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농민도 안타까운 죽음이지만 현장에서 대응하는 전경들도 우리 자식이다."
그리하여 노무현은 마치 자신이 이 나라의 '아버지'라도 된다는 듯, 두 '시민'의 목숨을 잔혹하게 빼앗아간 자신의 살인자 '자식들'을 감싸고 돌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 자식"이 살인을 하면, 그건 "살인"이 아니라는 듯, 그는 모종의 "가족"을 이 나라 "시민들"에 대립시켰다.
하지만, 공화국이 가족인가? 공화국이 하나의 거대한 확대 가족이라도 된단 말인가? 만일 공화국이 가족에 불과한 것이라면, 인류는 그 오랜 역사를 통해서 자신의 시민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을 공화국의 이름으로 벌여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족은 일방적 의존 및 일방적 복종의 가부장제적이고 위계적인 논리를 따라 구성되는 폐쇄적이고 특수주의적인 공동체에 불과하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비-민주적인 공동체이며, 따라서 평등하고 자유로운 시민들의 정치적 연대를 근본적인 구성원리로 삼는 공화국과는 전적으로 다른 원리에 입각해 있다.
역사는 그리스의 도시 국가를 비롯하여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민주적 국가들이 이러한 가족적 가치 및 특수주의, 그리고 가족간의 분쟁들을 극복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확립해 냄으로써만 항상 어렵게 어렵게 자라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공화국은 가족적 특수주의의 보편주의로의 확장이 아니라, 그러한 특수주의의 제한을 위한 시민들의 보편적 투쟁을 통해서만 자라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공화국의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자신을 확대된 가족의 가장이라고 주장하면서 시민들에 대한 살인을 저지른 자신의 가족 구성원들("우리 자식")을 두둔하고 나오고 있는 것이다. 왜 그는 그렇게 하고 있는가? 도대체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가족이 분명히 아닌, 아니라서 죽인!) 시민들에게 무엇을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일까?
답은 명확하다. 그는 '공화국'의 기원을 잊게 만들기 위해, 공화국이 어떤 것인가에 관한 시민들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선동하고 있는 것이다. 공화국의 기원에는 바로 가족적이고 특수주의적인 가치들을 극복하고, 다양하고 서로 갈등하는 정치적 입장들을 가진 이질적인 시민들이 서로 평등하게--그리고 평화롭게!--교통할 수 있는 보편적 정치의 공간을 쟁취하려는 투쟁들이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바로 그것을 잊게 만들기 위해 '시민들'을 가족의 구성원들로 '호출'하면서, "우리 자식"을 불쌍히 여기자고 선동하고 있다.
그가 경찰 폭력을 사용해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둘 이나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집안 울타리를 지키는 "자식"들을 걱정하며, "시민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가르치려고 드는 것도 사실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노무현은 공화국의 평화와 집안의 평화는 같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숨기려 든다.
공화국의 평화란 어떻게 보장되는가? 그것은 오직 시민들이 자신의 정치적 발언을 자유롭게 행할 수 있는 권리(길거리에서 아무말이나 할 수 있는 형식적이고 '사적인' 발언권이 아니라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공적인' 발언을 행할 수 있는 권리로서)가 보장되고, 자신의 문제들에 관련된 중요한 결정과정들에 자신의 목소리를 충분히 반영시킬 수 있는 통로가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을 때에만 보장될 수 있다. 반대로 이러한 권리들이 보장되지 않을 때, 국가 폭력에 의해 오히려 그러한 시민적 발언권이 억압되고 봉쇄될 때, 공화국에 평화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화국의 평화는 시민들의 권리이지 정부의 권리가 아니며, 가족의 권리는 더더욱 아니며, 가족의 울타리를 지키는 "우리 자식"의 권리는 더더군다나 아닌 것이다. 오히려 정부는 공화국의 평화를 위하여, 폭력적인 사태들이 발생했을 때, 시민적인 권리들의 봉쇄 여부를 걱정하고 제도를 혁신하여 막혀있는 발언들(막혀 있으므로 폭력적인 방식으로 표출되곤 하는 발언들)을 들리게 만들기 위한 집단적인 노력들을 시민들과 함께 기울여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이 나라의 대통령 노무현이라는 자는 시민이 부여한 이러한 자신의 의무를 방기하는 것을 넘어 시민들에게, 계속 그런 식으로 과격한 시위를 행하면 이런 일(어떤 일? 살인?)이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엄포를 놓기까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대통령인가? 이것이 (가장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할 소리인가?
좋다. 전경들의 안전권은 분명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전경들의 안전권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우리 자식"이 아니라 이 땅의 엄연한 '시민'으로서 전경들의 안전권은 어떻게 확보될 수 있는가? 시민으로서의 전경들의 안전권이 시민의 발언권과 저항권을 억압함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시민들의 저항들을 무력화함으로써, 시민들에게 평화에 관한 교훈이나 가르쳐줌으로써 달성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이것이 얼마나 엄청난 모순이라 것을 노무현은 보지 못한단 말인가?
노무현은 퇴진해야 한다. 그는 공화국의 대통령이 될 자격을 스스로 내 던져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이 땅의 시민들로서 이 폭력적인 사태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민들의 평등하고 자유롭고, 진정 평화로운 교통을 보장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 해야만 한다.
기동대는 즉시 해체되어야 하며, 그외의 국가의 폭력(당장 눈에 보이는 폭력만이 아니라, 매일 저질러지고 있는 그 수 많은 눈에 보이지 않는 살인적 폭력들까지)의 해체가 전시민들의 논의 속에서 시작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 "가족"이 아니라 우리 시민들의 "공화국"을 지키는 길임을 명심하자!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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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 님은 시카고 로욜라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