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 ‘미사일 실험 발사’를 둘러싼 안개 정황이 이제야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물론 아직도 정확한 사실(fact)이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와 같이 소설에 가까운 부정확한 예상과 시나리오가 난무하는 상황은 이제 어느 정도 정리될 수 있는 수준으로 사태가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진다.
물론 북 당국의 공식적인 확인이나 입장 표명이 아직은 나오지 않고 있어 조금은 더 기다려봐야 하는 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사실이 어떠하든 간에 또는 북 당국의 공식 확인이나 입장이 무엇이든 관계없이 이번 미사일 소동을 둘러싼 정치적 효과와 의미는 이미 충분히 표현됨으로써 사실 확인을 둘러싼 공방은 더 이상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이번 북 미사일 관련 소동은 사실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알다시피 이미 지난 1998년에도 지금과 비슷한 양상이 벌어진 바 있다. 또한 앞으로도 이와 같은 일이 또 다시 되풀이 될 가능성은 상존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북 미사일(대륙간탄도미사일) 문제는 북미관계 또는 6자회담의 틀에서 볼 때 ‘북핵 문제’의 한 구성 부분이지만 현실에서는 그 자체의 독자적인 성격도 지니고 있다. 북으로서는 ‘북핵 문제’ 논의 과정에서 미사일 문제가 자동으로 해소되는 연동된 일체가 아니라 필요에 따라 각각 활용할 수 있는 두 개의 카드로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 미국과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함이다.
반면 미국은 미사일 문제를 ‘북핵 문제’와 하나로 묶음으로써 북이 사용할 수 있는 카드의 수를 줄이려는 계산을 할 수 있다. 북에 대한 압박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그 연속 위에서 북과 미국은 똑 같이 때로는 핵을 또 때로는 미사일을 들고 나오는 이중 전술을 구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목적은 서로 전혀 다르지만, 일맥상통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이번 소동은 바로 6자회담이 난관에 부딪쳐 있는 배경 아래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에 비춰 볼 때 미국은 6자회담을 통한 ‘북핵 문제’의 빠른 해결에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인권, 마약, 위폐 문제 등을 앞세워 북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으면서도 6자회담 자체를 지연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러나 6자회담 지연의 책임 문제로부터 미국이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인권, 마약, 위폐 등은 그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6자회담 지연의, 즉 ‘북핵 문제’ 해결의 직접적 근거로서는 허점이 있다. 그랬을 때 미국으로서는 미사일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6자회담을 지연시킬 수 있는 또 다른 복안이 될 수 있다.
미사일 문제를 들고 나옴으로써 그 자체가 북을 압박하는 또 하나의 수단이 되는 동시에 6자회담이 지연되고 있는 책임을 북에 전가할 수 있는 직접적인 근거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북이 인권, 마약, 위폐 문제의 사전 해결을 미룬 채 6자회담에 응한다면 이는 미국의 정치적 승리로 귀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북은 기왕의 6자회담 구조를 일방적으로 거부하지 않는 수준에서 북미 관계를 일괄타개하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따라서 북이 적극적인 차원에서 6자회담을 무화 또는 약화시키려 한다고 가정하는 것은 무리이다. 문제는 북으로서도 미국이 6자회담 자체의 의제가 아닌 인권, 마약, 위폐 문제 등을 앞세워 자신을 옥죄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6자회담에 응한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스스로 인권, 마약, 위폐 문제를 시인하는 결과를 낳을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협상력을 현저히 떨어뜨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미사일 실험 발사’는,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핵 보유와는 별개로 또 다른 측면에서 미국을 6자회담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수단으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사실이 아닌 경우에도 미국이 작정하고 나오는 조건 아래에서는 해명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역으로 그러한 정황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벼랑 끝 전술’이든, ‘정황의 정치’이든을 통해 미국의 압박에 맞서려고 할 것이다. 북으로서도 ‘미사일 실험 발사’ 국면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권, 마약, 위폐 국면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잡는다면 크게 나쁘지 않다는 계산을 하는 것이 가능하다.
북의 ‘미사일 실험 발사’ 의혹이 제기된 이후 지금까지 진행된 과정을 보면 위와 같은 일반론이 현실의 구체적 맥락에 고스란히 담겨 있음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미국은 미국대로 또 북은 북대로 각각의 입장에서 현 국면을 어떻게 끌고 가려고 하고 있는 지가 눈에 잡히고 있다.
이번 소동과 관련하여, 미국이 미사일 문제를 들고 나올 수밖에 없는 한(조선)반도 밖에서의 어떤 특별한 흐름이나 징후가 드러난 것은 없다. 그러나 한(조선)반도 상황을 들여다보면 얘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다. 먼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합의,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 한미FTA 협상 등에 대한 한국 내 반대 의견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자체가 모두 ‘반미, 친북’의 입장은 아니지만 미국으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반해 6.15 기념행사와 함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을 전후로 한국 내 민족주의 흐름이 탄력을 받을 수 있는 정황이 조성되고 있는 것도 신경 쓰이는 일일 것이다. 5.31 지방선거에서 유례없는 대패를 한 노무현정권과 현 집권 세력이 정치적 활로를 여는 하나의 방안으로 남북관계의 진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구체적으로는 남북정상회담을 시도 할 것이라는 짐작이 충분히 가능하다.
마침 5.31 지방선거의 패배로 인해 노무현정권은 정치적 수세에 몰려 있다. 반면 국내 보수 진영은 김대중정권 이래 그 어느 시기보다 정치적 활기를 되찾고 있는 중에 있다. 미국의 의도가 어떠하든 간에 객관적으로 미국의 이해와 의지를 관철시키기에 알맞은 여건이 마련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여기에 미국은 미사일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북핵 문제’ 해결 의지나 6자회담 지연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어느 정도 비껴날 수 있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일본의 우경화와 군사화를 더욱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도 결코 싫지 않은 일이다. 올 11월에 있을 미 중간 선거를 대비하는 하나의 카드가 되는 것도 가능하며, 미국 방위산업체를 지원하는 결과도 가져오게 된다. 무엇보다 한국 내 반미, 민족주의 세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일 뿐만 아니라 그 여파는 노동자 민중운동 진영에까지 흘러들어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공고히 하는 데에도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미사일 문제제기 이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현실에서 한창 진행 중에 있다.
미국은 일본과 함께 유엔 안보리 회부를 포함하여, 북에 대한 더욱 강력한 제재 및 봉쇄조치를 취하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천명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는 중국과 노무현정권으로 하여금 북을 설득하라는 압박이다. 즉 북으로 하여금 두 손 들고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경고이다. 또 하나는 이번 사태를 좀 더 끌고 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동북아에서의 군사적 긴장을 길게 조성, 활용함으로써 그로부터 발생하는 반사이익을 최대한 챙기겠다는 것이다.
북은 어떠한가? 북은 미국의 압박 공세에 맞서 북미 직접 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방안으로 군사전략과 남북(민족)공조를 호소하는 전략을 병행시켜왔다. 물론 중국과의 관계를 지렛대로 삼아 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제4차 6자회담을 통해 공동성명을 이끌어 낸 것은 북이 거둔 정치적 성과이다. 그러나 북은 공동성명 이후 이의 정치적 성과를 연장해 나가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의 보이콧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북은 ‘북핵 문제’에서 주도권을 쥐지 못한 채 오히려 미국의 인권, 마약, 위폐 공세 때문에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의 역할이나 노무현 정권의 역량으로 이의 해결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스스로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제까지의 과정을 볼 때, 북미 관계는 정치적 긴장이 최고조로 달아오르는 바로 그 시점에서 비로소 어떤 새로운 국면을 여는 것이 가능했다. 국내 보수진영은 이를 ‘벼랑 끝 전술’로 불렀으며, 북과 국내 일부 세력은 미국에 대한 ‘전략적 승리’라고 말해왔다. 어느 것이든 ‘벼랑 끝 탈출’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때로는 ‘침묵의 정치’로 또 때로는 ‘극적 연출’을 통해 일시에 사태를 반전시키는 기술을 발휘해 오기도 했다.
보도에 의하면 북은 미사일 실험 발사가 국제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자신들의 고유한 권한이자 누구든 이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권리가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이다. 또한 조선신보를 통해 미국의 조작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것이 곧 미사일 실험 발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아직 사태가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까지를 연기시키는 강수를 두면서 좀 더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이다.
이는 중국과 노무현 정권으로 하여금 미국의 압박 공세를 차단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주문하는 것이다. 동시에 미국의 압박에 맥없이 물러서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역시 장기간 지속시켜 나갈 태세를 갖추겠다는 의미이다.
이번 소동과 관련하여 드러난 것은 미국은 확실히 6자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보다 포괄적인 차원에서 보면 북미관계를 6자회담이라는 단일 테이블에서 일괄타결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북의 반발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미국이 북 체제 또는 북 정권에 대한 적대정책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한(조선)반도 및 동북아에서의 정치군사적 긴장을 유지•고조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미사일 실험 발사’ 소동을 경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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