패니실린을 우연히 발견하여 세계의학을 20년이상 진보시킨 성과와 동등한것이죠.

    헌데 우리는 이런 엄청난 성과를 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적으로 연구할 재량이 없기 때문에 어쩔수없이 타국가와 손을 잡을수 밖에 없었습니다.어차피 한국은 그러한 큰 연구 성과 를 확대시킬만한 기반과 시설은 많이 뒤떨어져 있고,그렇다고 그것을 국내에 꼭꼭 감추어봐 야 타 국가에서 결국 배아줄기세포 분화에 성공하면 그나마도 최초 발견국이라는 한국의 메리트가 상실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최초 발견자라는 메리트를 유지하고 또한 "범세계적인 성과"인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확대시키기 위해 일정지분을 선진국에 할당하고 공동연구를 제안할수 밖에 없는겁니다.

    국제연구라는데 있어서 신뢰란 생명입니다.헌데 이미 전세계 생명공학계에서는 황우석 박사팀을 견제하기 시작하였습니다.특히나 "한국이 어디서 감히"라며 세계 생명공학 연구를 주도하는 미국,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생명공학계에서 눈을 흘기고 곱게
    보지 않기 때문에 그나마 얘기가 통하고 만만한 일본을 끌어들인 면도 없잖아있습니다.

    국내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미 황우석 박사의 연구가 공론화되기 전부터 세계 과학계에서는 난자 확보 여부를 두고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었습니다.

    최초의 발견국임에도 불구하고 먼저 접고들어가야만 하는 황우석 박사님 입장에서는
    이미 살얼음판을 걷는 입장이었던 거죠. 헌데 어떤 과학지식이 결여된 저급하고 멍청한 시민단체와,한건주의식 황색저널리즘에 빠진 언론에서 난자매매여부를 물고 늘어지며 그야말로 구실을 찾고 있던 선진국들에게 아주 좋은 빌미를 주고 말았습니다.

    곧바로 황우석 박사팀을 윤리적인 무대로 끌어내면서 최초 발견자의 지위를 희석시키는 동시에 자국내에서 황우석 박사님의 연구성과를 들먹이면서 자국내 연구 반대 단체들을 침묵시키며 제한 을 풀도록 종용하면서 한편으로는 황우석 박시팀을 보이콧하려고 시도합니다.

    즉,몇몇 언론의 멍청한 보도 하나때문에 황우석 박사님은 국제적으로 붕뜨고 만것이죠.

    전에 어떤 분이 황우석 박사님이 이 뭐같은 나라에서 빨리 떠나서 외국으로 나가라고
    하셨을때 많은 분들이 "웃기지 마라"하면서 악플을 다신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이런말 하면 저도 돌을 맞을지 모르지만 저 역시 지금 황우석 박사님이 국내에서 반대여론에 휩싸여있는것보다 외국에라도 나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아니,우리나라생명공학 의실태를 아는 사람중 여덟,아홉은 다 그런 생각을 할겁니다.

    빨리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가야 그나마 최초 발견국으로서 최소한의 메리트를 유지하고 연구를 지속시킬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곳에 계신 수많은 애국자분들의 심정을 이해못하는 것은 아니나,저는 황우석 박사님이 처음 배아줄기세포 분화 연구를 성공시키고 국내에 들어왔을때 사실 엄청 황당했습니다.

    실용 연구 단계를 우리나라에서 진행하겠다는 말이냐?이말은 곧 우리나라와 네덜란드를 4강에 올려놓은 히딩크 감독이 몰디브나 베트남가서 그들 국가를 4강에 올려놓겠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아니,그나마 축구공은 둥글지만 과학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황당한겁니다.

    정부에서 연구비를 지원해주면 되지 않겠느냐?그런 문제가 아닙니다.이미 실용연구단계라면 황우석 박사님의 손을 떠나 우리나라의 생명공학계 전체에 넘어가는것이나 다름없으니 깐요.즉,우수한 연구원들을 지니고 있으나 그 숫자 자체가 얼마되지 않고 더군다나 대규모 의 시설과 기반을 갖추지 못한 우리나라에 황우석 박사님은 최초 발견자라는 자신의 명예를 버려가면서까지 "우리 나라이기 때문에" 예상을 뒤엎고 입국하여 한국에서 연구를 진행하겠다는 거였습니다.조국의 지원과 국민들의 성원을 믿었던 거죠.

    애국자로서는 맞을지 모르나,과학자로써는 심하게 말하면 최악의 선택이었다고 볼수밖에 없었던거죠.

    그런데 이 조국이 황우석 박사님에게 해준것이 뭐가 있습니까.단지 국정원에서 신변보호 해주고 나라에서 돈좀 퍼주면 그게 다인가요?어차피 정부에서 지원해주고 한국의
    생명공학체계를 풀가동시켜봐야 선진국에서 투입하는 재원과 자원에게 상대가 안된다는 것은 이미 상식입니다.이건 아무리 뭐라해도 바뀌지 않는 현실입니다.

    "한국은 선진국과 비교하여 시설,기반은 크게 낙후되어 있습니다"

    헌데 지원은 커녕 몇몇 세력은 황우석 박사님을 음해하면서 정치적 목적을 달성시켜
    하려고 있고,몇몇 기업들은 사적으로 이미지 흥보에 황우석 박사님을 이용해먹으려고
    혈안이 되어서 정상적인 연구를 커녕 연구실 출퇴근조차도 제대로 못한다고 합니다.

    생명공학의 기술 싸이클은 보통 3개월이라고 합니다.이미 3개월이면 기본에 발견되었던 기술은 이미 구식화된다는 겁니다.헌데 황우석 박사님이 연구성과를 발표하고 입국을

    한후 3개월동안 과연 뭘할수 있었습니까?여러 논란에 휩싸이고,황우석 박사님을 이용해 먹으려는 단체들에 의해 거의 연구를 할수가 없었습니다.

    반면 선진국은 놀고 있었을것 같습니까?그네들은 윤리문제를 거론해놓고 뒤에서 콩을
    다 까고 있습니다.앞서 말씀드렸지만,이미 미국과 영국에서 배아줄기세포분화연구를
    성공시켰다는 심상찮는 루머가 나돌고 있습니다.무식한 언론에서 이런 사실도 알아봐서 보도해주면 좀 좋을텐데. 애국심,다 좋습니다.우리나라 국민중 99%가 황우석 박사님을 지지한다고 칩시다.

    황우석 박사님을 음해하는 세력은 단 1%라고요?헌데 그 1%의 사람들이 벌려놓은 일때문에 이미 황우석 박사님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어가고 있습니다.

    이건 애국심으로 해결할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미국으로 건너간 3명의 연구원에게 돌을 던지고 싶으십니까?월드컵 4강을 한 축구선수에서 억대포상을 해주면서 그보다도 더 생명공학이라는 학문 자체를 20년이나 진보시킨 팀의 일원인 그들이 대학원생 조교로 재직하면서 받는 월급이 100만원이 채안된다는 걸 알고도 그들을 향해 비난을 올릴수 있는지는 궁금합니다.난자제공의 무죄여부를 한국이 아닌 정직한 한 미국의 로펌에서 증명해주어 국제적인 불신을 불식시키려는 것을 본 우리나라 생명공학에 자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의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 아십니까?

    황우석 박사님이 "죽고 싶을 만큼 괴롭다"라면서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볼때 정말 우리나라 시민단체와 언론들,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습니다. 다소 감정적인 글이기는 하나,우리나라는 조국을 위해 헌신하려는 황우석 박사님을 위해 해준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최소한의 연구환경이라도 제공해줘야 되었는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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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박사님...화이팅!!!

  • 최원

    윗글을 쓴 분은 어떤 분인지 모르겠으나, "과학은 스포츠가 아닙니다.축구공은 둥글다고 하지만,그것은 생명공학에서는 전혀 통용 되지 않는겁니다"라고 말을 하고서, 그 뒤에는 계속 축구에다 생명공학을 비교를 하고, 과학을 국가간의 스포츠 경쟁으로 만드는 모순을 저지르시는군요. 결국 윗글을 쓴 분이 말하고 싶은 것은 다른 선진국에는 잔디 축구장(물량)이 동네마다 널려 있어서 우리 같이 흙마당에서 축구하는 나라와는 경쟁이 안된다는 말을 하면서 외국에 훈련진지를 만들라고 주문하고 싶으신 건데, 그럼 처음 했던 말과는 달리 생명공학은 축구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것 같군요. 축구에는 국경이 없지만 축구선수에게는 조국이 있다고 말하고 싶으신 건지.

  • Science & Philosophy 착한왕

    한국에 전문 과학기술 측정 기관(TA)들이 필요한 이유는

    과학기술을 둘러싸고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정부는 중재역할을 상실한 채 애매한 경제 성장 논리에 과학기술을 결부시킴으로써 사람들의 표 긁기에만 관심을 가진 듯하다. 애시당초 정부의 과학기술 정책은 잘못되었다. 현재 이 나라의 과학기술 정책은 여전히 소수자문위원회에 의해 이끌려 가고 있다. 소수자문위원회는 주로 각 분야에서 유명한 자들로 구성되며, 이 구성 과정에서 의견의 다양성은 결여된다. 소수의 관심에 맞는 사람들이 소수자문위원회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과학기술 정책 기관이 있지만, 이 기관들의 목표는 경제 성장에 초점을 맞추어 과학의 여러 분과에 중요성에 따른 위계질서를 매기고, 국가 주도 경제 개발에 과학기술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의 정책이 장기적 국가발전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치명적 오류다. 경제 발전에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는 주변 환경의 변화이며, 몇몇 인기 종목에 도박을 거는 식의 정책은 환경 변화에 민감할 수 없다. 게다가 그 인기 종목이 확실한 효과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확증이 없는 경우 더욱 그러하다. 인간 사회에서 지식을 가지고 벌어지는 경쟁 변수가 주변 환경에 개입할 때 지식은 단 하나의 국가에 종속될 수 없다. 어떤 특정 지식을 독재적으로 확보해 경제 도약을 꿈꾸는 것은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다. 더욱이 과학이 경제적 효과를 가져온 경우 최초 계획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과학적 실험을 위한 기술적 기반으로 개발된 것들이 나중에 우리 생황에 유익하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 실례가 VTR이다. 기술을 기반으로 한 과학의 성과가 나중에 새로운 기술의 창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과학기술을 몸으로 비교할 때 건강을 위해 옛 어른들이 기통(氣通)을 강조했듯이, 다양한 분과의 제대로된 연결망과 환경 변화에 따른 그 연결망의 가변성 확보가 매우 중요하다. 이 평범한 사실이 소수자문위원회 및 국가 주도 정책 기관에서 자리를 차지한 사람들의 대가리에는 제대로 인식되지 않은 듯하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순히 결과만으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에, 연구개발 과정에서 단계적 평가가 계속 이뤄져야 하며, 또 그 평가가 공적으로 알려져야 한다. 그러한 평가가 소수자문위원회에서 이뤄진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할까? 인간배아줄기세포연구를 둘러싼 우리 논쟁의 경우 큰 두 축이 있다. 하나는 생명윤리위원회이고, 또 하나는 과학기술정책위원회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생명윤리위원회의 경우 대다수가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제어론의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황교수 사건을 놓고 과학계의 대국민 사과 혹은 대국민 윤리교육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러한 주장은 마치 대구지하철참사가 났을 때 유사한 재난 재발 방지를 위해 국민의 15%를 위기시 리더쉽을 발휘할 수있도록 교육을 해야한다는 연구결과보고서의 내용과 같다. 그러한 주장은 사고 1달 후 동성로에서 젊은이들이 웃고다닌다고 젊은 세대의 윤리의식을 질타한 어느 노교수의 발언과 다르지 않다. 황교수 사건에 물리학자, 화학자, 의학자 모두 모여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하는 이유가 어디 있는가? 어느 지역에서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면, 그 지역 사람들 모두 모여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해야 하는가? 또 한 축인 과학기술정책위원회는 실제 과학자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는 곳이 아니라 경제 논리에 과학을 수단화하여 과학자들을 그저 도구로 생각하는 곳에 불과하다.

    또 한편 정부는 자신들이 젊은 연구원들 돈까지 삭감해가면서 밀어붙이고 있는 황교수가 위기에 처하자 상황을 보아가면서 덮기에 급급하다. 이 와중에 발빠른 자들은 자발적 난자 기증 단체까지 만들었다. 이 단체의 설립자는 이 단체가 앞으로 난자 관리까지 하겠다고 한다. 난자를 모으는 단체가 난자를 관리하겠다니 우스울 뿐이고, 게다가 그 단체의 수장은 난자 채취 과정에 대한 질문에 제대로 대답할 정도의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현재 인간배아 한 개를 얻기 위해서는 약 200개의 난자가 필요하다. 이러한 수준의 과학기술이 대량생산 가능해져 경제 성장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선전하는 사람들 자체가 문제다.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필요한 것은 발생과정 및 질병 현상을 규명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지, 줄기세포 이식이 막 바로 치료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당장 대다수 난치병은 유전병으로서 체세포 복제시 그 병이 그대로 전이된다.

    국민들의 난치병 치료와 줄기세포연구에 의해 경제 강국이 될 것이라는 어설픈 기대감의 확산에는 황교수의 책임이 크다. 그는 항상 4단계 난치병 비밀론을 강조함으로써 비밀교 교주가 되었고, 비밀의 베일이 벗겨지기를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그 어설픈 기대감을 증폭시켰다. 또 그는 하나의 민족을 강조함으로써 과학이 민족주의의 이념이 되는 데 기여를 했다. 그는 과학자를 국가를 위한 일벌레로 전락시켜 사람들로 하여금 근면성실이 과학적 발견의 원천이라는 그릇된 과학관을 심었다. 결국 과학의 발전이 강한 민족을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퍼져, 이제는 황교수 비판자는 빨갱이 혹은 반민족주의자로 낙인찍히는 세태가 도래했다. 황교수의 연구가 별 경제적 성과를 가져오지 않는 경우, 추종자들은 자신들의 과거는 망각한 채 재빨리 종교적 개종을 할 것이다.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황교수가 아니라 과학에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도 크다.

    지금까지 뻔한 얘기다.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풀까? 당장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불가능한 것 같다. 사람들은 인간배아줄기세포 연구 자체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선전과 선동을 사람들이 믿는 것을 가지고 사람들을 탓할 수는 없다. 또 정권 유지에 목 매다는 것이 정치인의 습성이라면, 정치인들이 경제와 과학기술을 무차별하게 연관시키는 것을 쉽게 막을 수도 없어 보인다. 자문위원회야 소속원들의 이념에 의해 움직이니 그들에게 의식 변화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결국 답이 없다. 하지만, 다 측면에서 과학기술을 평가하는 독립 기관들이 있었으면 한다. 그러한 기관들이 정부 소속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기관들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이어야 한다. 정부, 과학자 집단 그리고 시민 사이를 매개하는 집단들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집단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조건은 다음이다.

    1. 해당 과학기술에 대해 평가가 가능한 지식을 가진 구성원들을 갖는 집단이어야 한다.

    2. 미래 계획을 위해 채택된 과학기술의 경제적 효과 및 위험성을 측정할 수 있는 조직적 구조를 가져야 한다.

    3. 그러한 측정은 위급 상황과 같은 단기적 계획에서 시민의 공감대를 요구하는 장기적 계획의 구분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 전염병 대책에 시민투표가 들어갈 수는 없다.

    4. 중장기 계획과 관련해 사전에 예측한 측정 결과를 시민들에게 주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시민들에게 정보를 주고 그들의 의견이 반영된 측정이어야 한다.

    5. 과학기술 측정 기관은 일종의 모의 실험 측정 기관의 성격을 가져야 한다. 실례로 특정 과학기술의 효과와 위험성 측정에서 무선적으로 해당 지역 시민들을 골라 정보를 주고 투표하여 그 결과를 가지고 재평가하는 것이 하나의 방식일 수 있다. 선택된 시민들에게는 인사 정책 등에서 불리함이 없고 실질적 약간의 이득이 돌아가게 해야 한다. 또 인터넷을 활용할 수도 있다.

    6. 그렇게 하여 얻어진 측정 결과가 정책에 반영되어야지, 사전에 정책을 먼저 정해놓고 정책 구현을 위한 수단 마련 차원에서 이뤄지는 모든 지금까지의 결과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7. 과학기술 측정 기관이 하나가 되면 안 된다. 하나라면 의미가 없다. 여러 개를 확보하는 것은 그리 돈이 들지 않는다. 실제 공학윤리 인증제에 혈안이 되어 있는 대학은 많아도, 공학부에 과학기술 측정 연구 기관을 가진 곳은 없다.

    8. 과학기술 측정 기관들을 활용할 수 있는 합리적 제도가 필요하다. 특정 과학기술의 선별은 소수자문위원회나 국가 정책기관이 해도 좋다. 하지만, 어떤 식으로 진행할까는 아니다. 아직 관료제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이 나라에서는 더욱 그렇다. 중복된 연구에 연구비 낭비하지 말고 그 돈으로 과학기술 측정 기관들에게 프로젝트를 주는 것이 좋다. 일정 경쟁 구도에서 성실하지 못하거나, 자료를 조작하거나 혹은 별 소득을 달성하지 못한 기관들에게는 하청을 주지 않으면 그만이다.

    9. 과학기술 측정 기관에서 얻어진 측정 결과를 정책 수립 및 수정에 반영되게 하는 제도적 보안이 필요하다. 그러한 결과가 국회 및 정부 기관에 상정되어 집단적 합의 결과를 거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0. 피드백이 필요하다. 정책이 수립되어 시행되더라도 그것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에 대한 평가가 주기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결국 별 얘기는 아니다. 여러 과학기술 측정 기관이 민간 기업 형태든 혹은 대학교 부설 기관이든 있다면, 그런 기관들의 측정에서 해당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이 시민에게 퍼진다면 그리고 과학기술 측정에 시민의 의사가 어느 정도 반영될 수 있다면, 그런 기관들이 정치권, 인문학계 및 과학계 사이에서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시민이 과학기술에 대한 지식을 제대로 알 필요는 없고 해당 과학기술의 윤곽과 경제적 가능성 및 위험성 그리고 논란 거리에 대한 정보만 가지면 된다. 현 상황에서는 일종의 완충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도가 없다. 결국 몇 년 동안 가시적 성과를 내야 하는 정권은 몇몇 유명 인사의 말에 귀를 귀울여야 하고, 그 인사들의 적들은 정책에 대한 무차별한 공격을 가하는 양상이 이어진다. 이러한 양상 속에 갈등은 이념 전쟁으로 끝나며, 그 갈등은 사람들을 편가림하여 싸움을 일으킨다. 이 싸움은 논쟁이 아니라 대리 전쟁일 뿐이다.

    과학기술 측정 기관이 갖춰야 할 10가지 조건은 세밀화 작업을 필요로 한다. 내가 할 일은 더 이상 아니다. 나는 꿈 깼다. 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이 합당하게 움직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며, 또 움직이려고 해도 길이 막힌 제도 속에서 꿈을 꾸는 것은 그저 착각일 뿐이다. 질기게 운이 좋왔던 노무현 정부의 기본 실패 원인은 사람을 잘못 쓴 데 있다. 노 대통령은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햇다고 공격해대는 미친 것들의 소리가 무서웠던 것인가? 역사를 살펴 보면 성군은 주변의 배운자의 말에 현혹되지 않는다. 성군이 갖춰야 할 것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과 지식을 가진 자들을 활용하는 방법이다. 몇몇 유명인의 자문에 따라 정치를 하여 왕이 성군이 되는 경우는 딱 하나다. 그 자문 위원들이 성인의 자질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더 이상 현대 사회에 통용되지 않는다. 지금은 다양한 정보가 유기적으로 흐르게 하고, 상황에 맞는 제도 구축에 의한 갈등 중재 노력이 권력가에게 요구된다. 하지만, 노대통령은 길을 거꾸로 갔다. 학교에서 결정한 총장을 몇 사람 말에 러플린으로 바꿔치기가 가능했던 것은 근본적으로 그가 총애하는 주변 유명 인물들의 말에 끌려다녔기 때문이다. 무슨 로드 맵을 짠다고 민심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며, 민심이 선전 선동에 감화되면 그 결과는 항상 좋게 끝나지 않는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결과가 나올 시점에는 선전과 선동이 통했던 환경이 변해있기 때문이다. 만에 하나, 5년이 지나도 인간배아줄기 세포 연구가 긍정적 결과를 낳지 못할 경우 지금 먹혔던 선전과 선동은 원한으로 돌아올 것이다. 자고로 귀여운 강아지도 사람 손을 많이 타면 죽는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황교수 사건에 대해 다른 나라 국민은 별 관심도 갖고 있지 않다. 쓰레기 기자들 말에 속아 다른 나라가 시기심 때문에 황교수를 박해한다고 착각하지 마라. 그리고 이 싸움을 과학 대 종교 전쟁으로 몰고가지 마라, 신문 방송들아! 미국 부시 공화당 정권에 의해 벌어진 종교 대 과학 전쟁까지 모방하려고 하는가! 난자 문제만 해도 잠잠했던 것들이 지금와서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조금씩 솔직하기를 바란다. 현재 문제들, 실례로 황당한 난자 기증 여성 단체를 만드는 것에 대해서는 찍 소리도 못한 채 이 나라 생명공학 발전을 위해 투명한 난자 확보가 중요하다는 이중성은 제발 보이지 마라. 또 1-2년 지나 그 단체에 문제가 터지면 거품 물고 나오겠지. 니들이 지금까지 기득권 행세를 하면서 한 짓거리가 다 그랬다. 서울대 반대론을 주장하는 신문사가 실제로는 서울대 출신 기고자에 의해 움직이지 않니? 좌파를 가장했지만, 기자 개인의 이념에 맞지 않으면 시큰둥 해졌지? 누가 비판을 하면 어떤 신문사 놈들은 툭 하면 빨갱이로 몰았었지? 철학자든 과학자든, 유명하든 무명이든, 제발 낮과 밤을 가리고 살자. 지금 이런 세태에 인기 편승 잘못 하다간 나중에 좇된다는 것 쯤은 생각하고 살자. 이제 잔다~!

    마지막 한 마디만 남긴다. 모두들 상식이라는 개념을 너무 막 사용한다. 히틀러 시대 나치에 편승한 대다수 독일인들도 상식을 갖췄다. 상식은 항상 여러 가치관과 결합할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무릇 배운자는 상식적, 비상식적 혹은 양심적, 비양심적인 것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역사 속에서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주어진 상황에서 상식이 어떤 가치관과 결합해야 긍정적인지는 과거 경험 속에서 진단할 수 있는 것이지 현 시점에서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사는 우리에게 딱 하나의 교훈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정권과 신문 방송의 선전에 의해 가공된 어설픈 경제논리 및 민족주의에 무의식적으로 빠져 과학과 기술을 바라볼 때 그 결과가 좋게 끝난 적이 없다. 그 잘난 스노우의 "두 문화"는 서구의 그 역사를 반영한 책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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