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강기명] 성공회대

'참여' 정부의 두 분 공무원께.

현행 집시법이 경찰 폭력의 주범입니다.

허준영 전 경찰청장님,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님. 연말연초에 여러가지 일로 노고가 많으십니다. 때가 때이니만큼 덕담과 칭찬을 해도 부족하겠지만 저는 두 분께 감히 고언을 드리려고 이렇게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허준영님. 그 동안 수사권 조정 문제로 검찰과 다투느라, 또 '인권경찰' 브랜드 만드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전히 할 일이 많은데 농민 두 분의 사망으로 인해 물러나게 되셔서 참 안타까우신가 봅니다. 끝까지도 "내가 사퇴할 사안은 아니다."라고 주장하시는 걸 보니 말입니다. 그러나 치안의 총 책임자로서, 부하 직원들의 의도적인 공격으로 말미암아 결국 사망 사고까지 나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은 당연히 지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게다가 무려 한 달이 넘도록 전용철님의 장례조차 치르지 못했던 것은 경찰의 은폐공작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사람은 물러날 때와 그 모양을 알아야 아름다운 법입니다. 늦게나마 책임을 지신다니 다행이지만 그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지는 못하시네요.

노무현님. "머리 숙여 반성한다."고 하시면서도 이 사태의 책임을 농민들의 폭력 시위에 돌리는 것은 잊지 않으셨군요. 그러나 노무현님께서 이러한 시위가 왜 일어나는지를 진지하게 숙고해 보신다면, 그리고 님께서 추진하시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그늘 아래에서 갈수록 시민에 대한 경찰 통제가 과격해지고 있다는 점을 조금이라도 성찰해 보신다면 감히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으실지 의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두 분께 책망만 늘어놓는다고, 그리고 경찰 총장께서 사퇴를 하신다고 경찰 폭력의 문제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여, 이 자리를 빌어 몇 가지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첫째, 집시법을 개정하십시오. 지금의 '개악된' 집시법은 집회 시위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통제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개악 당시부터 경찰 측의 압력이 크게 작용한 악법으로 시민사회의 지탄을 받았던 법이 지금의 집시법입니다. 정부나 경찰 측에서는 법을 엄하게 하면 시위를 잘 통제하고 시끄러운 모습을 보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셨을지 모르겠지만 개악 이후의 결과를 보면 그러한 생각이 착각임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일어나는 시위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법에 따르면 대부분의 시위를 '불법'으로 규정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실상의 허가제로 운영되는 집회 신고제에 입각해서 어렵게 집회 신고를 내도 별별 이유를 들어서 집회를 금지 시키고, 또 어렵게 길에 나와도 무조건 막아설 생각만 하는 게 경찰의 모습입니다. 폭력은 그 와중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시위대의 폭력이 경찰이 아닌 일반 시민들을 향해 행사된 일이 있었던가요? 통제가 너무 과도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발생하는 것이 시위 중의 폭력인 것입니다. 때문에 '금지'와 '통제'를 원칙으로 하는 현행 집시법 하에서는 폭력 시위 근절은 너무도 힘든 일입니다.

발상을 전환해서 집회 시위의 '자유'를 위해 경찰력을 '통제'하는 취지의 집회 시위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해주고, 그래도 일어나는 폭력 문제에 대해서만 경찰이 소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시민사회는 노무현님이나 허준영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성숙합니다. 경찰이 아니더라도 시민 사회가 자체적으로 시위의 질과 양상에 대해 판단할 능력이 있습니다. 노무현님께서 정부를 구성할 때 이름을 '참여'정부로 한 것도 그러한 시민사회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까? 이미 허준영님도 물러나시면서 "관련법규의 강화는 오히려 과격시위를 부추길 수 있다. 결국은 문화다."라는 현명한 말씀을 남기지 않으셨습니까. 노무현님의 임기 중에 집시법을 꼭 개정해 주시길 바랍니다.

둘째, 경찰의 책임을 분명히 하도록 해야 합니다. 시위 중의 폭력이 발생했을 때 가장 난감한 것은 폭력을 행사하는 경찰 측의 신원을 알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시위 현장에 투입되는 전/의경들의 방패나 복장 어디에도 그들의 신분증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경찰장비의사용기준등에관한규정"에 보면 경찰의 시위 진압은 언제나 '최소한'의 폭력만을 사용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범위를 넘어서는 폭력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신원이 명확하지 않고, 또 시위중에 경찰의 폭력이나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지휘관들이 부대원들을 뒤로 숨기기만 하는 상황에서는 그것이 불가능합니다. 경찰부터가 '공권력'으로서 책임을 무겁게 인식할 때 시민사회 전반에도 그러한 문화가 확산되지 않겠습니까?

셋째, 살인을 선동하는 진압훈련을 중지하고, 전/의경 제도를 폐지해야 합니다. 기동대나 전/의경으로 군복무를 대신한 예비역들의 증언(민중의소리 12월 27일 기사 참조)을 들어보면 시민들을 향한 경찰의 폭력 이면에는 전/의경을 향한 지휘관들의 폭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위대에게 폭력을 '강하게' 행사하지 못하면 들어가서 구타나 폭언을 들어야 하고, 시위대를 강하게 진압할수록 칭찬을 듣는다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방패로 시위대의 상체를 '찍는' 불법적인 훈련도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이러한 훈련은 당장 중지되어야 합니다. 또한 '국방의 의무'를 대신한다면서 시민들을 적으로 상대하는 시위진압 업무를 맡는 것은 헌법적 가치와 상충되는 것입니다. 전/의경이 시위진압 업무를 맡는 제도를 폐지하고 병력 수도 축소하여 직업 경찰이 이 일을 맡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노무현님은 '참여'를 기치로 대통령에 당선되셨습니다. 참여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의 '엘리트 중심성'과 '관료주의'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는 그것의 핵심내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정부여당과 노무현님의 언행을 보면 정부의 이름까지 '참여 정부'로 지었던 님의 소신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새해에는 부디 제가 말씀드린 몇 마디 고언을 귀담아 들으시고 '참여정부' 이름에 걸맞는 정치를 펼쳐주시기를 바랍니다.
덧붙이는 말

필자 김강기명은 성공회대 대학원 생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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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 시위 , 폭력 , 경찰 ,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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