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칼호 탐사를 마치고 바이칼의 전진기지라고 볼 수 있는 이르쿠츠크(일제시대 조선공산당과 인연이 많은 도시다)에서 야간 열차를 타고 내린 곳은 바이칼 호를 가운데에 놓고 이르쿠츠크의 정반대, 즉 바이칼호의 동남쪽에 위치한 러시아의 브라이트자치주의 수도인 울란우데. 울란우데는 붉은 강이라는 뜻으로 브라이트족은 몽고계로 DNA 검사결과 한민족과 가장 유사한 DNA를 갖고 있는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브리아트족에 대해서 울란우데 역에서 만난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시내도보관광을 나섰다. 그런데 갑자기 눈에 들어온 것은 레닌의 거대한 두상이었다. 소련동구 몰락후 이제는 ‘죽은 개’ 취급을 받고 있는 레닌의 동상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사실에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해 가까이 다가갔다. 세계에서 가장 큰 레닌의 두상이라는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러시아가 거대한 나라로 예전에는 황제의 칙령이 변방에 도착하는데 만 일 년이 걸렸고 지금도 시장경제가 완전히 자리잡은 모스코바와 달리 변방은 사회주의의 유제가 상당히 남아 있다는 이르쿠츠크에서 만난 현지 한인교수의 설명이 생각났다. 그런데 다가가서 자세히 살펴보자 조각의 대리석 받침대의 아래쪽 대리석 2개가 다른 대리석과 다른 검은 색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의아해 옆으로 돌아가자 옆에도 마찬가지였다. 다시 한 바퀴를 완전히 돌자 흥미롭게도 받침대와 조각 어디에도 조각에 대해 설명한 글씨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아, 그렇구나. 소련이 몰락한뒤 레닌을 찬양하는 문구를 써 놓았던 하단부의 대리석을 없애고 새 대리석으로 갈아 넣은 것이 분명하구나”라고 나름대로 추리를 해봤다.
▲ 동시베리아 울란우데시의 혁명광장에 서있는 혁명열사비 |
얼마 뒤 박물관 안내원이 다른 전시물의 설명을 마치고 이쪽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궁금한 것에 대한 질문을 퍼부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1910년대 한국인들만이 아니라 중국인, 일본인, 몽고인들이 시베리아철도건설을 위해 노동자로 와 이곳에 정착하고 살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중 한인의 수는 약 1만명 정도였다고 한다. 특히 이들은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들로 러시아혁명에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 러시아인, 중국, 일본, 몽고인들과 함께 1917년 동시베리아 지역의 노동자, 농민, 병사들이 모인 노동자, 병사, 농민대회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으로 혁명에 참여했고 이후 일본이 백군, 즉 반혁명군을 도와 이 지역에 참전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혁명과정에서 모두 10만명의 노동자, 농민, 병사들이 목숨을 잃어 문제의 탑은 이들을 기리는 것이라고 징그스씨는 설명했다. 이중 희생자중 몇 명이 한인이었느냐는 질문에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혁명과정에서 직접적으로 희생이 된 사람만이 아니라 열악한 식량사정 등으로 사망한 사람까지를 포함하면 70%인 7천명이 희생됐다고 대답했다. 답답하지만 그 이상의 정보를 얻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1910년대 망국과 가난을 피해 우리의 선조들이 이곳 바이칼해 근처의 시베리아까지 이주해 와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일본, 중국, 몽고 노동자들과 함께 시베리아 철도건설에 참여했고, 이중 상당수가 노예 같은 삶에 저항해 러시아혁명에 참여했다가 목숨을 잃었다니,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놀라운 이야기인가?
문득 26년 전의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개인적으로 1980년 봄 기자로 일하다가 광주학살에 대한 전두환일당의 보도통제에 저항해 신문제작거부운동을 벌리다 언론사를 떠나 유학을 가야했다. 도착한 미국 텍사스 오스틴의 한 헌 책방에서 「야만의 멕시코」라는 낡은 책을 발견했다. 1910년대의 멕시코를 여행한 한 진보적인 미국저널리스트가 멕시코의 야만적 현실을 고발한 글인데 재미있을 것 같아 사가지고 집으로 와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기자가 유카탄반도를 가자 발에 노예처럼 쇠고랑을 맨 동양인이 있어 누구냐고 물어보자 속아서 이곳으로 팔려온 한국인이라고 답했다는 내용이었다. 충격적인 그 내용에 그 책을 가지고 다음 해 한국에 들어와 한 기자에게 주며 취재해보라고 이야기를 해줬다. 이후 나의 귀띔이 단서가 됐는지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애니깽」이 책으로 출간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이 에피소드처럼 누군가 이들 시베리아 한인 노동자들의 잊혀진 이야기를 추적해 쓰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날 이후, 시베리아 열차는 무심하게 탈 수가 없었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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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 님은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