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순간

[류미례의 언제나 영화처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보육을 위해

"여성들은 연인, 동료, 아내, 엄마, 노동자이기 이전에 성인이고 시민들이다. 모든 부불노동은 생활을 보조하고 사회를 유지하는(가사노동, 교육, 자녀 양육 등) 소위 여성의 일이라 일컬어지는데, 이러한 노동은 부를 창조하는 경제활동이고, 가치가 매겨져야 하며 분담되어야 한다"(인류를 위한 세계여성헌장 중)

2001년 엄마가 되었다. 그 당시 나는 하루 두 시간의 교육을 받기 위해 여덟시간을 길바닥에 뿌려야했다. 신갈에 있는 엄마에게 아기를 맡기는 데 4시간, 다시 찾아 오는 데 4시간 그렇게 8시간을 길에 뿌려야했던 것이다. 단지 사흘 동안의 교육이었음에도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교육 마지막 날은 폭설 때문에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전화기 저 편 아기 울음소리를 들어야했다. ‘내 욕심이 너를 울리는 구나...’ 그 후로 몇 년동안 나는 교육이든 영화 관람이든 아기와 함께 할 수 없는 일은 꿈도 꾸지 않았다. 엄마가 되는 일, 아기 키우는 일은 그렇게 자기를, 자기의 욕망을 잊어야하는 일이었다.

2006년, 나는 이제 사무실에 출근하여 하루 8시간동안 나의 일을 한다. 저녁이 되면 행복한 얼굴의 아이들과 밥을 먹는다. 자책도 없이 눈물도 없이 나는 평온하게 내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눈을 감고 살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누리는 시간에 대해서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가 이 부조리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확대 재생산시킨다. 나는 내가 누리는 이 시간이 어떻게 해서 확보되는지를 알고 말았다.

출산을 할 수 있는 몸을 가졌다는 것이 육아를 전담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렇다. 입덧 때문에 쉴 새 없이 먹을 걸 구하고 수유와 육아에 지친 몸으로 허겁지겁 밥을 처넣으면서 나는 내가 짐승같다고 생각했다. 그리고……외롭다고 생각했다. 그 때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씩씩이어린이집의 이모들에게 아기를 맡기고 차차 내 시간을 누리면서 평온을 찾아갔지만 사실 그것은 사회가 육아와 관련한 짐을 나눠지는 것이 아니라 그 외로운 자리에 누군가를 밀어넣는 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06년 6월,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근로환경실태조사에 의하면 보육노동자는 하루 평균 10.5시간을 근무하고 월평균임금이 106만원이며 하루 평균 휴게시간은 점심시간을 포함해도 10분이 넘지 않는다. 일 분 일 초도 쉬지 못한 채 오로지 허기만을 해결하는 급한 밥을 먹는 그 외로운 자리를 ‘생물학적 엄마’가 아닌 ‘사회적 엄마’가 대신하고 있을 뿐이다.

어찌된 일인지 이 사회는 엄마들에 대해서는 함부로 다뤄도 된다고 생각한다. 모성을 숭고한 어떤 것으로 칭송하며 신의 지위로까지 끌어올리는 그 이면에는 육아는 당연히(!) 엄마들만의 몫이고 그 엄마들은 전지전능해야한다는 파렴치한 책임전가가 숨어있다. 보육노동자들을 혹사시키면서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논리 또한 이와 다르지 않다.

저출산,고령화사회를 걱정하는 목소리들은 출산하지 않는 여성들에 대한 비난을 포함한다. 하지만 이 시대의 현명한 여성들은 출산파업을 선언했다. 누군가의 희생을 전제로 유지되는 이 재생산시스템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인 것이다. 그 한편에서 나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눈을 감은 채 엄마가 되었고 운좋게도 좋은 어린이집을 만나 걱정없이 육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행운에 힘입어 이 현실에 눈을 감는 것은 비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행복한 엄마가 행복한 아이를 키우듯 행복한 보육교사가 또한 행복한 아이를 키운다. 엄마와 아이와 보육교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나는 보육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시작한다. 연대라는 것, 이렇게 시작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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