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와 길

길거리가 우리를 불러 모으고 있다.

매해 이맘 때 반복되는 천재지변은 인재와 합쳐져 그 물살이 더욱 거세다. 희생되는 서민의 이름만이 바뀔 뿐 길거리가 물과 서민들으로 채워지는 모습은 같다. 등교길 어린 남매가 급류에 휘말렸다. 망연자실 아비는 자식들을 찾아 헤매이다 길거리에 쓰러졌다. 이재민들의 한숨으로 길거리는 한 가득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2만여 노동자, 농민, 문화예술인 등이 폭우 속 길거리에 나섰다. 내 일터, 내 곡식, 내 작품을 지키려는 이들이 길거리를 가득 메웠다. 구호를 외치는 이들의 입속으로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것들이 삼켜졌다. 그리고 이를 다시 토해내는 불안과 분노의 외침으로 길거리는 한 가득이었다.

재단비리를 고발했던 동일여고 조연희 선생님은 학교로부터 징계를 받았다. 더 이상 교실에있을 수 없는 조 선생님은 길거리 수업을 시작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선생들이 이를 제지하려 길거리를 둘러쌓았다. 하지만 이 선생들이 조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려 모여든 150여명 여고생들을 막을 수 없었다. 착한 학생들이 참된 스승에게 보내는 존경심으로 길거리는 한 가득이었다.

조연희 선생님은 길거리에서 ‘길’이란 제목의 수업을 했다.
길은 자신의 삶을 묵묵히 걸어 꿈에 닿으려는 통로다.
하지만 길거리는 잃은 자들이 머물며 아우성치는 거처다.
삶을 담담히 살아가는 이들에게 아우성의 거처는 분명 불편하다.

물난리가 반복되는, 시위가 계속되는, 선생님이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편치 않다.
태그

FTA , 이재민 , 길거리 수업

로그인하시면 태그를 입력하실 수 있습니다.
정희석의 다른 기사
관련기사
  • 관련기사가 없습니다.
많이본기사

의견 쓰기

덧글 목록
논설
사진
영상
카툰
판화
기획연재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