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본 몇 편의 비디오. <공공의 적 2>, <댄서의 순정>, <제니 주노>. 이 세 편의 영화는 이 복잡시련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주변부 중심인 한국사회에서 개인들의 활약(?)을 통한 자유주의적 휴머니즘이 영화산업 판본의 정의, 신파, 맹랑을 만나 어떻게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하는지를 잘 드러낸다.
<공공의 적 2>는 소위 쌈질 못해서 비리비리한 한 고딩녀석이, 같은 반인 이사장 아들 녀석에 대한 학교측의 노골적인 편애를 봄시롱 사회불의를 느껴서 그날로 검사공부를 시작해서 결국 검사'님' 되셨고, 그 후로 '정의감에 불타는' 검사로 활동한다는 이약이다.
주목할 점은, 우리 사회도 형식적으로나마 그라고 사람 열통터지게스리 느린 속도로 조금씩 '민주화'되다 보이, 불법적으로 조폭질허던 이들도 시대의 흐름을 타고 형식적이나마 합법의 탈을 쓰고 불법을 마구마구 더 세련되게 저지른다는 것과,
뻔한 이약이지만 보다 중요하게는, 개인'영웅' 검사'님'들의 활약상이야 어떠허든,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합법화된 조직폭력이야말로 검찰권력이라는 점이다. 비틀어 보자면, 이런 합법화된 조직폭력은 영화 속의 설경구와 같은 여러 '개인'들을 효과적으로 이용해 먹음으로써 가려진다.
그렇지만 사실, 구케나 검찰 및 사법 권력이야말로 합법화된 조폭인 주제에, 몇몇 '정의감 넘치는' 검사 개인들 내세운다고 해서 그 사실이 어디 가려지기나 한다덩가. <공공의 적2>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영민하게 변신할 줄 아는 불법 조폭 대 언제나 '정의감 넘치는' 가난한 개인 검사의 구도로 이 사실을 가리고 있긴 하지만, 불법 조폭 세력보다 더 가공할 조폭세력이야말로 (한심한 사법권력이 조승수 의원에게 엉뚱하게 화풀이한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나듯) 검찰 및 사법 권력인 것이다.
조직이 합법을 만나면 저항하기가 백배나 어려워지고 그리하야 얼마나 무서운 것이 되는가. 설경구 류의 '정의'검사 개인들이야 늘상 존재해왔고 존재하겠지만, 조직이란 언제나 개인을 규율하고 그것을 능가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법.
<공공의 적2>는 나쁜 새끼 대 정의로운 태권브이 구도라는 플롯 설정 면에서는 후져도 한참 후졌다. 설경구를 통해서 보여지는 류의 후진 휴머니즘을 가지고 진짜 '공공의 적'이 지닌 조직폭력성을 가림시롱 엉뚱한 '공공의 적'만을 가리키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이런 선과 악의 대립 플롯은 여전히 공감을 불러일으키긴 한다.
(사족: 그렇다고 불법조폭이 더 낫다는 건 결코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 자픈 건, 우리가 조폭(잡는 것)을 소재로한 영화들을 생산하고 소비함시롱 그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미세하게 영향을 미치면서도 그것의 합법성땜시롱 폭력으로라기 보다는 '권력'으로 인지되는 그런종류의 조직폭력성이니까. 즉 합법적 조직폭력이 휘두르는 거시적 미시적 파시즘은 불법적 조폭의 폭력성보다 때로 더 '사람잡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합법적 조직폭력이 우리 일상의 미세한 부분까지 확실허니 망쳐놓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오랜동안 군사독재를 통해서 경험당해야했다.)
<댄서의 순정>은 관객들의 감각을 파고들어야 성공하는 영화 산업의 생리를 잘 보여주는 영화다. 우선, 간간이 우리의 시각을 압도하는 춤추는 몸과, 시각을 온몸의 감각으로 연결시켜 주는 흥겨운 음악, 그라고 "국민여동생"이라는 문근영과 그런 대로 잘생긴 박건형 (그라고 다른 인물들)이 펄펄 날음시롱 춤추는 장면들은 우리의 여러 감각들을 자극함으로써, 저 춤추는 몸들에서 관능성이 뿜어져 나오도록 조작한다.
춤추는 장면들은 춤추는 육체의 아름다움과 운동성에 공모하는 우리의 감각들 땜시롱 우리를 육체가 지닌 관능성에 대한 감탄이나 욕망으로 인도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연변처녀 문근영과 인간성 참말로 좋은 춤꾼 박건형의 신파!
'국민여동생'이라는 문근영이라는 배우. 신파!의 모든 것을 갖춘 문근영-박건형의 춤!추는 로맨스!. 이 세 가지는 우리로 하여금 문근영이 연변출신의 불법 이주 노동자라는 점을 까맣게 잊게 만든다. 아니, 오히려 불법 이주 여성 노동자라는 사실은 여기 이땅의 '주인'되시는 관객들을 즐겁게 하는, 신파시련 로맨스를 강화하는 훌륭한 액세서리다.
우리에게 이 영화는, 불법 이주 여성 노동자들은 '창녀'이거나 우리와 아무런 관계라고는 없는 이들이라고 거듭해서 말해준다. 그리고 설령 어떤 관계가 있더라도, 그것은 박건형과 같은 '괜찮은' 남자!와의 로맨스를 통해서, '우리'마저도 열심히 공모하고 있는 그 모든 억압되고 침묵하는 이주 노동 관련 문제들이 해결될 수도 있다고 시사한다. 이 말도 안되지만 강력한 환상(그 핵심은 로맨스, 즉 '순정')이야말로 (불법)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은근슬쩍 가리는 훌륭한 도구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순정'은 일제시대 신파의 완성판 '홍도야 울지마라'의 순정보다 더 잔인하고 더 달콤하다.
이 영화의 맥락을 나와 달리 보자면, 이 영화는 댄스스포츠계에도 연변 출신의 (불법) 이주 여성과 같은 '처분하기 쉽고' 값싼 노동력이 필요하다는 우리 사회 경제의 현실과 필요성을 드러내면서도, 그로 인한 폭력과 착취는 로맨스로 싹 가려버린다. 거기에 춤추는 몸이 주는 시각적 매혹과 신파꺼정(사람 감동시키는 걸루는 아직꺼정 신파 만헌게 없는데) 합세했으니, '사랑의 기적'이 못 일어날게 무엇이겠는가.
남녀간의 젠더 권력 잔뜩 배인 로맨스는 항상 이딴 식으로 이용된다. 그것은 가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환상 속에서 바로 그 가혹한 현실을 수긍하는 마취제이자 수면제이자 우리를 마비시키는 종교처럼, 그 어떤 종교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알고보면 가짜인 '해결책'으로 사용된다. 한 마디로, 역사적으로 로맨스/'순정'은 가장 이데올로기같지 않은 그래서 가장 효과적인 이데올로기로서, 개인과 집단 둘 다에게 비판, 투쟁, 저항을 무력화하는 기제로서 사용되어 왔다.
이런 현상을 두고 맑스는 (남녀간의 사랑, 즉 로맨스에 대해서는 아니었지만) "종교는 아편"이라고 했던 것이다. 즉, 가혹한 현실을 외면하고 다른 세상에 대한 환상 속에서 위안을 받음시롱 바로 이런 환상이라는 아편 필요한 현실을 수긍하게 하는 기제로서 19세기의 종교를 지적했던 것.
맑스가 지적한 19세기판 아편이 종교라면, <댄서의 순정>은 환상적 로맨스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장 강력한 '아편'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제니 주노>는 참으로 맹랑하고 귀여운 영화다. 우리 10대 들에게 저런 문화가 있을까, 설혹 우리 10대들이 장난질하다가 임신하더라도 저렇게 풀릴수 있다면 참 다행이겠다.
하지만, 구성애 선생의 '아름다운 우리의 성' 운운에 배여있는 그 위험한 이데올로기들이 이 영화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나친 생명존중은 여성=태아 인큐베이터, 태아=생명을 지닌 주체, 그리하야 임신한 여성은 이 태아-주체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인큐베이터를 자임하는 '성녀'로 설정될 뿐이다. '자발적 선택'이라는 설정 혹은 이데올로기 속에는 여성이 주체라는 점이, 태아에 앞서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지닌 적극적인 주체라는 점이 빠져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남자 주인공인 어린 고딩녀석 주노의 겁나는 책임성은 여성이 또 하나의 주체라는 점을 싹 가린다.
이 세 편의 영화는 정의와 사랑을 그 핵심으로 하는 휴머니즘을 전달하면서도, 휴머니즘의 그 핵심인 '휴먼'이 우리 시대에도 역시나 정작 빠져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휴머니즘 우산 하에서 개인들은 항시 전지구적 자본주의 혹은 남성중심적으로 배치된 사회 구조 속에서 '휴먼'이 되지 못하고, 그래서 우리는 '정의'니 '순정'이니 '자발적 선택'이니 하는 알딸딸하지만, 분명하게 그 개인을 착취하는 구조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동원된다. 한 마디로, 이 세편의 영화는 지금 여기 우리가 '인간답게' 살지 못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그란디 '인간답게' 산다는 건 대체 머란 말이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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