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열풍은 홍콩에서도 현재진행형이지만"

문화다양성협약과 WTO 반대투쟁

비, 홍콩, WTO

가수 ‘비’가 화장품 광고를 한다. 홍콩 지하철에서. 물론 한국에서도 해외의 유명 배우들이 샴푸며 화장품이며 광고를 하는 것이 일상적인 일이 되었지만, 홍콩 지하철에서 화장품 광고를 하고 있는 ‘비’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기만 하다. 실제로 홍콩에서 ‘비’의 인기는 1, 2위를 다툴 정도라고 한다. 한류열풍은 홍콩에서도 현재진행형이다.

한편 홍콩 경찰과 미디어는 WTO 각료회의 저지를 위해 홍콩으로 출발하는 한국민중투쟁단을 ‘폭도’로 규정한 듯하다. TV에서는 한국 농민들의 투쟁이나 지난 아펙회의 저지투쟁 장면을 매우 자극적으로 편집하여 계속 방송하고 있다.

신문에서도 한국의 농민투쟁이나 집회의 상황을 크게 왜곡보도하고 있다고 하는데, 집회에서의 분신과 농민들의 음독자살 등에 대해 ‘집회에서 감정이 격양되면 종종 일어나는 문제’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분신이나 음독으로까지 치달을 수밖에 없는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나 민중들의 생존권 등에 대한 언급은 배제한 채, 분신이나 음독이 마치 시위문화인 양 다루고 있는 것이다.

세계화되는 한국문화를 상징하는 한류열풍과 한국의 사회현실에 대한 악의적인 왜곡의 공존. WTO 각료회의가 열리는 홍콩의 상황은, ‘세계화’라는 무가치적으로 보이는 말이 사실은 자본의, 자본을 위한 세계화라는 사실과 그 이면에서 국경으로 분열되는 민중들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자본의 세계화’라는 말의 문화적, 국제적 확인라고나 할까?

문화다양성협약과 WTO

지난 10월 20일 제33차 유네스코 총회를 통과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은, 30개국 이상의 비준을 거친 후에는 국제적으로 효력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전 세계 문화NGO들은 문화다양성협약의 체결이 ‘문화적 논리’에 근거한 교류와 소통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측면에서, 그리고 WTO로 대표되는 국제무역질서에서 문화영역을 “빼낼 수 있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요구하였던 문화다양성협약을 결국 체결시켰다는 점, 게다가 WTO 체제가 출범하기 이전인 2005년 10월에 협약 체결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의 의미는 더 커질 수 있다.1)

전 세계 문화산업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이 끝끝내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을 저지시키려 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판단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 할 수 있다. 탈퇴했던 유네스코에 다시 가입하면서까지 미국은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을 막기 위해 노력하였지만, 결국 협약은 154개국이 참가한 투표에서 찬성 148개국, 반대 2개국(미국, 이스라엘), 기권 4개국(호주, 라이베리아, 온두라스, 니카라과)의 결과로 통과된 것이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고도 험하다. WTO로 대표되는 자유무역질서의 전 세계적 확산은 문화다양성에도 직격탄이 될 것이다. 실제 WTO 서비스협상이 다루고 있는 영역에는 출판/인쇄, 뉴스, 시청각서비스(영화, TV, 라디오 등), 음반, 공연 등 문화산업 전반이 포함되어 있고, WTO의 많은 자유화 및 (자본 입장에서의)공정거래 규정들은 또한 문화적 공공영역의 축소 혹은 폐지를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WTO 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그렇다면 과연 문화다양성협약이 WTO와 싸우는 ‘무기’가 될 수 있을 것인가.2)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 모두를 배제한 채 판단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협약의 체결 혹은 발효가 곧바로 문화다양성의 보호와 증진에 직접적으로 기여할 것이라는 판단은 무리라는 것이다.

국제협약의 구속력이나 구체적인 조항에 굳이 문제제기할 필요는 없겠지만, 우리는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즉 협약, 협상, 약속 등도 사실은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과 집단의 입맛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따라서 문화다양성운동 또한 WTO 반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투쟁에 보다 적극적으로 결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대로, WTO 체제의 출범은 문화다양성협약의 구체적인 실행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홍콩투쟁에서 문화다양성과 관련하여 준비된 몇몇 행사들 - 미디어문화활동가 워크샵, Defending Cultural Diversity from WTO(INCD), WTO 서비스협상 관련 투쟁, 포럼 등 - 은 오히려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문화다양성협약의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위해서라도 문화다양성운동은 이제 WTO와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반대투쟁으로 투쟁의 날을 세워야 한다. 문화다양성운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운동의 전망을 일치시키고 국제연대네트워크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문화다양성협약 체결 이후의 과제

또한 우리는 보다 실천적인 측면에서의 문화다양성협약 체결 이후의 과제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문화다양성협약은 기본적으로 국가 간의 관계에서 당사국 문화정책의 특수성을 보장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당사국 내부에서의 문화다양성에 대한 보호와 증진 또한 필요하다.

일례로 스크린쿼터로 지켜낸 한국영화 시장점유율 내부의 독점과 다양성 문제, 다양한 국가 및 장르의 영화에 대한 접근성 문제 등은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을 계기로 반드시 고민해야 하는 우리의 과제다.

민중적 차원의, 아래로부터의 국제연대의 강화 또한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문화자본이 주도하는 문화교류와 주류미디어에 의해 왜곡되는 민중들 간의 소통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대안적이고 민중적인 문화 미디어운동의 역할이 중요하다.

차이를 확인함과 동시에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해 고통받는 전 세계 민중들의 고통과 투쟁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대안세계화 미디어운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본의 세계화에 맞선 민중의 세계화, 대안세계화의 구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WTO, FTA 등 국제무역협정이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는, 개인과 공동체의 삶과 의식까지도 자본에 의해 전유되는 질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민중적 대안은 모색되지 못하고 있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삶이 아닌 민중적, 대안적 삶을 구성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생태적이고도 문화적인 삶, 독점과 소유가 아닌 교류와 공유에 기반한 삶, 소수자의 문화가 차별받지 않는 삶의 질서를 창출하고 이러한 대안적인 삶의 질서를 전 세계 민중들과의 공유하는 것만이 자본의 세계화가 강요하는 메커니즘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주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1) 문화다양성협약의 핵심적인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언급되고 있다.
첫째 제6조 ‘자국내에서의 당사국 권리’. 제6조에서는 협약 체결 당사국이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한 규제적 수단”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여 스크린쿼터제, 방송쿼터제 등 문화콘텐츠의 독점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가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제6조에서는 이 밖에도 독립문화에 대한 지원, 기초예술분야 및 공공문화인프라 구축 등을 명시하고 있기도 하다.
둘째 제20조 ‘다른 협약과의 관계’ 조항. 미국의 끝끝내 협약 체결에 반대한 이유이기도 한 제20조의 경우, “당사국은 이미 가입한 협약을 해석하고 적용할 때, 혹은 기타 국제협정에 가입할 때 본 협약의 관련 조항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는 (a)항은, 국제협정에서 문화와 관련된 조항의 해석과 적용의 경우 문화다양성협약에 근거해야 한다고 밝힘으로써 문화교류에 대한 ‘문화적인 질서’가 일관되게 구축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위로

2) 유네스코 총회 표결 직후 한국 정부가 발표한 성명은, 이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에 무게를 더하게 한다. 한국 정부는 성명을 통해, 미국이 끈질기게 반대한 제20조 ‘다른 협약과의 관계’ 조항에 대하여 이를 “문화다양성협약이 다른 협약의 권리와 의무를 변경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고 밝힌 것이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이중적 태도는 과연 한국 정부가 문화다양성협약 체결을 계기로 국내외에서 문화다양성 증진을 위한 정책을 펼칠 의지가 있기는 한가를 고민하게 한다.위로
덧붙이는 말

최준영 님은 문화연대 문화개혁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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