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화의 가장 큰 책임은 노무현 정부 자신이다

[기고] 새해에도 양극화 해소의 의지를 보이지 못한 노대통령의 공허한 외침

18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 제목은 “책임있는 자세로 미래를 대비합시다.”였다. 아마도 노무현 대통령이 가장 강조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다. 대기업 노동조합에게는 양보와 결단을 요구하고, 기업에게는 노사관계에 대한 태도와 경영전략을 바꾸라고 요구한다.

비판과 문제제기도 ‘대안 있는 비판’이어야 한다고, 대화와 타협으로 합의를 이루는 상생의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 마디로 정부는 원칙을 지키려고 애쓰며 노력하니 국민들도 비판만 하지 말고 미래를 위해 책임있는 자세를 가지라는 것이다.

그러나 왠지 공허하다. 책임을 논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문제고 문제의 원인은 무엇인지를 먼저 밝혀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신년 연설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강조하는 양극화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반성은 없다. 다만 책임 떠넘기기가 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양극화의 결정적인 원인이 경제위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난 3년간 우리가 겪었던 불황의 고통도 IMF 위기의 후유증 때문이라고 한다. IMF 경제위기가 발생한지 1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아직까지 IMF 운운하는 모습이 지겹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지난 3년간의 불황도, 양극화의 심화도 결정적인 원인이 IMF라고 하면서, 곧바로 이제 경제위기의 후유증까지도 거의 극복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양극화는 남아 있는데, 양극화의 원인은 갑자기 실종됐다. 그래서일까? 노무현 대통령이 이야기하는 책임론은 ‘다 같이 잘해봅시다’는 식의 하나마나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잠깐 되돌아보자. 양극화가 IMF 경제위기의 산물인가? 정확히 말하면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유연화 정책의 산물이다. 그런 점에서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하면 경제위기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을 펴온 당사자가 그렇게 두루뭉실하게 이야기하면 안 된다. 그것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연설에서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법과 제도로만 보면 우리나라 노동의 유연성은 상당히 높은 편입니다.” 이렇게 법과 제도로 우리나라의 노동유연성을 높인 것이 노무현 정부다. 그 결과가 비정규직의 양산, 근로빈곤층 증가 등으로 나타나는 양극화다.

그런 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의 핵심이 일자리라고 지적한 것은 절반의 진실이다. 일자리가 핵심이 아니고 어떤 일자리냐가 핵심이다. 비정규직 일자리를 숱하게 만들어도 양극화는 해소되지 않는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근로빈곤층은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이다. 불안정한 고용상태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존재 자체가 빈곤의 확대를 보여주는 징표다. 비정규직 일자리가 아무리 늘어봤자 그것은 언제 빈곤층으로 전락할지 모르는 예비 빈곤층을 양산할 뿐이다. 그래도 일자리를 많이 만들겠다니 한 번 믿어보고 싶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나라의 공공서비스 분야 종사자는 선진국의 60% 수준에 불과”하다면서 “이 분야에서 안정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서 대국민 서비스의 품질과 국민의 삶의 질을 높여나가야 합니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책임은 없는 듯 말한다.

이 말은 이렇게 바꿔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공공서비스 분야 일자리를 만들지 못했고, 만들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었습니다. 이제 과거를 반성하고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겠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 한 가지만 더 하자. 그것은 현 정부가 ‘좌파정부’라는 주장이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GDP 대비 재정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작고, 복지예산의 비율은 더 적은데, 복지 과잉이라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맞습니다, 맞고요!’다.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부’라고 주장하는 수구세력들은 자신의 무식함을 더 이상 드러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부’라면 교육과 의료의 산업화를 굽힘없이 추진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교육과 의료부문) 일자리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과감하게 개방하고 서로 경쟁하게 해야” 한다는 말은 ‘좌파정부’ 입에서 나올 소리가 아니다. 노무현 정부는 황우석 파동을 겪으면서도 의료의 산업화 추진을 포기할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공공영역의 시장화, 산업화가 바로 양극화의 한 원인이니 어쩌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대하는 ‘비정규직 확대 법안’이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라고 강변하고, “그동안 정부는 비정규직을 줄이고, 정규직과의 임금격차를 좁히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은 끝끝내 양극화의 책임이 현 정부에 있음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노동유연화를 더욱 극단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을 펴면서, 기업들보고 비정규직 뽑지 말래니 누가 그 말을 들을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이번 신년 연설에서 노무현 정부가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세개혁이라고 한다. “일자리 대책, 사회안전망 구축, 그리고 미래 대책을 제대로 해나가기 위해서는 많은 재원이 필요”한데, “아무리 재정의 효율성을 높이고 지출구조를 바꾸더라도 재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대목을 두고 하는 얘기다.

선진국들처럼 GDP 대비 재정규모를 키워 복지예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는 것일게다. 물론 조세개혁이 필요하다. 조세를 통한 소득격차 개선 효과도 높여야 한다. 그런데 그 전에 노무현 정부가 할 일이 있다. 자주국방을 이야기하면서 국방비를 늘리고, 행정도시니 신도시니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드는 식의 개발전략에 퍼붓는 돈, 이 돈을 복지예산으로 돌린 후에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초생활보장 대상자가 40% 이상 확대했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거짓말은 짚고 넘어가자. 기초생활보장법이 생긴 이래 기초생활보장 대상자는 거의 늘지 않았다. 2001년 141만명에서 2003년 137만명으로 줄기까지 했다. 2006년에야 시행령을 약간 개선함으로써 수급자수를 162만명으로 늘리겠다는 정도다.

하지만 경제위기 이후 감소추세였던 빈곤율이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 다시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래서 현재 빈곤층이 700만명을 넘나든다는 사실, 빈곤층 중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수급자의 두 배가 훨씬 넘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거짓말과 솔직한 고백 뒤에 나오는 책임회피, 노무현 대통령의 신년 연설은 빈곤과 양극화 심화의 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이 땅 국민들의 마음을 또 다시 불편하게 했다. 책임있는 자세를 가지라고? 누가 져야할 책임인가? 우리는 노무현 대통령에게 되묻고 싶다.
덧붙이는 말

황형욱 님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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