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부'는 그토록 높은 벽이었을까

금속산별완성대의원대회에 대한 소회

산별노조 건설의 소임을 마친 금속산업연맹

2006년 말미인 12월 27일, 금속산업연맹이 해산했다. 9년의 역사를 ‘산별노조 건설’에 바쳐 온(?) 금속연맹의 해산이 의미하는 것은 금속산별노조가 건설되었다는 뜻이리라.

금속노조의 출범은 이미 진작 있었다. 2001년 2월 금속노조가 출범했다. 당시 금속연맹 대대에서 산별전환을 결의했으나 실상 가입결의가 된 곳은 3만 명 뿐이었으므로 금속연맹의 소임을 완료했다고 볼 수 없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난 2006년 6월, 남한 민주노조의 중심(?)인 현대자동차노조의 결의를 시작으로 자동차 3개 완성사들이 산별전환을 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어 약 1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 14만 조합원들이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산별노조 건설을 기치로 민주금속연맹과 자동차총연맹, 현대그룹총연맹의 결합은 9년이 지나서 산별노조라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뜨거웠던 금속산별완성 대의원대회

금속산별완성대의원대회(금속대대)는 10월 중순경 개최하려 했으나 준비의 부족으로 한달간 연기된 바 있다. 산별완성대대준비위와 산하 4개 소위원회에서 규약과 사업·교섭, 재정, 교육 영역에서 산별적 내용을 준비하기로 했으나 조직체계(지역이냐, 기업지부인정이냐)에 대한 합의안이 도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10차례의 준비위회의가 진행되었고 9차 준비위에서 단일안이 제출, 합의에 이르는 듯 했으나 10차 준비위에서 대공장노조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결국 가장 쟁점이 된 조직체계는 3개 안(한시적기업지부, 지역지부, 지역본부)이 각각 원안의 지위를 부여받는 형식으로 대대에 상정하게 되었고 금속대대가 열렸다.

11월23일과 12월20일에 금속대대가 열렸다. 11월23일 18시간의 토론을 쉼없이 지속했으나 안건을 다 검토하지 못해 휴회하고 12월20일 다시 속개해 19시간의 토론을 거쳐 규약과 선관위구성 등을 결정했다.

이번 대의원대회의 의미와 중요성은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우선 대의원들의 높은 참여율과 집중력이다. 금속노조 본조 대의원은 조합원 200명당 1명으로 선출된다. 그 어느 때보다 선거도 치열해, 현대자동차노조의 어느 선거구에는 13명이 출마해 당선되기도 했다. 이렇게 뜨거운 선거전을 치루고 올라온 대의원들은 개회 시 재적수의 95%가 참여했고, 속개회의에도 80%가 넘게 참석했다. 오후2시부터 다음날 8시, 10시까지 장장 4일간 37시간 동안 그 집중력도 놀라웠다. 탁자와 등받이 없는 의자에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토론과 논쟁에 참여했다. 빵과 우유로 자정에 허기를 달래고 동트는 새벽에 따뜻한 물 한잔으로 버텨내는 금속대의원들의 자세는 모범이 아닐 수 없다.

기명투표의 도입이 최초로 이루어졌고 이를 회의규정에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기명투표하기로' 삽입했다. 이번 대대에서 규약(규정)안은 회의의 원활성을 위해 2분의 1 기명투표에 의한 축조심의를 거쳐 마지막 개정시 3분의 2의 찬성을 비밀 무기명 투표로 처리하기로 했다(물론 이 원칙은 끝까지 지켜지지 않았다). 약 32회의 기명투표가 실시되었다. 이 결과는 곧 공개될 것이다. 기명투표의 의미는 대의제를 올바로 실현하고 있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이번 대대에서 '각급 회의참가 시 해당 조합원의 의사를 조직하여 참가해야 한다'는 대의원칙을 회의규정에 삽입하기도 했다. 이러한 대의원칙은 이 대의제가 아무런 조직화 노력과 안건의 고민없이 대중추수주의에 영합한다면 그 의미는 왜곡될 것이다. 또한 소환제와 연동되지 않는다면 대의제의 완결성은 떨어질 것이다. 금속의 기명투표제는 향후 민주노조 진영의 회의원칙으로 통용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넷생중계를 통해 대의원대회가 공개되었다. 인터넷생중계는 이미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서 사용되었다. 금속대의원대회가 그 어느 대대보다 높은 관심과 쟁점이 있었던 회의였으므로 생중계의 반응 역시 뜨거웠다. 특히 교대사업장이 많은 금속의 경우 그 활용도는 더 높았다. 300여 명이 지속적으로 생중계를 보고 있었고 약 2천여 명이 생중계를 열어보았다고 한다. 그 댓글의 형태도 다양했다. 새벽녘, 조는 대의원을 깨우라는 댓글부터 각 발언자의 발언에 대한 지지와 반대글들이 실시간으로 확인되었다.

이번 금속대대에서 확정된 규약과 규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 특징은 두 가지다. 하나는 현장공동화와 관료화에 대한 우려가 확인되어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들이 마련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14만 명 중 9만 명의 기업단위 조직(기업지부)이 인정되어 기업별노조를 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장공동화와 관료화의 우려는 산별노조의 가장 큰 취약점으로 논란되어 왔다. 현장공동화를 막기위한 방안1)으로 준비위는 '현장조직위원'을 제출했다. 대의원들은 준비위 안 중 현장조직위원 자격을 제한하는 조항인 '기존 현장조직위원은 전년도 교육이수, 회의참석, 출근투쟁, 지역 및 전국투쟁 등 최소한의 기준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재등록할 수 없다'는 안을 삭제했다. 근거는 현장활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현장조직위원제를 두는 것인 바, 굳이 이를 제한하는 조항을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고, 또 이러한 제한조항은 오히려 각 단위임원과 대의원들에게 적용해야 될 조항이라는 것이다. 현장조직위원제도 외에도 현장전문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이 두 제도가 중복된다는 논란이 있었으나 이후 제도를 정비해 가기로 했다.

상근 및 연임상한제2)가 도입되었다. '간부의 관료화 방지를 위하여 상근 및 연임 상한제를 실시'키로 했다. 이 취지는 산별조직으로서 중앙집중력이 커질수록 관료화가 나타날 것이라는 우려속에서 제출되었다. 한 대의원이 '오래하면 썩게되고 이를 바꿔야 한다'는 지지발언과 함께 별다른 논쟁없이 통과되었다. 임원들의 연임은 그간의 민주노조운동속에서 많지 않음을 감안하다면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무처에 대한 불신이 현상화된 것이라 할 수 있다.

현장활동강화를 위한 방안으로는 쟁의권의 보장과 신분보장의 확대로 모아졌다. 애초 준비위에서는 '현장단위의 쟁의가 조합의 통일된 투쟁에 악영향을 미칠 경우 위원장은 즉각 중단을 명할 수 있다'는 조항을 제출하였으나 이는 폐기되었다. 대의원들은 '현장투쟁을 위원장이 중단하는 것은 민주노조의 기본원칙의 훼손'이며 '지도부에는 무한한 신뢰를 보내고, 현장투쟁에는 지극히 불신의 감정이나 정당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따끔한 지적들이 이어졌다. 신분보장범위는 사실상 모든 투쟁과정에서 발생한 불이익과 보복성 계약해지까지 대폭 확대되었다. 금속노조는 그동안 정리해고와 계약해지로 인한 해고에 대해서는 신분보장기금을 지원하지 않았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시정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 부분은 규약은 개정되었으나 재원이 마련되지 않으면 집행이 불가능한 안으로, 이후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로 쟁점이 옮아갈 것으로 보인다.

가장 핵심적 사안이었던 조직체계는 결론적으로 '한시적으로 기업지부를 인정'하게 되었다. 규약에는 '지역단위'로만 지부를 인정하도록 되었으나 경과규정으로 '2009년 9월까지, 3개 시도에 걸쳐있고 조합원이 3.000명 이상일 경우 기업지부를 인정'했다. 또한 '기준에 미달하는 기존지부와 철강사업장의 조직편재는 중앙위원회에 위임하여 결정'하도록 했다. 이 기준과 중앙위 결정을 예측하여 판단할 경우, 14만4천 명의 66%인 9만5천여명이 기업지부로 편재되는 것이다. 금속노조(본조)와 지부단위로 현재의 지역지부 15개, 기업지부가 현자, 기아, 대자, 쌍차, 만도, 현대제철, (두산인프라코어) 7개, (철강업종지부), 그리고 사업장단위의 지회가 설치된다.

'한시적 기업지부 인정'이라는 결론을 내기까지 많은 논란이 대대 안팎에서 있었다.

하나는 각 안에 대한 지위와 표결순서의 문제였다. 1안인 한시적기업지부와 2안인 지역지부, 3안인 지역본부(수정전 광역본부)안 3개가 나란히 원안적 지위로 올라갔으나 '원안적 지위'라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2안과 3안은 현장발의자가 있었으나 1안의 발의자는 과연 누구인가로 이어졌다. 1안의 발의자는 준비위원회 규약소위원장인 현대자동차노조의 박준석 동지로 정리되었다. 한시적기업지부는 산별완성준비위원회의 이름에는 걸맞지 않게 준비위원회의 안으로 등장했다.

표결순서의 논쟁은 원안에서 거리가 먼 안으로 처리했던 대대진행방식으로 할 경우, 먼 안이란게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규약에는 지역지부로 명시되었으므로 먼 안은 한시적기업지부라는 주장이 있었다. 이 주장은 대대에서 제출되지 못하고 사라졌다. 기명투표방식을 회의규정에도 없는 '긴급동의'라는 절차에 근거하여 비밀 무기명투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대의원들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였다. 이미 '업종과 기업단위의 지부설치 삭제'안이 72.84%로 통과된 후라, 고민하는 대의원들의 표심잡기가 중요했다. 안에 대한 발제와 찬반토론, 이후 토론방식이 중요하게 검토되었다. 발의자들의 발제가 끝난 뒤 정회가 선포되고 이 정회시간에 각 안에 대해 2명씩 찬반을 하기로 하고 찬반토론 순서가 정해진다.

3안진영은 1-2-3-1-2-3을 제안하였으나 의장(김창한 위원장)은 1-2-3-3-2-1 순서로 제안하고 결정된다. 토론자들의 훌륭한 연설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가장 설득력있는 연설은 맨 마지막에 배치된 현대자동차의 박유기위원장의 연설이었다. "지금 지역지부를 결정해 놓고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것보다 한시적 기업지부를 인정하고 3년뒤에 이행하는 것이 책임있는 결정"이라는 전제아래 "현대자동차는 당장 지역지부로 갈 수 없다"는 결론의 연설이었다. 현대자동차노조가 지역지부로 갈 수 없다는데 누가 감히 이를 넘어설 수 있었겠는가?

금속대대는 한번의 휴회를 거쳐 속개되었는데 그 기간이 약 한 달이었다. 이 한 달사이에 나타난 우려의 주장은 '축조심의 후 전체규약 심의는 3분의 2로 해야 하는데, 만약 부결되면 현재의 금속노조 규약이 남아있게 되며, 대공장들은 이후 금속노조로 안 들어올 것이다'와 '부결되면 선거도 연기해야 하고 사업계획 수립이 늦어져 2007년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한 달의 휴회 기간과 이러한 우려들이 대의원들에게 어떻게 작동했을까 궁금하다.

다양한 토론을 통해 산별의 전략을 공유하고 이 전략속에서 조직체계와 재정의 분배방식, 사업방향이 논의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랜시간 각 안에 대한 토론이 있었으나 정작 모든 사람들의 관심이었던 조직체계에 대한 토론은 매우 빈약했다. 물리적 시간의 제약과 피곤함, 회의전술 등이 고려되었겠으나 그럼에도 14만 산별노조시대를 만들어가야 할 과제를 생각한다면 자신의 정치적 결정과 상관없는 토론이 필요했다. 대공장과 중소공장, 정규직과 비정규직, 여성과 남성, 그 외 소수자들의 고민들이 공유되는 공간으로서의 대의원대회여야 했다.

이후로 남겨진 과제로는, 비정규직지회를 기업지부에 할 것인지, 지역지부에 편재할 것인지는 해당단위 판단에 맡겨져 있고 재정배분은 결정되었으되 지부편재는 중앙위로 이월되었고, 여성 및 비정규직 소수자할당제는 규정을 통해 시기와 비율을 정해야 한다. 이러한 구체적 실행방식이 결정되면 '산별완성금속노조'의 형태가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1년을 준비해 온 금속산별완성대의원대회는 지난 6년간 금속노조의 성과를 계승하고 한계를 극복하진 못한 듯 하다. 3년 뒤 과연 한시적기업지부가 해소될 것인지, 3년의 기간동안 3분의 2에 해당하는 기업지부 소속의 대의원들과 중앙위원들은 규약을 재개정하지는 않을지, 3년동안 기업지부 해소 방안으로 제출된 지역중심의 사업이 집행될 수 있을지, 그 성과가 어떤방식으로 축적될지는 아직 예측하지 어렵다. 때문에 남한 땅에서 세계최초로 기업별노조에서 산별노조로 전환하는 사례는 3년 뒤로 남겨져야 할 것이다.

2006년 6월, 대공장조합원들의 산별노조의 선택은 무슨 의미였을까? '달라질게 아무것도 없다'는 말에 동의했기 때문에 67%(3분의 2)의 조합원들이 산별전환을 결의한 것이었을까? 2006년 12월, 우리 금속동지들에게 '기업지부'는 그토록 높은 벽이었을까?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



1) 구 금속노조출범시에도 현장위원제도가 검토되었으나 집행되지 못했다.
2) 상근 및 연임상한제 안은 준비위원회에서 제출한 것이 아니라 현장발의로 제출되었다. 현장발의안이란 대대2일전에 10인의 서명을 받아 안건상정을 요구할 경우 이를 인정했다.
덧붙이는 말

최윤정 님은 금속노조 정책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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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철

    9차회의 단일안엔 업종지부는 없었어요 확인하세요. 지역본부 중심의 임의조직으로 기업지부 인정이었습니다. 정확한 확인이 필요할 듯합니다.

  • 최윤정

    맞는 지적이십니다. 확인해 보니 준비위9차회의 결과에는 없었습니다. 아마 제가 9차회의전 수정안 제안을 받았을때 업종체계를 두어야 한다는 기억때문에 혼동한 듯 합니다. 각주 1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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