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반드시 대추리로 가야한다"

[258리평화행진순례기](2) - 정부종합청사에서 수원까지

첫째날의 피로를 뒤로하고 평화행진이 둘째날의 행진을 시작하였다. 행진 둘째날은 대략적으로 추산한 거리로도 무려 27KM, 행진일정 중 가장 험난한 날이다.


오전 9시 과천 정부종합청사 정문 앞에서는 노무현 정부의 미군기지 확장 이전 계획을 국민의 기본권 말살의 측면에서 요목조목 비판하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진행되었다.

박래군 평화행진 단장의 사회로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한미간에 체결된 미군기지 이전협상과 전략적 유연성 합의의 위헌성”과 “토지수용을 위한 군사력 동원과 군사시설보호구역 설치의 위법성”을 제기하였다.

이어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의 김종일 씨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이전계획의 재협상의 법적, 사실적 근거들을 제시하며 노무현 정부가 즉각 재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였다.

마지막으로 평화를 위협하는 오적인 청와대, 국방부, 정부, 미군, 검·경을 인권과 평화의 이름으로 소환하는 민중소환장이 낭독되었다. 민중소환장에서는 “오늘 우리가 반평화 오적을 향해 보내는 이 소환장은 평택미군기지확장이 이 땅에 가져올 대재앙에 대한 마지막 경고”라고 밝히며, “국가가 국민에게 있어야할 주권을 찬탈하고, 헌법의 존재이유마저 부인하면서 국민의 기본권을 묵살하고 있다면, 민중은 자신의 존엄성과 자유, 평화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봉기와 저항에 호소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분명히 깨닫기 바란다”는 메시지를 정부당국에게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길을 떠나며 평화행진단은 부당해고에 맞서 투쟁하고 있는 KTX 여성노동자들을 마주치게 되었다. 평화행진단은 함께 입을 모아 “정리해고 당한 KTX여승무원들이 원직복직하는 것이 평화이다!”라는 구호를 크게 외쳤다. 우리모두는 기쁜 연대의 목소리로 “투쟁!”으로 화답하는 그녀들의 목소리를 되내이며 둘째날의 행진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인덕원까지 가는 첫 코스에 단연 돋보였던 것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동행이었다. “더불어 배움터”, “간디학교” 학생들이 손수 만들어온 피켓을 들고 함께 구호를 외치며 노래를 불렀다. 과천시민들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오전의 행진길은 많이도 길었다. 안양교도소와 오전동 사거리를 지나 지지대 쉼터까지 1조 선봉과 2조 황새울조가 시민들을 향해 끊임없이 평화행진의 의미를 알리고 관심과 동참을 호소했다.

같은 색의 옷을 맞춰입고 각양각색의 선전물을 가득히 들고 거리를 통과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궁금한 눈빛을 보내는 시민들에게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정체를 효과적으로 알려야 했다.

그 누군가가 마이크를 잡고 큰소리로 “여러분! 우리가 누구입니까?”라고 물으면 우리모두는 “대추리·도두리·황새울 지킴이 입니다!!”라고 합창하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노래와 구호, 대시민 선동으로 행진단은 길게 뻗은 과천에서 안양으로의 16차선 도로를 채워나갔다.

안양지역 615 공준위와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정성껏 마련해주신 점심을 먹고 행진단은 서둘러 수원을 향했다. 오늘의 가장 중요한 일정인 '경기경찰청 규탄집회'를 위해서였다.

무려 6KM의 거리를 열심히 땀을 흘리며 걸어 행진단은 비로서 대추리 도두리의 야만적인 강제집행을 자행한 장본인 중 하나인 경기경찰청 정문 앞에 도달했다. 무엇이 그리 두려웠든지 그들은 이미 전경을 동원해 정문을 가로막고 있었고, 마침 서둘러 바리케이트를 치고 있는 중이었다.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 전준형 동지의 사회로 시작되 규탄 집회는 지난 3월부터 자행된 강제집행에서부터 5월 4일 유혈진압 그리고 현재 대추리, 도두리를 고립시키는 불심검문에 이르기까지 들끓는 분노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문정현 신부님은 “저 공권력이 왜 그토록 잔인무도한 범죄를 저지르며 우리를 탄압하려 하는지 조금은 이해도 된다. 왜냐하면 저들에게 가장 두려운 존재는 바로 우리들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며 우리가 함께 모이는 것, 그리고 행진해나가는 것만이 저들을 약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그래서 우리는 7월 8일 반드시 봉쇄망을 뚫고 대추리로 들어가야 한다고 외쳤다.

민주노동당 수원시의원 윤경선씨는 “외부세력 운운하는데 지금 평택에서 과연 누가 ‘외부세력’인가?”라며 “마을 주민도, 그리고 그 누구도 경차과 군인을 부르지 않았다. 바로 당신들이 ‘외부세력’이다!”라고 규탄했다.


나이 어린 전경을 동원하여 공권력의 이름으로 대추리, 도두리 마을 주민과 수많은 한국의 국민들에게 경찰이 저지른 만행을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사회자는 노무현 정부가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계획에 그토록 엄청난 수의 경찰을 동원한 것은 바로 정권이 경찰의 불법폭력으로만이 유지될 수 있는 권력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평택에서 살고 있는 평택지킴이 여름씨는 현재 대추리,도두리에서 자행되는 인권침해사례를 구체적으로 폭로하기도 하였다. 지금 현지에서는 16번, 20번 마을버스를 원정 삼거리에서 세워 대학생처럼보이는 젊은사람들에게 일일이 신분증을 요구하고 심지어 버스를 돌려보내고 있다. 또한 농사일을 도우러 평화농활을 하는 학생들을 논밭에서 강제로 끄집어 내는 경악스러운 행위도 서슴치 않는다고 한다.

여름씨는 “내가 살고 있는 집앞에도 매일매일 전국 방방곳곳에서 경찰들이 번갈아서 오고간다. 지역의 경찰들이 순번을 짜서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데, 당신들은 하루 왔다가는 것이지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매일매일 군홧발의 경찰과 사복형사들의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 그 공포와 고통으로 매일을 살아내는게 어떻게 인간이 할 짓이냐”라며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간디학교 학생들의 ‘바위처럼’공연과 경찰청에 평화행진단 참가자들이 자신의 이름의 항의서한을 낭독이 이어졌다. 마지막 순서로 평화의 메시지를 경찰이 쳐놓은 바리케이트와 경찰청 담벼락에 붙이는 행동을 함께하였다. 행진단은 경기도 경찰청이 떠나가도록 “대추리, 도두리, 황새울에서 경찰은 물러가라!” “전의경은 해체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경기경찰청을 떠나 수원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장맛비가 억수같이 쏟아져내렸다. 주섬주섬 우비를 챙겨입고 비를 맞으며 행진단은 둘째날의 마지막 도착지인 촛불집회장소를 향해 의연히 전진하였다.


여덟시가 다된 시간, 둘째날 촛불집회가 시작되었다. 수원지역 인권활동가 박 진씨의 사회로 진행된 촛불집회에서는 정말로 많은 지역 단체들, 활동가들이 함께하였다. 공무원노조 농촌진흥청지부, 수원 목회자연대, 민주노동당 경기도당,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와 한미 FTA저지를 위한 수원운동본부 수원여성회, 수원민중연대, 전농 경기도연맹, 공무원 노조 경기본부, 공무원 노조 수원지부장 등이 둘째날 촛불집회를 함께 밝혔다.

한국청년단체 협의회 의장 이승호씨는 “행진을 하면서 대추리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지금 시기 바로 그것이 역사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는 힘찬 결의를 밝혔다. 간디학교 학생들의 율동공연과 경기도당 학생위원회 율동팀의 공연은 참가자들이 빗속에서 비옷이 찢어지도록(!) 함께 춤추고 노래하게 만들었다. 또한 오늘 기쁜소식 하나가 촛불집회장소에 날아들었는데 지난 5월 4일 투쟁에서 연행되어 구속되었던 평택지킴이 윤민진씨가 방금 보속으로 풀려났다는 소식이었다. 구치소에서 나오자마자 촛불집회에 참석한 윤민진씨는 촛불집회의 마지막 발언을 채워주었고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과 ‘평화란 무엇인가’라는 노래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둘째날까지의 행진으로 우리는 수원까지 왔다. 쉽지않은 거리였다. 어제보다 훨씬 더 대추리·도두리에 가까이와서인지 이제는 걸어온 길보다 앞으로 가야할 길에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 평화행진의 최종 목적지까지 우리는 분명히 생각해야 한다.

아픈 다리를 잠시 쉬게 놓아둘 틈도 없이 다시 또 시작되는 행진의 고비고비마다, 경기도 경찰청의 만행에 또 한번 분노하며, 그리고 비가 쏟아지는 수원역 앞 촛불집회자리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확인했다.

행진의 최종목적지는 대추리라는 것! 검은 철조망과 검문소를 걷어치워내는 것이 바로 우리가 걷고 있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마치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아스팔트 길을 온종일 걸어가며, 같은구호와 비슷한 노래를 주문처럼 반복하며 이 행진의 이유를 다시한번 생각한다.

우리는 반드시 대추리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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