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필] 문화연대

저항, 시작은 미비했으나 어느새...

[한미FTA 저지 운동, 진단과 과제](4) - 한미FTA 저지 투쟁 어디까지 왔나

한미FTA 2차 본협상이 7월 10-14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다. 한미FTA 협상을 선언한 지 4개월째, 그동안 정부는 협상 추진에 속도를 붙여왔고, 민중운동은 범국본을 중심으로 협상 저지를 위한 다양한 실천을 벌여왔다. 한미FTA 2차본협상에서 통합협정문 작성이 마무리되고 9월로 예정된 노무현 대통령의 방미를 계기로 전체 그림이 그려진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민중언론 참세상은 2차 본협상을 앞둔 시점, 지금까지의 한미FTA 저지 투쟁 과정을 진단하고, 한미FTA 저지 운동이 갖는 의미와 운동과제를 정리하기 위해 연속기획을 준비했다.
[연속기획① - 한미FTA 저지 운동, 진단과 과제]은 모두 일곱 차례에 나누어 게재하고, 7월 말 [연속기획②]에서는 '한미FTA와 개성공단'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 편집자 주



2차 본협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시점이다. 9월내 타결을 주장하는 그들에게도 중요하지만 우리에게는 더더욱 중요하다. 지난 1차 협상에서는 총 17개 협상분과 중 13개 분야에 걸쳐 통합협정문이 작성되었고 이번 2차 협상에서는 품목별·분야별 개방 범위를 설정하는 상품 양허안 및 서비스·투자 유보안을 다룬다고 한다.

결국 2차 협상을 마치고 나면 한미FTA협상은 사실상 완성단계로 접어들게 된다. 특히 9월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2차 협상과 정상회담을 경과하면 한미FTA 협상은 사실상 종결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2차 협상에 대응하는 7월 투쟁은 단순히 하반기 총궐기투쟁을 가기 위한 과도적 단계가 아니라 한미FTA저지 투쟁 전반을 좌우하는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이다. 이 중요한 투쟁을 준비하기 위해 지난 시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가늠해보고자 한다.

한미FTA 개시, 그리고 저항의 시작

지난 2월 2일 한미FTA협상 추진에 앞서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공청회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그 공청회는 단 20분 만에 무산된다. 하루가 지난 2월 3일 새벽5시(한국시간) 통상교섭본부장인 김현종은 미국 워싱턴에서 미국 무역대표부 롭 포트먼과 함께 한미FTA 협상 개시를 공식 발표한다.

공청회가 진행되는 사이 정부는 이미 한미FTA협상 공식개시 선언을 위해 미국으로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공청회가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기 위한 진정성 있는 자리가 아닌 그저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어쨌든 한미FTA협상은 2월 3일 ‘공식’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공식’적일 뿐 작년 10월 4대 선결조건 중 하나였던 새로운 약가상환제도 도입을 중단하면서 한미FTA는 사실상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자동차 배기가스 기준이 완화되고, 광우병 파동 때 수입 금지되었던 쇠고기 수입재개가 결정되었다, 그리고 올해 1월 26일 스크린쿼터가 146일에서 76일로 반동강나면서 한미FTA 협상/투쟁은 본격화되기 시작한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영화인들은 즉각 행동을 조직했다. 2월 4일 안성기씨를 필두로 장동건, 이준기, 전도연, 문소리 등 내노라하는 영화인들의 1인 시위와 농성이 이어졌다. 농민들도 투쟁선포대회를 개최하고 영화인과 농민들이 함께하는 ‘쌀과 영화’라는 문화제도 개최되었다. 2월 15일에는 113개 노동사회단체들이 모여 '스크린쿼터 사수와 한미FTA 저지를 위한 범국민대책위원회(준)'(이하 ‘범대위’)를 구성하여 본격적인 싸움의 태세를 가다듬었다.

저항의 확산

한미FTA는 쌀과 영화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포괄적 경제통합협정’임을 누차 강조한 한미FTA는 말 그대로 우리사회 전체를 포괄하는 문제이다. 이윤을 위해서는 경계도 없고 영역도 없다. 그러나 투쟁의 초반 문화제의 이름처럼 한미FTA저지 투쟁은 ‘쌀과 영화’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실제 많은 노동자 민중들은 한미FTA를 자신과는 무관한 문제로 이해하고 있었으며 소위 선진활동가라 불리는 사람들조차 당위적인 차원에서 반대하는 정도에 그쳤다. 범대위 또한 자신의 활동을 스스로 스크린쿼터 투쟁에 한정하는 듯한 양상마저 보이기까지 했다.

이러한 흐름은 문화연대가 ‘21세기 '한미경제안보합방' 한미FTA 저지 투쟁 결의문’을 총회 특별결의문으로 채택하고 한미FTA저지 투쟁을 적극적으로 제안하면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시기를 즈음하여 한미FTA의 문제점과 심각성이 본격적으로 확대되기 시작하고 기 결성된 영화인대책위 외에 3월 7일 ‘한미FTA저지 교수․학술단체 공대위’ 구성을 시작으로 시청각미디어 공동대책위원회, 농축수산 비상대책위원회, 문화예술분야 공동대책위원회, 교육 공동대책위원회, 보건의료 공동대책위원회, 공공서비스 공동대책위원회 등 각 분야별 대책위원회가 급속도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이 힘을 모아 3월 28일에는 270여개 단체가 참가한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이하 ‘범국본’)가 공식 출범하기에 이른다.

스크린쿼터 싸움이 한미FTA저지 투쟁의 서막을 알렸다면 범국본의 출범은 투쟁의 영역을 전 사회적으로 확대하면서 본격적인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알린 셈이다.

범국본 출범 이후에도 환경, 여성, 소비자 등의 분야에서 대책위가 구성되었으며 범국본 차원에서는 지역 대책위 건설을 위해 역량을 집중시켰다. 현재 14개 부문에 걸쳐 공대위가 구성되어 있으며 공대위는 아니지만 민주노총, 한국노총, 민주노동당이 결합하고 있다. 지역 현황을 살펴보면 서울과 경남을 제외한 모든 광역단위에서는 지역본부가 결성되었으며 기초단위 대책위 구성을 위해서 매진하고 있다. 한편 외형적으로는 규모와 틀이 갖추어지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층 조직화가 더딘 것은 시급히 극복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라 할 수 있다.

본격적 투쟁의 깃발이 오르다

간헐적이고 지엽적으로 전개되던 한미FTA저지 투쟁이 범국본 출범 이후 일상적이고 지속적이고 전면적인 양상으로 변모한다. 물론 일정정도 한계는 있지만 분야별로 한미FTA의 문제점을 짚는 각종 토론회가 개최되었고 현장과 지역을 조직하기 위한 교육 및 워크숍이 진행되었으며, 4월 1차 범국민대회, 6월 1차 본협상 저지를 위한 국내외 투쟁, 국민보고서 및 국민교양자료집 발간, 천막농성 등이 병렬/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투쟁들이 계속되었다.

4월 15일 진행된 1차 범국민대회는 범국본 출범 이후 첫 번째로 진행된 대규모 대중투쟁으로 1만7000여 명이 참가하였다. 특히 이날 집회에는 그간 투쟁의 현장에서 보기 어려웠던 단체들이 대거 참여하였고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의제들이 쏟아져나와 좋은 성과를 남긴 대회였다.

반면 1차 본협상 저지 투쟁은 많은 한계와 과제를 남긴 채 훌쩍 지나가버렸다. 일단 2차 범국민대회로 진행하기로 했던 6월 3일 투쟁은 조직화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수위를 낮춘 ‘총력결의대회’로 진행되었다. 물론 협상이 미국에서 진행되는 현실적인 조건도 한몫 했겠지만 ‘드디어’ 본협상이 시작되었음에도 범국본의 대응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무기력에 가까웠다고 할 수도 있겠다. 다행스러운 것은 미국 원정투쟁단이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린 것이다.

1차 본협상 대응 투쟁 이후 한국에서 진행되는 2차 본협상 저지 투쟁에 대한 기대와 중요성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었다. 양국 정부의 고위관료들이 연내타결을 주장하고, 9월 한미정상회담이 알려지면서 한미FTA는 사실상 9월이면 타결된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한 진정성이 있다면 7월 2차 협상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켜 한미FTA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혀야 하고 이를 위해 각 단위가 기층을 조직하는데 매진하고 있다. 7월 12일 한미FTA저지를 위한 2차 범국민대회는 근 몇 년간 치러졌던 투쟁중에서 가장 많은 인원과 가장 다양한 부문이 참가하여 가장 수위높은 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투쟁의 흐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변화는 노동자들이 투쟁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초반에 한미FTA 저지 투쟁의 성격을 분석하면서 그동안의 신자유주의 저지투쟁이 회의 저지와 협정조문을 중심으로 하는 약간은 추상적이고 지엽적인 투쟁이었다면, 이번 한미FTA 저지 투쟁은 민중 개개인의 삶에 기반한 구체적인 계급투쟁이 될 것이라 전망한 바 있다.

그러나 투쟁 초반 그것은 말 그대로 ‘전망’일 뿐이었다. 장기투쟁사업장은 당면한 문제 때문에 한미FTA에 많은 관심을 쏟기 어려웠고, 산별전환을 가장 중요한 과제로 삼았던 단위들 역시 한미FTA는 한 발짝 건너 있는 일이 되어버렸다. 그렇지 않은 사업장의 경우도 농민들만큼 긴장이 걸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정치사회단체와 현장조직/노조들이 한미FTA 저지 투쟁의 계급적 의미와 중요성에 착목하고 적극적인 조직화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노동자들이 한미FTA 저지 투쟁의 새로운 주체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7월 1일 6개 단체가 진행한 긴급토론회에서는 참가자 전원이 결사대를 결의하며 현장에 돌아가 더 많은 노동자를 조직하기 위한 각오를 다지기도 하였다.

정부의 물량공세, 그러나...

이러한 활동의 결과였을까? 어느새 한미FTA는 가장 중요한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다. 아무도 모르게 몰래 처리할 요량이었는지 한미FTA 추진을 발표한 이후 조용하던 노무현정권도 저지 투쟁의 기세가 오르는 동안 가만히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재해 등에 사용할 명목으로 책정해 둔 예비비에서 무려 42억을 빼돌려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다. 정확히 말하면 선동이 맞는 표현이겠다. 그들에게 더 이상 정책홍보는 없었다. 아무런 알맹이 없이, 아니 내용을 조작하면서까지 세계 최강대국 미국과 FTA를 추진해야 장밋빛 미래가 보장되는 양 온갖 미디어를 동원하기 시작한다.

특히 노무현정권 출범 이후 사사건건 시비였던 조중동은 어느새 참여정부의 든든한 우군으로 변해있었다. 그들에게 국민은 정책결정을 협의하기 위한 중요한 주체가 아니라 그저 정권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한 선동의 ‘대상’일 뿐이다. 하긴, 자본주의 국가시스템에서 그렇지 않은 적이 한 번이나 있었겠냐마는...

그러나 아쉽게도 정부의 눈물겨운 노력이 한미FTA 찬성 여론을 끌어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지는 못한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협상 속도를 늦춰야 한다는 의견이 90%에 달하고, 1차 본협상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80%에 이르는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정부의 노력은 거의 물거품이 되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국민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국책사업 성격의 정책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고, 특히 이번의 경우 정부가 수많은 전문가와 각종 매체를 동원하여 적극적으로 선전선동했으나 한 달 간격을 두고 방영된 단 두 개의 프로그램으로 인해 이와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 할 수 있다.

되돌아본 투쟁, 그리고 우리의 관점

이상까지 한미FTA 개시와 저항의 시작단계부터 최근의 여론 상황까지 대략적인 흐름을 살펴보았다. 마지막으로 그간 투쟁과정에서 불거졌던 문제점과 쟁점, 최근의 여론 지형을 통해서 한미FTA저지 투쟁시 견지해야 할 관점을 딱 2가지만 분명히 하고자 한다.

첫째, 국익이 아닌 계급적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한미FTA는 과잉축적모순을 탈피하여 이윤율을 높이고자 하는 총자본의 해법이다. 따라서 이것을 저지하고자 하는 투쟁은 그 자체가 총자본에 대한 계급투쟁의 성격을 갖는다. 이러한 원론적 해석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현실’을 이유로 다른 접근을 하려는 세력은 존재한다. 그들은 애국심을 자극해야 한다고 한다. 더불어 민족주의도 건드려야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이번 투쟁을 승리하기 위해서는 조직화된 대중뿐만 아니라 ‘다중’이라 표현되는 일반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동의한다. 이번 투쟁은 ‘다중’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우리는 2002년 붉은악마로 대변되는 ‘다중’의 자발성이 효순이․미선이 촛불집회-노무현정권의 탄생-탄핵반대로 이어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긍정적 엔트로피로 작용하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이 긍정적 엔트로피에 국가주의와 민족주의가 개입하는 순간 그것은 파시즘으로 변한다. 황우석 때도 그랬고 올해 월드컵 때도 그랬다. 국가와 애국, 민족의 이름 앞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한미FTA 저지를 주장하면서 애국과 민족을 논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진정성이 부족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90%에 달하는 반대여론을 파시즘으로 몰지 않기 위해서, 90%에 달하는 그들과 함께 FTA를 저지하기 위해서 명확한 계급적 관점위에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정권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해야 한다.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정권 퇴진을 놓고 범국본 내에서 몇 번의 논쟁이 있었다. 드러내놓고 정권 퇴진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다만 시기상조라거나 여론을 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은 있었다. 여기서도 ‘신중론’이 등장한다. 그러나 정권퇴진에 대한 입장은 간단하게 정리된다. 하나는 노무현 정권 퇴진 투쟁 없이 한미FTA를 저지할 수 없고, 다른 하나는 이미 대중들이 그것을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미FTA는 어느날 불쑥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한미FTA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노무현정권의 산물이자 요체이다. 이것이 ‘협상’만을 타격하는 것으로 한미FTA를 저지시킬 수 없는 이유이다. 결국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일관되게 확장/관철하고 있는 노무현정권에 대한 투쟁을 본격화해야 한다.

또한 여론조사에서 드러나듯이 대중들은 이미 노무현정권에 대해 입장을 정리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단순히 반대 수치가 높기 때문만은 아니다. 사람들이 반대를 선택한 배경이 더욱 중요하다.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 버린 노무현정권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뿐만 아니라, 최근 한미FTA에 관해 보여 주었던 노무현대통령과 정부의 졸속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몰상식한 태도에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던 때문이기도 하리라. 특히 범국민적 저항이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는 짖어라, 나는 체결한다’는 식의 독선전 행태는 퇴진투쟁 말고는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게 만든다.

계급적 관점을 명확히 하고 노무현정권 퇴진투쟁을 벌일 때 비로소 한미FTA는 저지될 수 있다.

[연속기획① : 한미FTA 저지 운동, 진단과 과제]

1회차 - 7월, '거리투쟁'에 나서자
2회차 - 씨애틀의 기억과 세계의 반FTA 운동
3회차 - 잠 못 이루는 청와대의 밤
4회차 - 한미FTA 저지 투쟁 어디까지 왔나
5회차 - 한미FTA 저지인가 FTA 저지인가
6회차 - 한미FTA 저지 투쟁, 목표를 분명히
7회차 - 한미FTA 2차본협상, 신라호텔을 봉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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