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파업은 실패한 투쟁이 아니다

[기고] 내부조직력 강화하며 사회공공적 노동운동 선보여

철도파업이 나흘만에 마무리되었다. 여러 과제를 안고 철도조합원들이 현장으로 돌아갔다. 철도노조는 이번에도 노동자의 파업권 자체를 승인하지 않으려는 한국사회의 두터운 성벽에 부딪혔다. 시민 스스로 자신의 시민성과 노동자성을 분리하려는 의식틀은 여전히 견고했다. 한국 노동운동이 오랜 인내를 가지고 조금씩 허물어 가야할 벽이다. 시민과 직접 대면해야 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백기항복인가 현장투쟁인가?

이번 철도파업은 실패한 투쟁인가? 2,400여 명의 직위해제자를 내면서도 아무런 합의서를 못 얻어냈으니 보수언론은 ‘백기항복’이라 한다. 이번 기회에 노동조합의 불법파업을 엄중히 손봐야한다는 충고도 쏟아낸다.

이번 복귀를 보는 보수언론과 철도노동자의 시각차가 크다. 한쪽은 백기항복이고 다른 한쪽은 현장투쟁이라 하니 하늘과 땅 차이다. 과연 실체는 어느 쪽에 가까울까?

글을 쓰는 오늘(8일)은 철도노조가 복귀한 지 닷새째이다. 백기항복이라면, 이 정도 기간이 지났으니 관리자들의 탄압에 지부조직이 사실상 무력화되고, 파업실패 책임 공방을 벌이는 원망 섞인 목소리가 높아져야 한다. 노조 지도부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노조민주화 이래 파업만 거듭했던 철도노조가 이제 위기에 직면했다는 진단도 슬슬 나올 법 하다.

그런데 어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KTX 여승무원들은 어제 철도공사가 있는 대전벌판으로 달렸다. 서울차량지부는 직위해제자와 일반조합원들이 함께 작업거부에 들어가며 현장투쟁의 포문을 열었다. 직종별 지부장회의가 연이어 소집되고 철도노조 기본조직 체계가 신속히 정상화되었다. 철도노조 조합원 게시판 글은 대부분 ‘다시 나서자’는 분위기다. 장기 진지전을 준비하는 수배 지도부의 얼굴에서도 역시 패배감을 찾아보기 힘들다. 사흘만에 무려 2,400명이나 직위해제를 당한 노동자들이라곤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보수언론의 눈으론 결코 알아낼 수 없는 소중한 알멩이가 이번 파업에서 생겨난 것이다. 나는 철도파업이 실패한 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두에서 밝혔듯이, 여전히 한국사회가 보여준 ‘노동자성과 시민성의 분리’를 극복해야 하는 노동운동의 과제를 다시 확인한 파업이지만, 철도현장의 조직력을 한층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의 씨앗을 일군 투쟁이었다. 비록 곁에서 지켜보는 위치였지만, 내가 느낀 이번 파업의 성과 몇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직종과 지역을 넘어 함께 경험한 파업

첫째, 조합원 대부분이 함께 파업을 경험하였다.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노동자 신분으로서 업무거부라는 ‘항거’를 함께 벌이며 형성된 동지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이다. 지난 2002년 225 철도민영화 반대파업, 2003년 628 노정합의파기 규탄파업에 참가한 조합원수는 1만 명 수준이었다. 이번에는 무려 1만 8천 명의 조합원이 파업에 참가했다. 철도공사로 전환되면서 조합원수가 3천여 명 늘어난 것을 감안해도 놀라운 규모다.

파업참가 조합원들의 지역 및 직종 간 차이가 대폭 줄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전 파업이 일부 직종을 중심으로 전개된 것에 비해 이번에는 운전, 차량, 운수, 전기, 시설 등 모든 직종에서 조합원들이 골고루 참가하였고, 5개 지역별로도 편차가 없었다.

이번 철도파업은 참가규모와 내용에서 질적인 발전을 거둔 투쟁이다. 2만 5천명이 일하는 전국산별노조에서 좀처럼 거두기 어려운 조직적 에너지가 이번 파업으로 비축된 것이다.


단호하고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현장복귀

둘째, 현장복귀 과정이 단호하고 조직적이었다. 그만 복귀하자는 동료를 설득하며 안간힘을 다해 버텨갔던 지부나, 우린 며칠이라도 더 파업할 수 있다며 아쉬움을 삼키는 지부나 모두 한마음으로 정리집회를 갖고 현장으로 돌아갔다. 비록 조기에 복귀한 지부들이 있었지만, 이들 역시 크게 보면 그들의 능력만큼 역할을 한 셈이다.

보통 파업은 돌입하기 보다는 마무리가 훨씬 힘들다. 게다가 공공부문노조의 경우 직권중재에 의해 불법파업으로 내몰리면 ‘공권력 탄압 -> 조합원 동요 -> 합의 없이 복귀 선언’ 의 경로를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 노동조합은 심각한 내홍을 겪을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 이번 철도노동자들의 현장복귀는 차분했다. 쓰라린 패배의 절망감으로 복귀했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각오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

225, 628파업의 복귀과정을 기억하고 있는 철도조합원이라면 이번 복귀‘투쟁’이 얼마나 정연하게 이루어졌는지 알 것이다. 단순히 말뿐인 현장투쟁 전환이 아닐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이 조직력은 공사의 현장탄압에 강력히 맞서는 기반이며,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지부의 경우 오히려 조직을 견실하게 하는 전화위복의 힘이 될 것이다.

공공철도를 소재로 사회공공적 노동운동 선보여

셋째,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의 새싹을 키운 파업이었다. 이번 파업에서 노동조합이 내세운 요구들은 오히려 보수언론이나 시민들이 고개를 갸우뚱 할 만큼 공공적이었다. 파업을 통해 내세운 내용들을 충분히 사회에 전달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지만, 보수언론이 그토록 매도했음에도 이번 파업에 대하는 시민의 태도는 과거에 비해 다소 달랐다.

물론 열차운행 중단을 성토하는 시민이 여전히 다수이지만 파업의 대의에 공감하는 분위기도 일부 생겨났다는 사실은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과 같은 ‘반(反)파업 여론정서’가 강한 나라에서 말이다. 장애인 요금할인, 역사 공공성 강화, 이용자대표 이사회 참여, 고속철도 건설부채 인수 등 들어보면 모두 옳은 이야기 아닌가?

이번 파업은 철도노조가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을 시작으로 어느새 5년여에 접어도 공공철도운동을 구체화한 투쟁이었다. 철도민영화 반대부터 시작된 공공철도투쟁이 이제 조금씩 시민들에게 전달되기 시작했고, 철도조합원들은 자신의 노동조합이 헌신적으로 만들어가는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을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노동조합이 나아갈 ‘전망’을 가진 철도조합원은 행복하다.


KTX 여승무원, 정규직이 끝까지 함께 한다

넷째, 우리시대의 화두, 비정규직 문제를 선명하게 부각시킨, 동시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투쟁하는 모범을 보인 파업이다. 철도노동자들은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들을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고, 비정규직 희생자 구호기금을 마련하고, 마지막 교섭까지 정규직화 요구안을 고수했다. 파업을 준비하면서 과연 KTX 비정규직 요구를 정규직 노조인 철도노동조합이 끝까지 안고 갈 수 있을까하는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철도노조는 더욱 철저하게 비정규직 요구안을 움켜 잡았는 지 모른다.

철도노동자들은 이번 파업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구호’가 아니라 ‘투쟁’으로 실천하였다. 이번 파업으로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유령같은 낙인을 철도현장에서 날려버렸다.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들이 철도 정규직 조합원들에 감사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철도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렇게 멋진 계기를 제공해 준 여승무원 조합원들에게 고마음을 전달해야 하지 않을까?

이외에도 파업의 성과는 많을 것이다. 철도공사가 의욕적으로 진행 중인 ERP, 조직개편 등 전방위적 구조조정에 경고를 보낸 것, 해고자 복직 교섭에서 ‘선별복직’을 거부하며 노동자의 원칙과 의리를 세운 것, 국회 비정규직법안 통과 규탄투쟁에 선봉이 된 것 등 되새겨 볼 내용들이 많다.

아직도 정기 단체교섭은 현재진행형

현재 파업이 마무리되었을 뿐 반년동안 계속되어 온 정기 단체교섭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어차피 3월 중순 경 내려올 직권중재안은 ‘정부가 인정한 교섭의제’에 한정될 것이다. 공공철도 의제들은 교섭범위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KTX 여승무원 요구안은 사용자가 다르다는 핑계로 중재안에서 제외될 것이다.

직권중재안은 텅 빈 봉투일 뿐이다. 여전히 실제 현안들은 노사교섭에서 다루어질 수밖에 없다. 오늘부터 실무교섭이 재개된다고 한다. 지난 두 차례 파업에서 혹독한 탄압을 당하고서도 다시 일어났듯이, 이번에도 철도노동자들의 힘찬 담금질을 기대한다.
덧붙이는 말

오건호 님은 철도정책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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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도부 중앙교섭과 별도의 교섭 진행, 지도부 결정없는 기관사지부장들의 개별복귀명령, 그리고 지도부 철도 노조위원장은 직권으로 파업철회...그리고 징계... 그리고 이번 파업을 말아먹었는 데는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이라는 몰계급적 노동운동이 기여를 했죠. 실패한 파업이 아니라고?. ...KTX 여승무원들한테 수십년 동안 노동운동한 선배들로서 쪽팔리지도 않나... 이걸 합리화시켜주는가!

  • 지도부 중앙교섭과 별도의 교섭 진행, 지도부 결정없는 기관사지부장들의 개별복귀명령, 그리고 지도부 철도 노조위원장은 직권으로 파업철회...그리고 징계... 그리고 이번 파업을 말아먹었는 데는 사회공공적 노동운동이라는 몰계급적 노동운동이 기여를 했죠. 실패한 파업이 아니라고?. ...KTX 여승무원들한테 수십년 동안 노동운동한 선배들로서 쪽팔리지도 않나... 이걸 합리화시켜주는가!

  • 뭘 모르구만,

    조준호가 지하철공사에 가서 잘했으면,지하철 올 스톱으로 정부가 먼저 교섭으로 임했을 거구.또,말로는 철도랑 공조파업한다고
    하구,이틀만에 총파업유보...,그래서,기관사들 대부분 현업복귀로 노조가 무너졌고,화물연대랑 운송하역노조도 몸 사리린 거야.원래 계획대로 됐으면 철도,지하철,화물,운송하역등 모든 것이 멈출만큼 위력적인 것일텐데,우두머리가 보신주의로 나오는 데 졸병들은 뻔할 뻔짜지...4월총력투쟁 웃긴다.지금 이 모습을 다 보았는데,이젠 누가 나서리...아!조준호 개쌔끼...평생 몸 사리며 귀족 노동자로 살아라.

  • 뭘 모르구만,

    조준호가 지하철공사에 가서 잘했으면,지하철 올 스톱으로 정부가 먼저 교섭으로 임했을 거구.또,말로는 철도랑 공조파업한다고
    하구,이틀만에 총파업유보...,그래서,기관사들 대부분 현업복귀로 노조가 무너졌고,화물연대랑 운송하역노조도 몸 사리린 거야.원래 계획대로 됐으면 철도,지하철,화물,운송하역등 모든 것이 멈출만큼 위력적인 것일텐데,우두머리가 보신주의로 나오는 데 졸병들은 뻔할 뻔짜지...4월총력투쟁 웃긴다.지금 이 모습을 다 보았는데,이젠 누가 나서리...아!조준호 개쌔끼...평생 몸 사리며 귀족 노동자로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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