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호멧 만평사태의 본질

[기고] 종교적 갈등을 넘어 다차원적 접근 필요

상대적으로 일국 차원의 현상이었던 프랑스 소요사태나 국제정치경제적 차원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었던 9.11테러와 달리 만평사태는 매우 많은 요인들이 연관된 현상이다. 우선 유럽-이슬람 관계의 역사, 유럽 내 무슬림들의 문제, 제2차 이라크전쟁 이후의 중동정세와 유럽-아랍의 정치적 관계, 극우주의 및 유대인문제와의 연관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게다가 이번 사태에는 최근 유럽을 포함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는 종교와 사회의 갈등, 특히 “종교 관련 사항을 세속법 차원에서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라는 문제가 결부되어 있다.

먼저 이번 사태의 전개과정을 되짚어 보자. 2005년 9월 30일 덴마크 보수일간지 율란트-포스텐(Jyllands-Posten)에 이슬람을 창시한 예언자 마호멧을 테러리스트로 풍자한 그림 등 12장의 만평이 게재되었다. 처음에는 덴마크 내에서만 문제가 되었다가 2005년 12월 경 중동 등 여러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이렇게 만평문제가 세계적인 사안이 되자 2006년 1월 10일 노르웨이의 한 일간지 매거지넷(Magazinet)이 12장 그림 전체를 게재하였고 주로 언론간 연대 차원에서 2월 1일 프랑스 일간지 프랑스 수아(France Soir), 그리고 이어서 독일(Die Welt), 스위스(Tribune de Geneve, Le Temps) 등 여러 유럽국가들에서 신문 게재가 이어졌습니다. 아랍 등 이슬람국가들에서도 만평이 유럽처럼 몇몇 언론에 게재되었었다. 만평사건이 세계적인 문제로 비화한 후에는 예상되었던 대로 각지에서 이슬람신자들의 격한 대응이 잇따랐고 그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1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

이슬람권 국가들의 작품,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의 개입 증대가

우리는 여기에서 이번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된 것은 만평이 처음 게재된 지 2달이 넘게 지난 2005년 12월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된다. 그리고 그 때는 마침 57개국 정상들이 모인 이슬람회의(Organis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가 사우디의 메카에서 열리고 난 직후였다는 점에서 이해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실제 이 회의를 결산하는 성명서에 덴마크의 만평문제가 언급되었고 이슬람권 국가들의 정부 차원의 노력이 만평문제가 본격화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이번 만평에 표현된 마호멧과 테러리즘의 연관성은 이 만평이 있기 오래전부터 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의 의식 속에, 말 속에, 심지어는 다양한 이미지들에 깊이 뿌리내려 온 것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인식은 9.11 이후 더욱 확고해졌다. 사실 이번 12장의 그림 중 가장 문제가 되었던 시한폭탄 형태의 터번을 쓴 마호멧 그림이 상징하는 테러리즘으로서의 이슬람이라는 표상은 세계정세에 어두운 우리에게조차도 너무 익숙한 것이다. 결국 지난 11월 우리를 놀라게 한 프랑스 소요사태 역시 무엇보다도 국가의 작품이었듯이, 이번 만평 파문 역시 다소 사소하고, 그리 새로울 것 없고 국지적인 사안이 위로부터, 즉 이번 경우에는 이슬람국가들에 의해 매우 심각한 사안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렇다면 아랍정권들이 이렇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우리는 그 배경으로 최근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하고 상당수 아랍국가들에서 이슬람주의자들이 의회에 대거 진출하는 등 아랍정치권력이 구가해 온 그간의 장기집권을 위협할 수 있는 최근의 정치변동을 떠올릴 수 있다. 즉 유럽 대 이슬람이라는 대립구도에 대중의 민족주의적인 정서를 동원하여 정권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라는 설명이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권유지 전략에 '유럽'이라는 요인이 동원되었다는 것은, 역으로 이번 사태에서의 아랍진영의 과도한 대응의 이면에는 점증하는 유럽의 중동개입이라는 현실적 배경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번 만평과는 비교도 되지 않게 자신들에게 희생과 모욕을 준 미국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켰던 아랍 국가들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유럽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사과를 요구한 것은 의아하고 역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그 원인을 이번 사태에서 눈에 띄게 적극적인 대응을 한 나라들이 공히 최근 유럽과 갈등관계에 있는 나라들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즉 이번 사태의 본질 중 하나는 3년 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와 달리 중동, 동유럽,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 점차 미국에 협력하고 미국을 대체해가고 있는 유럽의 존재에 대한 거부감의 표현인 것이다.

예를 들어 이란의 주도적인 대응은 시아파의 예외적인 신앙심때문이라기보다 이란 핵문제에서 유럽이 오히려 미국보다 더 적극적이 된데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다. 이란의 핵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부당한 의심을 막아왔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2005년 9월 갑자기 이란에 대한 불신을 표명하면서 이란 핵문제가 유엔 안보리 상정 등 급박하게 진행되었다. 이란은 이 의심을 풀기 위한 많은 노력을 했지만 “이란의 핵관련 기술은 언젠가는 핵무기개발로 이어질 수도 있다“라는 미국의 억지를 이겨낼 수 없었고 그 와중에 2005년 9월 만평 게재문제가 덴마크에서 불거진 것이다. 결국 미국에 더해 유럽까지 가세한 최근의 압력으로 인해 매우 곤란한 입장에 놓여 있던 이란의 입장에서 보면 만평사건은 유럽의 압력이 이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이슬람과 무슬림 모두를 향한 것이라는 유용한 논리를 준 천재일우의 기회였던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도 나토군의 유럽병력이 점차 미군을 대체하고 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 직접 싸우게 되는 것은 미국이기보다는 유럽이 된 것이다. 탈레반을 후원해 온 파키스탄이 이번 만평 사건에서 두드러진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 지역에서 유럽 대 탈레반이라는 구도가 형성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시리아의 다마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의 격렬한 시위 역시 최근 프랑스가 시리아의 레바논 간섭에 대해 적극적인 공세를 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런 점들을 고려할 때 이슬람을 모독한 자들에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을 때 이슬람인들의 머리 속엔 만평의 작가보다는 유럽국가의 정부들, 그리고 아랍세계에 평화유지군으로, 엔지오로, 성직자로, 기업가로 와 있는 유럽인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제는 너무도 명백한 지배자가 된 미국과 오버랩되면서 말이다. 좀더 오래 전 일들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제국주의 유럽의 악몽이 떠올랐을 수도 있다.

‘이슬람 문제’가 두려운 유럽의 무슬림들

이번 사태와 연관된 사람들은 유럽 외부의 무슬림들만이 아니다. 지난 프랑스의 소요사태에서처럼 보다 직접적으로 만평과 만평이 대변하는 편견의 표적이 되었던 것은 오히려 유럽 사회 내의 무슬림들이다. 그런데 거의 같은 시기에 발생한 이 두 사건은 최근 몇 년 사이에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는 유럽의 극우세력 문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그것은 유럽의 경우 극우정당의 주된 자원이 반이민정서이며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에서 주된 이민집단은 이슬람권에서 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이슬람권 출신자들과 연관된 이민문제를 핵심적인 사회문제로 부각시키는 것이 성공의 열쇠인 유럽의 극우세력에게 이번 사건은 이슬람이 문제가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력 확장의 호기인 셈이다.

일찍이 만평이 게재되었던 노르웨이의 경우 지난 2005년 9월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진보당이 22%의 득표로 제1야당이 되었는데 이번 사건에서의 노르웨이를 겨냥한 시위와 폭력은 극우주의의 기반인 반이슬람 정서를 한층 강화시키고 있다. 프랑스에서도 극우세력들은 만평 게재지인 프랑스 수아(France Soir)와의 연대를 표시하고 이번 사건을 외부 이슬람인들에 의한 자국의 표현의 자유 침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번 프랑스 소요사태에서도 그러했듯이 서유럽의 이슬람신자들은 이슬람국가들의 신자들에 비해 매우 조심스럽고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평화를 원한다. 이슬람은 평화의 종교다. 이슬람공동체는 평화의 공동체다“. 이민문제, 이슬람문제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것은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이슬람문화권 출신의 유럽인들에게는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들은 유럽의 주류 백인사회가 자신들을 이슬람이나 아랍으로 규정하는 것이 지니는 해악적인 효과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무슬림, 아랍인보다는 프랑스시민, 덴마크시민으로 남과 다름없이 대접받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시민으로 평등하게 대접해 주지 않으려는 주류사회가 그들을 아랍인, 이슬람인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희들은 본질적으로 다르니까 우리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 즉 진정한 프랑스인, 독일인이 될 수 없으며, 너희들은 다르니까 다른 대접을 하는 것이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한편 유럽의 무슬림들을 주류사회와 구별되는 존재로 규정하는 것은 유럽사회뿐이 아니다. 알제리, 파키스탄, 터키, 이란 등 자신들의 모국 역시 대유럽 전략에 유럽에 있는 자국동포들을 이용하려 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이슬람이나 아랍과 관련된 논의를 매개로 유럽-이슬람 관계에 이용되는데 반감을 느끼고 있다. 유럽의 이슬람문화권 출신 후예들은 더 이상 유럽과 오리엔트, 중동의 갈등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재중동포들의 경우처럼 유럽에 온지 매우 오래되었거나 유럽에서 태어나 유럽의 문화와 사회에 익숙한 유럽인들인 것이다.

신앙의 존중 대 표현의 자유

“이번 사건에서 게재 당사자들이나 이들 편에 선 지식인, 언론이 주창하는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는 사실상 그들의 반이슬람적, 인종차별적 태도를 정당화하는 변명에 불과한 것이다”라는 것이 이 사건에 대한 대표적인 설명이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빌미로 신앙이 다른 집단, 특히 그간 강대국의 미움을 사온 무슬림들을 모독한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다소 의아한 것은 이슬람을 그 무엇보다도 적대시해 온 유럽과 미국의 정부들이 이번 사건에서는 종교적 신념에 대한 존중, 종교적 사안에 대한 언론의 신중함, 책임성을 강조하면서 아랍세계에서의 폭력적인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는 만평을 게재한 서방언론들에 대한 비판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만평 게재를 비판하며 언론에 책임성과 분별력을 요구한 코피 아난의 논평(2월 9일)이나 “표현의 자유의 실현이기보다는 점증하는 유럽사회의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무감각, 그들의 거부감을 표현한 것“(2006년 2월 8일자)이라는 워싱턴 포스트의 일견 진보적인 해석도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여론 역시 크게 다를 바 없다. 2005년 가을 프랑스 소요사태 당시 국민의 68%가 자극적인 언사와 강경대응으로 이번 사태를 악화시킨 내무장관 사르코지(N. Sarkozy)의 행동을 지지(Le Monde 2005년 11월 17일자)했던 프랑스의 경우, 이번 경우에는 국민의 54%가 만평을 게재한 미디어들을 비판하고 있다.(Le Monde 2006년 2월 9일자)

이러한 태도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사회통제의 강화, 그 속에서의 표현의 자유의 약화라는 최근의 전지구적 경향이 놓여 있다. 즉 매우 폭력적인, 따라서 매우 격렬한 사회적 저항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특히 9.11테러 이후 노골화된 사회통제 강화의 일환으로, 최근 세계 여러 지역에서 표현의 자유가 이해 당사자들의 압력이나 여론을 빌미로 약화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종교의 경우에도 전통적으로 금기시되어 온 유대인 문제에 대한 견해표명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도 새로이 억압을 당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진원지인 유럽에서 이번 사건은 무엇보다도 최근 들어 사회적 논의나 글, 영화, 광고, 만평 등에서 종교적인 사안에 대한 비판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추세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즉 교황을 풍자한 꼭두각시 인형에 대한 제재,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선정적으로 패러디한 광고에 대한 제재 등 최근 크게 논란이 되었던 ‘모독’ 사건들의 연장선상에서 이번 만평사건을 설명할 수 있다.

최근 유럽과 미국을 보면 기독교든, 유대교든, 이슬람교이든 인간의 자유를 제한하는 길에 동참하고 있다. 낙태문제, 동성애자 결혼문제, 생명윤리, 신성모독 등의 문제가 잘 보여주듯이 현 세계는 종교간 갈등만큼이나 종교와 사회의 힘겨루기가 한창인 것이다. 이번 사안의 당사자인 유럽도 유럽연합 차원에서 ‘개인의 자유’와 ‘차이의 존중’, ‘표현의 자유’와 ‘신앙의 존중’이라는 일견 모순되어 보이는 가치들을 조화시킬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유럽연합에 속한 나라들의 주류사회 자신들도 심각하게 겪고 있는 정체성 문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즉 단일한 유럽이라는 이상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는데 유럽연합 내부에는 무수한 경제적, 종교적, 종족적 차이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현의 자유가 종교적 신념을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논리로 이번 만평을 비판한 교황을 비롯해 각 종교의 대표자들이 이번 만평사건에 한 목소리를 내는 데에는 이러한 중요한 경향이 저변에 깔려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매우 종교적인 부시가 이번 만평사건과 관련해 무엇보다도 언론에 대한 비판을 강조한 것은 형식적인 제스처만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에서 볼 때 이번 사건은 비록 그 시발점이나 전개과정에 유럽국가들과 이슬람국가들간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했지만, 단지 정치적 현상만은 아닌 것이다.

전망

아직 진행중이지만 이번 사태가 초래할 결과를 예견해 보면, 우선 ‘이슬람’이라는 요인의 중요성, 서로 화합할 수 없는 이슬람과 서양, 이슬람과 민주주의, 이슬람과 인권과 같은 이분법이 다시금 활력소를 찾을 것이다. 이번 만평과 흡사했던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결과를 되새겨 보면 이러한 유형의 현상이 해당 사회집단에 매우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함을 알 수 있다. 살만 루쉬디 사건 이전에 영국의 파키스탄 이민자들 내에는 자신들의 종교를 중시하는 만큼이나 주류사회에 통합하려는 노력들이 존재했었다. 그러다가 살만 루쉬디 사건이 초래한 무슬림에 대한 낙인은 이 집단의 많은 사람들을 게토에 갇힌 폐쇄적인 존재가 되게 하였다.

이 점과 관련해 아쉬운 것은, 불가능했던 것일 순 있지만 아랍세계 역시 이번 사태에 냉정하게 대응함으로써 ‘이슬람’과 ‘민주주의’라는 오랫동안 상호모순적인 것으로 여겨져 온 두 가치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를 잃고, 반대로 언제나 그러했듯이 서양이 끌고 가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세계해석을 더 강화시키는데 협력한 꼴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과 직접적 연관은 없는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지난 9.11이 우리에게 이슬람을 미국, 제국, 테러리즘, 세계화 및 반세계화와 연관지어 생각하게 했다면, 이번 사건은 이슬람 과 아랍을 유럽, 종교 일반, 시민권, 이민문제, 극우주의 등 또 다른 개념들과 연관해 생각하게 하는 의미가 있다.
덧붙이는 말

엄한진 님은 성균관 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 연구원으로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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