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논의, 지평의 확장이 필요하다

[기고] 역사적 결과로서의 성폭력 논의 지형, 그리고 변화

처벌과 제재 강화 중심의 성폭력 논의

초등학생 여아 성폭력 살해사건, 군인 연쇄 성폭력 사건, 인천 아동 연쇄 성폭력, 교도관의 여성 재소자에 대한 성폭력, 한나라당 최연희 사무총장 성폭력...

성폭력과 관련된 기사들이 말 그대로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상당수의 사건들이 아동성폭력이고, 가해자들이 반복해서 성폭력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남으로써, 사회적 관심과 공분은 거세게 표출되고 있고, 무엇보다 성폭력에 대한 다양한 대처방안들이 제안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주요 방향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는 것으로 모아지고 있는데, 세부적으로는 다음과 같이 구분해 볼 수 있다.

첫번째는 성폭력의 범죄로의 성립요건을 완화하고 처벌을 더욱 강화하는 것인데, 특히 아동성폭력의 특성을 반영한 성폭력특별법 개정 논의와 연결된다. 현재의 성폭력 특별법은 13세 미만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강제 추행과 강간으로 구분하고 각각의 형량을 1년 이상, 3년 이상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를 후자로 통합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이다. 이를 위해 유사강간 개념 도입이 제안되고 있다.

두 번째는, 가해자에 대한 사후 제재를 강화하는 논의들인데, 가해자의 재범 방지와 예방을 강화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작년부터 한나라당이 제안해온 전자 팔찌 착용을 포함, 범죄사실을 지역 사회에 공표하는 방안, 보호감찰 강화, 야간외출 금지 등이 제안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가해자에 대한 화학적 거세 방안까지 검토되고 있다.

세 번째는, 관련 정부부처, 지자체, 경찰 수사, 사법적 처리 과정 등의 문제점들에 대한 폭로와 비판이 쏟아져 나오면서 제기되는, 성폭력 문제 일반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는 것에 대한 요구들이다. 성폭력 사건의 법적 처리 과정에서 피해자의 권리가 침해된 다수의 사례들이 성폭력 상담소 등을 통해 공개되고 있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성폭력 관련 대책들에 대한 여론은 압도적이라 할 만큼 찬성 쪽으로 나타나고 있다. 다른 인터넷 사이트에 비해 응답자가 많은 네이버 설문조사를 보면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오고 있다.

아동 대상 성범죄자에 대해 전자팔찌 · 주거 지역 제한 등 강력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찬성 - 43,224 명(92.94%)
반대 - 3,284 명(7.06%)
(총 46,508 명이 참여. 2006-02-20 ~ 03-06)


법무부가 성폭력 범죄자의 야간 외출을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습니다. 당신의 의견은?

찬성 : 성범죄 예방 효과 - 30,247 명(88.55%)
반대 : 인권침해 - 3.912 명(11.45%)
(총 34,159 명 참여, 2006-2-20~ 03-06)


이러한 결과는 피해자가 대처능력이 극히 취약한 아동이며, 가해자들이 반복적으로 성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런데 최연희 성폭력 사건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이와 같은 압도적인 여론이 성폭력의 고유한 쟁점들에 대한 동의의 지반 위에 서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이 사건은 총리 사퇴를 압박하는 정치적 카드가 되고 있음은 물론, 취중 실수, 여성의 노출이 원인을 제공한다는 주장 등 성폭력을 둘러싼 구태의연한 쟁점을 오롯이 재현하고 있다. 심지어 ‘남자답게 사퇴하라’는 웃지 못할 주장까지 난무 하고 있다.

아동성폭력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재의 성폭력 논의가 성폭력의 원인을 올바르게 인식하고 근본적인 해결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폭력 서열화의 위험

아동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최근의 사건들이 있기 이전부터 꾸준히 증대해 왔다. 무엇보다 아동성폭력의 발생이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가 가장 컸으며, 아래와 같은 통계들이 그 근거가 되었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아동 뿐 아니라, 모든 연령대의 성폭력이 증가하였다. 그런데 이 통계는 엄밀하게 말해 성폭력의 발생에 대한 것이 아니라, 신고, 또는 상담을 통해 드러낸 사건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이렇게 드러나는 성폭력은 실제 발생하는 성폭력의 10%수준 일 것이라고 통상 추정된다. 그렇다면 아동성폭력에 대한 관심의 근원은 양적 증가 그 자체보다는 아동성폭력이 가지는 특성에서 기인할 것이다.

아동성폭력이 그 특성에 맞는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현재의 성폭력 논의 속에서 주의 깊게 볼 점은, 아동성폭력, 청소년 성폭력, 성인 여성 성폭력과 같이 연령에 따라 성폭력 피해자를 암묵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의 논의가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같은 논의 속에서 아동의 권리와 여성의 권리가 (어떤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아니라)다른 차원의 권리라는 사실은 간과된다. 이러한 논의가 낳을 효과를 과거 청소년 성매매, 성폭력 논의 당시를 상기하는 것을 통해 예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 아동성폭력에 대한 논의와 가해자에 대한 대응책들은 청소년 성매매가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면서 청소년 성폭력에 대한 관심이 증대했던 당시의 그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위의 통계에서도 그러나듯이 청소년 성폭력 역시 현재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단지 사회적으로 여론화되고 있지 않을 뿐이다.

주목되지 않았던 폭력들이 드러나고 사회적 관심의 대상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긍정적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특정 대상을 중심으로 한 성폭력에 대한 접근은 사법적 처리 중심의 해결과 결합되어 범죄의 서열화라는 사회적 인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서열화는 사법적 논리 안에서 피해자의 저항능력, 저항의 정도라는 고전적인 쟁점을 해소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현재의 사회적 논의가, 특히 네티즌 집단을 중심의 사회적 여론 형성이 이와 같은 우려를 불식시킬 수 있는 형태로 전개되고 있는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 시피 아동성폭력, 청소년 성폭력, 성인 여성에 대한 성폭력, 이들 중 어떤 것이 더 가혹하고 끔찍한 폭력이며 범죄인가를 판단할 근거는 없다.

역사적으로 성폭력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고 나아가 법적 권리를 전제하는 범죄로 구성되어온 과정에는 폭력 일반에 대한 사회적 민감성이 높아짐과 동시에 여성의 권리에 대한 인식의 확장이 결합되어 있다. 여성이 시민권을 가지기 이전, 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누군가의 소유물, 즉 재산에 대한 침해로 간주되었다. 그에 앞서 계급적 위계에 근거해 폭력이 일상적으로 난무하던 시대에는 아동이나 여성 가릴 것 없이 인간의 신체에 대한 폭력보다, 절도, 강도 등의 재산 침해가 훨씬 가혹한 범죄로 다루어 졌다. 현재의 아동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성/폭력 일반에 대한 인식을 확대하는 지반 위에 놓여 져야 한다.

성폭력 논의를 둘러싼 이분법

한나라당 최연희 전의원이 성폭력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했다는 ‘식당 주인인 줄 알고 그랬다’는 발언은 두고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식당 주인이면 그래도 되느냐는 반응에서 시작해, 급기야는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집단적인 입장표명까지 하고 나섰다. 물론 이들의 분노는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표출된 분노의 내용은 ‘우리는 창녀가 아니다’라는 것이 중심이었다. 최연희 의원의 발언이 그래도 되는 여자와 그렇지 않은 여자라는 이분법, 즉 여성에 대한 성녀-창녀 이분법에 기반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대중들 반응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현재 최연희 성폭력은 의원사퇴로 쟁점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는 의원으로서의 윤리, 자격에 근거한다. 성폭력은 여성의 성적 권리를 침해하고 강간과 같은 극단적인 형태로 드러났을 때는 여성의 주체성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는 여성의 고유한 권리로서 여성권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와 같은 논의지형은 성폭력 문제를 도덕과 당위의 문제로 치환한다. 이 안에서는 성별화된 권리인 여성권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또한 성별 이데올로기나 여성에 대한 이분법 또한 인식할 수 없다.

앞서 인용한 네이버의 설문조사 문항을 보면 성폭력에 대한 논의가 오히려 이러한 구조를 어떻게 재생산하는지를 대략적으로 알 수 있다. ‘찬성: 성범죄 예방 효과 - 반대 : 인권침해’라는 선택지를 보아 알 수 있듯 성폭력과 관련한 논의에서는 해결방안에 대한 의견, 입장들이 가해자의 인권 옹호로 환원되는 기이한 구조가 항상적으로 출현한다. 물론 이러한 지적은 선택지를 다채롭게 구성하자는 주장을 의미하지 않는다. 찬성과 반대의 이분법을 넘어서 성폭력 논의의 지평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는 가해자, 그리고 피해자 개인을 중심으로 한 해결‘만’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성 일반의 권리를 확대하는 방향성에 대한 지향을 의미한다.

‘법’의 자리에 있어야 할 것들

지난 28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을 중심으로 비정규 관련 법개악안이 국회 상임위를 통과한 것을 두고 일부 언론은 최연희 성폭력을 축소보도 하고 대중의 관심을 돌리려는 양당 간의 타협의 산물이라는 진단을 내놓았다. 민주노동당 역시 이와 비슷한 분석을 내어 놓았는데, 당일 민주노동당 의원단 지침은 성폭력특별법 개정안 의결에만 참여하며 다른 일정은 모두 취소하고 비정규직 법안 저지에 집중하는 것이었다고 전해졌다.

정기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하고 4월 임시국회로 이월되어 있는 많은 법안들 중에는 성폭력특별법 개정안이 포함되어 있다. 개정안은 밀양성폭력 사건 당시 드러난 문제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에서 재안된 것으로 성폭력 사건 수사과정 상의 허점들을 보완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1994년 제정된 이래 몇 차례 이루어졌던 성폭력특별법의 개정은 대체로 이와 같은 양상이다. 근친 간 성폭력이 사회문제가 되면 이를 반영하는 형태로, 몰래카메라 등 영상물이나 매체에 의한 폭력이 사회화되면 이를 반영하는 형태로 개정되어 왔다. 그만큼 성폭력의 사법적 처리 중심의 대응은 강화되어 왔고, 그에 따른 필연적 결과로서 처벌위주의 접근에 지나치게 기울여져 있는 상황이다.

법적 처리 중심의 해결은 여성권에 대한 침해로 성폭력을 제기하고, 따라서 권리의 주체로서의 여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데에는 많은 한계가 존재한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항거 불능의 피해자로서의 정체성만을 부여받으며, 이를 거부했을 때 폭력의 실체는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논리의 반대 편에 존재하는 남성의 성욕은 본래 통제 불능인 것이지만, 사회적 지위와 도덕으로 그를 억제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중단시키지 못한다. 최근에 제안되는 화학적 거세방안은 이와 같은 한계적인 인식이 도달 할 수 밖에 없는 결론이다. 역사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성욕은 자연적인 그대로 실현되는 것이 아닌, 가족형태 등을 매개로 특정한 형태로 조직되어 왔던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남녀 간의 새로운 관계와 성적 윤리를 지향하는 가운데서 만이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모색될 수 있다.

법 개정 중심의 대응은 또한 여성운동의 역할, 자율성이라는 쟁점과 연결된다. 밀양성폭력 당시 네티즌 집단은 ‘네 탓이 아니야’라는 구호를 내걸고 다양한 행동을 조직하며 사회여론을 주도했다. 현재의 상황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여성단체들의 오히려 이와는 상대적인데, 각종 성폭력 통계나 상당사례를 제시하며, 법 개정안을 비롯한 대안적 정책을 제안하는 일종의 전문가 집단으로서의 역할에 한정되어 있다. 1994년 성폭력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여성운동은 10여 년 정도의 시간 동안 법 제정을 여성운동의 단일 목표로 상정하고 운동을 진행했다. 그 산물인 법 제정 이후 성폭력 문제에 대한 대응은 전적으로 이 법의 활용으로 수렴되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성폭력과 관련한 사회적 논의지형은 이러한 역사의 결과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러한 결과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지는 남성과 여성,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덧붙이는 말

이진숙 님은 사회진보연대 여성위원회 활동가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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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쉿!

    성폭력에는 이렇게 깔끔하게 확연하게 절대적으로 반대할 수 있으면서 왜 합법적 성폭력, 금전에 의한 강간 행위인 성매매에는 전혀 엉뚱한 잣대를 들이대시나??

    자의냐 아니냐에 따라 그렇게 완전하게 태도를 돌변할 수 있는가?? 성매매는 노동이라 축소든 아니든 어쨌든 언제 가능할 지도 모를 추상적 사회 변혁이라는 전망 속에서 노동의 소멸을 기원하며 일단은 노동으로 인정해서 싸우자는 게, 결국 결과론적으로는 현실적으로는 성산업을 키우자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이러면서 다른 입으로는 성폭력에 반대한다니 도대체 자네들 뇌 구조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지식인 특유의 사변과 관념의 말잔치에서 헤매고 있을 것인가?

    최연희를 지지한다는 지역 관변 여성단체보다 더 영악한 그대들의 추악한 관념 놀음에 이 땅의 여성들은 신음하고 울부짖고 있다는 것만 잘 알아 두길 바란다.

    성폭력/성차별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의 반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민성노련인지 양성평등연댄지 하는 더러운 성범죄 집단의 발악에 한 번만이라도 단호한 비판의 날을 세운 적이 있었는가?? 도리어 저 교활한 남성주의자, 성매매 산업가들과 어울려 성산업을 옹호하는 데 앞장서 온 사회진보연대의 대오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 쉿!

    성폭력에는 이렇게 깔끔하게 확연하게 절대적으로 반대할 수 있으면서 왜 합법적 성폭력, 금전에 의한 강간 행위인 성매매에는 전혀 엉뚱한 잣대를 들이대시나??

    자의냐 아니냐에 따라 그렇게 완전하게 태도를 돌변할 수 있는가?? 성매매는 노동이라 축소든 아니든 어쨌든 언제 가능할 지도 모를 추상적 사회 변혁이라는 전망 속에서 노동의 소멸을 기원하며 일단은 노동으로 인정해서 싸우자는 게, 결국 결과론적으로는 현실적으로는 성산업을 키우자는 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이러면서 다른 입으로는 성폭력에 반대한다니 도대체 자네들 뇌 구조는 언제까지 기다려야 지식인 특유의 사변과 관념의 말잔치에서 헤매고 있을 것인가?

    최연희를 지지한다는 지역 관변 여성단체보다 더 영악한 그대들의 추악한 관념 놀음에 이 땅의 여성들은 신음하고 울부짖고 있다는 것만 잘 알아 두길 바란다.

    성폭력/성차별에 단호한 모습을 보이는 것의 반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민성노련인지 양성평등연댄지 하는 더러운 성범죄 집단의 발악에 한 번만이라도 단호한 비판의 날을 세운 적이 있었는가?? 도리어 저 교활한 남성주의자, 성매매 산업가들과 어울려 성산업을 옹호하는 데 앞장서 온 사회진보연대의 대오 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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