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반대 제주투쟁, 그 '축제'를 돌아보며

[기고] 임기환 한미FTA저지제주도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9월 14일 차관회의에서 제주개최가 확정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너나 없는 반응은 “왜 하필 제주냐”는 것이었다.

1차 산업이 중심적 기초산업으로 어느 지역보다 피해의 집중도와 반대여론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협상장소 마저 내노라니 도민들의 자존심은 구겨질 때로 구겨졌다. 오죽하면 도지사와 도의회까지 여론에 떠밀려 개최지 변경을 요구하겠는가.

정부의 도민 소외 배제전략은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2년전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는 제3차 대외경제위원회에 다음과 같은 자료를 제출한다.

[제주특별자치도 기본계획에 제시된 핵심산업 ‘4+1’(관광, 의료, 교육, IT+청정농업)전략 중 의료와 교육의 경우 “전면적 개방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제주국제자유도시 등을 서비스 시장 개방의 시금석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한때 제주에 한해 스크린쿼터시범폐지 지역으로 하자는 주장까지 더하면 지난 7월 출범한 제주특별자치도는 오만방자한 정부에 의해 FTA 개방전략과 신자유주의 정책의 실험대로 선택된 것일 뿐 장비빛 미래와 자치입법권 확대는 허울좋은 구호와 얄팍한 속임수일 뿐이었다.

애시당초 국민은 안중에도 없으니 정부입장에선 원정투쟁단에 대한 효과적인 차단과 협상장 경비 조건만이 고려의 대상일 뿐, 그들에게 제주도는 변방의 1%,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만큼 작은 지역에서 적은 역량으로 ‘큰일’을 치루어야 하는 도민운동본부와 지역활동가들의 부담감은 컸다. 부랴부랴 3주전부터 단체활동가들이 파견되어 기획단을 구성하고 제주도민과 원정단 1만5천이 참가하는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선전홍보, 조직화 작업이 기획단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도로마다 ‘한미 FTA 저지’ 노란 깃발이 걸리고, 마을 안길 곳곳에 4차협상 저지 호소문과 대회 포스터가 부착되는 등 다시없는 일주일간의 ‘축제’를 준비하는데 모두가 여념이 없었다.

예상 밖의 개최반대여론과 움직임에 놀란 정부와 경찰의 불법적 탄압과 여론몰이 또한 이성을 잃기 시작했다. 18건의 집회신고 무더기 금지, 농기계 보유현황 조사, 농협에 집회참가 예상자 명단요구와 반FTA 농민단체에 재정지원 중단 요구, 도민운동본부 참가단체 일선간부들에 대한 조직적인 불법사찰, 폐쇄유치장 재가동, 지방경찰청장과 검찰의 집회참가자에 대한 엄정사법처리 공개적 천명, 이에 더해 90개 중대 1만명의 응원경찰 입도는 4.3 당시 입도한 응원경찰과 서북청년단의 악몽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주말 골프여행코스로나 제주에 들리던 정부 고위 관료와 여당인사들 역시 지역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하루가 멀다하고 날아들기 시작했다. 그들은 “4차협상 제주개최를 감귤 민감품목 지정의 기회로 활용하자” “감귤을 쌀과 같이 대우하겠다”는 등의 여론몰이를 통해 한미 FTA 문제를 감귤만의 문제로 호도하고 감귤이 민감품목으로 지정되면 감귤산업이 보호된다는 식으로 여론을 호도하면서 반FTA 투쟁의지를 잠재우려 했다.

한미FTA를 감귤만의 문제로 호도했지만 저지선을 돌파한 제주 싸움

그러나 23일 열린 대회는 정부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렸다. 제주도민 1만명, 전국 각지에서 달려온 노동자, 농민 3천명 등 해방이후 제주지역 최대 인파가 모였다는 협상 첫날 대회는 한미 FTA 협상과 민중생존권을 더 이상 무책임한 정부와 협상단에게 맡길 수 없다는 민중의 자주적 의지가 여느때 보다 강하게 표출되었고, 국익우선, 감귤 민감품목 지정 기회 활용이라는 정부와 자치도의 여론호도정책이 실패했음을 확인시켰다. 이와 함께 11월 민중총궐기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주었다.

원정투쟁단과 협상단을 맞이하며 길고 노랗게 펄럭이는 반FTA 깃발을 시작으로 협상기간 내내 다양한 투쟁들이 전개되었다.

“만선의 깃발대신 반FTA 깃발을 달고 해경특공대의 근접 저지선을 넘나들며 중문앞바다를 가로지르는 25척의 배, 두가닥의 줄과 구명조끼에 의지한 채 바로 앞 협상장을 향해 바다로 뛰어드는 농민과 노동자들, 한미FTA 상여를 둘러맨 농민들, 옹이 박힌 손으로 아스팔트에서 태워버린 감귤나무 그리고 길게 늘어선 농기계 행렬과 삼보일배”

원정투쟁단의 헌신적인 투쟁과 제주도민의 높은 참여 그리고 여론의 이목을 끄는 다양한 투쟁은 미국의 무리한 요구와 맞물려 북핵사태 등으로 밀려나 있던 한미 FTA 협상에 대한 관심도를 다시 높여내기에 충분했다.

또한 1만여명의 응원경찰 입도와 경찰계엄을 방불케 한 과잉통제, 불법적 집회불허는 결국 우려했던 폭력과잉진압과 부상자를 속출시켰고, 이는 정부의 반민주적인 졸속추진과 함께 한미 FTA에 대한 반대여론과 정부불신을 증폭시켰다. 특히 유혈폭력진압을 처음 경험한 지역주민들에게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인근 상가주민들은 당시 상황에 대한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고, 지역언론 대부분은 경찰의 과잉진압을 비난하는 기사를 일제히 보도하였다.

10일이 지난 지금도 지역에서는 당시 폭력진압과 25일 농기계시위에 대한 진압에 대한 분노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대로 참고 있어야 하나” “폭력시위가 어떤건지 제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분노어린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화산처럼 여전히 술렁이고 있다.

또한 협상장 인근 지역에 대한 무분별한 통행금지 조치는 크고 작은 일들을 일으켰다. 인근 중소형마트 점원이 매출하락에 불만을 갖고 1톤트럭을 몰고 경찰봉쇄선을 향해 돌진한 일, 인근 마을 청년회가 “주민통행 가로막는 한미FTA 저지하자”라는 현수막을 게시한 일, 인근 상인들이 경찰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추진하는 등 경찰의 과잉통제는 지역주민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서귀포시내에서 삼보일보를 할 때나 중문에서 행진을 할 때 박수를 치고 숙소에 먹을거리를 보내 주는 등 원정투쟁단을 살갑게 대해준 도민들의 지지와 우호적 태도는 잊지 못할 기억이기도 하다. 또한 원정투쟁단의 헌신적 투쟁은 도민들의 투쟁실천의지를 높여내는 기회가 되었고, 준비와 집행과정의 경험은 지역차원에서 11월 민중총궐기 투쟁을 준비하고, 집행체계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물론 4차 협상 투쟁기간 동안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주일간 이어진 투쟁과정에서 주요 각 조직 간부들의 역할 정리와 보고집중이 미흡하여 급박한 상황에서 지도부 공백상태가 발생하였고, 결과적으로 원정투쟁단 일부대오가 ‘미아’상태에 장시간 노출되기 까지 하였다.

또한 경찰의 원천봉쇄라는 객관적 조건 등을 감안하더라도 사업결정과정의 즉자성과 지연은 전달체계의 미흡과 맞물려 일부 주민과 회원들이 각종 투쟁에 계획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한편, 정부와 경찰은 협상기간 동안 제주도민과 원정투쟁단을 분리시켜 투쟁을 약화시키려는 수작을 끈질기게 벌여왔다. 결국 읍,면 지역에서 재정과 주민동원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일부 지역농협이 23일 1시 제주도농축수산인대회만 참석하고 3시 범국민대회에 참석하지 않은 채 지역주민들을 전세버스에 태워 돌아가려고 하자 읍,면 지역비대위와 주먹다짐 상황까지 가는 마찰이 발생하였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읍,면 지역에서는 이같은 갈등이 존재하고 있고, 이는 11월 민중총궐기 투쟁 준비와 관련하여 농협 등과의 관계 재설정 그리고 읍,면 지역비대위의 독자성과 도민운동본부의 주도성 강화가 동시에 요구되고 있다.

이처럼 한미 FTA 4차 제주협상 저지 투쟁은 우리에게 많은 성과와 함께 그에 못지 않은 과제를 남겼다. 협상개시 며칠 전 사무실을 나오면서 책상정리까지 하고 나왔는데 ‘별일’ 없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벌써 11월이 되었다. 여전히 순항중인, 우리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 한미 FTA 협상...

다시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 듯하다. 4차 협상 기간 동안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싸워준 제주기획단은 11월 총궐기 기획단으로 확대 재편되었고, 다시 ‘노란깃발’을 정비하고 있다. “한미FTA 저지,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민중총궐기 승리”를 위해...
덧붙이는 말

임기환 님은 한미FTA저지 제주도민운동본부 집행위원장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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