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23일 "참여정부는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라고 밝혔다. 좌파라면 다 웃을 일이다. FTA 협상은 "미국 시장에서 일본이나 중국보다 단 1%라도 유리한 위치를 갖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자 "국내 서비스 산업에 자극을 주기 위한 쇼크 요법"이라고도 했다. "좌파 신자유주의 정부"로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 세계화만이 (좌파적으로?) 더 잘 사는 길이라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인식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지금 여기 사람들의 삶뿐만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도 한반도를 결딴낼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면서 한쪽에서는 "사회운동, 위기인가"를 묻고, 다른 한편 FTA 저지 투쟁을 낙관한다. 내가 보기에는 위기도 아니거니와, 낙관할 만한 상황도 아니다.
우선, 위기를 전제로한 돌파는 종종 돌파가 아니라 집단자살(공멸)로 나아가기 쉽다. 개인적 한탄이 집단화되기 쉽기 때문이다. 위기. 만사형통어다. 머든지 위기라는 말만 하면 책임면제요, 내 책임이 아니요, 어쩔 수 없는 구조탓이 된다. 압력을 행사하면서 변화를 가하고, 균열과 빵구를 낼 가능성은 적다. 이미 위기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것을, 어찌 변화의 압력을 가하고 균열을 내리오. 그 구렁텅이 빠져나오기도 벅찰텐데. 이렇게 되면 갈수록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 빈곤해진다. 위기라는 말은 한탄, 개탄, 만시지탄, 신세토로, 뒷다마를 공적인 것으로 만든다음, 이런 류의 공적인 언설들이 마치 비판처럼 들리게 하는 둔갑술을 발휘한다. 그리고 집단적으로 스스로의 위기론에 스스로 기만당한다.
열린당, 딴날당, 부분적으로는 민노당의 계속되는 헛삽질 경쟁질로 인해, 시민사회는 온통 기회투성이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3년간 이 기회를 잘 활용하지 못했다. 이런 점에서 "위기"라기 보다는 무능력이다. 신자유주의 자본이 몰고오는 해일도, 위기라는 만사형통핑계어 대신에, 보다 창조적이고 개입적인 류의 담론들을 필요로 한다.
위기 담론은 그 쌍생아이자 유일한 대안 담론으로 저지!만을 델꼬 다닌다. 저지!투쟁은 물론 불가피하고 필수적인 것이면서도, 비유로 치자면 움직임을 주도하기 보다는 뒷따라다니는 방어기 땜시롱 공격으로나 방어술로 그리 신통한 것이 못 된다. 저지전술은 진보진영의 전술로는 언제나 밑지는 전술이다.
FTA 같은 경우, 저지를 그 기본전략으로 한다는 것은 이미 놈현정권은 그렇게 나갈 것이라는 진단에서 가능하다. 맞는 진단이지만. 저지(최소한 유보)를 위해서라도, 대화좋아하는 놈현에게, '어이, 거기 대통령나리. 우리 이 이약 진지허게 한 번 해보자고요. 사회적 대타협 중요하담서요. ...... 국정브리핑 말고 국민브리핑 기회 한 번 줄텡께 자세히 들어봅시다. 정말 FTA가 얼마나 우리 삶을 윤택하게 할 것인지는 하나 하나 대봅시다' 함시롱, FTA협상 강행군을 원하는 정부를 "설득하는" 공적인 자리를 진보진영에서 마련해야 한다. 집회와 시위도 필요한 방법이겠지만, 다른 식으로 압력을 가하는 방법들을 강구해야 한다. 시위와 집회들이 국가는 국가고 '우리'는 '우리'다라는 식이다로 비쳐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정말이지 정부도 설득해야 한다....어쨌거나 국가가 볼모로 삼는 '국민'들, 바로 우리, 나, 나이기도 한 당신의 삶을 위해서, 국가를 '우리'의 볼모로 삼는 전략이 필요하다는 거다.
나는 FTA 저지 투쟁이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통제력을 제대로 실험해보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국민을 볼모로 하여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 국가라면, 역으로 국민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를 볼모로 삼을 수도 있고 그럴 힘도 '우리'에게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문제는 또한 시민사회(운동들)의 자율성만 가지고서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소수자들이 다수가 된 우리 사회에서 국가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보루가 되도록 압력을 행사해야 하고 그런 보루로서 국가를 활용해야 한다.
진보진영은 FTA 협상 관련 대통령과 한 판 대토론회를 개최하라.
(좀전에 한명숙 의원을 총리로 지명했다는 뉴스가 떴다. "부드러운 리더십"과 조율을 기대한다니 총리를 우회해서 정부를 압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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