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의 세 고질병 : 노동강도, 평가, 민간위탁

[기고] 어린이집 정부 직영은 너무나 현실적인 요구

휴식시간 3.6분의 그 곳

아침 6시,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알람시계가 들들들 흔들어 깨운다. 씻고 옷 입고 부지런히 출근해야 7시반 부터 어린이집 문을 열 수 있다.

아침 출근 전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 부모들이 허겁지겁 아이들과 함께 뛰어온다. A의 반쯤 감은 눈에 눈꼽이 그대로 붙어있다. ‘세수부터 해줘야 겠다’ 생각하던 차에 먼저 와있던 4살짜리 B가 화장실이 급한지 선생님을 찾아왔다. 화장실에 가서 바지 내려주고 있는데, 또 한 아이가 도착했다. 아빠가 나를 계속 부른다. “선생님! 선생님? 안계세요?”

“잠시만요!”

B를 변기에 앉혀놓고 헐레벌떡 문으로 뛰쳐나왔다.

“선생님, 안 계신 줄 알았어요.”
“아 네. B가 화장실 가는 거 봐주다 보니"
“혼자 계시면 누가 왔다가도 모르겠네요.”

사실 좀 걱정되기도 한다. 일찍부터 아이들과 나만 어린이집에 있고, 오는 아이들을 마중해야 하니 문도 항상 열어놔야 한다. 오전도 오전이지만 저녁 6시부터 7시 반까지 저녁 당직 보는 날이면 어두워서 그런지 더 무섭다.

부리나케 화장실 가서 B를 봐주고, A를 씻기고, 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인사하고, 배고파하는 아이들이 있길래 어제 오후 간식 남은 것 없나 확인하고 챙긴다. 설거지하는 도중에 블록 쌓기 하자는 C의 청을 들어줄 수 없었다. 미안하다고 얘기한 뒤 D와 E와 함께 놀라고 부탁하는 동안 또 한 아이가 어린이집 문을 들어선다.

오늘은 아침 당직부터 애들이 제법 올 모양이다. 좀 한가하면 아이들과 상호작용하다가 내일 수업에 사용할 교구라도 만들어 놓을까 했는데, 내가 꿈도 야무졌지. 별 수 없이 저녁 때 남아서 일해야 할 것 같다. 당직을 2명씩 돌아가며 서볼까 이야기 나눈 적도 있었지만 이미 하루 10시간 내외로 일하고 있으니 - 게다가 초과근무수당 한 푼 없고 - 더 이상은 못 늘리겠다는 분위기다. 교사 수도 적어서 두 명씩 당직 서려면 하루 12시간 일하는 날도 꽤 될 거다.

교사가 좀 더 있거나 대체교사라도 썼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원장은 돈 없다고 난리인데 역시 힘들겠지?

사람의 혼을 쏙 빼놓을 만큼 분주한 아침은 전국 28,000여 개나 되는 어린이집에서 예외 없이 벌어지는 하루 일과의 시작이다. 이 분주함은 아이들이 모두 퇴원하는 저녁시간까지 계속된다. 지난 6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근로환경실태조사에 의하면 보육노동자는 하루 평균 10.5시간을 근무하고, 평균임금이 월 106만 원이며, 하루 평균 휴게시간은 점심시간을 포함해도 10분이 넘지 않는다.

왜 보육현장은 일이 고되고 산더미인데도 적합한 임금은 커녕 적정 인력 배치조차 안 되는 걸까?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한 산수 계산에 있다. 예를 들어 만1세 아동 1인당 받을 수 있는 최대 보육료는 35만 원, 만1세 반은 교사 1인당 5명의 아동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한 반 운영을 175만원으로 해야 한다는 소리인데, 이 비용 가지고 교사 인건비, 원장과 취사부 등 인건비 일부, 시설 운영비, 급간식비, 기타 소모품비 등등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결국 원장이 가장 줄이기 쉬운 비용은 교사 인건비와 급간식비가 되겠다. 보육노동자의 임금이 열악하고 어린이집 비리하면 급간식비리가 비일비재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실제 2004년 여성가족부의 보육단가 연구보고에 의하면 만1세아를 1개월 동안 어린이집에서 돌보기 위해 소요되는 비용은 70만 원이 넘는다. 보육 공공성 확보는 막연한 구호가 아니다. 이미 보육에 드는 비용은 부모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위를 훌쩍 넘어섰다. 결국 이 사회가 보육에 대한 공동책임을 인식하지 않으면 아이를 낳은 부모와 그 아이를 돌보는 보육노동자의 희생은 영원히 해결 불능이다.

평가야말로 노동강도 악화의 주범

보육노동자의 노동조건 열악함은 수차례 연구보고에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설상가상으로 보육노동자의 퇴근 시간을 저녁 10시 이후로 고정시켜버린 또 하나의 정부 정책이 있다. 바로 평가인증제이다.

2004년에 도입된 평가인증제는 어린이집의 ‘자발적 선택’을 강조하고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이미 인천시에서는 평가인증제를 통과하지 못하는 어린이집의 경우 보육노동자에게 지급하던 처우개선비를 더 이상 지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처우개선비는 열악한 보육노동자의 임금 보존차원에서 지급되던 것인데, 명백히 목적을 가지고 지급되던 예산을 엉뚱하게도 평가인증제와 연동시킨 것이다.

인천지역은 요즘 평가인증제 통과를 위한 어린이집들의 피나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평가인증제 통과한 어린이집 원장의 특강이 이어지고 있고, 준비를 위해 1년 전부터 보육노동자들의 퇴근시간은 오후 10시 이후가 되었다. 지난 5월 전국보육노조 인천지부가 실시한 실태조사에 의하면 평가인증제 준비이후 보육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이 하루 12시간으로 증가하였다. 증가한 시간은 진정으로 평가되어야 할 아동의 보육이 아닌 환경미화, 서류 작성, 회의 등으로 채워진다.

여성가족부는 마치 평가를 잘 받으면 좋은 어린이집인 양 평가인증제를 홍보하고 있지만, 정작 보육노동자는 늘어난 노동시간과 강도로 인해 아동 보육에 충실할 수 없다. 지난 2년간의 보육일지를 비롯한 각종 서류가 산더미같이 쌓이고 심지어 어떤 어린이집은 원장이 어린이집 주변 배수로의 뚜껑을 모두 열고 청소하도록 시키기도 한다. 바깥놀이 모래 채우기부터 정원관리까지 모두 보육노동자의 손으로 이루어지며 주말에도 나와 장판 깔고 벽지 다시 붙이고, 문고리 바꾸고 묵은 때 모두 제거해야한다. 어떤 민간어린이집은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이유로 평가인증제를 포기하는 경우도 발생하는 데, 이런 경우에도 처우개선비를 못 받는 보육노동자만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다.

평가에 통과하지 못한 시설이야말로 각종 지원을 통해 정상적인 시설로 올곧게 세워야 하지만 여성가족부는 그저 평가만 할 뿐 어떠한 지원책도 마련해놓고 있지 않다. 인천시의 처우개선비 연동과 같은 정책에도 그저 ‘지자체의 판단’일 뿐이라며 묵과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열악한 보육현장에서 섣불리 평가인증제를 도입한 것은 아동 중심 평가보다는 어린이집의 외향과 형식적 서류 갖추기와 같은 요식적 평가로 전락하면서 증가하는 노동시간과 강도를 통해 보육노동자만 쥐 잡듯 잡는 꼴이다.

오히려 여성가족부가 어린이집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관리감독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보육 공공성 강화가 관건이다. 95%가 넘는 민간 영리 사업장에 맞서 보육공공성을 강화하려면 국공립어린이집 확보는 필수이다. 지금도 여성가족부는 ‘민간시설은 민간 사업자들인데 우리가 손댈 수 없다’며 관리감독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호소가 아닌 실행의 차원으로 전환되려면 결국 일정 수준 이상의 국공립 어린이집을 확보하여 명백한 국가의 관리감독 권한을 획득하고 그 밖의 민간에 대해서도 비영리 영역임을 명확히 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국공립이라는 허울을 쓴 민간위탁

한편 국공립이라도 다 같은 국공립어린이집이 아니다. 현재 전국의 4.8%밖에 안 되는 국공립어린이집은 대부분 민간위탁시설이다. 부가 아동에 대한 지원이나 인건비의 일정비율을 지원하고 있지만 단체나 개인에게 운영을 위탁하면서 각종 비리가 생겨나고 마치 사유재산인 양 운영되고 있다.

실제 울산 국공립 반구어린이집의 경우 지난 2005년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교사를 해고한 이후 노동조합의 힘으로 복직이 되자, 원장은 1년 동안 경영 악화를 준비하였다.

반에 아동 수가 모자라도 원아모집을 하지 않은 채 원장은 올해 5월 1일에 교사 2명, 6월 1일자로 교사 2명을 연달아 해고시켰다. 그 결과 어떤 반은 한 달 사이 담임이 3명이나 교체되는 바람에 야뇨증에 시달리고, 어린이집 가기 싫다며 정서불안을 호소하는 아이도 생겼다.

반구어린이집의 급간식은 한달 내내 같은 식단, 일주일에 점심으로 1번 이상은 국수가 나왔고, 검은 콩 5알과 멸치 5개가 간식일 때가 부지기수였다.

5월부터 노동조합과 학부모 대책위원회의 노력으로 원장은 결국 사표를 내고 위탁이 해지되었으나, 나가기 3일전에도 마지막 한명의 노동조합 조합원이었던 교사에게 해고장을 날렸다.

반구어린이집은 3개월 사이 5명의 노동자를 해고시키고 부실 급간식과 고의적 경영 악화 등을 일삼은 원장의 손에 무려 2년이 넘게 파행 운영되어 왔지만 정작 위탁을 준 당사자인 울산 중구청은 ‘권한이 있는 원장이 한 일이니 우리가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구청은 국민의 예산이 지원되는 시설에서 벌어진 각종 문제에 대해서조차 민간위탁을 앞세워 어떠한 개입과 해결의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문책이 들어올까 노심초사하는 것인지 싸가지없이 원장과 구청에 대든 보육노동자에 대한 징계성 처사인지 몰라도, 책임 회피가 그들의 유일한 대응이다.

대부분 민간위탁이 지자체로부터 형식적인 서류 검토를 통한 관리감독을 받고, 혹여 문제가 생겼을 경우 지자체는 그 여죄를 원장에게 돌린다. 원장은 끝까지 잘못 없다고 버티거나, 안되겠다 싶으면 그냥 위탁 해지하고 날아버린다. 심지어 지자체는 급간식 비리나 공금 유용 등의 전적으로 원장 책임인 사안도 보육노동자들에게까지 그 죄를 묻고 원장을 통해 미리 해고시킴으로써 정작 자신들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책임자 문책을 완료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 민간위탁은 정부로 하여금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고 ‘국공립’이라 이름 붙여 국가의 치적으로 자랑할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는 것이다.

괜찮은 단체나 개인이 위탁받은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에도 정부의 이상한 지원책으로 인해 경영의 어려움을 겪는다. 국공립어린이집 교사의 인건비는 정부로부터 영아반의 경우 인건비의 80%, 유아반의 경우 30%를 지원받는 데 그것도 반 당 아동수가 일정 수 이상 채워져야 지급된다. 반에 아이가 1명이 있더라도 교사가 1명 필요하고 학기말, 학기초의 경우 아동의 이동이 잦아지는데, 정부의 지원정책엔 이러한 보육의 현실이 외면되어 있다. 실제 수원의 한 어린이집은 학기 초 아동 수가 부족하여 인건비 지원이 나오지 않자, 교사들이 몇 개월 동안 임금이 삭감된 채 지내야 했다. 지역 병설유치원이 단 한명의 원아가 있어도 제대로 된 간식과 정확한 교사 월급 지급을 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른 구조이다.

결국 어린이집의 적합한 운영을 도모하고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신속한 해결과 분명한 책임 소재를 논하려면 정부에 의한 직영이 필요하다.

최근 여성가족부는 기본보조금 제도를 통해 교사 인건비를 올리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헛소리다. 기본보조금 제도는 아이들 머리 수 당 지급되는, 따라서 어린이집 입장에서는 매우 유동적인 수입원이다. 그러나 교사는 매월 고정적으로 인건비를 지급해줘야 하는 존재이다. 여성가족부가 기본보조금 제도만 남기고 이후 국공립에 지급하던 인건비 지원제도마저 없애겠다는 것은 보육노동자들에게 아이들을 잘 돌보는 시간을 빼앗고 근처 어린이집이나 학원, 유치원들과 원아 확보 경쟁을 벌이도록 유도한다. 여성가족부는 기본보조금 제도를 통해 부모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면서도, 결과적으로 보육에 대해선 어떠한 실질적 책임도 지지 않게 되는 것이다.

최근 학교 급식 직영화 목소리는 급식업체와 학교와 주정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민간위탁의 폐해를 통해 나타났다. 어린이집 역시 민간위탁의 폐해를 없애고 그로 인한 비리와 노동자 착취 구조를 없애려면 정부가 직접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직영화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말

김지희 님은 전국보육노동조합 교육선전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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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사

    현직 초등교사입니다. 보육문제가 매우 중요한 부분이란 것을 시간이 가면서 더욱 절감합니다. 그런데 보육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부족합니다. 정부의 무책임함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보육노조의 투쟁을 지지합니다.

  • 김태환

    너무 이상주의적인 시각이군요... 좀 현실적인 시각을 가집시다. 정부 직영을 한다고 해서 비리, 부정부패가 반드시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 쭌모

    현실적인 시각은 지금 이시간에도 어린이집에서 아이들과 보육교사는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바로 그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지금 당장.

  • 교사

    현직 보육 교사입니다. 구립을 다니고 있음에도 매우 어려운 현실은 사실입니다. 말이좋아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주기 위한 평가인증이라고 하지만 평가인증을 진행함으로 인해 준비하는 교사들은 10시의 퇴근도 상당히 어렵고 매일같이 밤을 지세우고 환경정리를 해야 하고 평가인증을 준비하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도 아이들을 보육해야 하며 주말에도 나와 일해야 하는게 현실입니다. 이상주의적 시각이라고 하지만, 병설 유치원과 구립 어린이집의 현실을 비교만 해도 상당히 처우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분명 나라에서 지원을 해주지만 지원율과 교사의 처우가 상당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분명히 정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교사가 행복하고 교사가 진정으로 웃을수 있는 원이라야 아이들이 행복한 원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평가인증을 준비하며 그만두는 교사역시도 만만치 않으며,
    평가인증이 통과가 되더라도 너무 힘들어 지쳐 그만두느 교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평가인증의 혜택이 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교사개인에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평가인증이 통과된 원이라도, 막상 평가인증때 같이 준비했던 교사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신입교사들이 모이는 원이 한 두곳이 아닙니다. 그런곳이 사실 여성부가 강조하는 평가인증 어린이집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평가인증을 준비한 교사가3분의 2정도는 있어야 올바른 평가인증 어린이집이라고 생각됩니다. 여성부는 반드시 보육정책을 맡은 책임을
    다해야 항것입니다. 보육을 원하는 학부모의 입장과, 보육을 담당하는 교사의 입장을 반드시 재고려 해보고 올바른 운영을 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 우향기

    현장에 있는 보육교사3년차 입니다. 여성부 평가인증하며 이가 갈리지요.ㅠㅠ 세월이 지나 얼마나 많은 노동착취를 했는지 알면 청문회에서 처벌받아하는 책임자가 분명 있어야합니다.^^ 그많은 보육교사들을 그렇게 악랄하게 부려먹고 지금도 그 형태가 자행되고 있습니다. 고스란히 아이들에게로 그 피해가 가지요. 평가인증 형식이 아닌 교사, 아이들, 부모, 원 모두가 공존할수 있는 대안이 마땅히 나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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