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년경제운용방안, 별 대안없이 불만 관리 기조

[기고] 사회운동이 정부정책에 공세적인 의제 제기 필요

지난 1월 4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경제점검회의에서 "2007년 경제운용방향"이 발표되었다. 기본 방향은 '경제의 안정적 관리'와 '성장 잠재력 확충(개혁로드맵 마무리)'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6가지 세부 과제는 다음과 같다. △거시경제안정, △투자촉진을 통한 일자리 창출, △서민경제안정, △경제시스템 선진화, △대외개방협력강화, △미래에의 대비.

"경제운용방향"에 대한 여러 보수언론의 반응을 찾아보니 그다지 새로울 게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으레 그렇듯 규제완화와 투자촉진 계획이 미진하다는 볼멘소리도 있었다. 30만개 일자리 창출 계획은 대선용 선심성 정책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은, 기본 구상의 방향을 제대로 잡았으며 차질을 빚는 일이 없도록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과연, "경제운용방향"에는 눈에 띄게 새로운 게 없는가? 하루하루의 삶은 여전히 팍팍한데 정책이 달라진 게 없어서 문제라고 비판하고 글을 끝맺어도 되는 것인가? 문득, 지난해의 신년계획이 궁금해져 옛 기사를 찾아봤다. '노대통령 대국민 신년 TV연설, 일자리 창출을 통한 양극화 해소에 주력,' '사회적 일자리 13만 개 창출,' '중소기업 육성,' '서민지원에 5년간 19조 원 투입.' 이러한 대통령의 폭탄선언에 대해 대다수 언론은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증세를 하겠다는 것이냐며 거세게 반발했다. 정부가 문제의 해법을 거시경제 안정화와 투자촉진, 성장잠재력 확충에서 찾지 못하고 잘못된 방향에서 구하고 있다는 질타도 이어졌다.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1년 전의 기사들을 끄집어 읽던 중 퍼뜩, 올해의 정책운용 방향이 작년과 많이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양극화 해소 의지가 있고 없고가 작년과 올해 사이에 달라진 내용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다. 사실 지난해에도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선언은 결국 비정규직 법안과 노사관계로드맵의 날치기 통과, 한미 FTA 추진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던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싸우겠다던 정부가 실제로는 노동의 불안정화와 빈곤 문제로 고통 받는 노동자, 민중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당초의 다짐대로 노동자, 민중의 반발을 이겨내고(?) 노동법 개악에 성공했다. 작년 초에 제기된 보수언론들의 질타와 달리 세율인상은 시도조차 되지 않았고, 양극화 해소를 위해 기업 활동을 규제하거나 재정지출을 확대하지도 않았다.

지난해와 달라진 것은 양극화 해소라는 수사를 경제정책의 전면에 내세울 유인이 축소되었다는 정도. 지난해의 경우에는 집권 말기에 이르기 전에 국회에 계류 중인 노동유연화 법안들을 처리하는 일이 시급했다. 양극화 해소, 비정규직 보호, 노사상생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법제도 정비의 본질을 가리면서 노동법 개악 정국을 돌파하는 데 효과적으로 활용되었다.

반면, 지금은 핵심 법안들이 이미 통과되었고 대선까지 불과 1년도 안 남은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정권이 노동자, 민중의 조직적인 저항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한 노동관련 현안을 벼랑 끝 승부수로 선택할 수 있을까? 대신 정치개혁 의제를 부각시켜 계급투쟁의 전선을 흐리면서 미시적 차원에서 노동유연화 공세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마침 새해 벽두부터 연이어 터져 나오는 "할 말은 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발언이나 개헌 논란은 이러한 예상을 뒷받침한다.

물론 2007년의 경제운용 계획에도 서민경제 안정과 유연안정성 제고, 사회적 일자리 창출, 직업훈련확대, 사회안전망 내실화, 노동시장 법·제도 선진화 기획단 운용 등 노동시장 정책들이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들 정책은 지난해 이맘때 제기되었던 양극화 해소 방안(비정규직 법안 통과와 노사관계로드맵)에 비하면 신선하지도 않고 구체적인 내용도 없다. 해야 할 건 이미 작년에 다 했으니까 올해는 상존하는 불안정성이 체제의 위기로 전화되는 것만 관리하자는 취지로 읽힌다.

오히려 금융 및 기업부문 구조조정에서 확실한 몇몇 정책이 눈에 띈다. 그 중 한 부류는 지금까지 추진되어온 금융 및 기업부문의 구조개편을 마무리하려는 시도로서, 다음과 같은 정책을 꼽을 수 있다. 한미 FTA 체결, 자본시장통합법 입법 완료, 기업환경개선 종합대책 개선․보완, 전자증권 제도 도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보험법 개정을 통한 보험사 자산 운용의 자율성 확대, 금융지주회사에 대한 규제 완화, 1단계 금융허브 기반 구축 완료.

이와 같은 정책집행은 먼저 노동유연화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 놓은 후 정치적 부담이 적은 기업 및 금융부문 구조조정을 정권 말에 마무리하려는 수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부류의 정책들은 참여정부 출범 당시 내세웠던 개혁과제에서 후퇴하는 조치들로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대상 축소 및 출자한도 비율의 상향조정, 지주회사의 자회사 지분 보유요건 완화 등이 그에 속한다.

2007년 경제계획에 전례 없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내지르면 좋으련만, 솔직히 그다지 새로운 건 없는 것 같다. 별다른 대안 없이 언제 어떠한 방식으로 터져 나올지 모르는 불안요인을 관리하는 데 주력한다는 정부의 입장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부문별 로드맵의 마무리 작업도 대부분 이전부터 진행되어 온 바이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노동자, 민중의 투쟁을 고립․분산시키면서 노동유연화 공세를 별다른 탈 없이 이어나가는 것, 이것이 지금의 지배세력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정책운용 방향이 아닐까?
덧붙이는 말

황선웅 님은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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