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중동과 새로운 한미동맹?

[기고] ‘9.23 반전행동’, ‘9.24 평택 4차 평화대행진’에 부쳐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2001년 9.11 사태는 세상을 바꿔 놓았다. 또한 세계 시민들은 이라크 침공에 경악하면서 세상이 그 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한반도 땅에 사는 우리 역시 5월 4일 평택 ‘여명의 황새울’ 진압작전과 9월 13일 강제철거를 목도하면서 그 형언할 수 없는 폭력과 야만성에 치를 떨었고 사태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꼈다. 우리는 9.11-이라크 침공-평택 진압의 연관성을 직감하게 된다.

9.11이 발발한 직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를 공포분위기로 몰아넣어 국제적 공안정국을 형성하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2003년 3월 20일에는 이라크를 침공했고 그 날 노무현정권은 이를 지지하는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다음 날 국무회의에서 파병을 결정했다. 파병은 공병․의료부대에서 전투병으로 확대되었고 기간도 계속 연장되었다.

그 와중에 미국은 새로운 동맹재편 전략에 기반하여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현대화’하고자 했고 동북아 미군을 ‘붙박이’가 아니라 ‘신속기동군’으로 만들려 했다. 그래서 노무현정권은 ‘전략적 유연성’을 받아들였고 평택 땅을 미군의 전진기지로 내주었다.

그렇게 9.11이 지나간 자리, 미국에는 새 건물이 들어서지만 이라크는 점점 전쟁에 신음하는 고통의 땅이 되었고 레바논은 파괴되었으며 한국에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위협이 들어오고 세계는 더욱 갈등과 폭력에 시달리게 되었다.

전쟁의 수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에서 벌어지는 전쟁에서 미-영 제국주의의 자본집약적인 하이테크 무기는 저항세력의 재래식 게릴라 전술에 고전하고 있다. NATO군대는 탈레반에 밀리고, 미군은 이라크를 최소한으로도 통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장거리 로켓포에 허를 찔렸다. 그것은 저항의 정당성과 관계가 있다. 영토를 유린하고 민간인을 학살하며 재산을 파괴하는 공격군은 (종교적인) 신념 혹은 민족적인 저항의지로 훈련된 세력을 뿌리뽑을 수 없다. 그래서 군대와 무기 면에서는 압도적인 비대칭 전쟁이지만 승리하지 못하는 장기전이 되는 것이다.

발을 빼고 싶어도 쉽게 뺄 수 없고 한 번 시작한 전쟁이니 이기지 못하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되므로 점점 더 깊은 전쟁의 수렁에 빠진다. 현재 이라크가 미국에게 정확히 그러한 의미인 것이다.

한 달에 3천 명이 사망할 정도로 종파갈등이 심각하니 이라크를 연방제로 하자는 제안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지만 나라를 쪼개는 안이 이라크인들에게 받아들여질 리 만무하다. 또 다른 제국주의적 논리일 뿐이다. 미국도, UN도, 친미 아랍국가들도 다 마찬가지로 허우적대고 있다.

그러면 자이툰 부대는? 계속 그렇게 미군과 한 몸이 되어 추락해야 하나? 막대한 재정과 인력을 들여 이라크 북부 아르빌의 사막에서 주둔하는 자이툰 부대는 한미 전쟁동맹의 상징일 뿐, 이라크 점령의 보조자로서 주둔하다가 피해 없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 최대의 목적이 된 100만 평의 수용소와 다를 바 없다. 그것도 2년이 넘었다. 더 이상의 수렁에 빠지기 전에 돌아오는 것이 최선이다. 비싼 돈 들이고 애먼 장병들 보내 생색내기 하는 건 그만해야 한다.

새로운 중동, 새로운 한미동맹이라는 미국과 노무현의 망상

한편 이스라엘의 레바논 공격은 미국이 그리는 ‘새로운 중동’의 일단을 보여주었다. 별로 새롭지 않은 걸 새롭다고 우격다짐하는 미국의 정책은 단순하다. 미국의 세계 전략에 반대하거나 저항하는 정권이나 정치세력을 붕괴시켜 결국에 친미정권을 수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최신 무기로 무장시켜 공격력을 과시하게 했다.

그러나 헤즈볼라는 제거되지 않았고 오히려 순식간에 아랍권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무지막지한 공격은 아랍민중들을 단결시키기까지 했다. 반미 저항세력에 대한 공격이 반미전선 강화라는 부메랑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돌아온 것이다.

이란 공격의 전초전이라는 레바논 공격이 이리 되었으니 이란 공격은 더 어려워진 셈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와 미국식 자유민주주의를 이식하려는 전략이 군사적 공격을 동반하게 되지만 그 ‘21세기 십자군’은 저 옛날 십자군처럼 무수한 저항에 의해 비참한 말로를 겪게 될 것이다.

미국과의 정치․경제․군사적 일체화를 추구하는 노무현의 새로운 한미동맹도 민중에게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주기는커녕 더욱 불안한 상황을 만들 것이다. 최소한의 민주주의마저도 거추장스러운 것처럼 내팽개치고 국민들이 반대하건 말건 FTA와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폭력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어떤 미래를 가져올지는 뻔하다. ‘친미자주’와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정신분열적 브랜드를 내세워 민중의 살림살이와 평화를 도탄에 빠트리고 소수 ‘친미 신자유주의’ 세력들만의 미래를 그리는 것 아닌가.

정의와 평화를 위한 대행진

21세기는 새로운 시대, 또 다른 세계로 가는 세기여야 하지만 현실은 신자유주의의 야만과 전쟁의 폭력으로 점철되고 있다. 그래서 장기적 의미에서 볼 때 지난 2-3년간의 반전평화 운동은 민중의 평화와 정의를 위한 21세기 대행진의 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배자들의 아둔한 머리가 무한전쟁 밖에 생각해내지 못할 때, 그것을 역전시켜 내는 것은 민중의 지혜와 행동이다.

그 시작점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반전평화 운동 역량을 키우고 모아내야 한다. 마침 이번 주말에는 ‘9.23 반전행동’, ‘9.24 평택 4차 평화대행진’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이라크 점령 중단하고 자이툰 부대는 철수하라! 노무현은 평택 미군기지 확장 중단하라!’고 모두가 외쳐보자.
덧붙이는 말

정영섭 님은 사회진보연대 노동국장으로 파병반대국민행동 기획단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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