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연가’, 에쿠아도르에 가다

에쿠아도르 원주민 대학생, FTA 반대 시위 도중 사망

“‘겨울연가’가 에쿠아도르에 가다.” 이번 주말 한국의 뉴스를 장식한 기사이다. 반면 라틴아메리카 소식을 전하는 펜사 라티나(Pensa Latina)는 에쿠아도르-미국 FTA를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이 총을 맞아 사망한 사건을 보도했다.

“원조 한류 수출상품인 드라마 ‘겨울연가’가 이번에는 남미지역에서 한류 바람몰이에 나선다”고, 마치 스크린쿼터 축소를 겨냥한 듯 우리 방송연예의 경쟁력을 선전하는 것 같다. KBS가 “최근 에쿠아도르의 지상파 방송사와 계약을 맺고 드라마 ‘겨울연가’를 방영하는 데 합의했다”고 5일 밝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쿠아도르는 외국 드라마나 수입하여 편안히 감상하고 있을 느긋한 상태가 아니다. 원주민과 노동자들이 연일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3월 8일에 노동자들이 24시간 총파업을 벌였으며, 3월 16일에는 에쿠아도르원주민연합(CONAIE)이 자국에 진출한 미국 옥시 오일(Oxy Oil)사의 추방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어 3월 21일에는 경찰의 폭력진압으로 30여명이 다치고 100여명이 체포되었다. 그 와중에 4월 7일 금요일에는 시위에 참여한 대학생 호니 몬테스데오카(Johnny Montesdeoca)가 등 뒤에서 총을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에쿠아도르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에 도달했다. 이미 정무부 장관 알프레도 카스틸로(Alfredo Castillo)가 사임하였고, 알프레도 팔라초(Alfredo Palacio)정부 전체가 흔들리고 있다.

남미에서 미국과의 FTA를 반대하는 물결은 비단 에쿠아도르뿐만이 아니다. 코스타리카 노동조합도 3월 17일 미국과의 FTA협상 반대를 명백히 밝혔다. 이와 관련해 코스타리카 공무원노조(ANEP) 의장 알비노 바르가스(Albino Vargas)는 “FTA는 라틴 아메리카 국가와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해 워싱턴이 강제하는 것으로서 많은 산업 분야에 걸쳐 다양하고 광범위하면서도 포괄적”이라고 규정하고, “FTA통과 저지를 위해 혼신의 힘을 바쳐 싸울 것”이라고 투쟁 의지를 굳혔다. 그에 따라 코스타리카 외무부 장관 마뉴엘 곤잘레스(Manuel Gonzalez)는 미국과의 FTA는 아직 먼 장래의 일이라고 한발 물러섰다고 한다.

이제 미국이 강제하고 자국의 지배층이 거드는 FTA 체결에 대한 반대는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의 안마당인 라틴아메리카에서 먼저 요원의 불길처럼 타오르고 있는 것이다. WTO에서 미국이 제 국가들을 강제하지 못했듯이 개별 국가와의 협상인 FTA에서도 미국의 침략성이 저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개별 협상인 만큼 이러한 투쟁들이 서로 연대할 필요가 있다.

유감스럽게도 아직 우리 나라에서는 한미FTA가 가져올 피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낮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문제보다 ‘겨울연가’ 수출이 더 중요한 기성 언론과 황색 언론이 판치는 상황도 한 원인이다. FTA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성공적인 저지를 위해 외국의 싸움들을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호니의 죽음은 FTA의 첫 희생일 뿐이다. 그러나 그 희생은 싸우다가 죽은 거룩한 희생이다. FTA가 성사되면 서서히 죽어갈 사람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이제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모든 사람들의 투쟁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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