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밀실의 문을 열어라

[기고] 문을 닫고 있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노무현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쇄국하면서 성공한 경우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문을 열고 우리도 나가야 한다." 소위 뉴 라이트들은 대통령의 쇄국 반대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그들은 한미FTA 체결을 실현하겠다고 이른바 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하면서 이런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리는 19세기에 개항이냐 쇄국이냐, 개회냐 수구냐의 갈림길에서 잘못된 선택을 했지만 같은 시기에 개항과 근대화의 길을 선택한 일본은 식민지 종주국이 됐다.”

한미FTA를 체결 하겠노라고 일방적으로 정부가 대국민 선전포고를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하자마자, 보수신문들은 짜여진 각본이라도 있는 것처럼 한미FTA 체결은 구국의 결단이며, 한미FTA 체결 반대는 19세기식 쇄국 논리라고 떠들고 나섰다. 서로 화해할 수 없을 물과 기름 같았던 대통령과 조중동과 뉴라이트는 달콤한 허니문을 즐기기에 바쁘다. 참으로 고약하고 부적절한 상황이다.

어느새 한 편이 된 그들은 한미FTA체결을 반대하는 우리가 시대착오적인 ‘쇄국’을 주장하고 있다고 매도하고 있다. 참으로 단세포적인 이분법이며, 사실을 왜곡하는 은유의 남발이다. 대통령은 조중동을 비난하며 조중동의 논리를 학습했다. ‘개국’이냐 ‘쇄국’이냐를 둘러싸고 양자택일의 대립했던 구한말과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엄연히 다르다.

구한말의 상황은 민주주의 국가 대한민국의 상황과 다르며, 우리는 19세기에 양자택일적인 논쟁을 벌였던 그들처럼 우물 안 개구리가 아니다. 하지만 역사의식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들은 스스로의 무식함을 드러내며, 대한민국을 봉건국가의 틀에서 조망할 뿐이다. 21세기를 19세기의 이분법에서 조망하는 시대착오적인 시야를 가진 이들에게 어찌 현명한 판단을 기대할 수 있으랴?

그 누구보다 국제정세에 밝다고 자부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주장처럼 한미 FTA체결 반대가 ‘쇄국’의 논리라면, 미국과 FTA 체결을 서두르지 않는 모든 나라들은 ‘쇄국’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인가? 미국과 FTA체결을 준비하고 있지 않는 다른 나라들은 곧 식민지로 전락할 것인가? 친미파가 아닌 우리는 21세기의 전지구적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바보란 말인가?

도대체 문을 열어놓지 않고 ‘쇄국’을 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지 따져보자.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주장하면서, 이민법 개정을 통해 문을 더욱더 치밀하게 막으려는 나라는 미국이다. 전지구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쿄의정서를 거부했던 나라도 미국이다. ‘쇄국’은 한미FTA 체결을 반대하는 우리가 지지하는 노선이 아니라, 미국의 단골메뉴이다. 한미FTA 체결이 한국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문을 여는 행위라고? 천만의 말씀. 한미FTA 체결은 ‘쇄국’을 추진하는 미국이 굳게 닫힌 문 안에서 조정하는 리모콘에 따라 문이 열리는 것에 불과하다. 한미 FTA체결이 능동적인 개방이라면, 왜 한미FTA 체결 일정은 철저하게 ‘쇄국노선’을 추구하는 미국의 일정에 맞춰져 있는가?


리모트 콘트롤에 의해 조정되는 줄도 모르고 자주적인 선택이라고 착각하고 있는(혹은 그렇다고 주장을 하면서 국민들에게 사실을 숨기고 있는) 한국 정부 역시 미국의 ‘쇄국’ 논리를 따라 배웠다. 19세기 구한말도 아니거늘, 정부는 밀실에서 문을 꽁꽁 닫아두고 ‘개방’을 하겠노라고 헛소리를 하고 있다. 문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문은 나라 안에도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와 국민 사이이 문은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국민은 그 문을 언제든 들락거릴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그 문은 열려 있는가? 닫혀 있는가? 그 문은 밀봉되어 있다. 누가 그 문을 닫았는가? 이른바 참여정부라는 이제는 역겨운 수식어를 달고 있는 정부가 그 문을 닫았다. 한국 정부는 미국과의 FTA 체결 일정을 발표하기 이전에 국민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문을 열어놓아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지금까지도 철저하게 국민을 향한 문을 닫고 있으며, 닫힌 문안에서 그들끼리 밀실 협약을 벌이고 있다. 문을 닫은 자들이야 말로 그들이면서 뻔뻔하게도 그들은 밀실에서 한미FTA 체결을 반대하는 우리가 구한말의 ‘쇄국’을 주장하고 있다고 억지를 부린다.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고 싶은가? 그러면 안으로 열린 문에서 밖으로 문을 어떻게 열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자기 문은 꽁꽁 닫고 있는 미국으로 향한 문을 활짝 열겠다고, 안에 있는 문을 꽁꽁 닫고 있는 당신들이여! 한미FTA 체결을 위한 비밀협상이 벌어지고 있는 밀실의 문을 열라! 귀를 막고, 눈을 가리고 있는 쇄국주의자는 한미FTA 체결만이 살길이라고 국민들을 현혹하면서도 국민들을 향한 문을 열고 있지 않는 당신들이다.
덧붙이는 말

노명우 님은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로, 문화과학 편집위원 일을 하고 있다. 이 글은 4월 27일 범국민운동본부 뉴스레터 '한미FTA 거짓말' 제1호에 기고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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