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동 성폭력에 대해서 난리다. 이런 기사가 뜰 때 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어린시절 한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데 그에 대해 몇 글자 적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한마디로 기분 엿 같다.
벌써 30년 가까운 세월이 훌쩍 흘렀지만 그에 대한 생각은 아무리 비워내도 지워지지 않는 강력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메모리처럼 기억속에 남아있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정환경이 최악이었다.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살다가 지금은 사라진 청계천 삼일 아파트로 5학년 겨울 방학 때 이사를 갔고 마지막 남은 1년 을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갈 조건이 아니었기에 버스를 타고 등교를 했었는데 지각을 할 때 마다 담임선생의 발길질에 책상위로 나가 떨어져야 했다. 그 선생에게 부모까지 들먹거리는 욕을 고래고래 듣고서야 코끝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당시 우리 반 부반장이었던 아이에게 ‘똥털’ 이라고 불렀던 일이 그 선생의 귀에 들어가 교실이 발칵 뒤집혀 졌던 사건이 있었다. 어김없이 반 아이들 대부분이 불려나가 싸대기를 맞아야 했다. 폭력적인 그의 행동으로 인해 급기야 같은 반 아이의 팔을 부러트리는 부상으로 이어지기도 했었다.
반쯤 벗겨진 머리를 쓸어 올리며 박카스를 연거푸 몇 병 쓸어 넣고 서야 그 선생은 진정이 되었다. 우리 모두는 어린 나이에도 그가 박카스에 중독되어 있다는 것을 눈치 채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반 아이들은 차츰 그의 광기를 자제시키기 위하여 부지런히 박카스를 사다 바쳤고 그의 책상은 언제나 박카스 병이 뒹굴었다. 그 선생의 폭력과 엽기적인 행각은 동창들 간에 지금까지 전설로 남아있다.
그리고 여름날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공부 못하는 애들은 남아서 공부하는 것은 필수였고 당연히 청소까지 해야 했다. 그 선생은 아이들을 다 보낸 채 나 혼자 남으라고 했다. 그 선생은 반쯤 벗겨진 부스스한 머리와 안경너머 누렇게 백태 낀 눈동자로 오라고 지시를 하였다. 나는 뭘 또 잘못했을까 걱정을 하며 움질거리며 그에게 다가섰다.
약간 사선으로 기울어진 특유의 입으로 배시시 웃으며 내손을 잡아 의자 가까이 당긴 후 얼굴을 바라다보며 열심히, 열심히, 아랫도리를 손으로 주물 거렸다. 평소에도 아이들의 아랫도리를 습관적으로 만지던 사람이었지만 나는 직감적으로 이날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몸을 뒤로 뺐다. 그는 저항하는 나의 팔을 한손으로 꽉 쥔 채 아랫도리를 우악스럽게 틀어쥐고 힘껏 비트는 것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아 그런데 지금도 나를 괴롭히는 것은 수치스러워야 할 그 순간에 떠오른 생각이었다. 항상 반에서 얻어터지는 아이가 아니라 어쩌면 이 선생이 나를 귀여워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 와중에도 착각 속에 선생의 환심을 사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생각 했던 것이었을까? 나는 이런 내 자신을 지금도 이해 할 수 없다. 그런 상황에서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여름철 교실문은 앞뒤로 꼭꼭 잠긴 상태였고 책걸상들이 숨을 죽이며 우리의 모습을 훔쳐보는 듯 했다. 나는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매미소릴 뒤로한 채 황량한 운동장을 가로질러 어기적어기적 걸어갔던 것 같다. 그 선생은 폭력을 휘두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꼬맹이의 신체를 제 것인 양 왜곡하고 상상하고, 마음껏 대상화 시켜 주물 거렸던 것이다.
그즈음 집에 있는 사전을 꺼내서 뒤적이며 자지, 보지라는 단어를 열심히 찾아냈고 선데이서울에 걸려있는 사진으로 관심이 옮겨 갔으며 청계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판대의 포르노 책을 힐긋 힐긋 훔쳐보는 데까지 나갔다. 그렇게 다른 아이들 보다 한발 앞서 되발아까진 호기심으로 발전해 나갔던 것이다.
돌이켜 보건데 성폭력은 흔한 일이다. 친한 후배 하나는 결혼을 앞두고, 꼭 한사람은 오지 못하게 어머니한테 털어놓았다고 한다. 아직 여물지도 않은 아이를 아무도 없는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더듬었던 친척의 기억을 혼자 끌어안으며 20년을 살았던 그 후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고 남는다.
과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폭력, 그 치욕, 그 참담함, 그 모욕을... 발표력 좋고 나서기 좋아라 하던 나는 급격히 말 수가 적어졌고 많은 친구들이 기억하는 공부 못하고 여드름 가득한 작은 아이로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지금도 30년 전의 생각이 문득 떠오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한참을 어둠속에서 서성여야 한다. 언젠가 동창들과 맥주 한잔 기울이면서 그때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안주거리로 낄낄 거린 적이 있었지만 그 웃음 속에는 어린 시절 치유되지 못한 집단적 기억이 숨겨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그렇게 기억 한편을 지배하며 똬리를 틀고 버티고 있는 그 선생..
그 선생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이미 세상 사람이 아니거나 저세상으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이기에 부질없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어코 이런 식으로라도 끄적이지 않으면 안 되는 심정을 그는 알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언론에서 아이들에 대한 성폭력 기사가 나올 때 마다 불현듯 아픈 기억이 슬금슬금 되살아나는 것은 비단 나뿐일까? 사춘기를 준비하던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을 앞둔 인생의 가장 감수성 어린 시절... 이제 즐거웠던 일들만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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