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인이여! 조직을 건설하라

[특별기획 : 노동문학? 있다 없다](5) - 노동조합을 촉구하는 시인 하태성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지역별로 많은 노동조합이 탄생 되었고 여기에 발맞춰 지역별로 공단별로 노동자 문화가 본격적인 태동했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구로, 동부, 부천, 인천, 성남, 청계피복 등 그리고 지역에는 광주, 천안, 마산창원 등에서 노동자문학회 활동이 시작됐다.

그 많던 노동자문학회

단위노동조합과 공단 중심의 문화패를 중심으로 ’97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전개 하면서 발전을 거듭하게 이른다. ‘97년 이후 노동문화는 집회 현장에서 공연문화와 현장의 일상 문화 활동으로 크게 구분되며 공연문화는 노래패, 풍물패, 춤패 등으로 발전하였으며 일상문화는 노보를 중심으로 시와 소설, 르뽀(생활글쓰기), 만화 등으로 확산 되어 갔다.

문학의 경우는 전문적인 글쓰기 모임들이 현장 곳곳에서 들불처럼 생겨났다. 또한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단위노조 문학상이 생겨나기도 했고, 노동조합 신문(노보)를 중심으로 현장 고발과 폭로라는 현장의 불만과 욕구들을 문화와 문학의 영역에 접목시켜 나가기도 했다.

  2004년 전국노동자대회 전야제에서 전국노동자문학연대는 시낭송회를 하였다 [출처: 전국노동자문학연대]

이러한 고발과 폭로는 노동자의 현실들을 사회적 문제로 인식시키는 한편 노동자도 문화 공간에 중요한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키는데 크게 공헌했다. 이를 계기로 전태일, 윤상원 문학상이 제정 되어 이를 통해 노동자 문예 운동가들이 대거 기성문단에 등단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시련

또한 현장에서는 노동조합을 중심한 문학상이 생겨나 노동조합 스스로가 문화운동의 주체가 되었고 문화역량 강화라는 말이 어울릴만한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IMF 환란이후 신자유주의 거센 공세 속에서 노동조합은 공세적인 투쟁에서 수세적인 투쟁으로 빼앗는 싸움에서 지키는 싸움으로 미래를 위한 투쟁에서 현안 위주의 투쟁으로 바뀌면서 노동문화운동도 시련을 맞이했다고 본다.

단위노동조합에서는 집행부의 성향에 따라 문화운동이 투쟁의 부산물이 되기도 하고 투쟁의 주체가 되기도 하는 우여곡절을 거치게 된다. 예컨대 기아자동차 노동자문학상은 기아자동차 노동조합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삼아 1~2회 까지는 작품집 발간 및 수상자를 만들어냈으나, 횟수가 늘어나도 새로운 수상자를 발굴하지 못하고 현장 모임은 급속도로 침체 되어가고 노동조합 집행부는 현안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에 전염한 나머지 지속가능한 노동문화운동이라는 역사의 사명을 극복하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또한, 5.18 기념사업회와 노동일보가 주최한 윤상원 문학상도 5회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노동일보 역시 휴간이라는 최악의 경제적 타격을 맞이하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고 있다. 신자유주의 하의 노동문화운동은 어떤 자리여야 하는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신자유주의 혹은 새로운 세기, 사라져가는 노동문학


내가 노동자 문학을 만난 것은 ‘92년 인천노동자문학회 신입회원 모집 광고 덕분이었다. 그때 나는 시를 써보겠다는 열정 하나 밖에 없었다. 사실 나는 문학과 상당한 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인천 공단 노동자 생활은 주야 맞교대로 그야말로 노예처럼 일을 했으며, 문화생활이라는 것은 눈꼽만큼도 생활에 틈을 주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을 어떻게든 극복을 해보려고 노동조합을 찾아가기도 했으나, 현실은 넉넉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도 극복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치며 스스로 공장을 떠나야 하는 좌절을 맞보기도 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세상에는 죽어도 자기 노력으로 부자가 되거나 잘 살수 없게 되어 있는 구조적인 모순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노동자의 시를 써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 그렇게 해서 인천노동자문학회에 몸을 돌렸다.

문제는 한두 가지 아니었다. 노동자 계급성이 없었고 그렇다고 문학을 공부한 선배들처럼 이론에 밝은 것도 아니었다. 문학을 하고 싶었지만, 문학에 대한 이해나 공부가 부재했다. 노동자 계급성도 노동조합 경험이 없어 전무했음으로 계급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는지 모를 일이다. 이러한 태생적 한계에 부딪치면서 문학에 대한 공포증이 생겨났다.

문학에 대한 공포

또한, 그 공포증은 선배들로부터 가혹하게 질타 당하면서 확대되었다. 이를테면 인노문 수료식 후에 회원 인준에 필요한 작품을 써오라고 해서 그동안 썼던 작품을 모두 보여주었지만, 선배들로부터 나의 ‘시’ 라는 것들은 “이것도 ‘시’냐?”고 하는 경멸과 진정성이 없는 말장난이라는 혹독한 질타를 받기도 했으며, 노동자적 계급성과 노동자 정서가 없고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문제 삼아 회원자격을 인준을 놓고 부자유스러운 일들을 겪어야 했다.

그 일 후 나에게 ‘시’라는 것은 거의 공포에 가까운 것이 되었고 그것은 어둠의 기억과도 같은 것이다. 작품 토론회 때와 정기모임에서 시를 발표하는 것 자체가 무서운 것 이였고, 그 공포는 문학회를 포기를 고민하게 만들기도 했다. 열등은 열망 한다 열정을........ 열망과 열정 사이를 오가는 동안 무수한 일들이 일어났고 시는 잘 쓰지 못하지만 인노문에서는 일꾼으로 많은 일들을 했다.

해년마다 인천민족문화제 준비 기획하는 행사를 갖기도 했고, 많은 공단의 투쟁 현장에 결합하고 활동을 했다. 그 땐 정말 행복했다. 사람 사는 거 같았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 그때 “이건 시도 아니야”라고 소리쳤던 그 잘난(?) 사람들은 지금 모두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

그 잘난 사람은 어디로

물론 기성작가 되었고 시단에서 많은 울림을 주는 훌륭한 소설가와 시인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는 지금 인천노동자문학회 회원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과거에는 물론 인천노동자 문학회 회원이었다. 문학의 그것이 경력이 될 수 뼈아픈 문학적 자기성찰의 도구도 될 수도 있었다.

‘90년 이후 많은 노동자문학회 회원들은 전태일 문학상과 같은 문학상 수상으로 등단으로 전업 작가의 길로 접어들기도 했고 다른 부류는 현장 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노동자문학인지, 노동문학인지 하는 갈등적 구조 속에서 자기 정체성들을 고민하고 있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많은 노동자 문학회는 ’97년 신자유주의의 악령이라는 IMF 시련기를 겪으면서 쇠퇴하거나 역사 속으로 많은 노동자문학회들이 사라지게 된다. 아직도 명맥이 유지되는 노동자문학회(현재는 부천노문 단 한 곳 만 존재함)가 있지만 IMF 경제적 춘궁기를 노동자문학회의 변환기적인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 시기의 가장 큰 변화는 노동자의 삶의 질적인 후퇴다. 노동자의 삶의 질의 후퇴는 노동자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지역중심의 노동자 문학회는 전국노동문학회연대(이하 전노문)으로 통합이 시도 된다. 전국노동자문학회는 몇 년간 대동제, 노동자 문학켐프 같은 현장 문화운동에 힘썼고, 규모의 구조에서는 상당한 영향력들을 가지게 되었다.

삶의 질적 후퇴

그러나 여전히 취약한 재정적 구조나, 조직적구조의 한계는 이를 지속가능한 운동의 영역으로 편입 시키지 못한 채 개별적이고 차별적인 운동으로 지속 되게 된다. 그러나 그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전노문과 공동으로 주최한 ‘노동자문학 켐프’는 지속가능한 노동문학 운동의 시발점이기도 했다.
[출처: 전국노동자문학연대]

그러나 이것도 ‘06년 민주노총의 사업계획에는 누락되어 있어 누구의 책임이기 전에 노동운동 진영의 노동만학 혹은 노동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부족으로 생각 되어질 수밖에는 없다. 이것은 경제적 어려움 뿐 아니라 계급적 의식의 상당한 변화를 보여준 결과라고 본다.

IMF가 노동자문학회를 묶는 단단한 끈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도 엉성한 역사적 끈들을 만들어 그것으로 고집했었는지도 모른다는 반성이 앞서는 지점이기도 하다. 자본의 끊임없는 공세 속에서 노동자의 삶은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었다.

‘98년을 기점으로 많은 공기업들이 민영화(사유화)를 거치게 되고 이것은 사회공공성 파괴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다. 사회공공성의 파괴는 민중의 삶을 파괴 할 뿐 아니라 노동문화에 대한 무차별적 공세가 이어졌다. 사회서비스의 질적 저하는 노동자의 임금 인상 요구로 이어졌고, 이는 기업별 노동조합에서는 가장 시급한 현안사항으로 노동조합은 투쟁의 일변도로 변모하게 되었다.

파업만큼 좋은 정치 학교는 없다는 말처럼 노동조합의 현안 투쟁은 많은 노동조합 문화를 파생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파업 이후 지속가능해야 하는 문화 운동은 방향을 잃어버리고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일상 활동으로 파고들지 못한 노동문화는 점차 전문화 혹은 차별화(개별화) 되면서 공동체를 이탈해 개개인의 고민 개개인의 문화적 고찰로 이어지고 결국에는 전문 문화일꾼(유지비 적게 들고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것들만)만을 남긴 채 긴 역사의 뒤안길로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이것이 노동자 문학회는 쇠퇴의 길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뒤안길로

노동자 대투쟁 이후 노동문학회에서는 몇 년간은 꾸준히 문집을 내고는 역량 강화와 정기적인 모임을 통한 계급적 단결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또한, 최근 몇 년까지만 해도 작품 합평회나 문학 강좌, 노동문학제가 개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오래 가지 못했다.

많은 노동자 문학회 회원들은 자기 고민의 깊이와 다르게 노동자 계급성은 부재했다. 자본주의화 되거나 하나의 도구로써 문학은 존재했다. 그래서 지역 노동자 문학회는 지역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결국 쇠퇴의 길로 접어들었다.

면면히 들여다보면 노동문학을 하던 활동가들은 생계를 전제로 다시 노동현장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은 엄연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때의 노동현장은 꿈과 일이였다면, 지금의 노동현장은 생활과 생계가 되어있다. 여전히 노동자의 현실은 변한 것이 없는데 우리의 삶의 방향은 변질되어 버린 것일까? 삶의 고민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만큼 삶을 즐기고 뒤돌아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져버린 거였다.

IMF라는 시절을 겪으면서 우리의 삶은 황폐화되고 생계는 점점 곤란하게 되었다. 이것이 문학의 지평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가 개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였다. 그러면서 많은 문학인들이 변절하거나 변절 되어 버렸다. 이것을 부인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거기에 대한민국의 사회는 양극화의 주범인 비정규직을 양산했고 비정규직의 양산은 양질의 문화 소비 계층을 파괴해 버렸다.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인구에 60%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적인 스트레스이다.

이것은 언제라도 비정규직이 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조장하고 이 두려움은 많은 노동자들의 삶속에 침투되어 여유로운 문화생활을 즐기는 일상을 변모시켜 영어학원과 자격증학원으로 노동자를 내몰았다.

양질의 소비가 위축 되면서 양질의 생산도 동시에 위축 되어버렸다. 이것이 총체적인 문제점이라 생각한다. 위축된 노동자 시장은 노동문화 시장을 교란시켰다. 경쟁과 효율이 지배하는 사회의 노동문학은 점점 상업화되고 효율과 경쟁이라는 도구로 전락 되거나 잠식되어갔다.

노동문학은 전위적?


여전히 노동문학은 전위적인 것인가? 문학은 여전히 자기 인식의 도구이며 혁명의 도구로써 유효한 수단으로 자리매김 되어있는가? 저녁에 붙였다 아침에 떼어버리는 대자보이며, 백병전의 단도와 같은 것이며 촌철살인의 무기인가? 문학은 유효한 투쟁의 무기이며 계급적 산물이고 유기적으로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인가? 많은 작가들이 이 질문 앞에서 얼마나 당당할 수 있을지 또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서 시는 아직까지 실천이며, 유효한 투쟁의 수단임에는 틀림없다. 지금의 노동문학 혹은 문학은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 것인가? 읽혀지지 않는 노동문학 베스트셀러이기를 거부한 노동문학 이것이 현 시점의 노동문학 혹은 진보문학의 현주소 일 것이다.

혹자는 문학은 시대적 반영이라고들 한다. 나는 그것을 전면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문학은 시대의 첨병이며 그것을 뛰어 넘는 실천적 투쟁이라고 본다.

대한민국의 현재의 모습은 어떠한 것들이 존재하는가? 이미 비정규직의 숫자는 850만명을 넘어섰고 IMF 보다 100배쯤 위력을 지닌 ‘쓰나미’ 같은 한미 FTA가 우리의 생활을 옥죄고 있다.

새만금부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 확장, 동북아시아의 전략적 유연성을 넘어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는 미국의 군사기지가 이미 우리의 생활에 깊숙이 존재하고 있다. FTA는 이미 우리의 시장 질서를 교란했고 우리의 식탁을 넘어 우리의 뱃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앉아있다.

현실과 멀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학은 자기성찰의 한계를 넘지 못한 채 자기발전을 핑계로 자꾸만 현실과 멀어지고 있다. 무엇을 위해 깊어지는 지 까닭도 모르는 채 말이다. 전망이 없는 문학은 실천적 투쟁으로 규명되지 못하고 허구와 가식의 유희적 산물로 변질되어가거나 혹은 변질되었다. 양심적인 작가의 양심적인 작품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민중의 생존권과 1,500만에 달하는 노동자 계급의 계급성의 상실은 어디서부터 기인한 결과일까?

문학이여! 현장으로 돌진하라! 문학이 삶의 수단이 될 수는 없다. 많은 문학인들은 이미 문학이 삶의 유효한 방편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많은 가치들이 자본으로 계산되고 자본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 구조적인 모순을 부인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이 계급적 문학을 굶주리게 했다.

현장으로 돌진하라

궁핍한 문학은 밥을 원했다. 밥은 더 많은 굴욕과 더 많은 계급성 파괴를 가져오게 했다. 베스트셀러를 위해 계급성을 버린 문화....... 밥을 위해 계급성을 버린 문학........ 그 자리에 우리는 있다. 욕망과 번뇌의 중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 자체가 경제의 수단이 되거나 삶의 방편이 되어버렸다.

[출처: 전국노동자문학연대]

천박한 자본주의 60년 이것이 가져다 준 것이 바로 문학은 밥벌이의 수단이고 밥벌이에는 어디에도 계급은 존재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는 계급을 이야기 한다.

그러나 계급은 어떻게 규정 되어야 할까? 순수한 동기는 이제 어디에도 없다. 많은 선배 문학가들이 그 길에 들어섰다. 그것을 개인의 계급성 배반으로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미 많은 문학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은 안락한 노후와 안락한 삶을 원한다. 자고 일어나면 강남의 집값은 노동자의 연봉만큼 널뛰기를 한다. 문학 작품 한편이 베스트셀러가 되면 팔자를 고친다.

세속화...노동문학은

이렇게 세속화 되고 상업화 된 사회 속에서 순수한 노동계급의 문학은 무엇이여야 하는 것일까? 세상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순수한 문학은 없다. 자본주의 세상의 문학은 모든 것이 자본이다. 그래서 문학은 이미 자본의 도구 혹은 노예로 전락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실천적 투쟁이 필요하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문학은 여전히 밥벌이의 수단이며 싸구려이며, 생계의 수단 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학은 투쟁의 산물이다. 흔히들 대한민국을 천박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쓴다.

‘천박’한이라는 수식어가 규정하는 것이 무엇일까? 1,500만명의 노동자가 계급성을 잃어버리고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을 나는 천박함이라 부른다고 생각한다. 다시 한번 묻고 싶다. 노동자에게 문화가 존재하는지 아니 존재했었는가?

노동문학 혹은 계급적 문학 이것은 작가가 펜을 놓아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회의 변혁적 투쟁을 문학으로 이루어 내려고 하는 것은 이미 어리석은 짓일지도 모른다. 계몽주의 시절에는 그것이 가능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를 우리는 무엇이라 부르는가? 세상이 바뀌지 않았는데 문학이 바뀔 수는 없다. 그래서 문학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려면 문학이 자리를 박차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거기에서 실천하고 거기에서 호흡하지 않으면 문학은 세상이 바뀔 때 까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비참한 문화예술인

비정규직 삶보다 더 비참한 문화 예술인! 비정규직은 최소임금이라는 것에 보호를 받고 있다. 물론 최소임금이라는 것이 분에 넘치는 그런 임금은 되지 못한다. 말 그대로 최소임금이다. 밥 먹고 사는 정도의 죽지 않을 만큼의 임금을 최소 임금이라고 한다.

그런데 문화예술인 비교적 명망이 없는 문화 예술인들의 삶은 어떤가? 최소임금은 고사하고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자(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이래가지고 대한민국의 문화를 이야기 할 수 있는가? 이러다 보니 문화는 자연스럽게 생계형 문화로 자리매김 되고 여기에 상업성이 결부 되면서 그야말로 천박한 자본주의와 타협하는 문화로 내달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한다.

오직 경제적 활동의 방편으로 문화가 제구실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 되어버린 상업주의 문화는 양질의 작품 생산을 가로막고 독자를 확보 하는데 실패한다. 문화를 고민하는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려야 하고 이런 생활고는 양질의 문화를 생산 할 수 없고 수없이 상업주의 문화와 타협 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교육과 의료와 주거의 문제는 문화와 떼어 놓을 수 없는 가장 큰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면 영원히 문화는 삶과 경제와 생활의 문제 지점에서 타협을 강요당할 수밖에 없다.

이것을 극복해야 한다. 적어도 무상의료, 무상교육, 무상주거 이것이 실현되기 위한 과정에서 문화는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하는 것인가? 답은 혁명적 위치에 놓여 있어야한다. 본질을 망각하거나 비껴 갈 수는 없다.

혁명적 위치에 있어야

양노총의 조합원 수가 150만명에 이른다. 이것을 다시 말하면 노동문화의 특수계층이다. 불특정한 다수가 아니라 특수성을 가진 소수이다. 이들은 우리의 무한한 애독자일 수밖에 없다. 출발은 거기서부터 이다.

작가에게 양심적 고뇌와 현장에 무한한 감동 이것이 죽어가는 노동문화를 살리는 가장 큰 길이라 생각한다. 이것을 간과해서 상업주의 혹은 천박한 자본주의 문화를 이길 수 없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문학을 시작하는 많은 젊은이들이 문학을 왜 하는가?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내가 문학을 시작 할 때에는 잘못된 자본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모순된 조국의 잘못된 역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의 노동자 혹은 노동 문학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문학예술인이여, 조직을 건설하라

문학인이여 조직을 건설하라! 프리랜서라고 말하는 것은 자본가가 만든 경쟁과 효율에 복무하는 것일 뿐이다. 문화는 경쟁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문화는 경쟁할 수 없는 고유의 가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분리하고 이것을 상품화 하면서 경쟁과 효율이라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감행한다. 그래서 늘 위축 되고 또 위축되어 있다.

밥이 되지 않는 문화, 원래 문화는 배가 부르지 않는다. 문화는 마음이 부른다. 그러나 지금 현실의 문화는 배가 불러야 한다. 이것이 노동자문화 혹은 노동문화를 침체에 빠뜨렸다.

지금의 문화인들은 세상과 싸울 무기도 대상도 없다. 무던히 자기와 싸움 하고 있다. 이제 구체적이고 적확한 대상을 가려야한다. 자본과 정권이 어떻게 우리는 어떻게 문학으로 복무해 왔는지를 알아야 한다.

국가는 모든 노동자의 사용자다. 그러므로 문화인은 국가와 상대로 교섭해야한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 내어야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적 단결과 계급적 단결이 급선무이다. 무슨 단체를 통해서 국가에서 주는 시혜로 문화예술을 살릴 수 없다. 그 시혜 속에는 엄청난 굴욕과 역사적 비굴함이 숨어있다. 그래가지고는 당당한 계급문학을 복원할 수 없다.

정부가 주는 보조금을 가지고는 그리고 예산 편성에 따라 나오는 그런 것 가지고는 우리는 우리의 문화를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우리의 정당한 요구 우리의 정당한 가치를 만드는 데는 그만한 투쟁이 담보되지 않으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회공공성 투쟁과 다를 게 뭐있냐? 이것이 한미FTA 저지투쟁과 다를 게 뭐있냐? 단체가 없어서 아니면 조직적 힘의 한계를 이제 과감하게 글 쓰는 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복원이 가능하다.

노동자 계급성을 갖는 시 한 편이 우리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가? 노동계급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문법을 가르치고 잘못된 서정을 가르칠 뿐이다. 이것을 생각하자 그것이 바로 수단이다. 그것이 바로 자본과 정권의 노림수이다.

요구를 계급적으로 하자

우리의 정당한 요구를 이제는 계급적으로 하자. 노동조합을 조직해 자본과 정권과 집단적으로 ‘맞짱’을 떠야한다. 그래야 총체적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 길거리에서 공장에서 그래서 노동조합에서 문화를 살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동조합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화는 자기와의 싸움이기도 하지만, 노동자문화 혹은 노동자 문화는 정확히 자본과 정권과의 한판 뜨는 ‘맞짱’이 되어야 한다.

노동조합을 통한 현장 연대, 노동문학 복원, 노동자 계급성 복원은 한걸음 쉬워진다. 노동조합은 노동자라는 계급성을 규명하는 가장 확실한 방편 중에 하나다. 그래서 문화인들의 삶의 문제들을 자본과 정부와 한판 싸움 통해 해결해야한다.

사회공공성 강화 투쟁에 문화가 첨병이 되어야 한다. 교육과 의료와 주거의 문제를 펜으로만 싸울 수는 없다. 노동조합에 가입해 집단적으로 그리고 전민중과 함께 연대하고 실천해야 한다. 문화인이 아니라 노동자로써 책임을 가지고 현실에 복무해야 한다.

그래야 문화가 역사를 바꾸고 사회를 변혁 할 수가 있다. 사라져가는 것이 아니라 골고루 살이 되고 피가 되어 노동자의 온몸을 타고 흘러 사회를 바꾸는 우등불 노동문화예술이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말

하태성 시인은 인천노동자문학회에서 활동을 했다. 노동조합 위원장 및 공공연맹 간부로도 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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