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헤즈볼라가 아니냐'고 물어라"

[한상진의 레바논통신] 레바논 정부에 등 돌린 레바논 민심

민중언론 참세상은 현재 레바논에 머물며 현지에서 반전평화활동을 벌이고 있는 평화활동가 한상진 씨의 글을 연재하는 ‘한상진의 레바논 통신’을 마련했다. 한상진 활동가는 지난 2003년 이라크 전 당시에도 이라크에 들어가 반전평화 활동을 벌였고, 최근까지 터키에 머물며 쿠르드 난민 관련 평화활동을 계속해왔다. 터키 디야르바크르에서 머물고 있던 한상진 활동가는 우여곡절 끝에 지난 10일 레바논에 들어갔다. 한상진 활동가는 현지에 머물며 이스라엘의 UN평화결의안 이행을 감시하는 활동과 함께, 현지의 생생한 소식들을 전하는 활동들을 진행할 예정이다.


9월14일. 레바논과 터키 쿠르디스탄

레바논 남부지역의 도시인 티레를 다녀왔습니다. 약 80Km남짓의 거리를 이동하는데 적게는 2시간 반, 많게는 4시간이나 걸리더군요. 이스라엘이 레바논의 주요 간선도로의 다리들을 모두 파괴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들 다리들은 주요 군사 목표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헤즈볼라의 무기 유입로를 차단한다는 것도 사실 구실에 불과합니다. 나라 전체를 봉쇄하지 않는 한 우회도로는 얼마든지 있기 때문입니다. 그보다는 단지 주민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이런 불편함이 헤즈볼라로부터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함으로써 헤즈볼라와 주민들 간의 사이를 벌려놓기 위한 이간책이라는 게 더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는 의식이 마비되어 판단력을 상실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행위입니다. 마치 미국이 지금 그러고 있듯이...

  헤즈볼라 깃발을 꼽아놓은 한 민가. 어린아이들이 놀다가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집도 일부분이 파괴되었으며, 부분 파괴가 이뤄진 집은 추가 붕괴의 위험이 있어서 주민을 이주시키고 집을 완전히 부순 후 새로 지어야 하지만, 대부분 갈곳없는 주민들은 파괴된 집에서 그대로 살고있다

누가 폭격을 해서 파괴를 저질렀고, 누가 이들을 막기 위해서 노력했는지를 뻔히 아는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감사하고 헤즈볼라를 비난하기를 바란다? 많은 미국인들은 왜 국제사회가 자기들을 미워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오랫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한 나라로 존재하면서 의식이 마비되어 판단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 그들의 정부는 테러를 근절하고 세계의 민주주의를 신장시키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노라고 끊임없는 세뇌를 시도합니다. 판단력을 상실한 사람들은 그들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믿게 됩니다.

이스라엘에서도 비슷한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랫동안 중동 최고의 군사력을 가진 강국으로, 그리고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들로부터 중동에서 가장 민주화된(이들이 말하는 민주화의 기준이 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라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런 착각 속에서 모든 일들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바대로 흘러갈 것이라고 믿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간 일부 아랍 국가들은 사실 이스라엘이 의도하는 바대로 가지고 놀 수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헤즈볼라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지고 놀 수 있는 손아귀 속의 공깃돌이 아니었습니다.

  파괴된 교차로의 다리 중 하나. 베이루트 이남 지역의 교차로 및 고가도로 중 90% 이상이 파괴되었다. 파괴되지 않고 남아있는 다리는 이스라엘이 자국군의 이동을 위해 남겨두었거나 전투기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빗나가는 바람에 미처 파괴하지 못한 것 뿐이었다


  파괴된 학교 건물

터키와 이스라엘, 그들의 공통점

그제 저녁에는 제가 살고 있는 터키 디야르바크르에서 커다란 폭탄 테러가 있었습니다. 레바논 남부를 다녀오느라 어제 저녁에야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폭탄이 폭발한 곳은 작지만 아름다운 공원에 아담한 카페가 꾸며져 있어서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평소에 제가 자주 이용하는 공원 바로 옆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터키에 있었다면 그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간 ‘쿠르드 자유의 매’라는 단체가 터키군의 쿠르드족 게릴라에 대한 군사작전이 심화되면서 이에 대한 반발로 터키의 유명 관광지에서 몇 차레 폭탄 테러 공격을 저지른 바 있습니다. 아마도 이번 폭발은 터키의 군 정보기관에 의해 저질러진 것이라는 분석이 쿠르드족 사이에서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폭발이 있기 직전에 터키군 정보기관(JITEM)의 움직임이 디야르바크르에서 포착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터키족 거주지역에서 테러를 저지른 것에 대한 보복으로 가장 큰 쿠르드족 도시인 디야르바크르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보입니다.

터키에서는 군부나 정부에 의해서 민간인에 대한 이런 테러가 저질러지더라도 별로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유사한 일들이 여러 차례 발생했었기 때문입니다. 90년대 초반에는 약 4만에 가까운 쿠르드족이 터키 군과 터기 정부의 후원을 받는 이슬람 무장 세력에 의해 학살을 당한 후, 이 모든 게 쿠르드족 무장 게릴라인 PKK의 소행이라고 터키 정부는 주장을 했고, 지금 많은 터키인들은 쿠르드족 게릴라가 4만 명의 터키인을 학살했다고 믿고 있습니다.

어쨌든 터키의 유명 관광지에서 테러가 발생할 때마다 PKK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서 테러를 비난하고 우리는 터키와 평화를 원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터키 정부와 언론은 이러한 테러가 PKK의 짓이라고 주장을 하곤 합니다. 이번 디야르바크르 테러에 관해 터키 경찰은 공식적으로 테러범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진 게 없다고 발표를 했지만, 터키 언론들은 벌써부터 ‘PKK의 소행으로 추정된다’며 연기피우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이번 폭발로 8명이 죽었고 16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사망자 중 6명이 1살 난 갓난아이를 포함한 어린아이 들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터키에 돌아가면 제가 아는 사람 중 누군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터키와 이스라엘은 대단히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원주민들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지역을 점령한 후 이들을 이등 국민으로 만들어 탄압을 한다던지, 이들 폭압적 정권들이 국제사회에서는 민주적인 정권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던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팔레스타인과 쿠르드족에 대한 탄압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서로 유사하다는 사실을 과시라도 하듯이 이들 두 나라는 돈독한 유대 관계를 자랑합니다.

PKK와 하마스, 헤즈볼라를 미국의 CIA를 이용하여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있는 것도 비슷한 점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하여 자국내의 소수민족뿐 아니라 이웃 국가까지 괴롭히는 점도 비슷한 점입니다.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나스랄라의 사진을 들고 환호하는 사람들

9월 13일. 레바논엔 정부가 없다?

미국인 평화운동가, 노르웨이 기자, 그리고 저 이렇게 세 사람이 오늘 베이루트 남부지역의 이스라엘 폭격 현장을 다녀왔습니다.

가는 도중에 길거리에서 한 레바논 사람을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미국인 평화운동가와 제가 우리는 우리 정부를 싫어한다고 말하자 그 사람은 "우리에겐 싫어할 정부마저 없다"라고 대답을 하더군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과 싸우는 동안 얌전하게 이스라엘군에게 포로로 붙잡혀 주었던 레바논 정부군, 헤즈볼라가 총 대신에 삽을 들고 재건을 돕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을 때 토니 블레어를 보호하기 위해서 시내 전체를 봉쇄하고 있던 레바논 군을 보면서 그들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더군요. 사실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폭격하고 있을 당시에도 레바논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국제사회에 도와달라는 호소만을 하고 있었으니 사람들이 헤즈볼라에 그토록 환호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독교인들도 헤즈볼라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베이루트 남부 지역의 모습은 눈에 익은 모습이었습니다. 바로 이라크의 모습이었으니까요.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미군은 공식적으로는 오폭이라고 주장을 하였지만, 이스라엘은 민간인들이 살고 있는 10여 층 되는 아파트 건물을 조준폭격 한 정도의 차이가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끝없는 분노를 표시하면서 "이딴 집은 없어도 상관없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이다"라고 부르짖고 있었습니다. 어제 토니 블레어가 레바논을 방문했을 때 레바논 사회당과 한 시민단체에 의해서 조직된 항의 시위에는 불과 수 천 명이 모였었습니다. 그런데 이곳 이스라엘에 의해서 파괴된 곳에서 헤즈볼라가 어제 저녁에 모임을 조직했을 때는 수 만 명이 모였더군요. 4개의 건물이 파괴되어 광장이 되어버린 곳을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는 모습을 찍은 휴대전화 동영상을 보여 주면서 이곳의 사람들이 헤즈볼라를 얼마나 좋아하고 지지하는지를 이야기해 주더군요.

레바논에서는 어딜 가나 온통 헤즈볼라 이야기고, 외국인을 보면 청소년들은 두 손을 들어 V자를 그리면서 "헤즈볼라 만세"를 외치고 지나갑니다. 레바논 총리가 뭔가 중요한 성명을 발표해도 사람들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지만,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나스랄라’의 목소리만 들려도 환호를 합니다. 아마도 다음 선거에서는 헤즈볼라 출신의 총리가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때도 미국은 여전히 헤즈볼라를 테러리스트라고 할까요?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에게 그랬던 것 처럼 레바논에 대한 모든 지원을 중단할까요? 과연 미국의 반응이 궁금해집니다.

  "두 이스라엘 군인이 사로잡힌 대가로 수백명의 우리 아이들이 죽었다. 이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글귀와 토니 블레어를 보호하기 위해 배치된 군인들이 서있는 모습

9월 11일. 헤즈볼라는 재건을, 레바논정부군은 토니 블레어 경호를..

토니 블레어가 오늘 레바논엘 왔었고, 이에 항의하는 집회가 베이루트 시내의 국회 인근에서 자동소총으로 중무장한 군인들로 둘러쌓인 채 열렸습니다. 집회 자체는 아랍의 다른 나라들에서 열린 집회들과 크게 별다를 것은 없었고, 참가자 수도 애초에 예상했던 것보다 적었습니다만, 최근의 레바논 분위기를 전해주는 듯 참가한 사람들은 대단히 열성적이었습니다.

레바논 남부지역을 방문하고 온 한 친구가 현지인들과의 한 모임에서 "당신들 중 누가 헤즈볼라냐"라는 질문을 던지자, 그 중 한사람이 "누가 헤즈볼라가 아니냐"고 묻는 게 더 빠를 것이다"라고 대답하더랍니다. 헤즈볼라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의 재건과 복구를 돕고 있었지만, 반면에 레바논 정부군은 토니 블레어를 보호하기 위해 집회장을 봉쇄하고 시내 곳곳에서 경계를 서고 있었습니다. 베이루트 시의 규모와 제가 돌아다니면서 만난 군인들의 수를 감안할 때 최소한 1만 명은 넘는 군인들이 베이루트 시내 곳곳에 배치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물론 군인들이 집회 참석자들에게 적대적이거나 집회를 방해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모습이 레바논 사람들에게는 "헤즈볼라는 총을 내려놓고, 사람들을 돕고 있는 이 순간에 레바논 정부군은 그들의 적으로 간주되는 토니 블레어를 보호하기 위 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집회 중간 중간 스피커에서 헤즈볼라의 지도자인 나스랄라의 목소리가 나오면 사람들은 환호를 지르면서 열광하였습니다. 결국 집회 참석자들은 토니 블레어의 일행의 모습을 멀찍이서도 보지 못하고 두어 시간 만에 해산하고 말았습니다. 저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숙소로 돌아와서 TV를 통해서 겨우 블레어의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덧붙이는 말

한상진 활동가 후원계좌 하나은행773-910053-98605, 제일은행250-20-440303, 국민은행063301-04-054340, 농협205035-56-033336 예금주: 김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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