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우리의 꿈을 파괴하는 악마와 똑같다

이라크파병연장안 본회의 처리하려는 국회의원들에게 보내는 편지

밤낮으로 국민의 안위와 미래를 위해 애쓰시는 17대 국회의원님들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빈민지역에서 공부방을 하고 있는 40대 주부입니다. 제가 이렇게 의원님들께 편지를 드리는 까닭은 아직까지 국회의원은 국민을 위한 일꾼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3년 전 겨울, 국회에 이라크 파병 문제가 올라갔을 때 아이들과 대학로로, 광화문으로 나가 파병반대 촛불을 들었습니다. 추운 겨울 동안 계속된 아이들의 기도에도 아랑곳없이 2004년 2월 파병 안이 통과되고 말았습니다. 그 날은 하필 이라크 ‘알 아마리아’ 방공호에 폭탄이 떨어져 수많은 사상자가 생긴 날이었습니다. 그 날 우리 아이는 일기에다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지금 이라크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우리가 전쟁반대를 해도 우리나라 대통령이 찬성을 하고 우리나라 군대를 보내려고 한다. 전쟁은 우리의 꿈을 파괴하는 악마와 똑같다.”

저와 우리 아이들이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 촛불을 들기 시작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침공이 임박했던 2003년 봄부터였습니다. 미국이 평화를 비는 지구촌 사람들의 바람을 저버린 채 이라크를 침공하던 날, 우리 아이들이 삼촌이라고 부르며 따르던 동화작가 박기범이 바그다드 알파나르 호텔의 방공호에 있었습니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박기범 삼촌이 이라크로 간다고 하자 아이들은 모두 반대를 했습니다. 박기범 삼촌은 그런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바로 옆에 있는 아이를 들쳐 업고 국경을 넘겠다고, 그렇게라도 전쟁의 공포에 떨고 있는 이라크 아이들 곁에 함께 있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은 박기범 삼촌과 이라크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2003년 4월 미군의 폭격이 계속되는 동안 박기범은 폭격에 쓰러지는 이라크 아이들과 노인들, 어머니들과 아버지들을 보며 눈물을 흘렸고, 우리 아이들은 작은 공부방 안에 둘러 앉아 촛불을 켰습니다. 그리고 기도했습니다.

“하느님, 나는 평화가 좋아요.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평화가 더 좋아요. 전쟁을 하면서 죽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면 좋겠어요. 저는 평화가 엄청 좋아요. 저는 계속 전쟁반대 할 거예요”

“박기범 삼촌이 안 죽게 해주세요. 너무 무서워하지 않고 이라크 아이들에게 용기를 주게 해주세요.”

그리고 자기들의 사진을 벽에 하나씩 붙이며 자기들처럼 소중한 또 하나의 생명이 사라지지 않기를 빌었습니다. 몇 달 뒤 박기범이 돌아왔고 우리 아이들은 삼촌에게 평화지킴이상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박기범은 다시 이라크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이라크에다 우리 공부방 같은 아이들의 쉼터를 만들겠다는 삼촌 말에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박기범 삼촌이 이라크 사람인 살람 아저씨가 소개해준 이라크 친구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얼굴만 보던 아이들은 몇 달이 지나 서로 편지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이제 이라크에 있는 아이들은 이름 모를 어떤 친구들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의미 있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쿠세이 에드마, 알리 카둠, 무하마드 탈리브......

하지만 이라크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은 오래 계속되지 못했습니다. 이라크에 평화와 자유를 가져다주겠다던 미군의 호언장담과 달리 이라크는 하루도 총소리와 폭탄소리가 그치지 않는 위험한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점점 평화와 멀어져가는 이라크 아이들 때문에 마음 아파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그 이라크로 파병을 ! 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 친구들에게 고통과 슬픔을 안겨준 미군을 돕기 위해 우리 군인이 가야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은 정말 진심으로 파병을 반대했습니다. 아이들은 믿었습니다. 평화의 꽃을 접고, 촛불을 들고 평화를 노래하면 어른들이 자기들 말에 귀를 기울여줄 거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재건특수를 공언하며 2004년 8월 파병을 강행했습니다. 저는 실망한 아이들에게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대해, 그리고 전쟁으로 엉망이 된 이라크의 재건을 위해 한국군이 이라크에 가는 것이라고 변명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뒤 만 2년이 지나도록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라크의 평화 재건 사업에는 무엇이 있는지, 지금까지 어떤 성과물을 남겼는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얼핏 학교를 지어준다, 병원을 세운다는 기사를 봤지만 그 걸로 끝이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이툰 부대가 미군을 도와 이라크에 가져다 줄 거라고 했던 평화와 자유, 인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들에게 떳떳하게 그 성과를 말해줄 수가 없습니다. 자이툰 부대가 이라크에 주둔하기 위해 한 해 동안 쓰는 돈은 1800억 원이라는데 그 돈에서 이라크 재건에 지원되는 돈을 고작 170억 원이라는 것을 차마 아이들에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자이툰 부대를 2000명으로 줄인다느니 아니라느니 하는 논란 속에서 저를 비롯한 국민들이 알게 된 것은 우리 군이 이라크로 간 것은 결국 미국 눈치 보기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파병은 오로지 굳건한 한미동맹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얼마 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이 일반국민과 여론주도 층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미국인들이 가장 큰 잠재위협으로 꼽은 것은 ‘북핵’이었던 반면, 한국을 중요한 동맹국으로 꼽은 이들은 전문가 그룹별로 0~6%였다고 합니다. 북한은 자기나라에 위험스러운 존재로 보고 있지만 한국은 일본, 인도, 중국, 영국보다도 중요치 않은 동맹국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여전히 우리는 미국을 가장 중요한 동맹국으로 꼽을까요? 굳건한 한미동맹을 철썩 같이 믿는 것은 정치인들과 기득권자들뿐이지 않을까요? 미국에서조차 이라크침공의 명분이 거짓이었음이 드러났는데도, 이라크에 파병한 모든 나라가 철군하겠다고 발표를 했는데도 여전히 철통같은 믿음을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 정말로 굳건한 한미동맹 때문인지, 아니면 국민의 안전 때문인지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거짓으로 시작된 그 파렴치한 전쟁에 대해, 끝이 보이지 않는 그 탐욕스러운 전쟁에 대해 그만 이라는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국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국회가 국회의원들의 명예와 권력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국민을 위해 있는 것이라면 이제 자이툰 부대의 철군을 결정해야 합니다.

혹시 의원님들은 우리나라의 어린이들이 자라 이 나라의 주역이 되었을 때 그들이 이라크 파병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까 생각해보셨습니까? 우리 아이들이 주역이 될 미래에는 미국만의 독주가 더는 허용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 때 우리 아이들이 이룰 평화의 동맹, 친구들은 누가 될까요? 어떤 이들이 우리 아이들과 함께 어깨를 걸고 이 지구촌의 평화를 이어갈까요? 혹시 미래에도 우리만이 오직 미국과의 동맹에 매달리며 국제사회에서 따돌림을 받고 있게 되지는 않을까요?

미래는 우리 아이들의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짐을 지우는 일은 더는 말아야 합니다. 올 여름 터키에서 열린 전범재판에 다녀온 박기범 삼촌이 이라크 아이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보낸 선물을 한 아름 안고 왔습니다. 멜로디언, 크레파스, 연필, 이라크 풍경이 담긴 벽걸이와 쟁반...... 우리 아이들은 그 선물을 받아들고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한국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아직도 총격이 그치지 않는 바그다드 뒷골목에 있는 암시장을 헤맸을 친구들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 날 우리 아이들은 이라크 친구들에게 줄 부채를 만들었습니다. 더위와 총탄을 막아줄 평화부채를 말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저마다 용돈을 아껴 이라크 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선물을 보내지 못했습니다. 이라크가 내전 상태가 되고 혼란이 계속되면서 아이들과 편지를 연결해주던 사람이 이라크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자주 묻습니다.

“이모, 아드라하가 잘 있을까요? 아직 죽지 않았을까요?”
“이모, 무스타파 살람이 이제는 학교에 다닐까요?”

지난여름 5학년짜리 아이가 문득 그런 질문을 했습니다.

“이모, 있잖아요. 오줌 눌 때 느끼는 편안한 마음도 평화예요?”
“그럼.”
“그런데 전쟁터에서는 오줌도 맘대로 못 눌 거 같아요. 언제 죽을지 몰라서.”

울먹이는 아이는 제 친구 무하마드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공부방 어린이가 받은 이라크 어린이의 편지
나는 오줌 쌀 때, 자려고 누웠을 때,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평화롭다.
먼저 오줌 쌀 때는 변기로 갈 때는 괴롭지만 참았던 오줌을 다 누고 나면 시원하다.
그 때는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다.
그리고 누웠을 때도 편안하다.
학교에서 무거운 가방을 들고 집에 와서 이불위에 누우면
이렇게 따뜻하고 포근할 수가 없다.
정말 평화롭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맛있는 것 먹을 때.
그 황홀한 맛에 빠져 정말 행복하다.
배가 부르면 평화롭다.
특히 난 아주 가끔 먹는 자장면이 맛있다. 정말 맛있다.
정말 이 때도 엄청 평화롭고 좋다.
이렇게 평화로운 게 다른 사람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생물까지도 말이다.
(2005. 8. 19)


우리 아이들은 이라크 아이들이 자신들이 누리는 그 소박한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 아파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절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기들 마음속에 있는 평화의 씨앗을 보며 꿈을 갖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키우는 마음의 씨앗이 이 세상에 평화를 가져올 거라고 믿습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씨앗

내 마음속에 있는 씨앗은 커서 무엇이 될까?
내 마음속에 있는 작은 나무가 되겠지.
아니면 내가 되고 싶은 요리사가 되겠지?
내 마음속엔 흙은 없지만
내가 먹는 물, 내 마음속에 있는 희망을 먹고 자라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나무에 희망의 과일이 맺히겠지.
나는 밥을 먹고서도 배가 고프면
마음속에서 희망의 열매를 먹겠지.
그리고 나무가 크면
평화를 좋아하는
희망의 나무가 되겠지.
(2005. 7. 4)


존경하는 국회의원님들,

이 아이들에게 미래를, 그리고 평화를 주시기 바랍니다. 이 지구촌 어디를 가든 떳떳하고 자랑스러울 수 있게, 이 아이들의 손으로 친구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십시오. 전쟁으로 얼룩진 지구촌의 평화와 재건을 민간인들과 미래의 주역에게 맡겨주십시오.

이미 미국은 이라크 침공이 석유 때문이었음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더는 베트남 사람들 마음에 남긴 남쥬띤 군인들에 대한 원한을 이라크 사람들에게까지 새겨 넣어서는 안 됩니다.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 아체, 보스니아와 수단 그리고 베트남에서 죽어간 아이들, 지금도 기아와 압제, 에이즈와 폭력과 전쟁으로 죽어가는 이들은 우리에게 간절하게 원하고 있습니다.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미는 연대의 손길을, 총과 폭탄이 아닌 빵과 평화를 가득 담은 손을 원합니다.

국회의원님들 우리 아이들 마음 안에서 자라는 씨앗, 평화의 씨앗이 땅에서 싹을 틔워 줄기와 가지를 뻗고 뿌리를 내려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해주실 수 있겠지요?

믿겠습니다. 미래를 위한 현명한 판단을 말입니다.

국회의원 배지가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심부름꾼의 표징이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편지를 드립니다.
덧붙이는 말

글을 주신 김중미 선생님은 강화에 농촌공동체를 마련하고 인천만석동과 강화공동체를 함께한 기차길옆작은학교 교사 이다. <<괭이부리말 아이들>>, <<내동생 아영이>>, <<종이밥>>, <<우리동네에는 아파트가 없다>> 같은 동화로 가난한 아이들의 삶을 그렸고, <희망>, <반 두비> 같은 작품으로 가정폭력으로 상처받은 어린이, 이주노동자 가정의 어린이의 삶을 그린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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