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강기명] 성공회대

NAP는 소수자,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는가?

직접행동만이 자본과 권력의 공세를 넘어서게 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이하 NAP) 권고안을 발표했다. NAP가 무엇일까? 인권위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tional Action Plan for the Promotion and Protection of Human Rights)이란 한 나라의 중장기 인권정책 청사진으로서 국민의 인권보호 및 신장을 위한 범국가적인 기본정책을 말합니다."

말 그대로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기본'정책이 NAP의 내용이다. 실제로 인권단체들은 최종적으로 발표된 NAP의 내용이 상당히 미흡하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 '기본정책'이 발표되자마자 경제단체와 보수 언론등은 날선 공격을 가하고 있다. 인권위의 역할 밖의 일이라느니, 진보세력의 입장만 반영한 권고안이라느니 하면서 NAP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입각한 공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조차도 이들 우익의 공세에 화답하여 "NAP를 선별해서 받겠다."는 식의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NAP에 대해서 우익이 이 정도의 강력한 공격에 나선 것은 이들이 얼마나 인권을 무시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NAP에 담겨 있는 내용은 딱 이들이 그토록 부르짖는 '글로벌 스탠다드'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영업의 자유를 위해 모든이들의 모든 것을 희생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우익의 공격과 그것이 낳고 있는 정치적 효과는 역설적으로 '글로벌 스탠다드'나 보편성에 입각한 인권 호소가 얼마나 무능력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즉, NAP를 옹호하는 측에서 "이 내용은 UN 기준의 '글로벌 스탠다드'에 입각한 것이다."라거나 "인권은 자본이 건드릴 수 없는 보편적인 인간의 권리다"라는 식으로 호소해보았자 자본은 그것을 들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글로벌 스탠다드'나 '보편성'이라는 말 자체가 오롯이 우익의 것이요, 자본의 것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발발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자신들의 권리'를 위해 싸웠다. 그러나 혁명에서 승리한 부르주아들은 민중들이 외친 '자신들의 권리'를 '천부인권'이라는 보편적 권리의 모습으로 바꾸고, 스스로가 그 '천부인권'의 담지자가 되었다. 부르주아지는 이런 식으로 하층 민중의 언어를 빼앗았고, 부르주아지의 권리와 법을 '천부인권'과 '보편적 법칙'으로 삼았서 지배자가 되었다. 자본주의의 탄생.

오늘날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글로벌 스탠다드나 보편성에 호소하며 인권을 말할 때 그것은 결국 소수자나 민중의 것이 아니라 국가의 것이요, 자본주의의 유일 계급인 부르주아지의 것이 된다. 때문에 그들은 언제든지 그런 식의 인권호소를 묵살해버릴 수 있는 것이다. NAP가 아무리 혁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결국 소수자,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없다. 오로지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되찾아 올 때만이, 보편적 권리나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니라 우리의 자리에서 우리의 권리를 주장할 때만이 인권은 확장될 수 있는 것이다. NAP를 지키는 방법, 아니 NAP를 넘어서는 방법은 이러한 소수자, 민중의 직접행동이다.
덧붙이는 말

필자 김강기명은 성공회대 대학원 생으로 인권운동사랑방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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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 권리 , 행동 , 소수자 , 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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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종복

    참 좋은 글이에요.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것은 돈 많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배고프고 헐벗은 백성들 스스로 힘을 합쳐 찾아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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