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원정] 민주노동당

저출산·고령화, 여성의 저항의 언어는 무엇인가

[기고] 저출산·고령사회 위기, ‘운동’의 대응

“… 우리가 우리의 성과 수태를 조정할 결정권이 있다면, 이것 모두는 바로 우리들의 어머니와 할머님들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해마다 3월 8일이 되면 열리는 여러 여성대회 행사 홍보물, 선언문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문구로, 수십 년 전 한 여성운동가의 세계여성의 날 기념대회 연설문의 일부이다. 올해 여성대회장에 앉아 누군가가 낭독하는 걸 들으니 오래전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생소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수태? 무슨 말이지? 표현이 좀 어색한 걸?”

그동안 ‘수태’라고 번역되었던 단어는 인간의 재생산, 즉 임신·출산의 과정을 일컫는 말인 것 같다. 하지만 재생산, 임신·출산을 조정할 결정권이라고 말을 바꾸어 보아도 여전히 낯설음은 가시지 않는다. 문구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재생산 결정권을 요구하는 주장이 제기된 경우가 거의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적어도 2006년, 올해 여성대회에서 이 문구는 전과 다른 의미를 지녀야 했다. 온 사회가 여성이 한명이라도 더 아이를 낳게 하는 데 많은 돈과 인력을 투자해야 한다고 떠들고 있는 2006년 3월, 정부의‘저출산·고령사회 기본대책’발표가 초읽기에 들어간 지금, 여성들은 ‘성과 수태를 조정할 결정권’을 ‘우리의 권리’로 찾아오기 위한 투쟁에 더욱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2006년 3월, 왜 여성의 몸과 임신·출산에 대한 결정권을 말해야 하나

저출산·고령화가 여성만의 문제도 아니며, 정부에서 수립 중인 저출산·고령사회 종합 대책이 곧 여성정책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여성노동과 보육, 가족 등 여성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만한 의제가 상당히 포함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세부적인 의제들은 둘째 치고,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이 표방하는 전략은 여성의 결혼, 임신, 그리고 출산에 대한 노골적인 통제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위험성을 갖고 있다.

“저출산대책은 ‘왜 자녀를 안 낳거나 적게 낳으려 하는가’, ‘왜 결혼을 늦게 하는가’를 구체적인 원인으로 파악하여, 우선적으로 방해요인을 제거하고, 나아가 개인의 생애경로를 감안하여, 시기별로 원활한 흐름을 잡아주는 것을 정책개발 추진의 핵심으로 삼아야 함.”

“생애경로에서 결혼과 출산이 결정되는 기간은 10-30대로 크게 가치관형성기, 결혼준비기, 자녀출산·양육기로 구분됨. - 이들은 서로 단절되지 않은 연속선상에 있어, 어느 한 경로에서 장애가 발생하는 경우, 개인의 결혼과 출산에 지장이 초래”


위 내용은 지난 1월 13일 발표된 관계부처 합동 저출산 종합대책, 그 중에서도 핵심 전략을 담고 있는 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이 대책은 결혼을 더 이상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는 여성, 자신의 생애에 걸쳐 적절히 출산을 통제하고자 하는 여성의 의지를 ‘바로잡아야 할’현상으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몇몇 수준 낮은 관료들의 ‘무식해서 용감한 발상’으로 치부하고 말 문제가 아니다. 여성이 건강하게 임신·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는 인식은 확장되었지만, 정작 임신·출산의 1차적인 당사자이자 의사결정권자는 여성이며, 임신과 출산, 피임과 낙태 등 어떤 재생산의 선택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 ‘권리’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 전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난자를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재료로 여기고 국익을 위해서 여성의 몸을 희생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경제성장과 국가발전을 위해 여성의 출산을 통제하는 사회 - 소위 ‘황우석 사태’와 저출산 대책은 이런 면에서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우리 사회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여전히 출산이 가족을 유지하고 대를 이어야 하는 여성의 ‘의무’로 간주되고 있는 가부장적 가족주의와 수면 아래에 있는 여성의 수많은 낙태경험이 공론화되지 않고 있는 현실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른바 ‘여성인력 활용’과 ‘출산율 제고’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노무현 정부 여성정책에는 여성의 몸과 재생산에 대한 결정권은 물론, 적절한 임금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통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성의 노동권에 대한 시각 또한 결여되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는 일면 여성의 요구이기도 하지만 최근의 여성인력 활용론이 달갑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여성노동의 비정규직화, 저임금화는 여기서 다시 언급하지 않아도 될 만큼 심각한 문제이지만 지금 정부정책의 포인트는 결코 여기에 맞춰져 있지 않다. 저출산·고령화 위기가 초래할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고 동시에 합계출산율 1.6명이라는 목표까지 달성해야 하는 ‘국가적 과제’에 여성은 동원대상 일 뿐 노동과 출산의 주체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

진보운동, 여성운동에게 ‘저출산·고령사회 위기’는 무엇인가

이처럼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여성의 주체성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국가와 사회의 위기를 관리하고자 하는 데서 출발하는, 시작부터 매우 불순한 대책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경제성장을 위한 출산율 제고’, ‘여성인력 활용을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라는 담론이 위험하게 느껴진 것은 여성정책을 고민하는 필자의 거의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그런데 몇 년째 저출산·고령사회 위기에 온 나라가 이토록 떠들썩한 것에 비하면 진보진영 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진보진영 역시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위기’로 인식할 것인지, 위기라면 무엇의 위기인지, 저출산·고령화가 부인할 수 없는 사회적 흐름이라면 그 원인은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노동조합과 진보정당에서도,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도 이렇다할 입장이 제출된 것을 본적이 드물다.

노무현 정부와 지배세력은 저출산·고령화의 원인 진단부터 대책까지 모두 국가경쟁력과 경제성장의 문제로 연결시켜 지배담론을 확고히 하는데 활용하고 있는 반면 진보진영은 지배담론이 제공하는 틀 안에서 보육의 공공성, 여성노동권 확대 등을 간간히 요구하는 데 그쳤다. 저출산·고령화를 그저 여성, 아이, 노인의 문제라고 보는 소극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라고 볼 수 있다.

여성운동의 대응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저출산·고령사회 위기론의 등장은 그동안 여성운동이 꾸준히 요구하고 싸워왔던 의제들을 단숨에 사회적 의제로 부각시키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보육 문제 해결,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제고,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제도 마련이 지금처럼 전 국가적인 과제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그런 측면에서 여성운동에게 저출산·고령사회 위기론은 일면 활용되어야 할 ‘기회’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안에 포함되어 있는 여성노동, 건강, 보육 문제에 성 인지적 관점을 반영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전략은 각론적인 정책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견인하기 위해 필요할 수 있다. 그러나 정말 시급한 것은 경제성장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한 출산율 제고, 여성인력 활용이라는 저출산·고령사회 위기 담론의 문제 설정을 여성의 시각에서 전유하는 것이 아닐까.

중요한 것은 ‘그들의 위기’를 전유하는 것이다.

올해 열린 여러 3·8 여성대회의 주요 이슈는 공통적으로 빈곤과 양극화 해소, 비정규직 문제였다. 이것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겪고 있는 가장 큰 위기를 지적하는 여성대회의 요구라는 데 전혀 이견은 없다.

하지만 저출산·고령화 위기론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 이에 맞선 여성의 저항과 투쟁의 언어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지 않은 것은 못내 아쉽다. 여성 빈곤과 비정규직, 저임금 해소를 이슈로 여성의 재생산과 노동에 대한 통제를 정면 돌파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연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표방하고 있는 전략을 우회하거나 누락된 요구를 보충하는 것만으로 여성의 권리를 온전히 가시화할 수 있을까. ‘싸움의 장’은 제대로 열리고 있는가.

저출산·고령화가 통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 엄연한 현실이라는 것까지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같다. 태어나는 아이는 줄어들고 노인은 늘어나는 사회가 여성에게, 노동자민중에게 어떤 미래를 가져다 줄 것인지 예측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저출산·고령화 현상을 ‘위기’로 규정하고 있는 주체가 여성, 노동자, 민중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아가 정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 여성, 노동자, 민중에게 더 큰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더 이상 소수의 ‘딴지 걸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그들만의 위기’를 새롭게 전유하는 대안적인 담론과 전략이다. 현재의 저출산·고령화 위기 담론이 여성의 성과 몸에 대한 결정권을 옥죄고 불안정한 여성노동을 확산하는 데 기여하고 있음을 직시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만큼의 아이를 낳을 수 있길 원하는 여성의 요구, 안정된 일자리를 갖고 평등한 노동의 권리를 누리기 원하는 여성의 요구가 저출산·고령화 위기 탈출에 대한 요구로 왜곡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부터 출발해야 한다.
덧붙이는 말

김원정 님은 민주노동당 정책위원회 여성정책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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